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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독서

한글 제대로 쓰자! 한글 맞춤법 (5) 선릉역 발음 설릉역이 맞을까? 선능역이 맞을까?

아. 이건 정말 사연이 있는 거다. 얘기하자면 이렇다. 선릉역 인근의 공기업에 다니는 선배의 결혼식 때문에 선후배들이 모였고 택시를 타고 이동하는 중에 벌어진 일이다. 나를 포함해서 4명이었다. 한 명은 결혼한다는 선배, 한 명은 KAIST MBA 나온 동기, 한 명은 교육기업에 다니는 후배, 그리고 나. 다들 발음을 선능역이라고 하는데 나는 설릉역이라고 했었다. 그러다 어떤 게 맞는지 확인하는 과정에서 3명은 선능역이라고 하고 나만 설릉역이라고 해서 내가 잘못됐다는 거다.

그래서 내가 발끈해서 니네들은 고등학교 때 국어 시간에 뭐했냐고? ㄴ과 ㄹ이 만나면 앞의 ㄴ이 ㄹ로 되는 거 모르냐고. 이걸 자음 동화라고 하고 그래서 선릉역 영문 표기를 보면 영문 표기는 발음대로 하니까 Seolleung이라고 하는 거라고 그랬는데 아니라고 하는 거다. 근데 근거는 제시하지 못하고 아니라고 우기니 환장할 수 밖에. 그 때문에 나중에 누가 맞는지 뒤적거려봤었던 기억이 있다. 틀렸다 맞다를 떠나 어떤 근거를 대지도 않고 그냥 4명 중에 3명이 그러니까 나만 바보되더라는 거. 어이 없어서 참.


이론적으로 따지자면 선능 X, 설릉 O

표준 발음법 제5조. 음의 동화
제20항. 'ㄴ'은 'ㄹ'의 앞이나 뒤에서 [ㄹ]로 발음한다.

내 말이 맞다. 자음 동화 현상으로 ㄴ과 ㄹ이 만나면 앞의 ㄴ이 ㄹ로 발음을 해야 한다. 이를 자음 동화라고 하고 비음인 'ㄴ'이 유음이 'ㄹ'이 되었으므로 유음화라고 하며, 앞의 자음이 바뀌었으니 역행 동화라고도 하고, 변해서 같은 자음으로 발음하니 완전 동화라고도 한다. 내가 근거를 갖고 얘기했던 그대로다. 그러나 예외도 있다.

다만, 다음과 같은 단어들은 'ㄹ'을 [ㄴ]으로 발음한다.

의견란[의ː견난]
임진란[임ː진난]
생산량[생산냥]
결단력[결딴녁]
공권력[공꿘녁]
동원령[동ː원녕]
상견례[상견녜]
횡단로[횡단노]
이원론[이ː원논]
입원료[이붠뇨]
구근류[구근뉴]

선릉은 없지? 응? 그래서 설릉이라고 읽어야 표준 발음법에 맞는 거다. 됐냐고? 응?


근데 재미난 기사가 있다

위와 같이 표준 발음법에 맞는 발음 때문에 지하철 안내방송이 틀렸다고 지적한 1993년 7월 30일자 경향신문의 기사가 있다.


근데 1997년에는 선릉역을 선능역으로 발음해야 한다는 신문 기사가 있다.


내용을 보니 국립국어연구원에서 4대째 서울에 살고 있는 서울 토박이 30명을 대상으로 한 실태조사에서 대상자 30명 전원이 지하철 2호선 '선릉'의 안내방송 '설릉'은 잘못이라고 지적했다는 거다. 그리고 제안한 발음이 '선능'이라는 것. 이거 보고 정말 어이 없었다. 표준 발음법도 시대에 따라 변해야 한다는 부분에 대해서는 동의하는 면이 없지 않다만 기준이 명확하게 있는데 그걸 지키지 않고 지 맘대로 부르면서 다수결로 따르자고? 이거 뭐 내가 택시에서 선후배랑 있었던 일과 똑같잖아?!

이런 거 신경 쓰지 말고 외래어 표기법에나 더 신경 쓰시라고. 나름 알게 되면 나도 고쳐쓰고는 하는데, 예를 들면 한 때는 '컨텐츠'로 표기했다가 알고 나서는 '콘텐츠'로 표기하는 식이 그렇다. 이 정도는 뭐 그래도 이해할 만한 수준이지만 어이없는 외래어 표기법 많거든? 갑자기 예시가 생각 안 나네. 가끔씩 포스팅하다가 찾아보곤 하는데 그러면 정말 어이없는 경우가 있어서 그렇게 표기하지를 못 했던 경우도 있다. 좀 외국인들도 알아들을 수 있는 발음 중심으로 표기하는 게 낫지 않겠어? 콘텐츠야 뭐 영국식 발음이라고 생각하니까 이해한다지만 말이지.

그런 거나 신경 쓰지 이미 정해진 규칙을 국어 공부 시간에 딴 짓거리 한 애들 말 듣고 그걸 따르자고 그러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