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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이란 건 상대적이다. 여유가 있을 때는 크게 느껴지지 않는 돈도 여유가 없을 때는 크게 느껴진다. 그래서 있을 때 아껴야 하는 게 훗날 어떤 일이 생길 지 모르니(내가 아무리 노력한다고 하더라도) 대비를 하기 위해서다.
근데 보통 조금의 여유가 있으면, 이곳 저곳에서 돈을 빌려간다. 어려워보지 않은 경험이 없는 게 아니기에 그런 경우에 나는 잘 빌려준다. 물론 이건 40대가 되기 전의 일이었고, 40대가 되고 나서는 어지간해서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 돈이라는 게 있을 때도 있고 없을 때도 있는 거라 생각하기에 나는 빌려준 돈 달라는 얘기 잘 하지 않는다. 알아서 갚겠거니 생각한다. 그러나 스스로 갚는 이 없었다. 그 때문에 내가 그러는 건 아니지만 돈 빌려줄 때는 그리 자주 연락 오고 이런 저런 얘기 하던 이들이 돈을 빌린 이후로는 연락 한 번 없다.
#1
나도 살면서 돈을 빌려본 적 없을까? 물론 나는 어지간해서는 돈 안 빌린다. 힘들어도 꾹꾹 참는 스타일이다. 남에게 그런 얘기하는 거 잘 못 하기도 하거니와 남에게 신세지는 거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런 나도 빌린 적이 있다. 그러면 어떻게 하느냐?
1개월 뒤에 갚기로 하고 1천만원을 빌렸다면, 1개월 뒤에 다른 데서 1천만원 빌려서 갚는다.
그러면 나는 1개월이란 시간을 더 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가 겪어본 내게 돈을 줘야 하는 사람들이 그러는 경우 단 한 번도 못 봤다. (이건 100%. 단 한 케이스도 없었다. 갚은 경우 빼고.)
#2
내가 이러기 때문에 남들도 그래야 한다는 게 아니다. 단 한 명도 그런 경우를 본 적이 없기 때문에 내가 이상한 사람이구나고 생각했을 정도니까. 그런 나는 돈을 갚지 않아도 그렇게 쪼지 않는다. 다만 약속을 어기는 거에 대해서는 이해를 못 한다.
1개월 뒤에 갚기로 했으면, 1개월 뒤에 전화해서 여차저차해서 못 갚으니 이렇게 하도록 하자고 합의를 보면 될 일인데, 연락이 없다. 물론 대부분의 사람들 생각에는 미안하니까 그런 거다고 한다. 미안하면 그럼 일이 해결되나? 문제 해결 방법이 잘못된 거라 나는 생각했지만, 나 아닌 누구도 다 그러니까 '아 내가 이상한거구나'라고 생각하고 이해했다. 그렇구나 하고.
그러나 그게 나에게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왜냐면 받을 돈 달라고 지랄를 떠는 사람 아니니까. 별로 신경 안 쓴다. 그렇다고 해서 그럼 나는 그 돈 빌려준 게 아니라 그냥 준 거냐? 아니다. 그냥 준 게 아니라 빌려준 거니까(물론 이자 받은 경우 한 번도 없지만) 언젠가는 받겠지 하고 별로 신경 안 쓴다. 나는 내 돈에 대해서는 관대한 반면 대신 남의 돈에 대해서는 중히 여기는 편이라 그렇다.
문제는 1개월 뒤에 갚기로 했는데, 연락은 없고, 나는 별 신경 안 쓰고 그러다 2개월, 3개월 가다가 문득 생각나서 전화하면 안 받는다. 물론 계속되는 연락에 받기도 하고 급한 일 때문에 그러는지 나중에 연락이 오기도 한다. 근데 내가 겪어본 바에 의하면, 대부분 내가 전화했을 때 그 즉시 받는 경우는 드문 편이다. 그래서 내가 연락했는데도 받으면 나는 그 사람이 좀 달라보이기까지 한다. 왜냐? 다른 사람들 대부분은 전화 일단 안 받거든.
#3
나와 돈 관계를 해본 사람은 알 거다. 나는 그런 경우에 돈 달라고 뭐라 하지 않는다. 언제까지 하기로 약속했는데 어찌 된 거냐고 그러지. 이차저차해서 어떻다고 그러면 그럼 어떻게 하면 되겠느냐고 한다. 그래서 뭐 넉넉하게 시간을 달라 하면 그 시간이 언제인지 서로 합의하고 그냥 나는 잊어버린다. 그러나 그런 일이 계속 반복된다는 게 문제다. 그래서 내가 곰곰히 생각해봤다. 왜 이럴까? 내가 찾은 답은 이거였다.
내가 그렇게 대하니까 그런 거다.
#4
그 사람을 탓할 게 아니라 내가 잘못된 거라는 생각이 들었던 게지. 그래서 돈 관계는 안 해야겠구나는 생각을 했고 그렇게 생각한 게 채 2년이 되지 않는다. 그런데 최근에는 어떤 걸 느끼냐면, 아무리 믿을 만한 사람, 저 사람은 절대로 그럴 사람이 아닌 사람이라고 생각한 사람도 돈 관계에 있어서는 그렇더라는 거다. 내가 지금 당장 돈 내놔라 하는 게 아니라 어떤 상황인지 그리고 어떻게 하면 될지를 같이 생각하자는 건데, 전화 피한다. 이럴 사람이 아닌데 싶은데도 그런다.
상황이 힘들어서 그렇다? 이해한다니까. 미안해서 그렇다? 미안하면 더욱더 그러면 안 되지. 내가 말하는 약속이라는 건 어차피 시간을 상당히 지나갔기에 돈을 갚아라는 약속을 지키라는 게 아니라 돈을 언제 갚을 수 있는지에 대한 얘기를 해달라는 건데. 물론 그게 한 번, 두 번 반복되고 나면 거짓말처럼 들리니까 믿기 힘드니까 그런 말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미안할 수 밖에 없겠지. 이해한다니까. 그래서 나는 항상 그렇게 얘기한다. 6개월 뒤에 갚겠다고 하면 그 때 상황이 어떻게 되든지 간에 6개월 뒤에는 연락해달라. 돈 빌려준 내가 전화하게 하는 건 아닌 거 같다. 세상 일이라는 게 잘 풀릴 때도 있고 안 풀릴 때도 있는 거 아니겠느냐. 상황을 모르면 이해의 폭이 좁아지니 어찌 된 상황인지는 적어도 알려줘야 하지 않겠냐.
그러나 그 마저도 지키지 못하는 경우가 돈 갚지 않는 경우의 100%인 듯 싶다. 그것도 내가 믿는 사람인데 말이다. 그러다 보니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 믿음에 문제가 있나?
#5
요즈음은 정말 화 안 내려고 부던히 노력한다. 같은 상황에서 1년 전의 내가 대처했던 거랑 지금이랑은 많이 다르다. 물론 내 성격이 어디 가겠냐 싶지만, 40대가 되면 참 많은 생각을 그러니까 인생에 대해서 내 삶에 대해서 하게 되는 때가 아닌가 싶다. 그런 와중에 바뀐 건 이런 거다.
모든 문제는 나로부터 비롯되는 거니 남 탓할 필요 없다.
돈을 애초에 안 빌려줬으면 그런 상황 안 만들어진다. 결국 돈을 빌려준 나도 책임이 있는 거다. 그걸 상대가 빌려달라고 부탁했다 해서 빌려줬다고 상대를 탓할 필요가 없는 거다. 물론 아무리 내가 그런다 하더라도 부탁 잘 거절 못 해서 이렇게 얘기한 적도 있다.
"형님. 제가 돈 거래는 안 한다고 했죠? 제발 부탁드립니다. 저한테 이런 부탁하지 마세요."
그래도 돌아서고 나면 안쓰러워 부탁 들어줬던 게 나에겐 마지막 돈 거래였다. 지인들 간의 돈 거래.
#6
내 회사돈을 횡령해서 개인 빚 갚은 데 썼던 친구 있다. 돈 안 받고 의절했다.
몇 천이 되는 금액을 현재 5년이 지나도록 돌려주지 않는 이도 있다.
자식 유학 비용에 모자란다고 빌려달라고 했던 돈 15일 뒤면 갚을 수 있다고 했던 이는 2년째 못 갚고 있다.
믿을 만한 사람이라 생각하는데 벌써 약속 어긴 게 3번째인 이도 있다. 돈을 갚겠다는 약속이 아니고 언제 돈을 갚겠다는 얘기를 하자는 약속만 3번째 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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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이라는 게 그렇구나 싶다. 돈이 사람을 이상하게 만들기도 하지만, 요즈음 들어서는 어떤 생각이 드냐면 돈이 이상하게 만드는 게 아니라 그 사람이 처신을 잘못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거다. 모든 사람이 내 생각대로만 움직여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지만 그건 나만의 욕심일 뿐.
#7
내 상황이 힘들다 보면 대부분 남 탓 하기 마련이다. 어려울 때는 이렇게 해줬는데 내가 어려울 때는 이렇게 대해? 뭐 이런 생각인 게지. 나는 그렇게 생각 안 한다. 모든 게 내 탓이라 생각하지. 40대 전에는 저 새끼 뭐같은 새끼 하면서 나이를 막론하고 욕하고 지랄도 하고 그랬는데, 40대 때는 그냥 그러려니 하면서 내가 앞으로는 이러면 안 되겠다 생각한다. 근데 문제는...
나도 한 성격 했던 사람인지라 인내력이 가끔씩 극에 달할 때가 있다. 그럴 때는 그냥 조용히 가만히 있는데, 내가 이러니까 계속 그러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단 얘기지. 그래도 참는다. 화 내서 다 뒤집어 엎고 난 후에는 일시적으로 스트레스 풀리긴 하지만 나중 되면 내가 미안해지는 경우 생기니까. 아니. 어쩌면 내가 미안하게 생각한다는 거 자체도 내가 이상한 건가?
좋게 생각하련다. 다만 앞으로는 그런 상황 자체를 안 만드는 게 상책이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