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시절에 수업이 끝나면 가는 곳이 당구장이었다. 간혹 야자를 위해서 저녁을 분식집에서 먹고 나면 만화방도 가곤 했고. 그러나 사실 나는 만화에는 그리 큰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그랬던 나도 보던 만화가 있었는데 그게 바로 <캠퍼스 블루스>다. 나와 비슷한 또래라면 이 만화 모르는 이들이 거의 없을 듯. <드래곤 볼>, <시티헌터>, <슬램덩크>와 함께 당시에는 손꼽히는 만화 중에 하나였다.
고등학교 때 즐겨 보던 만화, <캠퍼스 블루스>
<드래곤 볼>은 한참 보다가 나중에 점점 내용을 지리하게 끄는 듯 해서 그만 봤고, <시티헌터>는 참 재밌게 봤던 기억이 있고, <슬램덩크>는 농구에 그닥 관심이 없는 지라 보다 말았지만 <캠퍼스 블루스>는 달랐다. 너무 재밌어했고 보고 싶어했다. 그래서 <캠퍼스 블루스> 새 권이 나오면 수업 시간에 책 들고(책 안에 <캠퍼스 블루스> 펼쳐두고) 보곤 했었다. 그것도 순번이 정해져 있었다는... 그러다 어느 순간 판매가 중지되었는지 살 수가 없었다. 만화방에서만 볼 수 있었던...
그래서 수소문해서 볼 수 있는 만화방을 찾았는데 그게 학교에서는 한참 떨어진 남포동에 있었던 거다. 학교에서는 버스를 타고 가야 하는 부산의 번화가. 지금은 서면이 더 발달되어 있었지만 우리는 남쪽 지역인지라 보통 서면보다는 남포동을 주로 갔었다. 새 권이 나오면 거기까지 시간내어 가서 한쪽 구석에서 보곤 했었다. 고등학생한테 보여주면 만화방 주인 벌금을 물던가 했던 걸로 안다. 그래서 구석에서 조용히 봐야 했다는...
그러다 언제부터인가 안 보게 되었고 나중에 비디오 대여점에서(왜 비디오 대여점인에 만화도 대여해주는 그런 대여점 한 때 유행했었잖아) <오렌지 블루스>, <비바 블루스>라는 이름으로 나오는 걸 봤었는데 내가 어디까지 본 건지 확인이 안 되어 다시 보지는 않았다. 그러다 이번에 기억을 더듬어 내가 본 다음부터 완결편까지 보게 된 것. 근데 검색하다 보니 <캠퍼스 블루스> 만화의 배경이 된 지역을 답사가서 비교한 이도 있다. 헐~
- 아사쿠사: http://blog.naver.com/ero10003/120127196262
이번에야 완결편을 보다
고등학교 시절에는 정말 주인공 타이손이 너무 멋졌었는데 나이 든 지금에 보면 스토리가 너무 뻔하다는 느낌이 든다. 같은 패턴이 반복되는 것도 보이고. 강한 상대가 나타나면 2~3권에 걸쳐서 스토리가 진행되다가 해결되고 나면 이제는 한 템포 쉬는 일상적인 얘기들로 2~3권 진행하고. 확실히 똑같은 콘텐츠라 하더라도 어떤 경험을 하고 살아왔느냐에 따라 감흥이 다른 듯. 아무래도 당시에는 고등학생 신분이다 보니 대리 만족이 크지 않았나 싶다.
찾아보니 1997년 일진회 문제로 절판되었다가 2004년 <비바 블루스>로 다시 나오게 되었다는데, 나는 <캠퍼스 블루스>로 23편, <별볼일 없는 블루스>로 16편 총 39편을 봤다. 나도 분명 일전에 <비바 블루스>, <오렌지 블루스>라는 제목으로 나온 거를 보기는 했는데 그렇다는... 저작권 계약 주체가 달라서 그런 건가? 뭐 모르겠다. 내겐 별로 중요하지도 않고. 다만 일진회 문제로 절판되었다라... 일진회 문제... 뭐 일부 수긍이 되는 면이 없지 않지만 <캠퍼스 블루스>를 보면 그렇진 않는데...
뭐 엄밀하게 따지자면 고등학생이 담배 피우고, 싸움에 패싸움을 하고, 유급을 당하고, 선생들과 충돌하는 모습이 결코 바람직하지는 않겠지만 <캠퍼스 블루스>의 주인공들은 순수하다. 의리를 중시하고 말이다. 오히려 현실과는 달리 많이 미화되고 포장된 면이 많다. 그래서 달리 생각해보면 일진회에 속한 학생들이 이 만화책을 보면서 이게 멋지다고 하면 오히려 바람직하게 바뀔 수도 있을 법 한데... 그러면 오히려 더 권해야 되는 게 아닌가?
지금도 그런 지는 모르겠다만(아마 그럴 꺼라 생각한다) 고등학교 시절에는 누가 뭐라 해도 남자들 사이에서는 힘의 논리가 적용이 되는 Society 아니던가? 그것 자체를 부정할 수는 없을 듯 싶다. 다만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켰던 일진회와 같이 엇나간 현상들이 생기는 건 잘못되었다고 해도 말이다. 이건 마치 성교육과 비슷하다. 무조건 하면 안 된다는 식으로 교육해서는 안 되는데... 그들을 이해하고 조금은 바람직하게 바꾸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캠퍼스 블루스>는 권장 만화가 되야 한다. ㅋㅋㅋ
꼭 보면 그런 거 정하는 사람들이 고등학교 때 찐따인 녀석들이라니까. 뭘 알아야지. 그냥 무조건 그런 거는 잘못되었다는 잣대를 들이미는 애들이니 뭘 알 턱이 있나.
나에게도 지애와 같은 상대가 있었다
<캠퍼스 블루스>의 주인공 타이손의 여자 친구는 지애다. 참 착한 여자애다. 꼭 같다고는 할 수 없지만 떠오르는 추억의 인물이 한 명 있다. 우리가 고등학교 다니던 시절에 부산은 남녀 공학이라고는 공예고랑 예술고 외에는 없었다. 그래서 남고, 여고 이렇게 나뉘었기에 <캠퍼스 블루스>에서 보는 그런 교내 로맨스는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런 로맨스는 독서실에서나 가능했다는... 요즈음 고등학생들은 길거리에서 손 잡고도 다니더만... ^^;
소문만 들었다. 이러 저러한 애라고. 그러나 나랑은 너무 다른 세계에서 사는 아이라 그런가 부다 하고 말았다. 학교 퀸카 뭐 그런 애는 아닌데 순진한 애들 사이에서는 꽤 인기가 있는 애였나 보다. 독서실에 다니는 같은 학교 같은 반 녀석이 그 애를 좋아했었고 말이다. 어느 날, 삐삐 호출에(나도 당시에는 삐삐를 차고 다녔었지. 대부분 모토로라 삐삐를 갖고 다니다 보니 난 그게 싫어서 파나소닉 삐삐를 차고 다녔다. 난 따라하는 거 싫어~) 응답하기 위해서 독서실 1층에 있는 공중전화로 전화를 하는 걸 그 애가 들었던 모양이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 때부터 나에게 관심을 갖게 되었단다. 왜냐면 왠 쌩 양아치 같은 녀석이 수능 모의고사 점수가 자기네 반 1등보다 높다는 거에 놀랐단다. 아무래도 남고가 여고보다는 점수가 높은 편이었기에 나는 반에서 1등 못했는데 지네 반에 가면 1등이었나 보다. 머리는 삭발이고, 빨간색 잭 니클라우스 골프웨어에 흰색 필라티에 빨간색 필라 조리를 끌고 다니던 모습을 보고 그렇게 생각할 수 밖에 없었겠지. 게다가 내가 독서실에서는 소문이 꽤나 안 좋았거든. ^^;
그러다 우연히 내가 다른 여학교 날라리들이랑 독서실 옆 놀이터에서 얘기하고 있는 걸 보고(난 걔네들한테 관심 있어서 그런 게 아니라 하도 지 남자친구 믿고 설치길래 훈계하려고 그랬던 거다.) 다가와서 말을 걸길래 그 때 얘기를 하게 되어서 알게 된 거였다. 나랑 얘기해보고 싶었다고. 궁금했다고. 그러다 어버이날 전날이었나? 그 때 독서실 애들(남자든 여자든)이랑 같이 꽃집에 카네이션 사러 갔었는데(아무래 남자랑 여자랑 같이 갈 수 있는 애들이라 하면 좀 노는 애들이었겠지?) 그 중에 그 애도 있었던 거다. 나랑 같이 갔었으니까.
줄이 너무 길어서 내가 그랬다. "뭐 살 건지 얘기하고 돈 줘봐바." 그리고 돈을 거둬서 줄 제일 앞으로 갔다. 지금 사는 애 바로 뒤에 있는 애를 꼬라보고 새치기를 했다. 그 때는 그런 뻔뻔함이 멋이라 생각했으니까. 그랬는데 갑자기 누가 내 팔짱을 끼더니 당기는 거다. 그 애였다. 밖으로 끌어내더니 하는 말. "승건아~ 그러면 안 되지~?" 허걱~ 그냥 줄을 섰다. ^^; 그런데 기뻤었던... 그 이후로 독서실 밖에서 걸으면서 이런 저런 얘기도 하고 그랬었는데 대학 가서 보자는 식으로 얘기를 했던 기억이 있다. 그 애가. 공부 열심히 해서 대학 가서 보자는...
참 순진했던 때였다. 뭐랄까? 그 때의 나를 보면 참 모순 덩어리가 많았던 녀석이었다. 그래도 그런 과정이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있긴 하겠지만 또 한 편으로는 너무 순진했던 로맨티스트였기도 했고. 그 때 그 애랑 대화하면서 그 애 학교에 퀸카를 잘 안다고 얘기했더니(나랑은 참 친한 친구였고 참 많은 썸씽과 추억이 있는 친구였다.) 그런 애도 아냐고 하면서 놀랬던 모습이 기억난다. ㅋㅋ 비록 내가 서울대를 가겠다는 생각에 졸업식도 참석하지 않고 삭발하고 재수에 임하면서 모든 연락을 다 끊어서 나중에 연락을 할 수가 없었지만 들리는 소식으로는 유학을 갔다는...
내 고등학교 시절에 구를 주름잡았던 선배
<캠퍼스 블루스>를 보다 보니 또 생각나는 일화가 있다. 고등학교 시절에 다른 애들은 공부만 했는지 모르겠지만 난 참 많은 추억을 만들었던 시절이었다. 그에 대한 대가는 혹독히 치루었지만 말이다. 우리 때만 해도 부산 지역이 좀 살벌했었다. 대신동 후 커피숍은 양아치들이 다니는 곳이었고, 버스 타러 가는 길도 돌아가지 않으면 선배들한테 걸려서 삥 뜯기는 길도 있었고, 뭐 그런 식이다. 그런 시절에 구를 주름잡았던 선배가 한 명 있었다.
이름도 기억한다. 형진. 성은 기억 안 난다. 우연히 방학 때 내 집에서 포커 치다가 알게 된 형인데, 나보고 성격 맘에 든다며 종종 데리고 다녔었던 기억이 있다. 한 해 선배였는데 우리 때는 전설이었다. 뭐 떴다 하면 다 사건 처리되는... 칠성파에서 초대까지 하는... 그게 고등학교 때는 멋이었다니까. 공부만 해선 그 세계 몰라아~~ ㅋㅋ 같이 다니면 항상 형진이 형이 그랬다. "니도 내랑 다니는 게 좋재? 우빵 아이가?" (우빵이 뭔지 찾아봐라. 국어사전에 나온다.) 사실 안심이지. 못 건드리니까. ^^;
우리 때도 싸움 잘 하는 애들이 있긴 했지만 절대적으로 누가 최고라고 하는 건 없었는데 한 해 위의 선배들 중에는 있었다는 거다. 뭐 다양한 일화를 전해들었다. 그 중에 하나만 얘기하자면 보통 통(서울에서는 짱이라고 부른다)이라고 하면 체육부 애들은 제외다. 운동하는 애들이랑은 별개로 통이라고 부른다는 거다. 그러다 보면 운동하는 애들 중에서도 싸움 잘 하는 애가 있기 마련인데 그 애랑 실질적인 통(학교 짱)이랑 붙으면 어떻게 될까 하는 얘기들이 나오기 마련이고.
그런 얘기를 형진이 형도 들었나 보다. 유도부 찾아가서 담판을 지었는데 한방에 끝내버렸다고. 뭐 그런 류의 일화가 많다.
고등학교 때의 추억을 돌아보게 만든 매개체
고등학교 때의 생활을 평생 해야 한다는 생각은 없었다. 그래서 나는 고등학교 때 친구들한테도 우리가 고등학교 지나면 만날 수나 있겠냐는 얘기를 종종 하곤 했었고, 이 때문에 친한 친구 중에는 나한테 편지로 너는 그렇게 생각할 지 모르겠지만 나는 너를 평생 친구로 생각한다는 내용을 전해받기도 했다. 싸움을 그렇게 잘 하는 게 아니었던 양아치들은 사실 생활을 한다는 생각보다는 그래도 대학은 가야지 하는 생각을 마음 한 켠에 가지고 있었다.
나는 내가 원래 하던 만큼을 못 했기에 다시 공부에만 매진하려고 재수를 한 거였지만 그네들은 전문대를 갈 수 있을까 없을까를 두고 고민했던 친구들도 많았었다. 그래도 그네들한테 나는 공부 잘 하는 양아치였으니까. 고등학교 이후로 그런 친구들을 다시 보는 일은 없었다. 간혹 부산 내려가면 이런 저런 얘기를 듣곤 한다. 누가 어느 조직에 들어가서 어느 지역 뭘 하더라는 얘기. 그게 그네들의 길이고 삶이겠지.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본다.
나는 선택할 수 있는 폭이 넓었기 때문에 그런 선택을 할 필요는 없었지만 고등학교 때 바르지 못한 길을 선택한 거에 대해서는 후회없다. 그래도 내게는 평생 회자될 만한 수많은 추억을 남긴 기간이었고, 그 속에서 배운 것도 분명 있으니까. 이번에 <캠퍼스 블루스> 보면서 어떻게 그 당시에는 그렇게 일찍 일어나서 등교했는지조차 신기할 정도로 오래 전의 추억들이 떠올라서 좋았던 듯 싶다. 그래도 어찌보면 그 때의 친구들이 의리 하나는 짱이었는데. 서울 애들이랑 다르다니까...
물론 그렇다고 다 그런 건 아니다. 올해도 18년지기 친구랑 의절하게 되었다. 돈 때문에. 주변 친구들도 돈이 그 녀석 망쳤다고 그럴 정도로 돈 때문에 주변 사람들에게 신뢰를 많이 잃은 친구인데(내 블로그에도 언급이 되어 있다. 돈 때문이 아니라 힘들어하는 거 같아서 힘을 주고 싶었기에...) 결국 의절했다. 아무리 그래도 사람이 경우에 없는 짓을 하면 안 된다. 도에 지나쳤다. 돈이야 있다가도 없을 수 있지만 무너진 신뢰로 인한 상처는 메우기가 힘들다. 시간이 지나면 또 모르겠지만...
<캠퍼스 블루스>를 탐독했던 시절이 고등학교 시절이었고, 고등학교 시절의 추억을 생각나게 하는 내용들이 담겨 있다 보니 고등학교 시절을 돌아보게 되더라는... 어렸을 때는 <캠퍼스 블루스>의 타이손이 멋져서, 타이손이 강하다는 상대를 만나 어떻게 할까라는 내용 전개가 궁금해서 봤지만 나이 들어서 다시 든 <캠퍼스 블루스>는 옛 추억을 돌이키게 만들어준 매개체 역할을 하는 듯 싶다. 그런 추억을 갖고 있다는 거 하나만으로 미소 지을 수 있었던 시간이었고 그런 추억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행복하다 느낀다. 나이가 들면 추억을 먹고 산다는 게 이런 의미가 아닐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