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신경 교모세포종. 재작년에 그렇게 진단을 받고, 항암 치료를 하면서 수술을 받고(머리가 움푹 들어감), 섬망에 치매 증상까지 보였다는 얘기를 페이스북을 통해서 봤었다. 페이스북 하지도 않는데, 그거 때문에 로그인을 했을 정도. 원래 아프고 시한부 판정 받게 되면 예정보다 빨리 죽는 경우가 많다. 어떻게 해서든 극복해내려고 하기 보다는 그냥 포기해서 그렇게 되는 거 같아서, 힘내라는 응원의 댓글을 제수씨가 대신 소식 전해주는 후배 페이스북에 달기도 했었고. 제수씨한테 문자를 보내 면회도 가려 했지만 사람을 잘 못 알아본다고 해서 가지 못했는데, 그래도 동기들 중에는 갔다 온 동기도 있더라. 같은 삼성전자라서 그런지.
나는 사실 사업한다고 학교에 오래 있지 않아서(퇴학 당했지. 학사경고 3번으로. 그래서 독학으로 학사 학위 이수한 거고.) 후배들 많이 모르지만, 이 후배는 나와는 남다른 인연이 있는 후배였다. 삼성전자 책임연구원에 포르쉐 마칸을 타고 다니면서 인스타나 페이스북을 즐겨하던 녀석으로 사람들은 기억하겠지만, 나는 현재의 그런 모습보다 내가 대학교 때 벤처하면서 함께 일했던 후배로 기억한다. 우리 과 수석이라 똑똑했거든. 일을 시켜보면 확실히 달라. 다만 노력파는 아닌지라 좀 게을러서 탈이었지. 한동안 괜찮아지고 있다더니 이렇게 되네. 동기 단톡방에 소식이 전해졌고, 마침 일요일에 수원에 장례식장이 있어 동기들과 함께 방문했다.
그리 많지 않은 나이에 그렇게 된 게 안타깝다. 중국 주재원으로 있다가 한국와서 갑작스럽게 그리 된 거라. 자식을 먼저 보내는 부모의 심정을 어떨지. 일찍 부모의 장례를 치르는 자식의 심정은 어떨지. 그래도 갑작스런 사고가 아니라 병으로 맞은 죽음이라 가족들도 그간 힘들었겠지만, 마지막을 어느 정도 준비는 할 수 있었음에 다행이라 생각해야 되는 건지. 딸이 하나 있는데, 그래도 오래된 투병 생활로 어느 정도 준비가 되었던 듯 하더라. 동기 중에 이런 거 잘 챙기는 동기 녀석을 보더니 제수씨는 울음을 터트렸고, 자리는 이내 숙연해지더라. 그간 고생 많이 한 걸로 아는데, 그 고생이 결실을 맺지 못하고 이렇게 되어버렸으니. 죽음 앞에서는 명예나 재물 따위가 무슨 소용이 있을까.
내가 이런 자리 잘 안 간다. 동기들 단톡방에 이런 소식들 올라와도 내가 잘 알지도 못하거나, 알아도 별로 친하지 않아서 잘 참석하지도 않고. 그래도 나와는 특별한 인연이었던 녀석인지라 시간 내서 가게 되었던 건데, 장례식장에서 우리가 제일 고참이더라. 오랜만에 보는 후배들도 있었지만, 얼굴 모르는 후배들이 더 많았던. 동기 중에 이 모든 후배를 아는 동기도 있던데, 나는 극히 일부만 알다 보니 내 장례식장에는 누가 와줄까 하는 생각? 내가 죽으면 아들은 이 세상 잘 살아갈 수 있을까 싶은 생각? 등 이런 저런 생각을 하게 만들더라. 나름 보험 들어둬서 내가 죽고 난 다음에나 아들이 나이 들었을 때를 대비해두긴 했다만.
살아 있을 때 더 챙기고 더 많은 추억을 만들어야 되는데, 가족이면 그게 잘 안 되지. 어쩔 수 없는 거 같다. 그렇게 우리는 살아가고. 죽음을 맞이하고 슬퍼하고 후회하고. 백세 시대라고는 하지만 이제는 결혼식장보다는 장례식장 가는 회수가 더 많아지겠지. 가는 날은 누가 먼저랄 게 없으니. 그런 생각을 하다 보면, 지금 그래도 마음을 나누는 사람들 좀 더 챙기고 살자는 생각이 많이 들더라. 죽으면 다 소용없는데 살아 있을 때 그렇게 아웅다웅할 필요가 있을까 싶지만,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면 언제 그랬냐는 듯 또 아웅다웅하겠지. 내 팔찌가 '메멘토 모리'다. '죽음을 기억하라.' 항상 그렇게 살려고 하지만 그게 잘 안 되는 건 어쩔 수 없는 인간이라 그렇겠지.
한해 지날수록 수척해지는 부모님한테나 좀 더 잘하자. 아무리 잘해도 부모님 돌아가시고 나면 후회 밖에 안 남겠지만, 그래도 덜 후회하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