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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영화

그란 투리스모: 이게 실화였다니

나의 4,110번째 영화. 개인 평점은 8점.

유투브 알고리듬 덕분에 이 영화를 알게 되었는데, 내가 본 유투브는 영화 내용을 요약해서 보여주는 거라 1분 남짓 보다가 꺼버렸다. 왜냐? 요약본이 아니라 풀영상으로 보려고. 첫눈에 내 취향에 맞는 영화라는 걸 알아봤으니까. 그란 투리스모라고 하는 플레이스테이션 게임만 하는 덕후가 실제 레이싱에 참여한다는 거까지만 봐도 오 재미난 상상이네 하는 생각에 선택했다. 개인적으로 레이싱 영화 좋아하기 때문에. 근데 영화 시작 전에 나오더라. 실화를 기반으로 한 영화라고. 엥? 이게 실화였다고? 실제로 이런 일이 있었다고?

 

GT 아카데미
GT Academy

실제 2011 GT 아카데미에 참여한 영화 속 주인공의 실존인물인 얀 마딘보로

GT 아카데미는 자국 내 기업인 소니와 닛산의 합작으로 탄생한 것으로 상상을 해볼 법한 얘기지만 실제로 했다는 게 정말 놀랍다. 그냥 일반인을 데려다가 모터스포츠에 투입을 시킨다? 내가 생각해도 무모하기까지 하다. 뭐 마케팅적으로는 잘 되면 정말 획기적이라고 할 순 있지만 잘못될 가능성이 많고, 사고의 위험도 있기 때문에 시도하기가 쉽지 않을텐데 말이지. 그래도 그런 시도 덕분에 게임 덕후가 실제 레이싱에서도 통한다는 걸 증명해낸 스토리가 탄생하게 되는 거 아니겠냐고. 때로는 실제가 영화보다 더 영화같단 생각이 든다. 아마 이런 거 때문에 코리안 좀비 정찬성도 일반인이지만 재능이 타고난 사람을 발굴하려고 좀비트립하는 거 아니겠어?

 

얀 마딘보로
Jann Mardenborough

영화를 보면 GT 아카데미를 개최하고 탄생한 레이싱 스타라고 여겨지지만 반만 맞더라. GT 아카데미를 통해 발굴한 건 맞지만 GT 아카데미가 시작된 건 2008년이고 얀 마딘보로는 2011년 GT 아카데미의 유럽 챔피언이다. 그러니까 GT 아카데미 시작되고 3년 뒤에 발굴한 스타급 인재란 얘기. 그리고 GT 아카데미는 2016년을 마지막으로 종료되었다. 영화는 GT 아카데미 2011에서 유럽 챔피언을 하고 당해 우승을 한 후에 이듬해인 2012년 두바이에서 열린 르망 레이싱에서 3위를 할 때까지를 다루고 있다. 영화를 보면 당해에 르망 24시에 참여한 것처럼 생각할 수도 있는 부분. 참고로 영화 속 FIA 라이센스 취득에서 FIA는 국제 자동차 연맹(Federation Internationale de l'Automobile)을 말한다.

 

르망 24시
24th Le Mans

보통 모터 스포츠하면 포뮬러 1(F1)을 먼저 떠올리지만 그건 누가 더 빠르냐의 승부지만, 르망 24시는 말 그대로 24시간 동안 달려야하기 때문에 차의 내구성이 특히 중요하다. 그렇다고 한 명의 드라이버가 계속 운전할 순 없고 3명이서 돌아가면서 운전하는데, 피트 스톱을 하게 되면 그만큼 지체되는 시간이 있으니 한 드라이버가 오래도록 타야겠지만, 4시간 이상은 주행할 수가 없고, 한 드라이버가 최소 6시간에서 최대 14시간까지만 주행 가능하다. 단, 차는 바꾸지 못한다. 그래서 차가 고장나면 완주 불가하다. 물론 피트에서 수리 가능하면 수리하고 경기를 계속할 수 있다. 그래서 내구성이 중요한 거다.

그러나 내구성만 중요하냐? 그렇지도 않은 게 24시간 동안 누가 제일 많이 달렸냐로 승부를 내는 거기 때문이다. 그래서 빨리 달리면서 오래 달려야 한다. 100m 달리기 선수를 마라톤 뛰게 만드는 꼴. 평균 속도가 200km/h나 된다고. 게다가 가장 속도를 낼 수 있는 구간에서 최고 기록은 400km/h에 육박하기도 했다고 한다.(현재는 안전 문제로 이렇게는 못한다.) 그래서 르망 24시에서는 완주만 해도 대단한 거다. 거기서 3위를 했으니 대단한 기록이라고 할 수 있다. 방구석 게이머가 말이지. 

르망 24시 하니까 떠오르는 영화가 있다. 스티브 맥퀸 주연의 1971년작 '르망'이다. 이 영화가 르망 24시에 대해서 아주 잘 그리고 있는 영화. 그리고 폴 뉴먼이란 영화 배우가 있다. 요즈음 MZ 세대들은 잘 모를 옛 배우인데, 이 배우가 레이싱의 매력에 빠져 프로 레이서로도 활동을 했고, 단순하게 프로 라이센스 따고 몇 번 레이싱에 참여한 정도가 아니라 1979년 르망 24시에서 2위를 기록한다. 물론 개인전이 아니라 팀전이라 폴 뉴먼이 잘해서 그런 건 아니라고 해도, 그렇게 따지면 '그란 투리스모'의 주인공 얀 마딘보로도 매한가지지.

 

뉘르부르크링
Nurburgring

영화 속에서 얀 마딘보로가 몰던 닛산 GT-R이 날라가면서 사고가 났던 트랙이 바로 뉘르부르크링 트랙이다. 영화 속 사고도 실제로 있었던 사고라고. 뉘르부르크링 트랙은 세계에서 가장 긴 트랙이기도 하며, 가장 혹독한 트랙으로 정평이 나 있다. 내가 레이싱에 관심이 많아서 내 블로그에도 이에 대해서 적어뒀던 글이 있을 정도. 경기가 없을 때는 유료로 개방한다고 하니 차를 좋아한다면 독일에 갔을 때 한 번 맛보길. 차가 없다면, 바이크로도 이용할 수 있고, 관광객들을 위해 한 바퀴 도는 택시도 있다고 한다. 참고로 이 트랙은 히틀러가 지시해서 만들었다 한다. 

 

그란 투리스모
Gran Turismo

 

그란 투리스모는 이태리어고, 영어로는 그랜드 투어링(Grand Touring)다. 먼 거리를 달리는 고성능 차량이란 뜻. 상용화된 차들에도 GT라고 붙어 있는 차가 있는데 그게 그런 뜻이다. 근데 사실 애매하지. 먼 거리라는 게 어느 정도 먼 거리? 고성능 차량이라는데 어느 정도 고성능? 올해 나온 차보다 내년에 나올 차가 더 고성능인데 말이지. 요즈음 시대에는 좀 그런 표현이 무의미해지는 거 같긴 하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닛산 GT-R의 GT도 그런 뜻이고, R은 Racing의 약어로 GT카인데 스포츠카라는 의미로 그렇게 이름 지었다고 한다. GT-R 타보지는 않았지만 포르쉐와 비교도 안 되는 가격인데 포르쉐를 능가하는 퍼포먼스의 차. 근데 인기는 없는. 매니아들만 좋아하는.

영화 속 레이싱 대회도 우리가 아는 F1과는 차량이 좀 다르다. 실제로 우리가 도로에서 볼 수 있는 차들이 나오니까. 물론 튜닝을 했기에 양산차랑은 다른 퍼포먼스를 내지만 뼈대는 양산차를 베이스로 하고 있다. 이런 대회들이 꽤 있다. 모터스포츠라 해서 포뮬라 원만 있는 건 아니라는 얘기. 그리고 영화 속 실존인물 얀 마딘보로는 GT 아카데미를 졸업한 사람 중에 최초로 포뮬라 원(F1)까지 간 인물이다. 포뮬라 원이 자동차 레이싱에서는 대왕격. 차 한 대 값만 해도 100억은 우습게 넘어가고, 일반 도로에서는 달릴 수가 없다. 레이싱 전용카.


개인적으로 실화를 기반으로 한 영화를 좋아하기도 하고, 레이싱 영화를 좋아하다 보니, 영화의 완성도보다는 몰입감에 충실해서 후한 평점을 줬지만, 레이싱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면 그렇게 재밌다고 할 수 없을 수도 있다. 그런 이들이라 하더라도 재밌게 볼 수 있는 영화가 있는데, 바로 '러시: 더 라이벌'이다. 이 또한 실화를 바탕으로 했지만 요건 좀 재밌을 거다. 게다가 크리스 헴스워스가 주연으로 나오고. 크리스 헴스워스의 매력을 잘 느낄 수 있는 영화. 이 실화는 F1 역사에서 잊혀지지 않을 기록이기도 해서 다큐멘터리도 있다. '세나: F1의 신화'가 그것이다. 이 또한 재밌다. 물론 나는 재밌었는데, 다른 이들에겐 어떨 지 모르지. 나는 다큐멘터리도 종종 보는 편이니까.

레이싱 영화를 좋아하고, 어릴 때는 참 험하게 운전하기도 했다만, '그란 투리스모' 게임은 몇 번 밖에 못해봤네. 내가 게임을 하게 되면 빠져드는 타입이라 아예 게임을 관심을 두지도 않고 외면하는 편이다. 게다가 '그란 투리스모' 하려면 플레이스테이션 있어야지 그것만 갖고 되나? 핸들이며, 페달이며 또 갖출 건 갖춰야 하지 않겠냐고. 그러다 보니 아예 시도를 안 했던 듯. 그래도 '그란 투리스모'는 아주 아주 오래 전 그러니까 2000년? 2001년? 이 때에 해봤었다. 그것도 핸들과 페달 셋팅해둔 지인이 있어서. 재밌긴 하더라. 그러나 안돼. 한 번 빠지면 난 끝장을 보려고 해서.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