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2007년 8월 5일 본 나의 2,660편째 영화.
IMDB 선정 최고의 영화 250편 140번째 영화.
죽기 전에 꼭 봐야할 영화 1001편 236번째 영화.
영화 매니아라면 봐야할 영화 100편 41번째 영화.
최근에 보는 고전들을 보면 두 가지 공통점이 있다.
1. 이탈리아 영화라는 점근데 아는 사람 알겠지만 나는 영화만큼은 영화학적인 해석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2. 네오리얼리즘 영화라는 점
그냥 보고 느끼고 즐기는 데에서 만족하면서 인생에 활력소가 되기를 바랄 뿐이다.
어쨌든 이러한 두 가지 공통점을 미루어 보건대 1950년 전후의 영화에는
이탈리아 영화가 주류를 이룬 듯 하다. 또한 시대적 상황이(2치 세계대전 종전후)
네오리얼리즘이라는 문화적 주류를 형성한 듯 하기도 하다.
사실 이 영화를 보기 전에 제목만 보고 대충 영화의 핵심은 파악할 수 있었다.
왜냐면 자전거를 소재로 한 영화 중에 <북경 자전거>라는 영화가 있다.
자전거가 영화의 핵심 소재로 쓰이고 그것을 도둑 맞는 것 또한 비슷하다.
물론 두 영화가 나타내고자 하는 것은 다르지만 같은 소재와 같은 내용을
어떻게 접목시키느냐에 따라 차이가 있을 듯 싶다.
<자전거 도둑>에서 전쟁 이후에 일자리를 구하는 모습에서 부터 자전거라는
것은 안토니오에게는 삶의 수단이요 돈을 벌 수 있는 희망의 매개체다.
제목에서 암시하듯이 그런 희망의 맻개체인 자전거를 도둑 맞게 되고
그것을 찾아나서다 결국에는 자신이 자전거 도둑이 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자전거를 도둑 맞은 것은 그들에게는 삶의 수단을 잃어버린 것이고
희망을 강탈당한 거나 마찬가지인 것이다.
그렇기에 그것을 되찾고자 하는 욕구가 절실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이 영화에서 주는 메시지는 시대적 상황 그리고 주인공인 안토니오가 처한 상황
속에서 안토니오가 자전거 도둑질을 한 것에 대해서 진지한 물음을 던지고 있다.
또한 그 진지한 물음에 대한 더 진지한 답변을 하고 있다.
어떤 잣대라는 것은 편의에 의해서 만든 것이지 절대적일 수가 없다.
도둑질을 했다는 사실은 법적으로 잘못된 것이지만
그가 왜 그래야만 했는가 하는 상황적 판단 속에서 잘못은 잘못이지만
어떻게 우리가 해야하는가 하는 부분을 이 영화에서는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아쉬운 점은 마지막 장면이다. 조금은 희망적인 결말을 기대했던 나로서는
마지막 장면이 희망을 상실한 듯 해서 아쉬웠다. 불쌍한 연민의 감정마저 느끼게 했던...
* * *
영화에서 보면 분명 뒷자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둘이서 탈 때는 이렇게 탄다.
왠지 모르게 다정스러운 모습이다. 같은 곳을 보면서 나란히 타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응시하면서 탈 수 있는... 엉덩이가 좀 불편하긴 하겠지만
왠지 모르게 아름다운 모습처럼 느껴지는 장면들이다.
* * *
수상내역
- 1948년 아카데미 최우수 외국어 영화상
- 1949년 뉴욕 영화 비평가 최우수 외국어 영화상
- 1949년 로카르노 영화제 심사위원 특별상 수상
- 1950년 영국 아카데미 작품상
- 1950년 골든 글로브 외국어 영화상
* * *
주인공 안토니오 역을 한 사람은 직업 배우가 아니란다. 금속 노동자란다.
아들 또한 로마의 신문배달 소년을 기용했다고...
그런데 매우 자연스럽다. 연기가 말이다.
* * *
다음은 영화평론가·이자 단국대 교수인 안병섭님이 쓴 評이다. (주의 : 스포일러 있음)
네오 레알리즘 영화중 비토리오 데 시카의 <자전거 도둑>만큼 널리 성공한 작품도 드물다. 영화사의 10대 걸작을 꼽을 때면 으례 하나로 뽑히곤 한다. 루이지 바르톨리니의 원작을 네오 레알리즘의 이론적 기수인 체자레 자바티니가 시나리오를 썼다.
데 시카가 없는 자바티니는 생각할 수 있지만 자바티니가 없는 데 시카는 존재할 수 없다는 말이 있듯이 데 시카는 자바티니에게서 많은 것을 얻어 왔다. 이 둘은 네오 레알리즘의 환상의 명콤비였다. 2차 대전이 끝나고 폐허가 된 로마에서 오랜동안 실직상태이던 안토니오 리치는 어느날 일자리를 구하게 된다. 포스터를 붙이는 일이다. 그 일에는 자전거가 필요하다. 아내 마리아에게 말해 헌 옷가지를 전당포에 맡기고 자전거를 구한다. 어린 아들 브루노도 따라 나선다.
그러나 어느 모퉁이에서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누가 자전거를 훔쳐 타고 달아난다. 안토니오는 쫓아가나 허사다. 경찰에 신고하지만 경찰은 하찮은 일이라는 듯 반응이 없다. 허탈해진 안토니오는 자전거포를 뒤지다 어느 젊은이가 자기 자전거를 타고 달리는 것을 본다. 쫓아가지만 또 허사다. 그러나 우여곡절 끝에 그 젊은이 집을 찾는다. 안토니오는 빈민가의 그 집을 보고 절망에 빠진다. 자기처럼 가난한 데다 젊은이는 간질을 일으키며 길가에 쓰러진다. 경찰이 오나 증거도 없다. 그러던 중 아들과 다투고 아들이 없어진다. 안토니오는 강가에서 어린애가 빠졌다는 이야기를 듣고 아들을 찾아 나선다. 아들은 계단 위에 나타난다.
경기장에서는 축구시합이 한참이다. 밖에는 자전거들이 즐비하다. 안토니오는 아들에게 먼저 집에 가 있으라고 하고 자전거 한대를 훔쳐 달아나다 곧 주인에게 붙잡힌다. 경찰이 온다. 그는 자전거 주인의 선처로 풀려난다. 석양의 거리를 아들은 뒤따르고 안토니오는 허탈한 모습으로 걸어간다.
자전거를 도둑맞은 노동자가 결국 자전거 도둑이 된다는 전후 로마의 이야기는 참으로 역설적인 비극이 아닐 수 없다. 이 작품은 프롤레타리아 영화이다.
데 시카는 1955년 3월4일 프랑스신문 <르몽드>와 가진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이 작품을 영화화하려고 몇달째 제작자를 찾았으나 구하지 못했다. 그러던 중 한 미국 제작자가 나섰다. 단 주인공으로 케리 그랜트를 써달라는 조건이었다. 나는 거절했다." 여기에 바로 이 작품의 성공의 열쇠가 숨겨져 있다. 그는 미남인 케리 그랜트 대신 어느 공장의 무명의 노동자 람베르토 마지오라니를 대담하게 주인공으로 기용했다. 아들 브루노에는 거리를 쏘다니던 부랑아 엔조 스타이올라, 그리고 아내에는 기자 리아델라 카렐을 기용하는 등 모두 비직업적인 무명배우를 썼다.
<자전거 도둑>은 스튜디오 촬영이 없다. 모두가 거리에서 촬영한, 현실에 가까운 가장 사실적인 작품이다. 앙드레 바쟁은 말했다. "이는 순수영화의 첫 작품 가운데 하나라고 할 수 있다. 배우도 없고 이야기도 없고 연출도 없다. 이것은 영화가 이제 더 이상 완벽한 미학적 환상 속에 존재하지 않음을 말한다." 이에 앞서 그는 "확실히 (지난) 10년 동안 제작된 공산주의적 영화 중에서 유일하게 가치있는 공산주의적 영화이다. 정확하게 이야기한다면 그 사회적 의미를 추상화시키더라도 그 뜻을 간직하기 때문에 그렇다고 할 수 있다"고 비평했다.
* * *
- <자전거 도둑>과 네오리얼리즘에 대해 적은 좋은 글
- 의존화소 자유화소로 본 자전거 도둑 (뭔 말인지는 모르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