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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영화

인사이드 르윈: 코엔 형제의 담담한 음악 영화


2014년을 마무리하는 시점에서 2014년에 개봉된 영화 중에 내가 놓쳤던 영화들을 골라서 봤다. 두 작품이 있던데, 하나는 <보이후드>고, 다른 하나는 <인사이드 르윈>이다. <인사이드 르윈>은 코엔 형제의 작품이다. 코엔 형제하면 떠오르는 영화가 <파고>가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가 가장 인상깊었다.(<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는 개인 평점 10점의 영화) 코엔 형제 작품을 보면 대부분 잔잔하다. 음악 영화라는 거 정도만 알고 봤는데, 음악 영화라고 하기는 무색할 정도로 너무 잔잔했다. 음악 영화라고 하면 떠오르기 쉬운 <원스> 그리고 <비긴 어게인>과는 전혀 다른 느낌.



메타포? 난 싫어~


나름 진지하게 보는데 코엔 형제가 뭘 말하고자 했는지에 대해서 잘 모르겠더라. 최근에 내 블로그 어떤 영화의 덧글에 이동진이란 평론가의 글을 읽어보라는 권고가 있었다. 나는 지극히 대중적인 시각에서 스토리에만 집중하는 사람인지라 평론가들의 글을 그닥 좋아하지 않는데, 누군가가 이동진이란 평론가는 좀 다르다고 해서 혹시나 싶어 그의 <인사이드 르윈> 평을 읽어봤다. 음. 수많은 메타포. 그러니까 은유. 예를 들면 여기서 고양이가 나온 이유는 어쩌고 저쩌고. 개인적으로 이런 얘기 별로 안 좋아한다. 마치 삶을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양 싶거든.


우리가 사는 현실 세계에서도 일어날 수 있는 일들을 마치 짜맞춰놓은 듯이 이건 이거고 저건 저거다는 식으로 얘기하는 게 과연 감흥이 있을까 싶은 생각에 나는 그러한 메타포가 많은 영화를 좋아하지 않는다. 지식인이 아닌데 지식인인 양 착각하는 영화 감독들이 자신의 지식(내가볼 때는 지식 같지도 않은 지식)을 뽐내는 양 이게 무슨 의미인지 맞춰봐라는 식의 발칙한 영화라 생각하기에. 그래서 내겐 재미가 없었는지 모르겠다. 나는 정말 똑똑한 사람이라고 하면 쉽게 전달할 줄 알아야 한다고 본다. 자기만의 언어로 얘기하는 게 아니라 그 영화를 봤을 때 누구나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어야 한다는 거다.


작품성을 논하기 이전에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영화를 본 사람에게 얼마나 잘 전달되는가가 더 중요하다 본다. 그게 아니라고 한다면 더 중요한 것을 잃는 거라 본다. 



주인공 르윈 데이비스를 통해 뭘 보여주려고 한 것일까?


<인사이드 르윈>에서 주인공 르윈 데이비스는 자신이 좋아하는 포크송을 부르면서 간신히 삶을 연명해간다. 집도 없어서 지인들의 집에 하루 이틀 묵곤 하지만 자신의 포크송에 자부심이 높다. 그러나 다른 이들은 인정해주지 않는다. 나는 이런 부분을 보면서 영화 평론가들을 떠올렸다. 자신의 평론에 자부심이 높지만 대중들은 좋아하지 않는. 물론 좋아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절대 다수는 그닥 그 글에 공감하지 못할 걸? 물론 자신이 좋아하는 일이 꼭 남들에게도 찬양까지는 아니더라도 인정받지 못할 수는 있다. 그러나 그건 20대에나 가능한 일 아닐까 싶다는 거. 르윈 데이비스와 같은 삶을 살면서까지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한다는 건 아니라고 본다. 그건 자신의 삶에 대해 무책임한 태도라 생각한다.


내가 후배들에게 항상 하는 얘기가 있다. 20대 때는 하고 싶은 일을 해라. 30대 때는 내가 뭘 잘 하는 지를 찾아라. 40대 때 돈 벌어라. 어차피 어떤 일이든지 간에 하고 싶은 일이라고 해도 먹고 살기 위해 하게 되면 그 때부터는 하고 싶은 일이 되지 않는 법이니까. 나는 이런 생각을 갖고 있기에 <인사이드 르윈>의 르윈 데이비스는 참 무기력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르윈 데이비스를 보면서 내 머리 속에 떠올랐던 한 사람이 있다. 내 회사가 있는 오피스 빌딩 1층에 편의점이 하나가 있는데, 그 편의점에 야간 아르바이트를 하는 락커가 있다. 야행성인 나는 밤이나 새벽에 사무실에 주로 있는 편인데, 그 때 담배 사러 종종 내려가보면 마주치는 사람이다. 항상 머리를 감는지 곱게 빗어내린 긴 머리에, 옷의 종류가 많지는 않지만(내가 지금까지 본 그의 옷 가짓수는 2가지다) 항상 세탁을 한 듯 깔끔하게 입고 있었고(근데 다 블랙이고 다소 독특한 스타일의 옷이었다), 편의점에 오는 어떤 이들에게도 친절하게 대하면서도 삶을 즐기는 듯한 자신감 있는 목소리가 좋았다. 게다가 항상 편의점에 들어가면 울려퍼지는 헤비메탈 곡들.


별다른 대화를 해본 적은 없지만 나는 그를 보면서, 비록 먹고 살기 위해서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지만(나이는 나보다 조금 어린 듯?) 누가 인정해주지 않아도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열심히 살고 자신의 삶에 최선을 다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차라리 이런 사람의 모습이 르윈 데이비스였다면 더 낫지 않았을까 싶다. 꼭 성공해야, 남이 인정해야, 돈을 잘 벌어야 그 인생이 멋져 보이는 건 아니지 않은가? 그러나 <인사이드 르윈>에서 르윈 데이비스에게는 그런 면을 느낄 수가 없었던 거다. 지극히 평범하고 우리네 일상 속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 우리네의 모습을 본 거 같은 느낌은 있었지만 말이다.


<인사이드 르윈>은 그렇다고 해서 르윈 데이비스를 암울하게 그리진 않는다. 어찌보면 암울한 현실과 미래 조차도 매우 관조적인 자세에서 담담하게 풀어나가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다 보고 난 다음에 여운이 남는다거나 뭔가 가슴 속에서 감흥이 일어나지도 않는다. 그래서 나는 이 영화를 왜 추천하는지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예고편



나의 3,439번째 영화. 개인 평점은 6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