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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독서

위키리크스 창립자 줄리안 어산지에 대한 비판적인 시선

요즈음 틈나면 한 챕터씩 <위키리크스>를 읽고 있는데 줄리안 어산지란 위리리크스 창립자 매력적인 인물이다. 폭로 사이트를 만들어서? 그렇게 단순한 생각으로 그러는 건 아니다. 위키리크스를 만들기까지의 과정을 보다 보니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한 사람이 지금의 상태가 되기까지는 수많은 요소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긴 하지만 몇몇 중요한 계기는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그런 계기가 있었다고 해도 그 계기를 통해서 위키리크스를 만들어서 주목을 받고 지금과 같이 영향력 있는 인물로 될 수 있는 건 줄리안 어산지라서 가능했다고 본다. 다른 이였다면 그럴 수 있었을까? 나는 아니라고 본다. 그렇다고 줄리안 어산지를 내가 찬양하는 것은 아니다. 그도 인간이기 때문에 완벽하진 않다. 흠도 있는 인간이지만 어산지라서 가능했던 점 나는 그걸 주목할 뿐.


위키리크스 만큼이나 줄리안 어산지에 대해서도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린다. 줄리안 어산지를 비판하는 경우는 크게 세 가지로 볼 수 있겠다. 우선 줄리안 어산지가 하는 일(폭로)로 인해 피해나 손실을 보는 기득권 세력위키리크스와 같은 저널리즘의 문제점을 비판하는 이들 그리고 줄리안 어산지와의 개인적인 친분이 있는 사람 중에서 줄리안 어산지를 싫어하는 이들(그 이유가 어찌되었든지 간에).


위키리크스로 피해나 손실을 보는 세력

위키리크스에서 폭로하는 내용을 보면 위키리크스로 피해나 손실을 보는 세력이라고 하면 돈 좀 있다 정도 수준의 세력이 아니다. 그러다 보니 이들은 어떤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위키리크스를 없애고 싶어할 것이고, 그 중심에는 줄리안 어산지가 있으니 제거(?)하려고 할 것이다. 얼마든지 여론을 조작해서 전쟁의 명분도 만드는데 줄리안 어산지 한 명 제거 못할까.

그런데 21세기북스 <위키리크스>에서 보면 스트라이샌드 효과(streisand effect)라는 말이 나온다. 정보를 억압하려 할수록 오히려 정보가 확대된다는 뜻이다. 인터넷이 있기에 가능할 수 있는 얘기겠지만 그것만으로는 줄리안 어산지의 목숨을 보장해줄 순 없다. 죽이고 나서 얼마든지 언론 조작을 할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던져주는 내용들을 그대로 지껄이는 저널리즘을 어산지 못지않게 경멸했다."
"들은 것을 모두 곧이 곧대로 믿는 사람들에 의해서 신문기사나 방송뉴스가 만들어지고 있다"

이 말은 아파치 공동 개발자이자 위키리크스가 탄생하기 오래 전에 해커였던 어산지와 알고 지냈던 벤 로리의 말이다. 위키리크스란 사이트를 개발하는 데에 후원을 했고 이후 정식 고문직을 맡아달라는 부탁에도 수락했던 인물이다. 단순히 텍스트로 이 말을 읽고 그렇지 하는 거랑 가슴으로 받아들이는 거랑은 좀 다르다.
 
단편적인 예로 최근에 나온 <위키리크스>의 두 책에 대한 비교만 봐도 그렇다. 언론에서 소개된 자료는 각 출판사의 보도 자료를 기반으로 작성된 것이다. 읽어보지도 않고 던져주는 내용들을 기반으로 작성된 것인지라 대부분의 내용들이 비슷하다. 별 중요하지 않은 거라 그럴 수도 있지만 보도 자료와 실제 책 내용이 같은지에 대한 검증 없이 던져주는 내용들을 그대로 지껄이는 것일 뿐.

사안이 중요한 거라면 이렇지는 않을 것이다. 사람들을 믿게끔 만들기 위해 매우 치밀하고 은밀하게 언론 조작을 한다. 내가 그런 세력에 속해 있다면 이이제이(오랑캐는 오랑캐로 무찌른다)를 떠올릴 듯 하다. 줄리안 어산지를 비판하는 이들에게 접근하도록 해서(직접적인 접근이 아니라 다른 이를 통한 간접적인 접근) 줄리안 어산지와 위키리크스의 신뢰를 무너뜨리는 거다.

아마 그런 일은 이미 오래 전에 시작되었으리라 본다. 그런데 줄리안 어산지를 비판하는 이들은 그들이 이용당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모를 것이다. 왜냐면 자신을 후원하는 이들의 배후가 어떤지 모르니까 말이다. 물론 내 생각일 뿐이지만 내가 상대라면이란 생각으로 접근해보면 분명 그럴 듯 하다. 이미 여러 징조들이 보이고 있듯이.


위키리크스와 같은 저널리즘을 비판하는 이들

21세기북스의 <위키리크스>에서 보면 이런 거를 탐사보도 저널리즘(investigative journalism)이라고 한단다. 첨 알았다. 나도 가끔씩 보는 <그것이 알고싶다>와 같은 프로그램도 탐사보도 저널리즘이란다. 굉장히 구미 당기는 저널리즘이다. ^^; 어쨌든 이런 저널리즘을 비판하는 이들의 얘기 중에는 들어볼 만한 내용도 분명히 있다.

그런데 가만히 보면 그게 '위키리크스=줄리안 어산지'라 그런 듯한 경향도 있다. 한 명에게 너무 큰 힘이 실린다는 거다. 그런데 나는 사실 그런 지적은 바람직하지만 그런 거는 개선될 수 밖에 없다고 본다. 왜냐면 사람이 적을 때는 그게 가능해도 많아지게 되면 그게 힘들어질 수 밖에 없고 그런 부분은 개선될 수 밖에 없다. 커가는 과정 상에서 자연스레 그렇게 된다.

물론 애플과 같이 경영자에 의존도가 심한 기업도 있다. 그만큼 애플의 스티브 잡스와 같이 위키리크스의 줄리안 어산지도 뛰어난 인물이라면 그렇게 될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비판하는 이들의 우려스러움이 계속되지는 않을 것이다. 왜냐면 아무리 줄리안 어산지라 하더라도 자기가 더 큰 성공(?)을 하기 위해서는 개선되어야 할 부분도 분명 있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테니까.

그럼 개선된다고 해서 비판할 부분이 없을까? 분명 또 생기기 마련이다. 어떤 점을 개선해야 한다고 해서 어떻게 하기로 정하는 순간 또 그만큼 그에 따른 반대급부가 생기기 마련이다. 따라서 상황에 따라 적절히 개선해야할 타이밍이 있는 거다. 그러나 그런 비판들은 그런 개선의 타이밍을 다소 빨리 앞당겨주기 때문에 생산적인 비판이라 할 수 있다. 단, 잘 가려서 들으면 말이다.

왜냐면 은밀하게 움직이는 세력들은 우회적으로나 간접적으로나 이들에게 비판할 꺼리를 제공해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비판자들의 의도와는 무관하게 말이다. 순진한 비판자들은 그네들이 이용당한다는 걸 모르고 신나게 비판할 뿐이겠지만. 그래서 잘 가려서 들어야 한다는 거다. 그들의 의도가 순수하다 하더라도 이용당할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줄리안 어산지를 싫어하는 이들

이거야 세상 살다보면 항상 있는 일 아닌가? 호불호가 갈리기 마련이고 양쪽 얘기 들으면 다 일리 있는 듯 보이고 말이다. 그런데 가만히 보면 줄리안 어산지를 싫어하는 이들은 대부분 마인드가 있는 이들이다. 다만 너무 주관이 강해서 줄리안 어산지와 배치되는 듯한 그런 느낌? 그런데 한가지 내가 지적하고 싶은 부분은 다소 수준 차이가 난다는 거다.

<마케팅 불변의 법칙>에 첫번째가 선도자의 법칙이다. 더 좋은 것보다는 맨 처음이 낫다는 거다. 그러나 위키리크스가 최초일까? 21세기북스 <위키리크스>에서 보면 줄리안 어산지가 위키리크스를 설립하기 전부터 어떤 일을 해왔고 어떤 사람들과 교류했으며 어떤 영향을 받았는지가 잘 나와 있는데 거기서 보면 크립톰(http://cryptome.org)를 운영하는 존 영이라는 인물도 등장한다.

크립톰도 비밀문서를 공개하는 사이트다. 처음에는 존 영도 줄리안 어산지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다가 줄리안 어산지의 기부금 모금에 대해서 비판한 후에 결별하고 크립톰에 위키리크스에 관한 내용을 공개하기 시작했던 인물이다. 대부분 부정적인 내용이긴 하지만 말이다. 위키리크스도 어찌보면 크립톰을 참조해서 만들어진 것이라고 할 수 있는데, 크립톰과 위키리크스는 다르다.

이 차이는 바로 그 운영을 하는 핵심 인물의 차이다. 같은 것이라도 누구의 손에 쥐어지느냐에 따라 결과는 다르다는 거다. 물론 존 영이 줄리안 어산지를 싫어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비판하는 입장으로 돌아선 건 확실하다. 그래도 달라지는 건 없다. 왜냐면 그가 비판하는 게 그리 중요한 건 아니기 때문이다. 핵심은 그런 게 아닌데 말이다.

그래서 비판하는 이들의 말은 가려서 들을 필요가 있다. 비판하는 내용의 핵심을 잘 들어보고 충분히 수긍이 가면 개선하면 그만이다. 큰 금액의 기부금을 모집하겠다는 것 자체가 비판의 대상이라고 하는 건 어찌보면 블로고스피어 초창기 시절에 애드센스를 다는 블로그는 쳐다도 보지 않겠다고 하는 이들과 비슷하다. 그래. 그렇게 해서 쳐다도 보지 않게 되디? 지금도 그러니?

가끔씩 답답한 경우를 본다. 지금 생각이 평생 갈 꺼라 착각하는 이들이다. 좀 더 멀리 내다보고 그 속에서 지금을 생각해보지 못하고 지금의 생각이 맞다 옳다 생각하고 말을 내뱉는 경우가 많다. 그렇게 되면 내가 내뱉은 말 때문에 나중에 번복하기가 더 힘들어지는 경우도 종종 벌어진다. 그만큼 생각이 짧다는 거다.

결국 나는 줄리안 어산지를 싫어하는 이들 중에 대부분은 그보다 수준이 떨어지기 때문이라 본다. 그렇다고 해서 줄리안 어산지가 잘 나가니까 배아프다고 생각하는 그런 유치한 사람들이라는 건 아니다. 다만 자신의 역량을 스스로 과대 평가하는 이들도 있다는 거다. 존 영과 같은 경우는 그런 류에 속하지 않을 지 몰라도 지식갤러리의 <위키리크스>를 적은 다니엘 돔샤이트-베르크는 그렇다.


줄리안 어산지가 무조건 옳다?

줄리안 어산지가 무조건 옳은 건 아니다. 그도 인간이다. 그래서 실수를 한다. 그러나 그 실수가 그의 일에 있어서 심각한 영향을 미치는 게 아니라고 한다면 그런 실수를 지적하는 정도 선에서 그쳐야지 그 점을 비난해서는 안 된다. 그가 이룬 일들은 그리 쉽게 이룰 수 있을 만한 게 아니다. 줄리안 어산지라서 가능했던 일이라고 생각하고 그런 면에서는 힘을 실어줄 필요가 있다.

물론 그에게 권력이 집중되는 게 바람직하지 않다는 건 알지만 그건 타이밍의 문제다. 초창기에는 권력이 집중되는 게 오히려 더 효율적이다. 그러나 사람이기 때문에 권력이 자신에게로 쏠리다 보면 딴 생각을 할 수도 있다. 그건 그 사람이 잘못되어서가 아니라 인간이기 때문에 누구나 다 그럴 수 있다는 거다. 그러나 그게 그리 오래 가지는 못한다. 절대로.

허나 줄리안 어산지가 중요하다는 거에는 동의를 할 수 밖에 없다. 그에 대해서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가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볼 필요가 있다. 21세기북스 <위키리크스>에는 그런 부분이 잘 나와 있지만 지식갤러리 <위키리크스>에는 그런 내용 없다. 현재의 줄리안 어산지의 이런 면이 맘에 안 든다는 걸 아주 사적인 내용을 들추면서 비판하고 있다.

뭐 예를 들면 이런 거다. 나랑 누가 친해서 지나가는 어떤 여자를 보고 "야. 쟤 존나 섹시하지 않냐?"라고 했는데 그걸 언급하면서 나를 어떤 놈으로 몰아부치면 그 어떤 누구라도 그런 얘기를 듣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 비판이라고 해도 들어볼 만한 수준 있는 비판이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 은근슬쩍 몰아가는 거는 그만큼 자신의 수준이 낮다는 걸 뜻한다. 그게 다니엘 돔샤이트-베르크다.

어떤 리뷰어는 줄리안 어산지를 알려면 다니엘이 적은 <위키리크스>를 읽어보라고 하지만 둘 다 읽어보는 나로서는 그에게 이런 얘기를 해주고 싶다. 둘 다 읽어보고 그렇게 얘기할 수 있니? 가슴에 손을 얹고 그렇게 얘기할 수 있겠니? 독자 수준이 낮은 한국인지라 참 한심한 독자들도 꽤나 있다. 정말 독자인지 아니면 아르바이트생인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지금은 그래도 잠잠해진 편이지만 그의 성폭행 사건 때문에 이리 저리 말이 많았다. 그런데 난 좀 이해가 안 가는 게 일을 잘 하는 거랑 여성적인 성향이 어떤 거랑 무슨 상관이 있는지 모르겠다. 그러다 재미난 기사 하나를 발견했는데, 이건 줄리안 어산지 자신이 적은 프로필의 내용이다. 차라리 자신이 이렇게 떳떳하게 얘기하는 게 오히려 더 매력적이다.

별 중요하지도 않은 내용으로 한쪽으로 몰아가려고 하는 듯한 느낌이 드는 경우가 있다. 뭐 위의 기사가 그렇다는 건 아니지만 말이다. 좀 더 경중을 두고 가려서 봐야할 필요가 있지 않나 싶다. 지금껏 이런 경우는 없었기 때문에 다른 것을 용서하자는 게 아니라 구분해서 봐야할 필요가 있다는 점, 그리고 줄리안 어산지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될 듯 하다.

위키리크스
마르셀 로젠바흐 & 홀거 슈타르크 지음, 박규호 옮김/21세기북스(북이십일)

위키리크스-권력에속지않을권리권력에속지않을권리
카테고리 정치/사회 > 사회복지 > 사회문제 > 사회문제일반
지은이 마르셀 로젠바흐 (21세기북스, 201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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