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3,208번째 영화. 1963년이니 50년 전의 영화인데 참 재밌게 봤다. 영화 초반에 나오지만 내용은 실화를 기반으로 했는데, 아마 요즈음 이런 실화를 영화로 만든다고 하면 진지한 감동 드라마가 되지 않을까 싶다. 물론 드라마로 만든다고 하여 다 진지한 건 아니고 감동을 주는 건 아니지만 <쇼생크 탈출> 식으로 만들지 않았을까 싶다는 거다. 그러나 이 <대탈주>는 그렇지 않다. 다소 코믹스럽게 그려내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코미디는 아니지만 그만큼 재미나게 풀어나가고 있어서 묵직한 감동이나 울림은 그만큼 덜했다는 게 흠이라면 흠이다. 뭐든 일장일단이 있으니 그렇게 이야기를 풀어나가면서 얻은 게 있으면 또 잃는 게 있는 거 아니겠는가. 여튼 지금 봐도 재밌고, 실화라는 사실에 놀라울 따름이다. 물론 극적 구성을 위해서 실화를 많이 각색했겠지만... 개인 평점 9점의 추천영화.
어디까지가 실화일까?
1) 당시 포로수용소에 있었던 작가 폴 브릭힐의 소설이 원작
<대탈주>는 폴 브릭힐(Paul Brickhill)이 자신이 경험한 바를 토대로 쓴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해서 각색한 영화다. 작가가 바로 해당 포로수용소에 있었다는 얘기. 영화에서도 나오듯이 공군들만 수감한 포로수용소였는데 작가인 폴 브릭힐은 호주 출신으로 연합군의 공군으로 참여하다 격추 당해 잡힌 거라고 한다.
그러나 폴 브릭힐이 <대탈주>에서 탈주하는 76명에 속했던 건 아니고 탈주를 준비하는 과정에만 참여했었다고. 즉 당시 탈주를 준비하고 탈주하는 걸 목격했던 목격자의 입장에서 쓴 소설이라는 거다. 참고로 책은 1950년에 출간되었고, 영화는 1963년작이다. 이 탈주 사건은 1944년 3월 24일 밤부터 다음날 새벽까지 일어난 일이고.
2) 독일 슈탈라크 루프트 III(Stalag Luft III)
<대탈주>에서 나온 포로수용소는 스탈라크 루프트 III(Stalag Luft III)다. 여기서 슈탈라크라는 말은 포로수용소를 뜻이고 Luft는 공군을 뜻하는 Luftwaffe로부터 따온 것이라는데 공기를 뜻한다고 한다. (덱스터님이 덧글로 지적해주신 것) 당시에 독일 서부의 Sagan이란 마을에 있었다고 하는데 현재는 폴란드의 Zagan이란 마을에 있다고 한다.
근데 <대탈주>를 보면 한 가지 의문이 드는 게 과연 당시에 전쟁 중이었고 포로수용소인데 포로들이 영화에서처럼 그렇게 자유로울 수 있었을까 하는 거다. 실화 기반이 아니라고 하면 몰라도 실화 기반이라고 하니 설마 저럴까 싶다는 얘기지. 근데 구글링 해서 당시 포로수용소 생활이 담긴 사진을 보면(사진이 있다는 것 자체가 난 신기할 따름이다) 영화만큼은 아니라 할 지는 몰라도 꽤나 자유로웠던 듯 싶다. 복싱도 하고, 하키도 하고 말이다.
3) 네 개의 땅굴 이름: 톰, 딕, 해리, 조지
<대탈주>에서는 세 개의 터널만 나오는데 그건 <대탈주>가 해리라고 명명된 터널로 탈주하고 발각되는 과정까지만 그려서 그렇다. 그 사건 이후에 땅꿀을 하나 더 팠는데 그게 조지라는 이름의 땅굴이다. 어떻게 탈주한 사람들의 상당수가 죽음을 당했는데 다시 땅굴을 팔 수 있을까 싶지만 그 사건 이후로 어떤 일이 생겼을 때 자신들을 지킬 필요가 있어서 이 땅굴은 무기고 근처에 출구를 두어 탈주용이 아닌 어떤 상황에서 비상용으로 사용하기 위해 만들었다는 거다. 그러나 그 이후 한 번도 사용되지는 않았다는 거.
결국 <대탈주>에 나오는 세 개의 땅굴은 실제 팠던 땅굴이었고, 영화에서처럼 톰이라 명명된 땅굴이 사전에 발각되었고, 해리라는 땅굴로 76명이 탈주했다는 것도 사실이었다. 또한 땅굴에서 파낸 흙을 처리하기 위해 만든 주머니도 실제고. 땅굴 파는 사람에게 공기를 제공하기 위한 에어 펌프도 실제로 있었다. 찾다 보니 실제 사진도 있더라는.
땅굴 파는 사람에게 공기를 제공하기 위해 만든 에어 펌프
모두 영화 <대탈주>에 나오는 그대로다. 신분증이나 통행증 그런 거 위조한 것도 사실이고. 당시의 신분증이나 통행증이 지금과 같지는 않아서 위조가 그나마 쉬워서 그럴 수 있었을 듯. 게다가 신분을 위장하기 위해 옷을 갈아입고, 가방까지 준비한 것도 사실이란다. 헐~ 어떻게 그렇게 준비할 수가 있었을까 싶은데 말이다.
4) 총 76명 탈주, 3명만 성공, 50명은 사살
영화 마지막에 50명을 위해 바친다고 되어 있는데 그 50명은 사살된 50명이다. 영화 <대탈주>에서처럼 트럭에 실려서 이동 중에 담배 피우라고 하고 난 다음에 사살 시킨 건 아니고 게슈타포(Gestapo, 나찌의 비밀경찰)가 1명, 2명씩 잡아내서 이동 중에 잠깐 쉬라고 하고 뒤에서 권총으로 사살 시킨 거다. 즉 50명을 한꺼번에 죽인 건 아니라는 얘기. 각각 죽여서 그 합이 50명이라는 것.
탈주에 성공한 이는 3명이었는데 둘은 같이 행동해서 스웨덴으로 탈주를 한 노르웨이인들이었고, 나머지 한 명은 실제로 레지스탕스의 도움을 받아 탈주한 네델란드인이었단다. 즉 영화 <대탈주>에서는 출신만 다르고 탈주 과정은 실제와 거의 흡사하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주연인 스티브 맥퀸이 분했던 미국인은 허구의 인물이라고. 탈주한 사람 중에 미국인은 없었다는 것.
또한 이 대규모 탈주를 진두 지휘했던 이는 영국 공군 소령 로저 부쉘(Roger Bushell)을 모델로 한 것이란다.
5) 해리라 명명된 땅굴은 실제로 조금 짧았다
아마 <대탈주>를 보면, 어떻게 저렇게 땅굴을 팔 수가 있지 싶을 거다. 근데 실제 사진들을 보면 영화보다 더했으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았던 듯 싶다. 다만 영화와 조금 다른 부분이라고 생각되는 건 땅굴로 가는 입구가 생각보다 깊다는 거다. <대탈주>에서는 그리 깊지 않은 거 같은데 말이다. 그건 아래의 실제 해리 땅굴 입구 사진을 보면 알 수 있다. 인상적인 거는 땅굴로 내려가는 입구를 나무 판자로 깔끔하게 마무리 했다는 거. <대탈주>에서도 나오지만 포로들의 침대에서 나무 판자를 구해서 이렇게 한 거란다.
또한 <대탈주>에서 숲까지 땅굴을 파야 되는데 몇 m 모자랐다는 것도 실제와 같다. 유투브에 보면 생존자들의 인터뷰와 함께 당시를 재연한 영상이 있는데 거기서도 그렇게 묘사하고 있더라는 것.
6) 독일어로 대화하다 'Good Luck' 한마디로 검거
신분증? 통행증?을 제시하고 독일어로 대화해서 위기를 모면하는가 싶더니 독일군 장교가 한 마디 한다. "Good Luck" 이 말에 영어로 답변하다가 검거되는 장면이 있는데 이 또한 사실이란다. 당시에 쓰던 고전적인 수법이라고.
7) 실화와 다른 부분들
<대탈주>에서의 탈주 준비와 탈주 과정은 상당 부분 실제를 많이 묘사했다. 다만 극적인 재미를 위해서 스티브 맥퀸이라는 다소 반항아적이고 문제아적인 캐릭터를 등장시키고, 나중에 탈주한 이후에도 오토바이를 훔쳐서 도망가는 등의 씬을 넣었는데 이는 다 허구다. 사실 <대탈주>에서 보면 스티브 맥퀸이 오토바이를 타고 점프해서 가시철망을 뛰어넘는 장면이 꽤나 인상적이었는데 말이다. 또한 비행기를 훔쳐서 탈주하는 것 또한 허구라고 한다.
그리고 <대탈주>를 보면 가장 어이가 없는 부분이 이걸 거다. 수용소에 포로들이 도착하자마자 저마다의 장기를 드러내듯이 탈주를 시도하는 부분. 아무리 실화를 기반으로 했다고 해도 당시는 전시 중이었고 포로수용소인데 말이 되나 싶다. 다소 현실을 과장되게 그린 면도 분명히 있지만 <대탈주>를 아주 진지한 드라마가 아니라 코믹스런 오락 영화로 만들다 보니 그런 듯. 그래도 재밌고 실화라는 스토리가 인상적이었기에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는 영화가 된 게 아닌가 싶다.
이 영화로 스타가 된 주인공, 스티브 맥퀸
<대탈주>를 통해 스타가 된 인물이 스티브 맥퀸이다. 사진 보면 어디서 한 번 즈음은 본 영화배우라 생각될 건데 <빠삐용>의 주인공이다. <빠삐용>은 1973년작이고, 그보다 10년 전에 <대탈주>를 찍었고. <대탈주>에서는 참 독특한 캐릭터로 나온다.
"언제 탈주할꺼냐?" "오늘 밤"
탈주해서 잡혀 들어오면 독방에 갇혀서 지내다가 나와서 다시 탈주하고 하는 걸 보면 마치 학교 다니기 싫어서 땡땡이 치던 껄렁한 고등학생을 보는 듯하다. 근데 묘한 매력이 있어.
<대탈주>에서 가장 인상깊었던 장면이었던 오토바이로 점프를 해서 가시철망을 넘는 건 스턴트맨을 썼다 한다. 실제로 카레이서이자 바이커인 그라 그런 장면 스턴트맨 사용하지 않는 게 보통인데 그 장면은 안전을 위해 스턴트맨을 사용했다고 한다.
콧수염이 없이 등장한 찰스 브론슨
찰스 브론슨하면 떠오르는 것. 그의 트레이드 마크라 할 수 있는 콧수염이다. 근데 <대탈주>에서 찰스 브론슨은 콧수염이 없다. 공군 포로다 보니 콧수염을 기른 군인은 없다 해서 깎은 건지도 모르겠다.
찰스 브론슨과 스티브 맥퀸은 <대탈주>의 존 스터지스 감독의 작품인 <황야의 7인>에도 출연했다. 비록 스티브 맥퀸은 주연이고 찰스 브론슨은 조연이지만. <황야의 7인>은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7인의 사무라이>에서 영향을 받은 작품으로 1960년작이다. 그러나 스티브 맥퀸은 <대탈주>를 통해서 일약 스타덤에 오르고, 찰스 브론슨은 그 이후에도 오랫동안 명성을 얻지는 못했다. 이런 걸 보면 자기에게 맞는 캐릭터도 중요하지만 그 캐릭터가 매력이 있어야 돼.
<대탈주>에서 보면 스티브 맥퀸은 상당히 독특한 매력을 가진 캐릭터로 나오지만 찰스 브론슨은 그렇지 않거든. 근데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맡아서 흥행했던 <황야의 무법자>에 주연은 원래 찰스 브론슨 꺼였다고 한다. 찰스 브론슨이 거절해서 그렇지. 운도 참 없어~
예고편
+ '고전 명작들' 연재는 매주 일요일에 연재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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