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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영화

승부: 최고 사제간의 승부

나의 4,132번째 영화. 개인 평점은 7점.

나는 바둑을 잘 못 둔다. 관심이 없어서. 다만 어릴 적에 머리가 좋아서(나도 어렸을 때는 신동 소리 들었다.) 아버지가 바둑을 가르칠까 했었단다.(아버지는 아마 1급) 몰라 배웠다고 해서 이세돌이나 이창호 같이 되지는 않았겠지만.(참고로 이창호가 나보다 1살 많다.) 여튼 그래도 조훈현과 이창호는 잘 안다. 요즈음 세대들이야 알파고 덕분에 이세돌 정도나 알겠지. 바둑에 관심이 없다면 말이다. '응답하라 1988' 때문에 이창호를 알 지도 모르긴 하겠다.(여기에 박보검이 이창호의 상하이 대첩을 모티브로 만든 장면이 있으니)

그 맛에 봤다. 이병헌 내가 정말 원탑으로 꼽는 연기파 배우이나 솔직히 이번 영화에서는 연기를 잘 한다는 걸 잘 모르겠더라. 물론 조훈현 9단의 버릇이나 그런 걸 잘 관찰해서 표현하긴 했는데, 워낙 조훈현 9단의 외모나 캐릭터가 강해서 이병헌이 조훈현을 연기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다 보니 그런 듯. 그에 반해 오히려 이창호를 연기한 유아인은 잘 어울리는 듯 했고. 말은 청출어람이라고 하지만 스승이 제자한테 진다는 거 그것도 한참이나 어린 나이의 제자한테. 그걸 받아들이는 게 쉽지는 않으리라 본다. 당시 이창호는 15살, 조훈현은 37살이었다. 조훈현도 그리 많은 나이는 아니었으니.

게다가 내제자로 같이 동거하면서 공부를 했던 지라 집으로 돌아올 때는 승자와 패자가 같은 차에 올라야했으니, 그 때의 분위기는 정말... 절대 강자였던 남편을 꺾은 제자. 누구의 편을 들지도 못하는 아내. 물론 세월이 흐르고 나면 영원한 건 없으니 오히려 내 제자한테 지는 게 낫다는 자연스런 결론에 이르기 마련이지만, 한창 절대 강자로 군림하고 세계 1위라는 타이틀을 쥐고 있는 사람이 제자로 들인지 5년 만에 최고의 자리를 내줘야 한다고 생각해보라. 그게 쉬울 지. 참고로 조훈현은 9살에 최연소 프로 입단했고, 이창호는 11살로 두번째 젊은 나이에 프로 입단했다.


원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는 영화를 보고 난 다음에 실제는 어떠했는지 찾아보는 재미가 있다. 이창호와 조훈현은 상대 전적이 195승 119패로 이창호가 우세하다. 이창호는 그 어느 누구와의 상대 전적에도 우세한 승률을 보인다. 포스트 이창호라 불리던 이세돌(이세돌은 12살의 나이로 프로 입단해 최연소 3위다.)도 34승 36패로 이창호가 2번 더 이겼다. 

조훈현이나 이세돌은 공격형 바둑을 두고, 이창호는 수비형 바둑을 둔다. 영화에서도 잘 나오지만 반집이라도 이기면 된다는 생각에 판세를 읽고 두기 때문에 싸우기 보다는 싸우지 않고 이기는 전략을 쓴다. 격투기로 따지면 착실히 포인트를 쌓아나가지 화끈한 KO승을 하지 않기 때문에 재미없을 수 있단 얘기. 그러나 이세돌이 얘기하기로 이창호 9단과 같이 두기가 어렵단다. 왜냐면 판세를 읽어야 하는데 그럴려면 수많은 수를 계산해야 하기 때문. 그래서 이세돌이 알파고와 대전할 때 이창호와 대전하는 느낌이었다고 했고.

바둑을 논할 때 많은 이들이 언급되지만 그 중에서도 한 명을 꼽으라고 한다면, 조훈현도 아니고, 이세돌도 아닌 이창호를 꼽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창호라고 하면 가장 유명한 일화가 상하이 대첩이다. 이건 찾아보는 게 좋을 듯. 재밌으니까. 시진핑도 팬으로 두고 있는 게 이창호다. 이 상하이 대첩과 똑같은 일이 또 벌어지긴 했는데, 드라마틱하지만 당시의 바둑 인기와는 비할 바가 안 되는 요즈음이라 그런지 이창호가 아니라서 그런지 이창호의 상하이 대첩만큼의 느낌은 아니네.


그래도 보고 싶었던 건데 넷플릭스에 뜨자마자 바로 본 듯. 간만에 재밌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