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본 재밌는 소설
나는 소설을 거의 읽지 않는다. 그래서 소설의 참맛을 잘 모르는 사람이다. 그런 내가 이 소설은 무척이나 재밌었으니 누구나 읽어도 재미있을 만하지 않을까 한다. 한 번 손에 잡으면 끝까지 읽고 싶을 정도로 재미있다. 그래서 그런지 무척이나 빨리 읽었던 책이다.
물론 경제경영 서적이나 인문사회 서적들과는 읽는 속도가 다를 수 밖에 없다. 활자 크기나 줄간격 그리고 술술 읽히는 스토리. 요즈음 내가 독서량이 늘어났다고 생각했는데 소설도 읽다보니 권수가 늘어나서 그런 듯 하다. 그렇다고 소설이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단지 빨리 읽힌다는 것일 뿐.
이런 재밌는 소설들만 읽는다면 시간 가는 줄 모를 듯 하다. 그게 소설의 묘미인 듯 하다. 하긴 나도 대학교 시절에 태백산맥이나 아리랑 보면서 그 내용에 흠뻑 취했을 때가 있었으니까. MT를 가서도 내용이 궁금해서 술 마시는 밤에 책을 읽었던 기억이 있다. 얼마나 궁금했으면...
작가 위화
최근에 주제 사라마구의 도시 시리즈 3부작을 다 봤었다. 단순히 재미만 놓고 비교해 본다면 허삼관 매혈기가 훨씬 더 재미있다. 글에 기교나 꾸밈이 없다고 해야할까? 매우 평이한 얘기를 진솔하게 담은 듯한데도 불구하고 재미있다. 그게 위화라는 작가의 필력이라 할 수 있을 듯.
비록 소설로 보지는 못했지만 영화로 본 <인생> 그리고 이번에 직접 소설로 본 <허삼관 매혈기>를 통해서 느끼기에 위화라는 작가는 단조로운 필치로 소소한 일상 얘기만을 갖고 인간의 희노애락을 고스란히 담아내고 그 속에 해학을 느끼게 해준다.
영화 <인생>
위화의 전작 중에 <인생>(원제목은 활착-活着)이라는 작품이 있다. 이 작품을 읽어보지는 않았지만 나는 이를 원작으로 한 장이모우 감독의 <인생>이라는 영화를 봤다. 오래 전에 본 것이지만 이 작품을 읽으면서 <인생>이라는 영화를 떠올렸다. 내게는 어지간해서 주지 않는 10점 만점 평점을 준 작품.
혹시라도 기회가 된다면 장 이모우 감독의 <인생>이라는 영화 추천한다. 장 이모우의 첫 작품인 <붉은 수수밭>으로 데뷔하여 장 이모우 감독과 오랜 기간 연인 사이로 지낸 공리가 주연하는 영화다. 이 영화를 보면 당시의 중국인들의 생활상과 중국 대륙에 일어나는 바람의 물결들까지 한 가정사에 잘 녹아들어가 있다. 마치 <허삼관 매혈기>처럼 말이다.
평등에 대한 이야기?
사실 독서클럽 문학팀 독서토론에서 얘기가 안 되었다면 그냥 넘어갔을 수도 있었던 문제였는데 이 작품은 평등에 대한 소설이라는 얘기가 나왔었다. 그런 얘기가 나올 만도 한 것이 <허삼관 매혈기> 책 한국어판 서문에도 분명하게 명시되어 있는 얘기기 때문이다.
그 때는 사실 잘 몰랐기 때문에 그래? 의아해하면서 그렇다면 작가는 실패한 것이다. 왜냐? 평등에 대한 얘기를 한다는 것에 대해서 전혀 느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나만 느끼지 못해서 그런 것일까? 그런 생각도 해보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이 책을 평등에 관한 얘기라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었다는 것이다.
너무나 허삼관의 인생에 무게중심이 있어서 그런 것일까?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토론에서 나눈 얘기 중에 어느 정도 수긍하고 일리 있다고 생각되는 것은 자신이 얘기하고 싶은 바를 명확하게 밝히기는 힘들었을 것이라는 거다. 왜? 중국이니까. 영화 <인생>도 검열에 의해서 당시에 상영 보류 결정이 났었을 정도였으니까 말이다.
<허삼관 매혈기>가 쓰여진 때가 1995년도인 것을 감안한다면 충분히 일리 있는 얘기였다. 그래서 원래의 서문에는 평등에 대한 얘기가 아니라 미련에 대한 얘기라고 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정말 작가가 어떤 뜻으로 했는지는 모르겠다. 사실 자기가 그런 생각을 갖고 쓴 것이 아닌데 훗날 유명해져서 말을 바꾸고 이런 의도로 썼다 할 수도 있는 거 아닌가?
작가의 의도가 어떠하든지 사실 이 책 내용에서 느낄 수 있는 게 아니라면 작가는 자신의 의도 전달에는 실패했다고 봐야 한다. 격변의 중국사를 한 가족의 인생사에 잘 녹여서 얘기를 한 것을 보면 아주 우회적으로 비판한 내용이 엿보인다라고 하면 몰라도 평등이라... 잘 못 느끼겠는데...
만약 한국어판 서문에서 밝힌 것 평등이라는 것을 생각한다면 어떤 대의적인 의미에서의 평등이라고 보기는 조금 애매하다는 생각도 든다. 공산주의가 평등을 외치지만 정작 계급주의 사회가 된 것과 같은 것을 비판한다는 것보다는 지극히 개별적인 인간으로서의 평등(뭐 인간은 다 평등하게 죽는다는 식의)을 얘기하는 듯 느껴진다는 거다.
재미 그 이상의 소설이 될까?
영화 <인생>은 정말 잘 만든 작품이다. 그래서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다. 그러나 이 <허삼관 매혈기>는 그렇지는 못할 것 같다. 영화와 소설의 차이라고 하기 보다는 작품의 차이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그것도 어느 때에 봤느냐에 따라서 내 생각이 다르고 경험이 다르니 달라지겠지만...
<허삼관 매혈기> 재미는 있다. 그리고 그 속에서 짠한 부분도 있고 웃긴 부분도 있었다. 그리고 주인공 허삼관의 인생사를 보고 있노라면 그 속에 우리네 인생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된다. 그러나 오래 기억될만한 소설은 되지 않는 듯 하다. 내게 뭔가 울림을 줄 만한 자극이 없어서다.
그래도 재밌으니 읽어보기를 바란다. 추천한다는 소리다. 정말 재밌다. 아직도 내 귓가에는 허옥란(꽈배기 서시)의 "아이야" 소리가 맴돌고 있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허옥란역에 어울리는 배우가 있을까 하는 생각도 해보았을 정도니... ^^ 마지막으로 인상에 남는 구절 하나 소개한다.
좆 털이 눈썹보다 나기는 늦게 나도 자라기는 길게 자란단 말씀이야.
허삼관 매혈기 위화 지음, 최용만 옮김/푸른숲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