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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영화

400번의 구타(1959): 어른들의 틀 속에 외면당한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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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3,705번째 영화. 개인 평점은 5점. 이 작품에 대한 평점을 이렇게 주다니! 하는 생각을 가진 이들도 분명 있을 거라 생각하지만, 남들이 뭐라든 나는 내 기준에서 영화 평점을 줄 뿐. 영화사에 족적을 남긴 의미있는 작품이라고, 수많은 영화 매니아들이 찬사를 보낸 작품이라고 나도 따라서 평점 비슷하게 주지는 않는다. 보통은 어지간하면 6점을 주지만 그보다 못하기 때문에 5점 준 거.

#1
이 작품이 얼마나 의미 있는 작품인지는 내가 관리하는 영화 목록들 보면 알 수 있다.

타임지 선정 세계 100대 영화 중 42번째 본 작품
IMDB 선정 최고의 영화 250편 중 173번째 본 작품
20세기 꼭 봐야할 영화 100선 중 46번째 본 작품
죽기 전에 꼭 봐야할 영화 1001편 중 284번째 본 작품
사이트 앤 사운드 2012년 선정 세계 100대 영화 중 42번째 본 작품

이런 경우 그리 흔한 경우 아니다. 2-3군데 목록에 올라가 있는 경우는 흔해도 죄다 올라가 있는 경우는 말이다.

#2
왜 이토록 이 영화가 찬사를 받는 건가? 누벨바그의 시초작이다. 누벨바그. 프랑스어다. 영어로 얘기하면 뉴 에이지. 쉽게 얘기하자면, 기존 영화의 틀을 벗어나 새로운 시도를 했다고 보면 되겠다. 그럼 뭐가 그렇게 틀리냐? 작가주의. 그러니까 획일적인 어떤 틀을 거부하고 감독 개인의 개성을 강조했다 뭐 그렇게 이해하면 되겠다. 그러나 이런 게 나에겐 전혀 의미가 없다. 나는 영화를 미술과 동격이 아닌 대중 예술로써 보고 형식보다는 내용을 중요시하며, 영화학적 해석보다는 인문학적 해석을 하는 사람이기 때문.

#3
한 가지 재밌는 건, <400번의 구타>의 감독 프랑수와 트뤼포 감독이 이 영화를 만들게 된 계기다. 쉽게 얘기하면 맨날 까대기만 하던 평론가보고 니가 그렇게 영화에 대해서 잘 안다면 니가 직접 영화 만들어봐라 해서 만든 작품이 <400번의 구타>다. 이게 그의 첫 장편 영화인데, 칸 영화제에서 감독상을 수상했다. 이러니 할 말이 없어진 게지. 그런데 칸 영화제 작품들 보면 알겠지만 상당히 대중 예술로써의 영화와는 거리감이 있는 영화가 많다. 

그래서 나는 아카데미 수상작은 훑어봐도 칸 수상작은 잘 안 훑어본다. 어렸을 적에 칸 영화제 수상작 훑어보다가 포기. 도무지 나랑 맞지를 않더라고. 프랑스 영화가 좀 그래. 칸 영화제도 프랑스에서 열리는 거잖아. 미술이라고 하면 내가 좀 이해하겠는데 영화는 좀 다르다 생각하거든. 미술은 작은 캔버스에 작가가 표현하다 보니 사실 함축적일 수 밖에 없는 한계가 있지만 영화는 영상 매체로 스토리를 충분히 전달시킬 수 있다고 보거든. 

#4
여튼 영화사적 의미를 떠나 영화의 스토리만 놓고 보자면, 방황하는 주인공(어린 소년)이 등장하다 보니 성장 영화라 보기 쉽지만 결코 성장 영화라 할 수는 없는 게 그가 방황하게 된 핵심적인 이유는 기성 세대가 만들어놓은 제도(틀) 때문이 아니라 어른들의 무관심 때문이거든. 어디 기댈 곳이 하나 없는 주인공이라 당연히 친구에게 기댈 수 밖에 없고, 그러다 보면 응당 밟게 되는 수순. 불법적인 행위를 하게 되고. 어찌 보면 어렸을 적 친구들 중에서도 이런 수순을 밟는 친구들도 영화 속 주인공과 비슷한 처지에 있었던 건 아닌가 싶기도 하다.

다만 나는 이걸 그리 일반적인 시선으로 보고 싶지 않다. 무슨 말이냐면, 이 시대를 사는 많은 사람들이 왜 마치 모범 답안과 같은 삶을 살려고 하는 지 모르겠단 얘기다. 그래도 학생이니 공부 열심히 해야지. 그래? 그럼 왜 넌 어렸을 때 공부 안 했냐? 뭐 그런 식이다. 예를 들어, 술만 먹으면 폭력을 일삼는 아버지가 있다고 하자. 그런 가정에서 자란 아이는 커서 아버지와 같이 그럴 수도 있겠지. 그러나 반대로 나는 절대로 저렇게 하지는 말아야지 할 수도 있는 거다.

영화 속 주인공의 환경을 보면, 외롭지. 그러나 그런 과정 속에서 잃는 것만 있느냐? 아니다. 결코. 얻는 것도 분명 있다. 인생이란 그런 거다. 아무리 바람직하게 모범답안처럼 살고 싶어도 살아보면 알 거 아니냐. 인생이 그렇디? 물론 어려움 없이 승승장구하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나는 그런 이들은 반쪽짜리 인생이라 생각한다. 결코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이해하지 못하거든. 저런 상황 속에서 나라면 이렇게 하겠다 하는데 왜 그들은 못 하는지 이해 못해. 

게다가 영화라는 것도 시대상을 반영하잖아? 1950년대 말이랑 지금은 또 많이 다른 면이 있으니 공감대를 형성하는 게 다소 떨어지는 면이 있긴 하지. 아들 키워보니 요즈음은 예전에 우리가 학교 다닐 때랑은 많이 다르더라고. 아주 많이. 고작 20-30년 사이만 해도 그런데 60년이라면 더 차이가 나겠지. 이렇듯 영화라는 것도 언제 만들어졌고 그걸 언제 보느냐에 따라 감흥이 틀린 법인 거 같다.

#5
아마 비슷한 스토리를 다르게 엮었다면 모르겠지만 글쎄. 1959년작이라서 그런 지 그닥 재밌게 엮지는 않아서 나는 괜찮게 보지는 않았다. 그러나 수많은 영화 목록에 올라가 있는 거 보면 필히 영화학적 또는 영화사적 의미 때문에 본인의 진짜 평점과 달리 좋은 평점을 주는 경향 분명 있으리라 본다. 왜냐면 사람은 무리 속에서는 자신이 어떻게 생각한다 하더라도 남들의 시선을 의식해서 비슷한 의견을 내놓으려는 경향이 있거든. 심리학 실험에도 많이 나오지. 적어도 나는 그런 류에 속한 인간은 아니니까 평점이 낮은 거다. 참고로 프랑수아 트뤼포 감독의 영화 중에 내 생애 최악의 평점을 준 영화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