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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영화

온리 갓 포기브스: <드라이브>와 같은 영화를 기대했다면 실망만 남을 것이다


나의 3,292번째 영화. 니콜라스 윈딩 레픈 감독과 라이언 고슬링의 조합이면 생각나는 영화. 바로 <드라이브>다. 뭐 <드라이브>에서는 캐리 멀리건이란 배우의 매력이 물씬 풍기는 영화기도 하지. 그래서 <드라이브>란 영화를 아는 사람들이라면 이 둘의 조합이라고 하면 뭔가 있을 거라 생각하기 쉽다. 예고편만 봐도 그렇잖아. 오~ 몽환적인 분위기에 배경음악도 독특하고 뭔가 니콜라스 윈딩 레픈 감독 삘이야~ 이렇게 말이다. 그러나 예고편이 제일 재밌다. ^^;

혹시 니콜라스 윈딩 레픈의 <드라이브> 전작인 <발할라 라이징> 본 적 있는가?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없는 영화다. 내 개인 평점 3점. 그러고 보니 <발할라 라이징>에 주연으로 나온 배우가 <더 헌트>에서 명연기를 선보인 매드 미켈슨이었군. 여튼 <발할라 라이징>까지는 아니더라도 <온리 갓 포기브스>는 <드라이브>와는 좀 다르다는 거다. 고로 니콜라스 윈딩 레픈 감독의 영화는 잘 골라서 봐야 한다는 거.


상대적인 정의의 충돌, 줄리엔 vs 챙


주인공 줄리엔은 형의 죽음에 대한 복수를 하려고 한다. 그러나 복수를 포기한다. 이유는 형이 잘못했다 생각하기 때문이다. 줄리엔은 스스로의 이성적인 가치 판단대로 행동한다. 그에게 있어 정의라는 건 그가 생각하는 잣대로의 정의다. 그러나 관객들은 그의 정의가 그럴 듯 하게 보인다. 사람이면 당연히 그래야 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게끔 한다는 거다. 비록 마약을 판매하고 무에타이 경기 암거래를 통해 수익을 챙기는 음지에 있지만 말이다.

반면 법을 집행하는 경찰의 수장인 경찰청장인 챙은 표면적으로는 정의를 실현한다고 하지만 누가 봐도 과한 정의다. 뭐랄까? 아무리 죽이고 싶어도 법대로 처리하려고 하는 게 우리가 지금까지 보아온 정의였다고 한다면 <온리 갓 포기브스>에서 나온 챙이란 경찰청장은 그렇지 않다. 죽여야 될 놈은 죽여야 된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이다. 비록 법 집행을 한다는 양지에 있지만 그가 수행하는 정의라는 게 꼭 양지의 정의라고 보이지는 않는 이유다.

이 둘의 충돌은 아주 간단하게 이뤄진다. <온리 갓 포기브스>에서 줄리엔이나 챙 모두 대사가 별로 없다. 다소 입이 무거운 두 명은 줄리엔이 "한 판 뜨자"는 말 한 마디에 챙이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맨주먹 싸움을 하게 된다. 줄리엔의 도장에서 말이다. 결과는 줄리엔이 한 대도 때리지 못하고 두드려 맞는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어떤 결론을 짓게 되는데 스포일러라 얘기하진 않겠다. 뭐 생각보다는 재미가 없어서 볼 사람이 얼마 되겠냐마는.

처한 상황은 다르지만 어찌보면 정의를 실현한다는 관점에서는 비슷한 구석이 있는 두 사람이지만 <온리 갓 포기브스>의 결말을 보면 감독은 이를 통해 뭘 보여주려고 했을까 하는 의문이 많이 든다. 오히려 챙보다는 줄리엔의 정의가 더 인간적이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들고 말이다. 해석하기 나름이라 여기서 뭐라 단정 짓고 싶진 않다만 내가 줄리엔이라면 그렇게 넘어가진 않았을 듯 싶다는. 마지막 장면 말이다.


PROUD by Tur Kue Kwam Fun



<온리 갓 포기브스>의 OST다. 경찰청장 챙이 자신만의 정의를 실현하고 난 다음에 가라오케 같은 곳에서 항상 부르던 노래이기도 하다. 뜻은 모르겠지만 멜로디가 영화와 잘 어울린다는.


예고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