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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독서

마흔에 읽는 손자병법: 손자병법은 언제 읽어도 재밌다



총평

<마흔에 읽는 손자병법>의 순서는 손자병법의 순서와 같다. 즉 손자병법 원문의 내용을 따라가면서 저자의 해석을 곁들였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봤던 정비석의 손자병법 마지막 권(4권)의 병법해설서와 같이 딱딱한 해설서는 아니다. 저자의 지식이 녹아들어 쉽고 재밌게 풀어냈다고 평하고 싶다. 특히 우리나라 역사 속에서 사례를 발췌한 것은 꽤나 괜찮았던 부분이라고 할 수 있겠다.

처음에 이 책을 받고서 적은 글에는 큰 기대를 하지 않았던 게 사실이다. 이유는 단지 저자가 비즈니스 맨이 아니라는 거 때문이었다. 사실 나는 비즈니스를 현대의 전쟁이라고 보았기 때문에 비즈니스를 영위하지 않는 이들의 얘기에는 깊이가 있지는 않을 꺼라는 선입견을 가졌던 게 사실이지만 내용을 보니 그렇지는 않았다. 아니면 이전보다 내가 머리가 더 굵어져서 그런지도... ^^;

다소 아쉬운 점이라고 한다면 우리나라 삼국시대 역사의 사례를 많이 언급하는데 저자가 MBN 정치부 차장이니 꼭 실명을 드러내면서 얘기하지는 않더라도 현대의 정치와 견주어 설명했다면 어떨까 싶다는 거다. 비즈니스를 영위하는 사람이 손자병법을 현대의 비즈니스에 접목시켜 설명하듯이 말이다. 역사를 거울 삼아 배우는 건 맞지만 너무 오래된 역사는 현실감이 조금 떨어지는 면이 있기에.

확실히 예전에 접했던 손자병법과는 느낌이 다르다. 그만큼 나 또한 오래 전에 접했을 때보다는 훨씬 더 많은 경험과 생각을 해왔기에 그럴 수 밖에 없겠지만, 한 편으로는 세상이라는 게 어쩔 수가 없구나 하는 생각에 착잡하기도 하다. 인간이 영위하는 세상이기에 그럴 수 밖에 없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으면 내가 당할 수 밖에 없다는 게 말이다. 그래도 지는 건 싫다. 누군들 좋아하리요. ^^;


비겁의 철학

머리말에 저자는 마흔에 다시 읽어본 손자병법을 비겁의 철학이라고 명했다. 물론 책 내용을 죽 읽다 보면 꼭 그렇게 한 마디로 표현할 수는 없다는 걸 알게 되겠지만 머리말인지라 나름 임팩트를 주기 위해서 그렇게 표현한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사실 손자병법을 보다 보면 이기기 위해서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고, 이긴다는 기준이 참 무엇인지 생각해보게끔 만드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면 이런 거다. 싸우는 데 이겨야만 한다는 생각에 반칙을 해서 이겨야 한다면 그게 올바른 승리라 할 수 있을까? 그런데 문제는 세상의 싸움에는 규칙이 없다는 거다. 그래서 반칙도 없다. 그러나 인간이기에 누구나 이건 아니지 하는 생각의 잣대로 바라볼 때 그런 면은 충분히 있다는 얘기다. 물론 이 또한 동시대에 사는 이들의 지배적인 관념이기에 시대가 달라지면 또 다르게 해석될 여지는 있지만 말이다.(절대적이지 않다는 얘기다.)

그래도 손자병법을 비겁의 철학으로 보기가 힘든 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간이 무리지어 사는 곳이라면 항상 벌어져왔기에 우리는 그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 속에서 꼭 이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지지 않기 위해서라는 관점으로 봐야한다는 거다. 난 싸우기 싫기 때문에 싸움을 하지 않으려고 해도 싸울 수 밖에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되면 싸울 줄 모르기 때문에 질 수 밖에 없다는 거다. 안 싸우면야 좋겠지만 이 세상이 그러하지를 않기 때문에...

그러나 저자가 말한 비겁의 철학이라는 표현도 이해하지 못할 표현은 아니다. 어찌보면 손자병법을 비겁의 철학이라고 표현한 저자도 이기기 위해서 약삭빠르게 처신해야 하는 게 그렇게 보였을 수 있겠지만 뭐든지 상대적인 건 어쩔 수 없는 거 아닌가. 그래도 손자병법의 뒷부분에는 왜 싸워야만 하는가 라는 의문을 던지는 걸 보면 원저자인 손무도 어쩔 수 없는 현실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지지 않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적은 거라 생각한다.


상대부터 보지 말고 나부터 봐라

이건 예전부터 느낀 부분이고 블로그에 적은 것이기도 하지만 손자병법에 나온 유명한 말 때문에 손자병법을 빌어서 설명하곤 했던 거다. 지피지기면 백전불태라고 하지만 상대를 알기 이전에 나부터 알아야 한다. 항상 전쟁이 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오히려 나를 알 수 있는 시간이 더 많은데 전쟁이 벌어지면 상대부터 알려고 하는 경향이 많다. 그래놓고는 자기에 대해서는 관용을 베풀어 과대평가하고 말이다.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바라볼 줄 아는 게 그리 쉬운 게 아니지만 남을 바라보기 전에 자신부터 바라보고 스스로를 평가해봐야 하는 게 나는 우선이라 본다. 자신을 있는 그대로 보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에게 매우 솔직해야 하고 여러 상황 속에서 자신이 한 행동이나 말에 대해서 깊이 있게 생각해볼 줄 알아야 한다. 적어도 그런 사람들은 대화를 하다보면 뭔가 다르다는 걸 느낀다. 다들 생각이 없는 건 아니지만 그런 생각을 해본 이와 안 해본 이는 대화의 격이 다르다.

이는 꼭 이기기 위해서만 필요한 게 아니다. 자기 계발적인 측면이나 지적 발전을 위해서도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나는 자기 계발의 시발은 자기 자신에 대한 이해부터라고 본다. 거의 모든 자기 계발서는 경험적이거나 단편적인지라 저자가 그렇게 해서 정말 그렇게 되었다 하더라도 그것은 그 사람만의 것이지 내 것은 아닌 것이고 또 깊이 있게 생각해서 일반화시킬 수 있는 것을 다루는 게 아니라 매우 단편적인지라 독자들이 자신에게 맞는지를 가릴 줄 알아야 한다. 그게 되려면 우선적으로 자신에 대해서 있는 그대로 볼 줄 알아야 하는 거다.

*  *  *


손자병법을 좋아하기도 하지만 거기에 담겨진 의미를 나름대로 재해석하는 게 꽤나 내게는 의미있는 시간이었기 때문에 간만에 재밌는 독서를 했다. 그래도 읽으면서 이렇게까지 나는 할 수 있을까 라는 의구심이 들기도 한다. 오래 전에 손자병법을 읽었을 때는 이기기만을 원했지만 지금은 이기기보다는 더불어 가길 바란다. 아무리 그런다 해도 덤비는 경우에는 이겨야만 한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


ex libris

01/ 싸움의 단계
벌모(伐謨): 싸울 엄두도 못 내게 한다.
벌교(伐交): 왕따로 만들어 힘을 뺀다.
벌병(伐兵): 직접 부딪혀 싸운다.
공성(攻城): 준비를 끝낸 적에게 덤빈다.

02/ 마음을 움직이는 두 가지
하나는 진심, 다른 하나는 속임수다. 진심이 전해져 마음을 움직이는 것이 효과가 가장 좋지만, 자기 속을 남에게 다 보여주고 산다는 게 쉽지도 않을뿐더러 진심을 전한답시고 자칫 자기 패만 보여주기 십상이다. 그래서 예로부터 사람들은 속임수를 자주 썼다.

03/ 싸우는 법
돌아가는 군사를 막아서지 마라.
포위 공격할 때는 반드시 구멍을 만들어놔라.
궁지에 몰린 적에게 덤비지 마라.
이게 싸우는 법이다.

적을 한 놈도 남김없이 다 죽이겠다고 덤비면, 적도 한 명도 예외 없이 죽기를 각오하고 싸운다. 도망갈 구멍을 만들어줘야 싸움을 포기하고 달아나는 적이 생기기 마련이다. 그러면 남아 있는 적의 전력은 더욱 약해지고 승세는 더더욱 아군 쪽으로 기운다.

04/ 권력의 정의
타인을 의사에 반하게 움직일 수 있는 힘

마흔에 읽는 손자병법
강상구 지음/흐름출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