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2,472번째 영화. 현재 3,176편을 기록하고 있는데 갑자기 2,472번째 영화의 리뷰가 나온 거는 고전 명작들 리뷰를 위해 다시 봐서 그렇다. 난 원래 책도 그렇지만 한 번 본 영화 다시 잘 안 본다. 그런데 요즈음은 희한하게 좋은 영화들은 다시 봐도 좋아서 이따금씩 생각나면 찾아서 보곤 하는데 <시계 태엽 오렌지>와 같은 경우는 좋아해서 봤다기 보다는 고전 명작 리뷰 때문에 다시 본 거다. 다시 봐도 평점이 같게 나오니 참 놀라울 따름이다. <시계 태엽 오렌지>를 맨 처음 본 게 2006년 3월 4일이었다. 지금으로부터 거의 7년 전인데 그 때의 생각이랑 지금의 생각이 꼭 같지는 않겠지만(영화도 내가 어떤 경험과 지식을 갖고 있는 상태에서 보느냐에 따라 느낌이 다르니까) 평점은 같더라는 거다. 개인 평점 9점의 추천작이다.
인간은 변하지 않는다
<시계 태엽 오렌지>에서 가장 크게 봐야할 부분은 바로 이 부분이 아닐까 싶다. 왜? 나는 철학을 중시하니까. 인간은 변하지 않는다는 건 어찌보면 운명론과 개척론에서 운명론에 가깝다. 노력 여하에 의해서 얼마든지 개선 가능하다고 하는 그런 개척론적 사고 방식과는 반대니까 말이다. 이에 대해서 얘기하자면 정말 책 한 권에 걸쳐서 내가 생각하는 바를 정리할 수 있겠는데(사실 이에 대해서는 언젠가 책으로 만들려고 생각해둔 게 있다) 내가 동양 철학을 공부하는 와중에 느꼈던 게 이거였다. 변하지 않는다는 거다. 변할 여지가 있는 게 있고 그렇지 않는 게 있다는 거다. 이걸 잘 가려내어야 사람 볼 줄 알게 되는 거다.
위의 글은 결혼에 대한 내 생각을 적은 글이다.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게 바로 이런 거다. 좋았을 때는 한없이 좋으니까 다 이해가 되지만 그것만 같고 결혼해서 평생 같이 살 수가 없다는 거다. 왜? 그런 감정(emotion)이 평생 가지 않거든. 그래서 원래 내가 편한대로 하는 데도 즉 굳이 맞출 필요가 없어도 잘 맞는 사람을 가려야 하는 거다. 그래야 잘 안 맞는 부분이라 하더라도 맞출 수가 있는 거다. 왜? 잘 맞는 부분이 많으니까. 그런 거 보면서 그래도 다른 부분은 서로 양보할 여지가 생기는 거다. 잘 보이려고 하지 않아도 맞출려고 애쓰지 않아도 잘 맞는 사람. 그게 결혼 상대자인 거다. 감정 때문에 잘 보일 수는 있어도 평생 가지 않는다. 사람은 변하지 않으니까 말이다.
최근 난 양아치 한 녀석한테서 고소를 당했다. 그리고 현재 이 건에 대해서는 진행중 상태이고. 이 양아치 녀석한테 나는 변했다는 말을 했었다. 난 정말 사람이 변해도 이렇게 변할 수 있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오랫동안 그 양아치를 아는 지인들 중에는 나처럼 변했다는 말을 하는 사람도 있고 말이다. 그러나 나중에 드는 생각이 변한 게 아니다. 원래 그런 거다. 원래 그런 건데 지가 아쉬울 때는 워낙 잘 하고 믿음을 주는 양 말과 행동을 하니까(나중에야 비로소 들통나지만) 원래 그런 사람인가보다고 착각을 한 거였다. 그 정도로 믿음을 주는 데에 능숙했던 거다. 그러니까 아직도 여러 명이 당하고 있는 거고. 모두 공통적으로 하는 얘기가. 말은 정말 잘 한다. 그래서 얘기를 해보면 마치 자신이 나쁜 사람이 된 듯 다른 사람들이 오해하기 쉽다. 정말 치가 떨린다.
그 녀석은 고등학교 시절에 패싸움 했던 얘기를 나한테 들려줬던 게 있다. 믿는 사람들과는 어떤 상황에서도 나는 함께 한다는 걸 드러내기 위해서 했던 얘기였는데 나중에 내가 그 양아치가 원래 그런 녀석이라는 걸 깨닫고 나서 보니까 그런 의도가 아니라 같이 어울렸던 애들이 자신보다는 훨씬 싸움을 잘 하는 애들이다 보니 그들에게 신뢰를 얻기 위해서 그랬던 거다. 정말 자신이 믿음이라는 거를 보여주려면 자기보다 싸움 못 하는 애들이 자신을 믿을 때 자신이 나설 줄 알아야 한다. 즉 강자한테는 강하고 약자한테는 약해야 하는데 이 양아치 녀석은 강자한테는 약하고 약자한테는 강하다. 그리고 내가 어릴 적 벤처 사업할 때 나를 윗사람으로 두고 있었던 이유는 간단하다. 주변에서 내가 100억을 벌었다는 헛소문이 퍼져 그거 믿고 온 거지. 그러나 나의 인간적인 면에 동화가 잠시 되었을 뿐이고. 그러나 사람은 변하지 않아~
다시 영화 얘기로 돌아가보자. <시계 태엽 오렌지>에서 주인공은 원래 본성 자체가 나쁜 녀석이다. 그걸 갱생시킨다고 해서 영화에 등장하는 요법이 루도비코요법인데 이건 파블로프의 조건 반사와 비슷하다. 그건 근본적으로 주인공을 바꾼 게 아니다. 주인공이 그렇게 하고 싶어도 자신이 괴로우니까 못 하는 것일 뿐이다. 현실에서 이런 경우에 많은 사람들은 변했다고 얘기한다. 뭐 이런 거다. 나는 원래 다혈질인데 나이가 드니까 변하더라. 나도 마찬가지다. 매우 심한 다혈질인데 그렇게 어떤 순간에 성질 부리고 난리법석 떨면 나중에 더 피곤해지거나 귀찮은 일이 더 생기게 되는 경험을 많이 겪다 보니 그냥 피하고 만다는 식이 되어버리더라는 거다. 그렇다고 해서 내 다혈질 성격 자체가 변하는 게 아니지. 단지 다혈질 성격을 표현하는 방식이 달라졌을 뿐이지. 사람은 변하지 않는 거다. 그래서 그걸 있는 그대로 읽어낼 줄 알아야 한다. 이걸 가슴 깊이 느낀다면 사람 볼 때 참 많은 면을 다르게 보고 파악하게 될 거다.
변할 여지가 있다면 그건 자유 의지다
사람이 변하지는 않지만 변할 수도 있다. 아니 지금까지 변하지 않는다고 해놓고 변할 수도 있다니 뭔 개소리냐 싶겠지만 내가 이런 거 얘기하려면 책 한 권으로 풀어서 얘기해줘야 하다니까? 쩝. 저 사람은 안 변해. 저게 저 사람의 본성이야. 그렇게 단정해도 그게 변할 여지가 있는 것인지 아니면 절대 변하지 않을 것인지는 사실 누가 뭐라 한다고 그렇게 되는 게 아니라는 거다. 다만 내가 여기서 얘기하고 싶은 건 절대 변하지 않는 거라고 다른 이들이 단정지어도 한 사람이 감당하기 힘든 어떤 경험이 계기가 되면 변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런 계기가 꼭 완전한 변화를 초래하지는 않는다. 일시적인 변화만 초래하기 쉽다. 왜? 인간은 적응성이 뛰어난 동물이거든. 군대 갔다 오면 정말 공부 열심히 해야지 했다가 나중 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적응이 되는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인간이 변하기 위해서는 인간만이 가진 이성적인 사고와 함께 그것을 지켜나가기 위한 강한 자유 의지가 있어야만 한다. 쉽지가 않은 거다. 노력한다고 해서 될 게 아니라고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변할 여지가 없는 거에 노력을 한다 해도 그건 일시적인 변화만 초래할 뿐 다시 돌아가기 일쑤다. 그래서 꾸준히 평생 그런 노력을 지속해야 하기 때문에 보통의 강한 자유 의지로는 되는 게 아니란 거다. 그래서 서로 의지할 수 있는 무리들이 있으면 그나마 혼자서 변하려고 하는 거보다는 나은 법이다. 알콜 중독자 모임과 같은 게 효과가 있는 이유도 그런 것이고. 사람은 자신에게 관심을 가져주고 격려해주고 하면 그 사람을 봐서라도 지켜나가려고 하는 그런 습성이 있으니. 그걸 역이용 하는 아주 못 된 양아치도 있는 게 사실이지만. 그러니 사람 믿기가 힘든 거지. 모르잖아. 그 사람이 이런 사람인지 저런 사람인지. 그래서 사람은 오래도록 겪어봐야 그 사람에 대해서 이해하게 되는 거지만 시간이 걸리는 문제다 보니 일단 방어적인 자세(손해보지 않기 위해서)가 될 수 밖에 없는 거다. 여튼 그래서 변하려면 아주 강한 자유 의지가 있어야만 한다는 거. 그러나 쉽지는 않다는 거.
원작자의 특이한 경험이 반영
시계태엽 오렌지 앤소니 버제스 지음, 박시영 옮김/민음사 |
영화 <시계 태엽 오렌지>의 원작은 소설이다. 동명의 소설. 작가는 안소니 버제스인데 영화에서 그의 특이한 경험이 반영되어 있다고 한다. 어떤 경험이냐면 2차 세계대전에 말레이시아에서 아내가 미군 4명에게 성폭행을 당하고 당시 뱃속에 있던 아이가 유산당했던 경험이다. <시계 태엽 오렌지>에서 주인공 일당이 가정집에서 여자를 성폭행하는 장면(이 여자의 영화 속 남편의 직업도 작가)이 있는데 그게 그런 경험을 밑바탕으로 나온 스토리란 얘기다. 그래서 저자의 표현을 빌면 <시계 태엽 오렌지>의 집필이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순간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시계 태엽 오렌지>에서는 작가인 남편이 복수를 한다. 현실에서는 못 했지만 그렇게 해주고 싶다는 작가 자신의 입장을 그렇게 소설에 담아낸 듯 싶다.
원작에서의 결말은 다르다
소설 <시계 태엽 오렌지>의 결말에서는 주인공이 철이 들어서 결혼을 하고 아들을 낳아서 완전히 새 사람이 되는 것으로 결말을 짓고 있다. 내가 원작을 읽어본 게 아니라 그렇다고 하대~ ^^; 난 소설은 안 읽는다. 차라리 영화를 보지. 여튼 근데 미국판에서는 이 결말이 스토리 전개상 어울리지 않는다 하여 삭제하여 내놓았단다. 참고로 원작자 앤소니 버제스는 영국 출신이다. 영화 <시계 태엽 오렌지>도 아마 미국판 소설을 기반으로 해서 제작된 거 같고. 원작에서는 주인공이 어떤 걸 계기로 그렇게 바뀌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볼 때는 현실에서는 거 쉽지 않다고 본다. 그러나 긍정적인 결말을 내는 거에 있어서는 나는 찬성. 어차피 픽션이자네. 픽션에라도 그렇게 결말을 내줘야지~ 안 그래?
Clockwork Orange
<시계 태엽 오렌지>의 원제인 'Clockwork Orange'는 '과학에 의해서 개성을 상실하고 로봇화한 인간'이란 뜻이다. 영화나 원작 소설의 제목이 이러하다는 건 분명 원작자가 어떤 얘기를 하고 싶기 때문에 그것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거라고 본다.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시계 태엽 오렌지>에서 주인공을 대변하는 얘기인 거 같은데, 원작의 결말에서는 자유의지에 의해서 본성이 변하게 되었고, 영화의 결말에서는 본성에는 변화가 없다는 걸 보여준다. 이를 통해 제목이 나타나고자 하는 건, 인간이 변화하기 위해서는 인위적인 조치로 단지 그걸 하지 못하게 하는 데에 있는 게 아니라 스스로 깨우치고 실천하려고 노력하는 자유의지에 의해서야 한다는 걸 말하는 듯.
여기서 한 가지 더 생각해볼 건 원작이나 영화 모두에서 보여지듯이 주인공을 변화시키기 위해서 루도비코요법을 사용하는데 처음에는 국가의 예산으로 운영이 되는 교도소의 효율성을 위해서 필요한 듯 비춰지다가 나중에는 정권을 얻기 위한 정치적 수단으로 즉 정치적 이슈로 활용된다는 데에 있다. 특히 영화의 결말이 주인공과 재무부장관이 서로의 이익을 위해서 합의를 보면서 끝나기 때문에 영화에서는 이에 대해서는 비판적인 시선을 던지고 있다고 보여지는데 사실 인간의 본성이 쉽게 변하지 않는 것처럼 그런 일들이 비판 받아 마땅해도 정당정치 구조 하에서는 계속 반복되어 나올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해서 마땅한 대안이 있느냐? 인간의 자유의지를 믿고 스스로 변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면 <시계 태엽 오렌지>의 주인공처럼 그걸 이용하는 이들도 필히 생길 수 밖에 없는데 말이다. 그래서 이 세상 어떤 정책이든 모든 이를 만족시킬 수는 없는 거지.
영화에서 등장하는 루도비코요법(Ludovico Technique)
영화에 루도비코요법이 등장해서 그런 요법이 실제로 있는지 찾아봤더니 그건 픽션에 언급된 용어일 뿐이다. 그러나 실제로 이와 비슷한 혐오 치료(Aversion Therapy)가 있다. 약물, 필름, 소리 등을 활용하여 부적응 행동(<시계 태엽 오렌지>에서는 폭력이 되겠다.)을 수정하는 게 혐오 치료인데 인간적인 면에서 부작용이 있을 수 있어 전문적 지식이 요구된다고. 아 그리고 덧붙여서 살짝 언급하자면 원작 소설은 1962년에 발표되었고, 영화는 1971년작이다. 원작 소설의 배경은 소설 발표 당시가 아니라 조금 뒤의 미래를 배경으로 했다고 한다.
영화 속 어울리지 않는 결합들
<시계 태엽 오렌지>에서 보면 참 어울리지 않는 두 개가 결합된 것들이 많다. 뭐 주인공 패거리들이 마시는 음료는 우유다. 이유없이 사람 패고 다니는 그 패거리들이 마시는 거라고 하면 술이 어울려야 하는데 그게 아니라 우유다. 약 탄 우유. 게다가 또라이 주인공이 좋아하는 음악은 베토벤 교향곡 9번이다. 이게 나중에는 조건반사 역할을 하게 하지만. 이렇듯 전혀 어울리지 않는 게 배합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거부감이 없고 다소 독특하다는 느낌을 전달해준다.
너무나 캐릭터를 잘 소화한 말콤 맥도웰
주인공 역의 말콤 맥도웰. 영국 배우고 1971년도 영화인지라 첨 보는 배우이긴 한데 정말 주인공 역에 너무 잘 어울린다. 연기를 잘 해서 그렇기도 하지만 외모도 잘 어울리더라는. 난 <시계 태엽 오렌지> 보면서 <트레인스포팅>에서 이완 맥그리거가 떠오르더라는. 그리고 <시계 태엽 오렌지>에서 주인공 패거리가 마시는 음료인 약 탄 우유. 난 맨 처음에 마 갈아서 넣은 쥬스인 줄 알았다. ㅋㅋ
예고편
+ '고전 명작들' 연재는 매주 일요일에 연재할 예정이다.
+ 고전 명작들 리뷰들만 보기 → 리뷰가 있는 80년대까지의 고전 명작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