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영화가 다 그런 건 아니지만 잘 골라서 보면 잔잔하면서도 울림이 있는 영화가 꽤 있다. 그 울림이 크지는 않다 하더라도 치열한 경쟁시대, 각박한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우리가 한동안 잊고 살았던 그 무엇을 다시 생각해보게 만드는 묘한 매력이 있다. <행복한 사전> 줄거리를 보면 이게 뭐 재밌을까 싶을 거다. 이런 류의 영화가 줄거리 요약해서 보면 재미는 없어. 근데 스토리 전개되는 거 보다 보면 나도 모르게 미소를 띄게 되고 스토리에 빠져들게 된단 말이지. 강약중간약의 감정 기복도 없이 잔잔하게 스토리가 전개되는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간만에 일본 영화나 볼까 해서 본 건데 잘 선택한 거 같다.
전자사전이 득세하는 현대 사회에 다른 데서는 볼 수 없는 사전을 만들겠다고 하는 게 <행복한 사전>의 메인 줄거리다. 사전 하나 만드는 데에 십수년을 거쳐서 말이다. 어떻게 보면 돈도 안 되고 세상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는 듯 보이지만 <행복한 사전>을 보면 그런 생각보다는 남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자신의 길을 묵묵히 걸어가는 모습과 자신의 일에 열정을 다하고 진심을 다하는 모습을 대하고서는 그런 생각을 한 자신을 반성하게 된다. 뭐랄까? 세상 살이에 물들어서 나도 그런 생각을 지레 짐작 하는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말이다.
개인적으로 일본의 가업 문화(우리나라의 재벌 상속이라고 생각하면 안 되지?)나 장인 정신을 매우 높이 산다. 꼭 가업을 이어야 된다 그런 얘기를 하는 게 아니다. 이 둘의 공통 분모에는 극심한 자본주의를 살아가는 우리가 꼭 생각해봐야할 무엇이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우리는 성공이라는 두 글자를 향해서 달려왔다. 그 성공의 의미가 대부분은 돈으로 귀결되는 건 극심한 자본주의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지극히 당연시 되었고 말이다. 이제 성공이란 두 글자 대신 행복이란 두 글자로 바꿔보자. 돈을 많이 벌어서 행복한가? 유명하다고 나를 알아줘서 행복한가?
이해가 안 가면 이렇게 생각해보자. 예전보다 나는 훨씬 더 벌고, 예전의 나보다는 훨씬 더 나은 모습으로 살고 있지만 나는 성공했다고 생각하는가? 아마 아직 많이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을 거다. 성공이란 두 글자는 결코 내 손에 쥐어질 수가 없다. 일확천금을 벌면 또 뭔가 달라지겠지? 할 수 있는 건 많아진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행복과 동일하다는 건 아니다. 행복이라는 건 물질로는 채워질 수가 없다. 이걸 사면 저걸 사고 싶고, 이걸 달성하면 또 저걸 달성하고 싶고. 욕망에 한계는 없다. 그래서 행복하게 사려면 마음을 잘 다스리고 가치관을 달리 해야 한다.
즉 삶을 대하는 자세 자체가 바뀌어야 한다는 거다. 소소한 데에서 의미를 찾고 거기에서 만족을 하면서 자신의 삶에 충실한. 덴마크가 행복지수 1위인 나라인 이유도 여기에 있다. 나는 의사지만 돈을 많이 벌기 위해서 의사가 되는 게 아니라 난 사람을 고치는 데에 관심이 있어서 의사가 된 것이라는 거. 우리나라는 이과생이 공부 잘 하면 의대 가는 거 아닌가? 나는 지인들에게 이런 얘기를 하곤 한다. 의대 가면 의사 밖에 더 돼? 19살의 나이에 자신의 인생이 결정되어 버리네? 물론 의대 간다고 해서 다 의사가 되는 건 아니지만 그네들이 의대를 간 이유는 공부를 잘 했고 이과였기 때문에 당연한 수순 아니었던가? 주체적인 삶을 살기 보다 그냥 강물에 떠밀려가듯 떠내려가는 삶을 사는.
안다. 나는 그렇게 살고 싶어도 환경이 그러하다 보니 그렇게 될 수 밖에 없는 것을. 그래서 문화라는 게 중요하고 교육이라는 게 중요한 법인데. 대한민국은 비전이 안 보이네. 쩝. 근데 왜 우리나라는 이런 영화 안 나오지? 내가 한국영화를 싫어해서 못 찾는 건가? 대부분 로맨틱 코미디 식이 많고 말이지. 대한민국 국민이지만 정말 대한민국 싫다.(나중에 국적 변경할 껴!) 여튼 마음을 정화시키기 위해서라도 <행복한 사전> 한 번 보길 권한다. 가슴이 따뜻해지는(뜨거워지진 않아~) 영화다. ^^;
예고편
나의 3,426번째 영화. 개인 평점은 8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