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문화/독서

탈자본주의사회일까? 지식의 자본화가 아니고? <자본주의 이후의 사회>

자본주의 이후의 사회
피터 드러커 지음, 이재규 옮김/한국경제신문


2004년 1월 27일 다 읽고 정리한 글이다. 이 책은 어려웠다. 내가 이 분야에 대해서 지식이 짧아서 그럴 수도 있었고 도서관에 빌린 책을 반납하기 하루 전에 후닥닥 읽어서 그랬을 수도 있다. 정독이라 함은 책을 읽으면서 그 내용을 완전히 이해하기 위한 과정으로 속도가 보통 책을 읽을 때와는 현저하게 떨어진다. 어려운 책을 시간의 압박으로 인해 집중하면서 읽으려고 노력하다 보니 더 어려웠을 수도 있겠다.

그래도 어려웠다고 느낄 수 밖에 없는 것은 내 지식의 탓이라 생각한다. 이 책을 정리하면서 내가 내 생각을 적은 부분을 한글과 영문 두 개로 나누어 영작도 했었는데 쓸 내용이 많다 보니 영작은 포기했다. 역시 영작은 어렵다. 얘기가 서로 통하기만 하면 되는 회화보다 알아듣기만 하면 되는 리스닝보다 번역하는 독해보다 내 생각을 담아서 글로 표현하는 영작은 문법도 생각해야 되기에 어렵다.

그의 다른 저서들(이제 그의 저서 세 권 밖에 못 읽었지만)과 마찬가지로 그는 지식의 중요성에 대해서 얘기하고 있고 이 책에서는 지식이라는 것이 자본보다도 더 중요해지는 탈자본주의사회에 대해서 과거에 진행되어 온 것들과 현재 벌어지고 있는 것들 그리고 우리가 가져야할 자세등에 대해서 다루고 있다.

매우 똑똑한 사람 그리고 엄청난 지식의 소유자가 적은 여러가지 분석을 가지고 왈가왈부하는 것이 사실은 경솔해보이기는 하지만 책을 읽은 독자로서 책을 읽고 난 다음의 이 책에서 얘기하는 부분의 동의 또는 좋은 부분과 함께 동의할 수 없는 부분도 지적해 보려 한다.

우선 어떤 피터 드러커의 책에서나 마찬가지로 그의 지식의 깊이와 너비에 감탄하면서 어느 책에서도 볼 수 없는 많은 새로운 시야를 볼 수 있었다는 점은 항상 느끼는 좋은 점이다. 이는 피터 드러커 책을 추천하는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하다.

내가 적은 책에서 나는 산업 혁명과 정보 혁명이라는 것을 가지고 비교를 하기도 했었는데, 그 때 책을 탈고하고 나서 편집 과정에 들어가면서 후배가 해준 얘기가 있었다. 피터 드러커 책에 산업 혁명에 대해서 비슷하게 나온 부분이 있었다고.

내가 적은 책이 피터 드러커의 책과 비슷하다는 것은 아니다. 단지 현재를 올바로 보고 미래를 예측하기 위해서는 과거를 들여다 봐야하고 우리 세대 이전의 수많은 세대들을 들여다 봐야하기 때문에 우리는 역사를 알아야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을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피터 드러커의 책은 역사에 대한 심층적인 고찰을 통한 책이라는 점 그리고 바람직한 시야를 얻기 위해서는 역사를 봐야한다는 주관적인 견해에 맞아 떨어진다는 점 때문에 그의 책은 항상 새로운 만남을 예견하는 듯 하다.

책에서 보이는 산업 혁명과 생산성 혁명 그리고 경영 혁명이라는 일련의 흐름 속에서 지식이라는 것의 중요성이 대두된 점과 그것을 어떤 단계로 나누었는지 자체는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피터 드러커의 눈에는 그렇게 보였고 그것을 설득력있게 표현하기 위해서 나눈 것일 뿐이다.

어찌보면 지식이라는 것이 중요해질 것이다라고 판단하는 것도 피터 드러커의 지식이요 그 지식을 설득력있게 만들기 위해서 역사 속에서 논거들을 찾고 그것을 짜맞추었다는 생각도 든다. 고로 그런 단계 자체는 별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마찬가지로 우리 시대의 교육에서 보이는 것들이 뭐는 뭐다 식의 어떤 논리적인 것이 아닌 단순 암기식의 것들을 중요시 하는 것을 보면 중요한 것을 도외시하고 덜 중요한 것만 가르치려고 하는 듯해 보이기도 한다.

설령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러한 피터 드러커의 과거에 대한 해석을 기반으로 한 얘기들은 참 많은 분야를(그 중에서는 이해 못하는 분야도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경험할 수 있었던 좋은 경험이었고 설득력을 가질 수 밖에 없는 듯하다.

그러나 그가 말하는 (그토록 그가 중요하다고 얘기하는)지식이라는 것에 있어서 이번 책에서는 약간은 질문을 던지고 싶은 부분이 하나 있다. 어찌 보면 이것은 서구적인 생각의 바탕으로 쓰여진 것이다 보니 서구 문명의 한계라고 얘기할 수 있을 지도 모를 것이지만 말이다.

그 질문은 책에서 얘기하는 탈자본주의사회에서 말하는 지식의 중요성 만큼 정말 지식의 가치가 중요해지는 때가 도래할 것이냐는 그의 해석에 적어도 내가 보여주고 싶은 관점은 인간의 욕망이라는 것을 배제하고 얘기할 순 없다는 것이다.

즉 그가 40년 전부터 지식 사회가 도래할 것이라고 예견한 대단한 석학이라는 것은 사실이지만 현실을 보는 측면에서는 너무 주관적이지 않나 하는 생각이다. 주관적이라 함은 그의 어떤 성향을 반영한다고 생각된다는 것이다. 피터 드러커는 석학이다. 석학이 되는 사람들 그리고 적어도 피터 드러커와 같은 사람은 연구하고 공부하기를 좋아한다.

즉 그의 욕구와 욕망은 돈을 더 벌 수 있다가 아니라 공부를 더 하고 더 많이 알고자 하는 지식에 대한 욕망이라는 것이다. 그런 그의 성향 때문에 탈자본주의라는 자본주의 이후의 사회가 지식이 자본 이상의 절대 가치로서 취급되어진다는 것을 얘기하는 듯하다. 모든 사람이 자신과 같이 지식만을 추구하지는 않는다.

그가 처한 환경에서 그는 열심히 공부하고 연구하고 컨설팅을 하고 강연을 한다. 먹고 사는 데에 지장이 없는 환경에 있는 그로서는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욕구인 재물욕에는 크나큰 관심이 없을 수 밖에 없는 환경이다. 그리고 이미 재물욕을 탐하기 이전에 상대적으로 명예가 너무나 올라가 자신의 명예를 실추시키면서 재물을 탐할 수도 없는 처지인 상황인 것이다.

그런 그였기에 자신이 명예를 얻게된 지식이라는 것의 중요성을 역설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것은 그가 보고 싶어하는 그가 보는 세상의 테두리라는 한계를 벗어나지는 못했다고 생각한다. 스님이 속세의 인간들에게 뭐라 하는 것 마냥 자신은 이미 다른 세계에서 존재하고 있기에 그런 말을 할 수 있는지는 몰라도 대다수는 명예 이전에 재물욕이 강한 것이 현실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의 욕망은 좀 더 풍요로운 생활 좀 더 여유있는 생활이고 그러한 생활 여건을 달성하면 과시를 하기 위해서 좀 더 욕심을 내는 것이 대부분의 인간의 욕망이라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보는 관점에서는 지식이 자본을 가져다주는 역할로서 효력을 발휘하느냐 하는 것이며 그것을 여기서는 탈자본주의화라고 표현한 것 같지만 결국 탈자본주의화가 아니라 자본주의 내의 지식의 자본화로 귀결되어야 한다고 본다.

그는 탈자본주의사회에서 자본이 의미가 없다고는 얘기하지 않는다. 그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지식이라고 얘기하고 있다. 단순히 내가 여기서 이렇게 쓴다고 해서 책의 그 많은 내용들을 대변할 수는 없지만 그런 얘기가 있다는 것은 사실이다. 지식이 중요한 것에 있어서는 나는 동의한다.

그러나 나는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피터 드러커와 다른 점은 바로 인간의 욕망이라는 부분에 있어서 가장 큰 견해 차가 있다는 것이다. 지식이 중요하다면 지식이 많은 사람이 돈을 많이 버는 사회가 되는가? 왜 갑작스럽게 돈 얘기냐면 자본주의 사회에서 절대 다수의 욕망이 바로 행복이라는 말로 미화되고 포장된 물질욕이기 때문이다. 돈이면 모든 게 다 된다는 것이 실제 현실에서도 벌어지는 것을 외면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럼 그가 말하는 지식이라는 것은 도대체 무엇을 두고 하는 말인가? 뭔가 하나를 더 아는 것을 지식이라고 하는가? 그는 지식이라는 것을 가지고 일반 노동자들의 단순 노동과 비교를 했는데, 그럼 변호사나 의사들이 생각하는 것은 지식이고 단순 노동자들이 하는 것은 지식이 아니라는 것일까?

변호사나 의사들도 결국 한 번 공부한 것을 울궈먹는 식의 노동자가 되지 않는가? 지식이라는 것에 있어서 많이 알고 적게 알고의 차이를 지식이라고 나눌 수 있는가? 그럼 무엇을 지식이라고 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지식이라는 것에 대해서는 이번 책에서는 상당히 난해하게 해석이 되고 있다. 아니 어찌 보면 명료하지만 그것을 보는 내 시야가 난해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가장 극명한 예를 들어보면 그가 얘기하는 탈자본주의 사회화되어 가는 과정 속의 지식의 적용에 따른 구분에서 산업 혁명 -> 생산성 혁명 -> 경영 혁명의 변환 과정에서 그는 지식이 적용된 곳이 어디냐에 따라 이렇게 구분을 짓고 있지만 어찌 보면 인과관계에서 오는 필연적 현상이라기 보다 일련의 현상을 두고 해석한 것이라 짜맞춘 듯한 느낌도 받는다.

산업 혁명이건 생산성 혁명이건 경영 혁명이건 이것들은 결국 내가 위에서도 얘기한 대로 인간의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한 인간들의 노력에서 기인한 것이 가장 핵심이라 생각한다. 더 벌고 더 부유해지려고 말이다.

역사에 대한 고찰 정말 중요하다. 그러나 인간이라는 것에 대한 고찰이 더 선행되어야 한다는 것을 얘기하고 싶다는 것이다. 인간이라는 존재는 예나 지금이나 욕망의 존재이며, 그 욕망에는 여러 종류가 있지만 물질욕, 명예욕, 지위욕 세 개로 귀결된다.(이는 상도에서 잘 드러나 있다. 그 이전까지는 나는 인간의 욕심은 물질욕과 명예욕으로만 나눴었다.) 이는 시대가 변한다 하더라도 변하지 않는 것이다.

사기꾼은 처음에는 베푸는 척을 한다. 그리고 나중에는 크게 사기를 친다. 역사를 보는 것도 이러한 점을 염두에 두고 봐야할 것이다. 왜냐면 그 글을 누가 썼느냐 어떤 생각을 가지고 그 글을 기록했느냐에 따라서 많이 달라질 수도 있고 그것을 보는 사람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다. 진실은 모른다. 단지 기록만 보고 판단할 뿐이다.

사기꾼이 처음에 베푸는 것만을 기록한 책을 보고서는 그 사람은 착하다고 할 수 밖에 없다. 허나 인간이라는 것이 본질적으로 욕망을 추구하는 존재라는 것을 생각하면 사기꾼이 처음에 베푸는 척을 해도 그것이 정말 그 사람이 마음이 좋아서 그런지 아니면 나중에 사기 치려고 하는 것인지 두 가지를 놓고 판단을 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아직 나는 한참 모자른 존재라는 점이다. 내 글 하나 하나로 그가 쌓은 지식을 뭐라 얘기하기에는 난 아직도 미약하다. 항상 생각하는 것이 있다. 비판하기는 쉽다 그러나 뛰어넘기는 어렵다. 비판은 100개 중에서 하나를 가지고 꼬투리 잡을 수는 있어도 뛰어 넘는 것은 101개를 알아야 뛰어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가 그의 책에 동의하지 못하는 부분은 내가 모자라서 그럴 수도 있고 내가 단편적인 생각을 해서 그럴 수도 있다. 생각 즉 해석은 자유로운 것이다. 항상 그래왔듯이 읽은 내용을 정리하면서 내가 나중에 도움이 될 만한 내용들을 적어본다. 이 책에서는 3장부터 7장까지는 사실 내 머리로는 이해가 안 됐다. 읽으면서 딴 생각을 했는지 그렇게 쏙쏙 이해가 안 됐다. 그리고 비판도 못하겠다 그래서 정리한 것들 중에는 3장부터 7장까지는 없다.

(Mar 10, 2007 추가)
정리한 내용이 너무 길어서 여기까지만 정리한 글을 다듬는다. 정리한 것에는 인용과 생각들로 가득차 있는 13페이지 분량이라 글의 특성상 길어지면 읽기도 힘들고 또 나 또한 13페이지 분량의 정리를 다시 읽으면서 다듬기도 쉽지 않기 때문에 나중에 다른 카테고리에 조금씩 추가하는 형식으로 옮길까 한다.
(Mar 10, 2007 추가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