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토요일 당구 동호회 내 토너먼트 8강 경기가 있었다. 이미 다른 라인에서는 결승 진출자가 가려진 상황. 내가 속한 라인에서는 4강 진출자가 한 명 대기 중이고, 내가 해야 할 8강 마지막 경기가 남아 있었다. 여기서 이기는 사람이 대기중인 4강 진출자와 결승 진출자를 가리게 되어 있다. 내가 8강 마지막 경기를 하게 된 건 2주 전 토요일에는 나랑 경기를 가질 8강 상대자 형이 어머니 생신이라 못 왔고 지난 주 수요일에는 내가 아들 생일이라 못 가서다.
나는 보통 토요일에는 모임을 가지 않는다. 아들이랑 약속이 있는 경우가 많아서다. 그래서 수요일에는 꼬박꼬박 참석을 하는데 보통 3~4시 경에 간다. 1시부터 9시까지 당구장에서 모임인데 모이면 당구만 계속 친다. 대단하지 않나? 그만큼 당구를 좋아하는 사람들만 모여 있는 동호회라 그렇다. 모임이 없는 평일에 가도 항상 보는 사람만 본다니까. 여기는 당구 폐인들만 모인 곳인지라. 이미 나도 폐인이 되어 버렸고 말이다. 여튼 그래서 지난 주 토요일에 8강 마지막 경기를 하게 됐다.
토너먼트 하기 전에 두 게임
2시 30분 정도에 당구장에 도착했다. 아직 8강 상대자는 안 왔고. 연습구만 치기는 뭐 그래서 친선 경기를 했다. 근데 생각보다 점수가 안 나온다. 뭐 그럴 수도 있지. 매번 잘 되는 게 이상한 거지. 그래도 토너먼트 치기 직전에 몸 풀려고 치는 건데 좀 불길했다. 그리고 요즈음에는 리그 전이나 토너먼트가 아니라 친선 경기는 그닥 집중이 안 되더라고. 꼭 타이틀이 걸려 있어야만 집중을 하는 건 아니지만 단순히 게임을 하자는 건 실력을 발휘할 뭔가가 부족해~ 여튼 그닥 감은 좋지 않았다고.
드디어 8강, 막판 뒤집기의 역전 드라마
두번째 친선 게임을 하고 있는데 8강 상대자가 나타났다. 23점 놓고 치는데 잘 친다. 이미 한 번 게임을 해봐서 잘 안다. 샷도 좋고 말이다. 다만 디펜스를 잘 하지 않고 치는 공격형 당구라는 게 그나마 내게는 조금 수월하게 칠 수 있다(수월하게 이길 수 있다는 뜻이 아니라)는 점이 있다. 나는 아직 디펜스를 할 사이즈가 안 되는 수지인지라 어떤 공이든 친다는 공격형 당구일 수 밖에 없고. 드디어 게임 시작. 토너먼트는 심판이 있어야 게임을 할 수 있다.
8강 심판은 4강 진출자 형이 봐줬다. 8강 심판 보면서 4강 진출자가 오늘 게임 감이 어떤지 등을 파악하는 게지. 이닝이 계속될수록 불안하기 시작했다. 토너먼트 8강 하기 전에 친 친선 게임에서 별로 점수가 나지 않았기에 오늘은 안 되는 날인가 하는 생각도 했었다. 보통 그런 날 있잖아? 근데 나는 최근에 생각을 바꿨다. 그런 날이란 없다. 내가 못 쳐서 그런 거고 못 치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집중해서 잘 쳐야지 하는 생각으로 치면 된다. 뭐 그렇게 말이다.
달라진 건 하나 없는데 단지 내 생각이 그러하기에 자신감이 떨어지고 그러다 보니 자신감 있게 샷을 못 하는 게지. 그래서 나는 날이 아니라는 그런 변명 안 하기로 했다. 그게 17점 올리고 나서 부터다. 그렇게 집중을 하는 데도 안 맞더라. 그렇다고 해서 짜증이 나거나 그러지도 않았다. 상대가 강해서 그렇다. 뭐 내가 져서 도발해서 그렇다는 소리 들어도 상관없다. 다만 적어도 내 점수에 걸맞도록은 쳐야지 하는 생각에 집중을 했다.
29이닝까지의 성적
35이닝까지 쳐서 자기 점수에 비해 얼마나 쳤는지 %로 따지는 게 동호회 내 토너먼트 경기 방식인데, 29이닝까지 성적이 8:19 다. 고작 6이닝을 남겨놓고 있는데 나는 내 점수의 반도 못 되는 점수를 쳤고, 상대는 80% 이상을 쳤다. 상대는 자기 점수만큼 치고 있는 거고(35이닝 내에 자기 점수 다 치는 것도 그리 만만한 일은 아니다) 나는 내 점수만큼 치지 못 하는 상황이었다. 이 때까지만의 결과를 보면 그 누구도 내가 졌다고 생각할 수 밖에 없다.
사실 나도 졌다고 생각했다. 내 스스로 동호회 다른 회원들한테 "이로써 도발하면 진다는 동호회 내의 법칙이 생긴겨~" 할 정도였으니까 말이다. 그런데 30이닝 째에 모든 게 달라졌다.
30이닝까지의 성적
30이닝 쨰에 6점을 친 거다. 내 하이런(한 이닝에 가장 많이 친 기록)이었다. 보통 3~4점 치면 내 점수 대에서는 많이 쳤다하고 그 다음 공이 조금 어려우면 노력은 하지만 못 쳐도 만족할 정도인데, 6점은 치기가 쉽지가 않다. 그것도 나름 동호회 내 토너먼트 경기에서 말이다. 사실 3점인가 4점인가 쳤을 때, 내게는 다소 어려운 공이 떴다. 각이 좁았고 내가 그리 자신 없어 하는 슬로우로 미는 샷을 해야 했던 상황. 각이 좁아서 아래쪽에 당점을 줬는데 사실 이렇게 하면 될까 하는 건 내 머리 속에 그림을 그리고 치는 실험적인 샷이었다. 근데 내가 그린 그림대로 들어가대.
그걸 먹고 나서도 좀 더 쳤다. 나름 몇 점을 쳤다는 의식 없이 공 배치만 보면서 쳤을 뿐이다. 심판이 있으면 이런 게 좋다. 내가 몇 점 쳤는지 내가 카운팅을 안 해도 되니까. 그렇게 6점을 한 이닝에 쳤다. 상황은 달라졌다. 29이닝까지는 이길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30이닝에서는 이거 모른다는 상황으로 바뀌어 버린 거다. 그러나 나는 지고 있었다. 내 점수 대비 82.4%를 쳤고, 상대는 82.6%를 쳤으니까. 남은 이닝은 5이닝. 상대가 못 친다는 가정 하에 내가 1점을 더 쳐야만 이긴다.
드디어 역전
이런 상황이 되면 상대가 부담을 느낄 수 밖에 없다. 안 느끼면 그거 인간 아니지. 멘탈이 아무리 강해도 이런 상황에서는 그렇게 된다. 오히려 이럴 때는 내가 유리하다. 나는 쫓고 있는 입장이니까. 하나만 더 치자는 생각을 갖게 되는 반면, 상대는 이러다 어쩌면 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래서 하나 더 칠 수 있는 공이 떠도 이거 못 치면 안 되는데 하는 생각을 하기 마련이고. 그래서 당구는 멘탈 게임이라고 하는 거다.
그런데 상대 형도 잘 치는 형인지라 1점을 따낸다. 그러나 동호회 내 토너먼트는 자기 점수 대비 몇 %를 쳤는지를 따지는 거라 잘 따져봐야 한다. 그리고 그 다음 이닝에 내가 1점을 따냈다. 이제는 역전이 된 거다. 그런데 사실 나는 역전이 된 지도 몰랐다. 지금까지 나는 심판의 기록지를 보지도 않았거든. 보통 몇 이닝 남았고, 내가 이기고 있는지 지고 있는지 체크하는데 나는 아예 기록지 자체를 보지도 않고 게임에만 집중했을 뿐이다. 역전되고 나서야 게임 기록지를 봤으니까.
다시 역전되고
그런데 다시 역전 되었다. 마지막 6이닝에 이러한 일들이 벌어진 거였으니 한 샷 한 샷이 얼마나 긴장되었겠냐고. 그런 상황에서 1점은 정말 크다. 그런 심리적 부담감을 안고서 치게 되면 내가 칠 수 있는 공도 놓치게 되는 경우가 허다하거든. 그런 상황에서 상대가 또 1점을 획득해서 다시 역전이 된다. 근데 나는 기록지도 안 보고 내가 이거 못 치면 진다 뭐 그런 의식도 없었다. 한 이닝 한 이닝에 충실했을 뿐.
34이닝, 이제 쐐기를 박자
상대가 역전시키고 난 다음에는 이제 내가 부담이 되어야 하는데 별로 부담은 안 되더라고. 이만큼 쳤으면 됐다는 생각도 있었고 말이다. 그런데 어라. 쉬운 공이 뜨네. 그래서 치기 전에 그랬다. "자~ 쐐기를 박자" 그렇게 해서 1점을 획득했다. 이제는 상대가 더 부담을 느낄 수 밖에 없는. 마치 부담이란 언제 터질 지 모르는 큰 풍선을 상대한테 자꾸 떠넘기는 식의 느낌이었다. 내가 초구였으니 상대가 기회가 있는데 못 쳤다. 결국 34이닝만 따지면 내가 이기고 있는 중. 이제 마지막 이닝만 남았다.
마지막 이닝에서는 내가 충분히 칠 수 있는 공이 떴다. 그래 이거 쳐서 35이닝 내에 17점 다 뽑아서 완승하자는 생각에 "자. 끝내봅시다." 했는데 놓쳤다. 그리고 상대도 마지막 공 놓치고. 결국 이렇게 해서 아슬아슬하게 내가 4강을 진출하게 됐다.
스승한테는 실시간으로 카톡 중계하고
내 당구 스승한테는 다른 제자가 카톡으로 중계를 하고 있었다. 난 몰랐다. 중간에 나한테 얘기한 거 같은데 기억이 안 난다. 그만큼 난 게임에 집중하고 있었다. 스승은 나한테 전화도 했고 카톡도 날렸는데 나는 게임에 집중한다고 소리도 못 들었다. 그래서 다른 제자한테 게임 중이냐? 게임 어떻게 진행되고 있느냐? 물어보다 보니 실시간 생중계를 했던 거다. 29이닝까지만 해도 내가 8점 정도 밖에 못 쳐서 거의 지는 게임이라고 중계가 되었겠지.
그러나 30이닝 되어서는 이거 모른다는 얘기가 전해졌겠고, 매 이닝마다 엎치락 뒷치락하면서 스승을 즐겁게 했을 거이다. 사실 스승과 나는 토너먼트 8강 하기 전에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눴었다. 그 스승 형의 제자가 3명인데, 3명 모두 8강에 진출했었다. 그런데 나보다 수지가 높은 형은 8강에서 떨어지고, 나보다 수지가 낮은 여동생은 4강에서 떨어졌다. 이 모두 한 사람에게 져서 그런 건데 나는 다른 쪽 라인인지라 결국 나 밖에 남은 사람이 없었지.
여튼 토너먼트 8강 하기 전에 스승이 나더러 그랬다. 나는 니들 중에 한 명이 결승 나갔으면 좋겠다고. 사실 확신은 없었다. 자신도 없었고. 그러나 나는 최선을 다하겠다는 말만 했을 뿐이다. 그러면서 이런 얘기를 덧붙였다. 중학교 3학년 때, 공부 잘 하는 애들만 다닌다는 학원에서 전체 통합 영어 수학 시험을 봤었다. 선생님들도 분위기를 조성했고 말이다. 각 학교에서 전교에서 노는 아이들이 모인 자리인지라 긴장감 조성 차원에서 말이다.
영어는 항상 여자들이 우위였던 지라 OO여중의 누가 유력하겠지만 다크호스 이승건이 있고, 수학은 남자들이 우위인데 누가 1등할 지 사뭇 궁금하다 뭐 이러면서. 결국 영어 수학 모두 내가 1등했다. 영어는 2등과 점수 차이가 2점 차이였고, 수학은 30점 정도 차이였다. 중학교 3학년 시험이었지만 시험 수준은 고등학교 수준으로 냈었고. 이 얘기를 해줬던 이유가 나는 마치 이번 토너먼트 임하는 게 그 때의 느낌과 비슷해서였거든. 그러나 앞일은 장담 못하는 법. 최선만 다하겠다고 했지.
당구는 멘탈 싸움
나름 준비한다는 게 내 실력을 업그레이드 시키는 건 한계가 있고 나름 다른 사람들의 도움 없이 내가 키우려고 했던 게 게임 운영 능력이었다. 매 게임에서 이런 게임 운영 능력을 발휘할 수는 없겠지만 중요하다 싶은 게임인 경우에는 그래도 그런 게 발휘가 된다. 꼭 어떻게 해야 하는 건 아니다. 단지 자기 스스로 마음가짐을 어떻게 하고 집중을 어떻게 하는 게 잘 되더라는 스스로만의 방법을 만들어내는 것이지. 그런 걸 경험치로 갖게 되면 그게 몸에 익게 되는 거고.
나름 그런 걸 토너먼트 전부터 많이 연습했었다. 어차피 샷은 오래 걸려서 익혀지는 거고, 내 점수를 2점 올린 지 얼마 안 되긴 했어도 내가 집중한다고 해서 20점이 바로 되는 건 아니잖아. 내 점수에 걸맞도록 치는 건 어쩔 수 없는 부분이지만 어떤 상황에서라도 내 점수를 칠 수 있게 만드는 건 내 몫이라 생각해서였다. 그러나 8강 경기는 운이 좋았다고 생각한다. 나 스스로도 진 게임이라 생각했는데 이렇게 될 줄 몰랐지. 그렇게 4강 진출했다. 4강 또한 8강 경기 다음에 바로 진행했고. 이건 다음 글에. ㅋㅋ
상대 형은 지난주 일요일 당구장 토너먼트에서 우승
토요일 게임을 하고 난 다음에 나는 안 치는 핀볼 게임으로 밤을 새던 8강 상대자였던 형은 잠도 자지 않고 동호회 내 24점들끼리(8강 진출했던 형은 23점이긴 하지만 24점 놔도 친다. 그만큼 자신 있기에) 24점들 서열을 가리자 해서 장장 5시간 동안 당구를 쳐서 1등을 했단다. 이제는 같은 24점이라고 하더라도 누가 잘 치냐 하면 내가 8강에서 붙었던 그 형이라고 할 수 밖에 없다. 그렇게 당구를 치고 나서 다시 당구장 토너먼트에 임했단다.
한 달에 한 번 당구장에서 토너먼트를 하는데, 당구장 토너먼트는 자기 점수의 70%를 누가 먼저 치느냐의 승부로 따진다. 그리고 경기는 하루 만에 다 끝나고. 당구장에는 고수들이 많다. 27점, 28점, 30점, 31점, 32점, 33점, 그리고 프로 선수인 임윤수 프로님 40점. 그러나 경기는 단판 승부기 때문에 이변이 일어날 수도 있는 법. 수많은 고수들을 물리치고 토너먼트 결승전은 밤 10시 경에 열렸는데, 상대는 30점 고수였다. 그 고수를 꺾고 우승했던 것.
결코 실력이 없는 형이 아니었는데 나한테 운이 나빠서 진 거였다. 경기 운이 나빠서. 그래도 서로 자기 점수에 맞도록 치면서(나는 초반에 그렇게 못 쳤지만) 경기를 끝냈으니 우리 둘 사이에는 전혀 그런 거 없다. 그 형이 동호회 들어오고서는 별로 안 친했는데, 오히려 토너먼트 때문에 친해지게 된 계기가 되었으니까. 여튼 더 많이 배워야겠다. ^^;
나는 보통 토요일에는 모임을 가지 않는다. 아들이랑 약속이 있는 경우가 많아서다. 그래서 수요일에는 꼬박꼬박 참석을 하는데 보통 3~4시 경에 간다. 1시부터 9시까지 당구장에서 모임인데 모이면 당구만 계속 친다. 대단하지 않나? 그만큼 당구를 좋아하는 사람들만 모여 있는 동호회라 그렇다. 모임이 없는 평일에 가도 항상 보는 사람만 본다니까. 여기는 당구 폐인들만 모인 곳인지라. 이미 나도 폐인이 되어 버렸고 말이다. 여튼 그래서 지난 주 토요일에 8강 마지막 경기를 하게 됐다.
토너먼트 하기 전에 두 게임
2시 30분 정도에 당구장에 도착했다. 아직 8강 상대자는 안 왔고. 연습구만 치기는 뭐 그래서 친선 경기를 했다. 근데 생각보다 점수가 안 나온다. 뭐 그럴 수도 있지. 매번 잘 되는 게 이상한 거지. 그래도 토너먼트 치기 직전에 몸 풀려고 치는 건데 좀 불길했다. 그리고 요즈음에는 리그 전이나 토너먼트가 아니라 친선 경기는 그닥 집중이 안 되더라고. 꼭 타이틀이 걸려 있어야만 집중을 하는 건 아니지만 단순히 게임을 하자는 건 실력을 발휘할 뭔가가 부족해~ 여튼 그닥 감은 좋지 않았다고.
드디어 8강, 막판 뒤집기의 역전 드라마
두번째 친선 게임을 하고 있는데 8강 상대자가 나타났다. 23점 놓고 치는데 잘 친다. 이미 한 번 게임을 해봐서 잘 안다. 샷도 좋고 말이다. 다만 디펜스를 잘 하지 않고 치는 공격형 당구라는 게 그나마 내게는 조금 수월하게 칠 수 있다(수월하게 이길 수 있다는 뜻이 아니라)는 점이 있다. 나는 아직 디펜스를 할 사이즈가 안 되는 수지인지라 어떤 공이든 친다는 공격형 당구일 수 밖에 없고. 드디어 게임 시작. 토너먼트는 심판이 있어야 게임을 할 수 있다.
8강 심판은 4강 진출자 형이 봐줬다. 8강 심판 보면서 4강 진출자가 오늘 게임 감이 어떤지 등을 파악하는 게지. 이닝이 계속될수록 불안하기 시작했다. 토너먼트 8강 하기 전에 친 친선 게임에서 별로 점수가 나지 않았기에 오늘은 안 되는 날인가 하는 생각도 했었다. 보통 그런 날 있잖아? 근데 나는 최근에 생각을 바꿨다. 그런 날이란 없다. 내가 못 쳐서 그런 거고 못 치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집중해서 잘 쳐야지 하는 생각으로 치면 된다. 뭐 그렇게 말이다.
달라진 건 하나 없는데 단지 내 생각이 그러하기에 자신감이 떨어지고 그러다 보니 자신감 있게 샷을 못 하는 게지. 그래서 나는 날이 아니라는 그런 변명 안 하기로 했다. 그게 17점 올리고 나서 부터다. 그렇게 집중을 하는 데도 안 맞더라. 그렇다고 해서 짜증이 나거나 그러지도 않았다. 상대가 강해서 그렇다. 뭐 내가 져서 도발해서 그렇다는 소리 들어도 상관없다. 다만 적어도 내 점수에 걸맞도록은 쳐야지 하는 생각에 집중을 했다.
29이닝까지의 성적
나 (17점) | 상대 (23점) |
8점 (47.1%) | 19점 (82.6%) |
35이닝까지 쳐서 자기 점수에 비해 얼마나 쳤는지 %로 따지는 게 동호회 내 토너먼트 경기 방식인데, 29이닝까지 성적이 8:19 다. 고작 6이닝을 남겨놓고 있는데 나는 내 점수의 반도 못 되는 점수를 쳤고, 상대는 80% 이상을 쳤다. 상대는 자기 점수만큼 치고 있는 거고(35이닝 내에 자기 점수 다 치는 것도 그리 만만한 일은 아니다) 나는 내 점수만큼 치지 못 하는 상황이었다. 이 때까지만의 결과를 보면 그 누구도 내가 졌다고 생각할 수 밖에 없다.
사실 나도 졌다고 생각했다. 내 스스로 동호회 다른 회원들한테 "이로써 도발하면 진다는 동호회 내의 법칙이 생긴겨~" 할 정도였으니까 말이다. 그런데 30이닝 째에 모든 게 달라졌다.
30이닝까지의 성적
나 (17점) | 상대 (23점) |
14점 (82.4%) | 19점 (82.6%) |
30이닝 쨰에 6점을 친 거다. 내 하이런(한 이닝에 가장 많이 친 기록)이었다. 보통 3~4점 치면 내 점수 대에서는 많이 쳤다하고 그 다음 공이 조금 어려우면 노력은 하지만 못 쳐도 만족할 정도인데, 6점은 치기가 쉽지가 않다. 그것도 나름 동호회 내 토너먼트 경기에서 말이다. 사실 3점인가 4점인가 쳤을 때, 내게는 다소 어려운 공이 떴다. 각이 좁았고 내가 그리 자신 없어 하는 슬로우로 미는 샷을 해야 했던 상황. 각이 좁아서 아래쪽에 당점을 줬는데 사실 이렇게 하면 될까 하는 건 내 머리 속에 그림을 그리고 치는 실험적인 샷이었다. 근데 내가 그린 그림대로 들어가대.
그걸 먹고 나서도 좀 더 쳤다. 나름 몇 점을 쳤다는 의식 없이 공 배치만 보면서 쳤을 뿐이다. 심판이 있으면 이런 게 좋다. 내가 몇 점 쳤는지 내가 카운팅을 안 해도 되니까. 그렇게 6점을 한 이닝에 쳤다. 상황은 달라졌다. 29이닝까지는 이길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30이닝에서는 이거 모른다는 상황으로 바뀌어 버린 거다. 그러나 나는 지고 있었다. 내 점수 대비 82.4%를 쳤고, 상대는 82.6%를 쳤으니까. 남은 이닝은 5이닝. 상대가 못 친다는 가정 하에 내가 1점을 더 쳐야만 이긴다.
드디어 역전
이런 상황이 되면 상대가 부담을 느낄 수 밖에 없다. 안 느끼면 그거 인간 아니지. 멘탈이 아무리 강해도 이런 상황에서는 그렇게 된다. 오히려 이럴 때는 내가 유리하다. 나는 쫓고 있는 입장이니까. 하나만 더 치자는 생각을 갖게 되는 반면, 상대는 이러다 어쩌면 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래서 하나 더 칠 수 있는 공이 떠도 이거 못 치면 안 되는데 하는 생각을 하기 마련이고. 그래서 당구는 멘탈 게임이라고 하는 거다.
나 (17점) | 상대 (23점) |
15점 (88.2%) | 20점 (86.9%) |
그런데 상대 형도 잘 치는 형인지라 1점을 따낸다. 그러나 동호회 내 토너먼트는 자기 점수 대비 몇 %를 쳤는지를 따지는 거라 잘 따져봐야 한다. 그리고 그 다음 이닝에 내가 1점을 따냈다. 이제는 역전이 된 거다. 그런데 사실 나는 역전이 된 지도 몰랐다. 지금까지 나는 심판의 기록지를 보지도 않았거든. 보통 몇 이닝 남았고, 내가 이기고 있는지 지고 있는지 체크하는데 나는 아예 기록지 자체를 보지도 않고 게임에만 집중했을 뿐이다. 역전되고 나서야 게임 기록지를 봤으니까.
다시 역전되고
나 (17점) | 상대 (23점) |
15점 (88.2%) | 21점 (91.3%) |
그런데 다시 역전 되었다. 마지막 6이닝에 이러한 일들이 벌어진 거였으니 한 샷 한 샷이 얼마나 긴장되었겠냐고. 그런 상황에서 1점은 정말 크다. 그런 심리적 부담감을 안고서 치게 되면 내가 칠 수 있는 공도 놓치게 되는 경우가 허다하거든. 그런 상황에서 상대가 또 1점을 획득해서 다시 역전이 된다. 근데 나는 기록지도 안 보고 내가 이거 못 치면 진다 뭐 그런 의식도 없었다. 한 이닝 한 이닝에 충실했을 뿐.
34이닝, 이제 쐐기를 박자
나 (17점) | 상대 (23점) |
16점 (94.1%) | 21점 (91.3%) |
상대가 역전시키고 난 다음에는 이제 내가 부담이 되어야 하는데 별로 부담은 안 되더라고. 이만큼 쳤으면 됐다는 생각도 있었고 말이다. 그런데 어라. 쉬운 공이 뜨네. 그래서 치기 전에 그랬다. "자~ 쐐기를 박자" 그렇게 해서 1점을 획득했다. 이제는 상대가 더 부담을 느낄 수 밖에 없는. 마치 부담이란 언제 터질 지 모르는 큰 풍선을 상대한테 자꾸 떠넘기는 식의 느낌이었다. 내가 초구였으니 상대가 기회가 있는데 못 쳤다. 결국 34이닝만 따지면 내가 이기고 있는 중. 이제 마지막 이닝만 남았다.
마지막 이닝에서는 내가 충분히 칠 수 있는 공이 떴다. 그래 이거 쳐서 35이닝 내에 17점 다 뽑아서 완승하자는 생각에 "자. 끝내봅시다." 했는데 놓쳤다. 그리고 상대도 마지막 공 놓치고. 결국 이렇게 해서 아슬아슬하게 내가 4강을 진출하게 됐다.
스승한테는 실시간으로 카톡 중계하고
내 당구 스승한테는 다른 제자가 카톡으로 중계를 하고 있었다. 난 몰랐다. 중간에 나한테 얘기한 거 같은데 기억이 안 난다. 그만큼 난 게임에 집중하고 있었다. 스승은 나한테 전화도 했고 카톡도 날렸는데 나는 게임에 집중한다고 소리도 못 들었다. 그래서 다른 제자한테 게임 중이냐? 게임 어떻게 진행되고 있느냐? 물어보다 보니 실시간 생중계를 했던 거다. 29이닝까지만 해도 내가 8점 정도 밖에 못 쳐서 거의 지는 게임이라고 중계가 되었겠지.
그러나 30이닝 되어서는 이거 모른다는 얘기가 전해졌겠고, 매 이닝마다 엎치락 뒷치락하면서 스승을 즐겁게 했을 거이다. 사실 스승과 나는 토너먼트 8강 하기 전에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눴었다. 그 스승 형의 제자가 3명인데, 3명 모두 8강에 진출했었다. 그런데 나보다 수지가 높은 형은 8강에서 떨어지고, 나보다 수지가 낮은 여동생은 4강에서 떨어졌다. 이 모두 한 사람에게 져서 그런 건데 나는 다른 쪽 라인인지라 결국 나 밖에 남은 사람이 없었지.
여튼 토너먼트 8강 하기 전에 스승이 나더러 그랬다. 나는 니들 중에 한 명이 결승 나갔으면 좋겠다고. 사실 확신은 없었다. 자신도 없었고. 그러나 나는 최선을 다하겠다는 말만 했을 뿐이다. 그러면서 이런 얘기를 덧붙였다. 중학교 3학년 때, 공부 잘 하는 애들만 다닌다는 학원에서 전체 통합 영어 수학 시험을 봤었다. 선생님들도 분위기를 조성했고 말이다. 각 학교에서 전교에서 노는 아이들이 모인 자리인지라 긴장감 조성 차원에서 말이다.
영어는 항상 여자들이 우위였던 지라 OO여중의 누가 유력하겠지만 다크호스 이승건이 있고, 수학은 남자들이 우위인데 누가 1등할 지 사뭇 궁금하다 뭐 이러면서. 결국 영어 수학 모두 내가 1등했다. 영어는 2등과 점수 차이가 2점 차이였고, 수학은 30점 정도 차이였다. 중학교 3학년 시험이었지만 시험 수준은 고등학교 수준으로 냈었고. 이 얘기를 해줬던 이유가 나는 마치 이번 토너먼트 임하는 게 그 때의 느낌과 비슷해서였거든. 그러나 앞일은 장담 못하는 법. 최선만 다하겠다고 했지.
당구는 멘탈 싸움
나름 준비한다는 게 내 실력을 업그레이드 시키는 건 한계가 있고 나름 다른 사람들의 도움 없이 내가 키우려고 했던 게 게임 운영 능력이었다. 매 게임에서 이런 게임 운영 능력을 발휘할 수는 없겠지만 중요하다 싶은 게임인 경우에는 그래도 그런 게 발휘가 된다. 꼭 어떻게 해야 하는 건 아니다. 단지 자기 스스로 마음가짐을 어떻게 하고 집중을 어떻게 하는 게 잘 되더라는 스스로만의 방법을 만들어내는 것이지. 그런 걸 경험치로 갖게 되면 그게 몸에 익게 되는 거고.
나름 그런 걸 토너먼트 전부터 많이 연습했었다. 어차피 샷은 오래 걸려서 익혀지는 거고, 내 점수를 2점 올린 지 얼마 안 되긴 했어도 내가 집중한다고 해서 20점이 바로 되는 건 아니잖아. 내 점수에 걸맞도록 치는 건 어쩔 수 없는 부분이지만 어떤 상황에서라도 내 점수를 칠 수 있게 만드는 건 내 몫이라 생각해서였다. 그러나 8강 경기는 운이 좋았다고 생각한다. 나 스스로도 진 게임이라 생각했는데 이렇게 될 줄 몰랐지. 그렇게 4강 진출했다. 4강 또한 8강 경기 다음에 바로 진행했고. 이건 다음 글에. ㅋㅋ
상대 형은 지난주 일요일 당구장 토너먼트에서 우승
토요일 게임을 하고 난 다음에 나는 안 치는 핀볼 게임으로 밤을 새던 8강 상대자였던 형은 잠도 자지 않고 동호회 내 24점들끼리(8강 진출했던 형은 23점이긴 하지만 24점 놔도 친다. 그만큼 자신 있기에) 24점들 서열을 가리자 해서 장장 5시간 동안 당구를 쳐서 1등을 했단다. 이제는 같은 24점이라고 하더라도 누가 잘 치냐 하면 내가 8강에서 붙었던 그 형이라고 할 수 밖에 없다. 그렇게 당구를 치고 나서 다시 당구장 토너먼트에 임했단다.
한 달에 한 번 당구장에서 토너먼트를 하는데, 당구장 토너먼트는 자기 점수의 70%를 누가 먼저 치느냐의 승부로 따진다. 그리고 경기는 하루 만에 다 끝나고. 당구장에는 고수들이 많다. 27점, 28점, 30점, 31점, 32점, 33점, 그리고 프로 선수인 임윤수 프로님 40점. 그러나 경기는 단판 승부기 때문에 이변이 일어날 수도 있는 법. 수많은 고수들을 물리치고 토너먼트 결승전은 밤 10시 경에 열렸는데, 상대는 30점 고수였다. 그 고수를 꺾고 우승했던 것.
결코 실력이 없는 형이 아니었는데 나한테 운이 나빠서 진 거였다. 경기 운이 나빠서. 그래도 서로 자기 점수에 맞도록 치면서(나는 초반에 그렇게 못 쳤지만) 경기를 끝냈으니 우리 둘 사이에는 전혀 그런 거 없다. 그 형이 동호회 들어오고서는 별로 안 친했는데, 오히려 토너먼트 때문에 친해지게 된 계기가 되었으니까. 여튼 더 많이 배워야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