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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독서

KTV 북카페 촬영에서 만난 유안진 선생님

KTV 북카페의 코너인 북카페 2.0 촬영을 어제 마쳤다.
이번에 모신 작가님은 유안진 선생님.

선생님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어제 만나뵌 자리에서도 얘기를 드렸지만
교수님이라고 부르면 거리감도 생기고 위계(?)가 생기는 듯 하여
편안하고 친근한 표현인 선생님으로 부르는 게 좋을 듯 싶어서였다.


독서클럽 회원들과 함께한 촬영

무엇보다도 독서클럽 회원들과 함께할 수 있었기 때문에 더없이 좋았었다.
사실 그렇지 않았다면 나처럼 문학적 감수성이 떨어지는 사람은
가급적 참여하지 않는 것이 민폐(?)를 끼치지 않는 것이라 생각했는데
독서클럽 회원들로만 구성되어 있었기에 나도 간 것이었다.

우선 아무리 케이블 방송이라고 하지만 촬영이라는 것을 
한 번도 경험하지 않은 회원들인지라 상황에 따라서는 적절히 내가 망가지더라도
긴장하지 않는 분위기를 만들 필요도 있었고, 어떤 변수가 생길 지도 모르기 때문에
나름 나는 거기에서 가급적 많이 나오려고 노력하기 보다는
촬영 상황을 조율하는 역할을 하려고 했던 것이다.


왼쪽부터 마다데스, 핑크굴비, 마나.(네이버 카페에서 사용하는 닉네임)

왼쪽부터 로빈, 보댕.

생각치 못한 변수가 하나 생기기도 했지만(참여한 독서클럽 회원들은 알 듯)
마무리를 잘 했다. 작가에게 전혀 얘기 듣지 못했던 상황인지라. ^^
하고자 하는 목적에 부합하도록 상황을 잘 파악하면 되는 것을...

초반에 몇 사람 위주로만 질의가 이루어지는 바람에
(그 중에 나도 포함이 되어 있긴 하지만 흐름이 끊기지 않기 위해서 했던 것이다.)
이러면 안 되겠다 싶어서 나름 다른 이들이 질의를 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려고 노력을 했었다. 아무래도 촬영은 촬영인지라 우리끼리 있을 때는
웃고 자연스럽게 얘기를 하다가도 카메라가 있으니 조금은 겁먹은 듯.

그래도 이런 경험이 신선했기를 바라고, 이런 경험을 통해서
어느 자리에서나 자기의 생각을 스스럼없이 얘기할 수 있는
회원들이 되기를 바랄 뿐이다. 물론 이번에는 독서클럽 회원들 모두가
같이 할 수 있었던 게 아니라 다소 아쉬운 감이 있기는 하지만
좋은 기회는 또 생길 꺼라 생각한다.



직접 뵌 유안진 선생님

처음에 들어오실 때 뵙고 다소 놀랐다. 물론 세월을 속일 수는 없는 법이라 생각했지만
내 기억 속의 유안진 선생님의 모습은 20여년 전 <지란지교를 꿈꾸며>를
읽을 때 책에 나온 사진이 뇌리에 박혀 있던 지라 많이 늙으셨다고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해당 분야 최초의 서울대 여교수 출신이시기도 하고 책으로만 접한 모습에
지적인 여성상(차가운 이미지)을 떠올렸었는데 직접 뵈니 푸근한 동네 할머니 같았다.
상대를 편안하게 해주고 배려심이 많은 분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촬영을 하기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니라는 것은 참석한 회원들 모두 느꼈을 듯.

게다가 말씀 한 마디 한 마디에 '아~' 하는 생각이 들게 했던 것은
어릴 적부터 문학적 감수성이 뛰어나신 분이었기에 그러하지 않았을까?
방송에서야 편집이 되어 책에 관련된 짤막짤막한 얘기가 나가겠지만
1시간 30분여 가까이 나눈 대화 속에서 인생이라는 것에 대해서
유안진 선생님만의 독특한 어조로 인생의 후배들에게 전해주는 시간이었던 듯 하다.
유안진 선생님과 독서클럽 멤버들.
나 머리가 왜 크게 나왔지? 남자치고는 머리 작은 편인데... 음...

유안진 선생님의 말. 말. 말.

- 유안진 선생님의 지란지교는 몇 분?
없다. 그런 글은 결핍 속에서 나올 수 있다. 풍요 속에서는 그런 글이 나올 수 없다.
(참고로, 지란지교를 꿈꾸며는 하룻 밤만에 쓰신 글이다.)

- 남녀 사이에서도 지란지교가 가능?
우정을 지키기 위해서는 어느 선을 넘어서 남녀간의 사랑이 되어서는 안 된다.
우정을 지키기 위해서 그것을 인식하고 서로 지켜야만 가능하다.

- 유안진 선생님에게의 문학이란
꿈이고 상상력이다. 그것은 현실에서 부족한 것을 채워주고 빈자리를 채워주는 것이다.
나는 채워지지 못한 갈증이 있어야 그것을 글로 쓴다.

- 거짓말로 참말하기
우리나라에는 모순어법이 퍽이나 많다.
문 잠그고 나가라: 문을 잠그고 어떻게 나가는가?
시집간다와 장가간다: 둘 다 어디로 간다고만 하고 어디로 가는가?

시인들은 거짓말을 하는 사람이다. 그런 거짓말 속에 착한 사람이 되고 싶어하는 참말이 있다.
그래서 시는 있는 그대로 읽어서는 안 된다. 책 제목을 거짓말로 참말하기라고 한 것은
우리나라에 특히나 많은 모순어법을 사용한 것이다.

거짓말로 참말하기 
유안진 지음/천년의시작


- 그림자를 팔다 (<거짓말로 참말하기> 中) 라는 시에서 그림자
시에도 많은 변화가 생겼지만 이제는 체험만 가지고 시를 쓰는 시대는 지났다.
상상력을 갖고 시를 써야 한다. 얼굴에는 주름살이 생겨도 그림자에는 주름살이 생기지 않는다.
괴테의 파우스트에서 영혼을 파는 것과 같이 여기서 그림자는 영혼을 뜻한다.

- 조금만 덜 용서해주십시오 (<사랑, 바닥까지 울어야> 中)
용서를 하면 다 하고 털어버려야지 왜 조금만 덜 용서하는가?
다 용서하면 또 실수를 저지르기 때문이다.
같은 실수(잘못)을 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조금 덜 용서해줘야 한다.

사랑, 바닥까지 울어야 
유안진 지음/서정시학


유안진 선생님의 詩 한 편

이건 돌아오면서 독서클럽 회원이 소개해준
유안진 선생님의 詩인데 좋아서 여기에다가 소개한다.

다보탑을 줍다

고개 떨구고 걷다가 다보탑(多寶塔)을 주었다
국보 20호를 줍는 횡재를 했다
석존(釋尊)이 영취산에서 법화경을 설 하실 때
땅속에서 솟아나 찬탄했다는 다보탑을

두 발 닿은 여기가 영취한 어디인가
어깨치고 지나간 행인 중에 석존이 계셨는가
고개를 떨구면 세상은 아무데나 불국정토 되는가

정신차려 다시 보면 빠알간 구리동전
꺽어진 목고개로 주저앉고 싶을 때는
쓸모 있는 듯 별 쓸모없는 10원짜리
그렇게 살아 왔다는가 그렇게 살아가라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