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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돌아가신 할머니께서 장손인 제게 남겨주신 마지막 가르침

제 스타일이 어떤 지는 아시는 분들 아시겠지요.
아무리 바른 생각을 갖고 옳은 소리를 한다 해도 저는 적을 만드는 스타일입니다.
그러나 저는 적을 만들어도 상관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모든 이들과 편이 된다는 것을 있을 수도 없거니와
적과의 경쟁이 제게는 자극이 되고 발전의 계기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난 후에 할머니께서 죽음을 준비하신 과정을
듣고서 참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기부 하신 것은 일전에 언급을 했지만 그 이외에 유산도 남겨두셨습니다.
단순히 유산을 남겨뒀다는 사실이라고 한다면 그다지 큰 돈도 아니기에
언급할 필요도 없겠지요. 그러나 돈의 액수가 중요한 게 아니라
그것을 어떻게 모으고 그것을 어떻게 남겨두셨냐 하는 부분에서
할머니의 지혜를 읽을 수 있고 그로 인해 참 많은 반성과 함께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솔직히 저는 이해하기 힘들었습니다. 생전에 할머니는 검소하게 사셨고
절대 낭비하지도 않았으며 수중에 돈이 없는 것으로만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랬으니 어른들도 할머니께 용돈 드리고 그랬겠지요.
그래서 도대체 어떻게 모았을까 궁금했었습니다.

할머니와 한 집에서 같이 살 때 할머니는 집에서 가까운 버스 정류장 앞에서
토큰을 파셨었습니다. 한 때는 버스 정류장 앞에서 구멍가게를 하셨었는데
(그 때 번 것으로 7남매 다 키워내셨었지요.) 그 때는 가게에서 토큰을 파셨지만
후에는 가게가 없어서 항상 의자와 파라솔을 갖고 가셔서 파셨었습니다.
아마도 제 친구들 중에서 일부는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왜냐면 제가 고등학교 시절에도 그렇게 하셨었으니까요.

추운 겨울이면 바람막이 하나 없는 버스 정류장 앞에서 고개를 푹 수그리고
토큰을 파셨던 할머니의 모습이 선합니다. 물론 저는 그런 할머니의 모습을
보면서 쪽팔리거나 하지는 않았었기에 친구들과 같이 보면 할머니라고
인사 시키고 했습니다만 왜 그렇게까지 하셔야 하는지 안타깝기는 했습니다.
그러나 고집을 꺾을 수가 없었기에 그냥 지켜만 보고 있었지요.

그 때 모으신 돈이었던 겁니다. 그렇게 차곡차곡 모아서 5,000만원이 되었지요.
그 중에 1,000만원은 기부를 하시고 4,000만원은 유산으로 남기셨습니다.
기부를 결심하신 것은 2006년도 그러니까 3년 전이었습니다.
할머니께서 남겨놓으신 공책 속에 날짜와 함께 기부하겠다는 의사를
밝혀두셨고 그것은 할머니께서 돌아가시기 직전에 행동으로 옮기셨습니다.
어쩌면 할머니께서는 죽음을 편안히 준비하고 계셨던 것일지도 모릅니다.

나머지 4,000만원은 통장, 장독대, 서랍, 옷 등에 곳곳에 분산시켜두셨더군요.
가장 큰 액수는 장독대 밑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정말 놀라웠던 것은
4,000만원이라는 돈이 있다는 사실을 어떻게 자식들에게 전달했는가 하는 부분입니다.
아무리 자식이라 하더라도 돈 관계에 있어서는 할머니께서 생전에 눈여겨 보셨던 듯 합니다.
그래서 그러한 정보를 "너 한테만 얘기하는 거다."라고 하시면서 모두에게
얘기를 해두셨고 가장 믿을 만한 분에게 이 돈의 사용처를 알리셨습니다.

돈에 있어서는 자식이라 하더라도 누가 신용이 있고 누가 신용이 없는지를
파악하고 계셔서 사후에 어떻게 해야 문제가 없을 지를 생각하셨던 거지요.
그리고 결국 그 돈은 할머니 돌아가시고 난 다음에 하나씩 발견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할머니께서 남기신 그 돈의 사용처는 아버지께 위임한다는 것이었지요.
아무리 성격이 불 같지만 유도리가 없을 정도로 정확했기에
둘째지만 아버지에게 일임하셨던 겁니다.


다른 문제라면 저도 장손으로서 어른들의 얘기에 참여를 하지만
그런 문제는 제가 관여할 바가 아니기에 저는 일찍 올라왔습니다.
그리고 아버지는 그 돈을 7남매 중에 유일하게 결혼을 못하신
셋째 고모의 추후 병원비 등으로 사용하고 일체 손을 못 대게 하셨습니다.
셋째 고모가 결혼을 못 하신 이유는 정신 지체였기 때문입니다.
어릴 적에 약을 잘못 먹어서 그렇게 되었다고 하네요.

할머니의 지혜가 엿보였던 부분이었습니다. 갑작스럽게 돌아가신 것이지만
할머니는 나름 언제 죽음을 맞이할 지 모른다는 생각에 준비를 하고 계셨던 거지요.
너무나 순하셨기에 저는 할머니를 생전에는 우유부단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사후에 하나씩 알게 된 많은 사실들이 제게는 다소 충격이었지요.
할머니의 지혜도 엿보이는 부분도 많았거니와
저였다면 그렇게 할 수 있었을까는 생각을 정말 많이 했습니다.

분명 저라면 나 돈 있다는 것을 생전에 티 내려고 했을 듯 싶습니다.
그런데 할머니는 그런 티를 전혀 내지도 않고 묵묵히 돈을 모으셨던 거지요.
그런 할머니의 지혜를 보면서 참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진정한 강함이라는 것은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지요.
제 할머니였지만 정말 한 인간으로서 존경스러웠습니다.
아마도 할머니께서 제게 마지막으로 남겨주신 유산은
드러나지 않는 내적인 강함이 아니었나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