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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영화

더 스토리: 세상에 숨겨진 사랑, 액자식 구성으로 엮은 세 개의 사랑 이야기


나의 3,163번째 영화. 스토리 속에 스토리가 있는 액자식 구성의 로맨스다. 그런데 각 스토리 속의 남주인공은 모두 공통점이 있다. 바로 글쓰는 사람이라는 점이다. 나도 언젠가는 글쓰는 사람으로 살려고 하다 보니 흥미롭게 보기는 했지만 사실 소설가는 나랑 각이 좀 틀린 글을 쓰는 사람들인지라. 여튼 <더 스토리>는 감동이 있는 로맨스는 아니다. 사랑에 대해서 한 번 즈음 생각해보게 만드는 그런 로맨스다. 뭔 말이냐면 '아~ 나도 저런 사랑을 하고 싶어. 넘흐 멋져~' 뭐 그런 생각이 드는 로맨스가 아니란 말이다. 감동이 그닥 없고 사랑에 대한 진지한 메시지 또한 강렬하지 않아 <더 스토리>를 보고 나선 뭐 다소 독특한 구성의 로맨스다 정도의 느낌이다. 개인 평점 7점 준다.


책 속의 로맨스: 브래들리 쿠퍼와 조 샐다나


<더 스토리>의 가장 메인이 되는 얘기다. 예고편을 보면 이게 현실 속의 로맨스라 생각하기 쉬운데 아니더라는. 이 또한 작가(데니스 퀘이드 분)가 만들어낸 스토리에 지나지 않는다. 소설 속의 남주인공은 브래들리 쿠퍼가 여주인공은 조 샐다나가 맡았다. 남주인공은 남이 적은 걸 그대로 베껴서 출간을 했고, 그 소설이 베스트셀러가 되어 일약 스타덤에 오른다. 그 전에 자신이 적은 글은 출판사에서 거부 당하기 일쑤였는데 말이다. 이렇게 남이 적은 걸 그대로 베껴서 적는 걸 필사(筆寫)라 하는데, 글을 잘 쓰는 데 도움이 되는 건 사실이나 단순간에 실력을 키울 수는 없다. 그렇다면, 이 남주인공 후속작은 베낄 게 없으니 자신이 직접 적어야 할 것이고 그게 먹힐까?

한 번 뜨고 유명해지면 사실 책 팔기 쉽다. 유명세 때문에 책은 팔리기 마련이라는 거다. 그래서 이름 없을 때, 책 내는 거에 비할 바는 안 되겠지만 그게 얼마나 갈까 싶다. 사실 한 작가가 낸 모든 책들이 다 괜찮다고 하는 경우는 드물다. 어떤 책은 맘에 들어도 어떤 책은 맘에 안 들 수도 있으니 말이다. 남주인공은 글쓰기를 좋아는 하지만 소질이 없다. 이런 경우가 참 답답한 거다. 열심히 하는데 성과는 없는. 그나마 남의 글을 필사하여 모든 영광을 자신이 가져갔으니 여기서 나오는 인세 갖고 좀 더 좋은 여건에서 글쓰기 능력을 향상시킬 수는 있겠지만 소질이 없으면 한계가 있으리라 본다.

이 둘의 로맨스에서 난 이런 부분이 눈에 띄었다. 자신의 글이 아니라는 걸 알려야겠다는 남주인공(실제 그 글을 적은 노인이 나타나기 전까지는 남주인공도 그럴 생각이 전혀 없었다)에게 여주인공이 이런 식으로 얘기한다. 수많은 사람들이 실수를 하고 사는데 꼭 그렇게 해야 겠냐고. 그냥 덮어두고 우리 행복하게 살면 안 되겠냐고. 이런 걸 보면 남자와 여자들의 기본적인 사고방식에 차이가 있다는 걸 느낀다. 사회 생활을 기본으로 하는 남자는 아무래도 자아가 강한 편이고, 여자는(요즈음에야 좀 많이 달라졌지만) 가정에 충실하다 보니 자아보다는 가족을 생각하는 경향이 강하다는 거. 이 때문에 충돌이 날 수 밖에 없다.

고로 충돌 그 자체가 문제라고 보기 보다는 그런 충돌을 어떻게 서로 잘 헤쳐나가느냐가 중요한 거다. 말은 쉬운데 결코 쉬운 게 아니다. 기본적으로 남자와 여자의 사고방식이 다르기 때문에 남자는 여자를 이해할 필요가 있고, 여자는 남자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서로 양보하면 된다고 하지만 일방적인 양보는 오히려 더 큰 문제를 야기시키고, 그렇다고 해서 저번에는 내가 양보했으니 이번에는 니가 양보해라는 식이면 싸움만 야기시킬 수 밖에 없다. 왜? 어떤 걸 양보하는냐의 문제는 도외시하고 양보하는 회수만 갖고 하는 얘기니까 말이다. 그래서 사랑하는 건 쉽지만 유지하는 게 어려운 거다.


책 속의 책 로맨스: 벤 반스와 노라 아르네제더


<더 스토리>에서 브래들리 쿠퍼가 적은 책의 주인공들이다. 즉 여기 남주인공이 자신이 사랑하는 여자를 위해서 적은 글을 브래들리 쿠퍼가 우연히 발견하고 베껴서 출간하여 베스트셀러가 된다. 이 남주인공과 같은 경우도 글 쓰는 직업인데, 사랑은 이 남주인공에게 글을 쓰는 강력한 자극제가 된다. 자식을 잃고 부부간에 갈등이 시작되고, 떨어져 있는 중에 여자를 그리워하며 며칠 먹지도 자지도 않고 한달음에 글을 적어내려갔고, 그 글로 인해 둘은 재회하지만 여자가 원고를 기차에 두고 내리는 바람에 다시 둘은 싸움을 하게 되고 헤어진다. 글로 인해 다시 만났다가 글로 인해 다시 헤어진다. 아이러니하다. 그 잃어버린 원고를 발견한 브래들리 쿠퍼가 그대로 베껴서 출간하여 베스트셀러가 되는 거다.


남자는 후회하지만 그 여자를 그리면서 평생 혼자 살아가고, 여자는 재혼하여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산다. 여자는 나이 들어서 혼자 살 순 있어도 남자는 혼자 살기 쉽지 않은데 여기서는 거꾸로다. 그 여자를 그리면서 홀로 살아가는 노년의 남주인공은 제레미 아이언스가 맡았다. 제레미 아이언스 많이 늙었네. 분장을 그렇게 해서 그런 건지도 모르겠지만. <더 스토리>란 영화가 탄생하게 된 모티브는 잃어버린 원고다. 헤밍웨이의 아내가 실수로 헤밍웨이의 원고가 든 가방을 잃어버린 일화에서 착안하여 스토리를 만든 거란 얘기.


현실: 데니스 퀘이드와 올리비아 와일드


그리고 이제 현실이다. <더 스토리>라는 영화 속의 현실. 현실 속 주인공은 데니스 퀘이드가 맡았는데 주인공이 적은 책 제목이 영화 제목이다. <The Words>(<더 스토리>는 한국 제목이다. 영어 제목 즉 원제는 <The Words>다) 자신이 적은 책을 낭독하는 발표회장에서 자신에게 관심을 보이면서 다가온 젊은 여인네와의 대화를 보면 주인공이 적은 소설의 내용이 주인공의 얘기 아니냐는 생각이 들게 만든다. 게다가 마지막 장면도 그런 묘한 뉘앙스를 남기고 말이다. 쉬운 말로 하자면 브래들리 쿠퍼가 나이 들어서 데니스 퀘이드가 되었다는 게지. 그러나 그렇게 볼 수는 없을 듯 하다. 그건 주인공 데니스 퀘이드의 대사에서 찾을 수 있다. 찾아보길~ ^^;


한국 제목보다는 영어 제목이 더 의미 있어

한국 제목은 <더 스토리>다. 영어 제목은 <The Words>다. 왜 영어 제목이 더 의미가 있을까? <더 스토리>의 모든 남주인공들은 공통점이 있다. 소설을 쓰는 작가라는 점이다. 같은 걸 보고서도 표현하는 건 제각각이다. 단순히 본 것을 사실적으로 서술하는 게 아니라 그 느낌을 독자들에게 생생하게 전달하기 위해서 중요한 건 바로 단어 선정이다. 이에 따라 작가들의 표현 능력이 달라지는 거고. 그래서 원제인 <The Words>가 더 의미있다는 거다. <더 스토리>는 로맨스다. 이러한 의미를 로맨스에 녹였는데 이는 제레미 아이언스의 대사 속에서 잘 나타난다.

"그런 환희와 고통이 그 단어들을 탄생시켜준거다."
"내 비극은 내 사랑인 그녀보다 그 단어들을 더 사랑했던거야."


예고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