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정말 오랜만에 적는 독서 리뷰다. 10년 만에 다시 독서 시작했다. 게다가 내가 있는 코웍 스페이스에 독서 모임이 있어서 그것도 참여하고. 보니까 격주에 한 번 모이던데 내가 참여한 날부터 주에 한 번 모이는 걸로 바뀌었다. 일산에 사는 사람이고 독서모임 관심있다면 덧글 남기길. 언제든지 환영이다.
#1
이 책을 읽은 이유
독서모임의 지정 도서라서 읽었다. 다른 이유 없다. 근데 정작 독서 모임에는 이 책을 지정하신 교수님 안 나오셨다는. 다음 번 지정 도서는 내가 선정한 건데, 귀스타브 르 봉의 '군중심리'다. 에리히 프롬의 저서는 '소유냐 삶이냐' 정도 읽었다. 아 그리고 이 책은 e북으로 봤다. 알라딘 e북으로. e북은 6,000원 하더라. 그리고 e북이라고 해서 e북 전용 리더기보다는 항상 소유하고 다니는 스마트폰이 나는 더 낫다고 본다. 굳이 e북 리더기를 들고 다녀야할 필요는 없다고 봐. 그래도 e북으로 보니까 책갈피나 메모 남기는 건 일반 책보다 나은 면이 있다. 내가 원하는 부분 빨리 찾기도 편하고.
#2
원제와 한글 제목
한글 제목은 '사랑의 기술'이다. 한국식 제목이란 얘기. 원제는 'The art of loving'이다. love가 아닌 loving이라는 점을 주목해야할 필요가 있다. 사랑이 아니라 사랑하는 것에 대한 미학 뭐 그렇게 해석하는 게 올바른 해석이 되지 않을까 싶다. 그러나 이렇게 하면 누가 책을 사보겠냐고. 우리나라는 특히나 '기술','방법' 뭐 이런 류의 책이 잘 팔리거든. 그러나 내가 항상 얘기하듯 방법론은 핵심이 아니다. 핵심을 알려면 원리를 알아야지. 그러나 이 책은 뭐 그런 류의 책은 아니니.
#3
연애서 아니다
제목이 '사랑의 기술'이라 해서 이 책이 연애서라 생각하기 쉽지만 연애서 아니다. 그래도 에리히 프롬을 모르는 바 아니기 때문에 말랑말랑한 걸 기대한 건 아니지만 여기서 얘기하는 사랑이라는 게 성애 즉 남녀 간의 사랑을 얘기하는 게 아니더라는. 적어도 나는 남녀 간의 사랑을 얘기하는 줄 알았거든. 아니더라. 그러니까 인류애와 같은 그런 애(사랑)을 말한다. 그런 여러 형태의 사랑 중에 성애도 있기에 다루기는 하지만 사실 책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미약하다.
#4
이 책 볼만했던 부분
이성적 사고에 길들여진 나라서 그런 지 사랑의 형태를 몇 개로 나눈 부분은 볼 만했다. 형제애(에리히 프롬은 이를 사랑의 가장 근본적이 형태라 했다.), 모성애, 부성애, 성애 등으로 나누어서 얘기하는 부분이었다. 모성애와 부성애를 나눠서 얘기하는 부분에 있어서는 이런 저런 말이 나올 법하나 읽다 보니 어느 정도 이해가 되는 면도 있고(그렇게 나눠서 설명한 거에 대해서) 일리가 있는 면도 있으니 그냥 넘어간다. 이 부분은 아래 쪽에 좀 더 언급.
#5
내가 이 책을 비추하는 이유
비추하는 데에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겠지. 몇 가지로 나눠서 얘기하자면,
첫째. 어렵다. 이게 번역의 문제인 지는 모르겠지만(독서 모임에서 얘기하다 보니 번역에 문제가 있는 부분도 있는 듯 하다만) 번역의 문제라고 볼 수는 없는 게 책 전체적으로 어렵다기 보다는 특정 부분에서만 그렇다. 한 문장을 읽는데 이게 뭔 말인가 싶어서 2-3번을 읽어야 하는 그런 부분들이 집중적으로 나오는 챕터가 있는데 그 부분에서 참 시간 많이 걸렸다. 책의 나머지 반은 그냥 한달음에 읽었는데 말이지. 예를 들어보기 위해 인용한다.
나는 엄밀한 일신론의 결론과 정신적 실재에 대한 궁극적인 비유신론적 관심은 비록 서로 다르기는 하지만 서로 싸울 필요가 없는 두 견해라고 믿고 있다.
이런 텍스트를 보고서 이해했다고 본인이 지적 수준이 높다고 생각하는 게 중수들이다. 그리고 나는 왜 이런 류의 텍스트를 싫어하냐면 왜 에리히 프롬은 이 책을 적었냐고. 나름 자신의 사유를 전달하기 위해서 아닌가? 그렇다면 에리히 프롬은 전달력이 떨어지는 거다. 나는 이런 류의 지식인들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어릴 적이나 멋모르고 그런 책을 읽으면서 이해하려고 노력했지 어느 정도 단계에 오르니까 이런 걸 다르게 보게 되더라. 이는 지식인의 오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적어도 지식인이라면 지식을 전달하는 데에 있어서도 힘을 빼야 된다. 어렵게 얘기하지 말고 쉽게 얘기하란 얘기다. 그렇다고 해서 에리히 프롬을 오만하다 생각하는 게 아니라 적어도 전달력이 뛰어난 사람은 아니라는 얘기를 하고 싶은 거다.
밥 먹으면서 읽다가 이러기도 했다. "참 말 드럽게 어렵게 해놨네." e북으로 보고 있었기에 읽다가 스마트폰 꺼버렸다. 이건 지적 즐거움이 아니라 생각한다. 마치 내가 말 어렵게 해놓고 너네들이 내 생각을 맞춰봐바 이런 거 같거든. 나는 이런 식으로 글 적는 사람 싫어한다. 특히나 평론가들이 뭔가 자기는 남다른 수준이라는 걸 보여주기 위해서 어깨 힘 잔뜩 주고 어려운 용어 써가면서 글 적는 경우들 있는데 그런 애들이 대부분 중수다. 고수가 아니란 얘기.
둘째. 별로 얻을 게 없다. 물론 어떤 책을 읽어도 얻는 게 없는 경우는 없다. 그러나 얻을 게 별로 없는 게 사실이다. 이 정도 얘기는 사실 얼마든지 책이 아니라 우리의 사고를 통해서도 도출할 수 있는 부분이기에 그렇다. 단지 그의 사유를 따라가보는 건데 뭐 결론적으로 그리 어렵지 않은 얘기를 이렇게 어렵게 해놨을까 하는 생각이 많이 들더라. 물론 이 책을 통해서 뭔가를 얻었다는 이들도 있겠지. 독서 모임에서도 그렇고. 그래서 뭘 얻었냐고 하니 뭐라 하더라고. 그래서 내가 그랬지. 그건 꼭 이 책을 읽지 않고 다른 책을 읽어도 얻을 수 있는 부분이다. 꾸준히 독서를 하기만 한다면 언젠가는 다른 책을 통해서 얻게 되어 있다. 굳이 이렇게 어려운 책 머리 싸매가면서 공부하듯 읽을 필요는 없다. 내 관점에서는 그렇다.
그래서 추천 안 한다. 그리고 아래는 독서 모임 하면서 나왔던 얘기들 중에서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있었으나 하지 못했던 거 글로 적는다.
#6
리뷰 읽지 마라
사실 독서법(?)이라고 할 수 있겠는데, 앞서 얘기했듯 나는 방법, 기술 이런 거 별로 안 좋아한다. 왜? 지엽적이거든. 근본적인 게 아니거든. 그러나 대부분은 그런 걸 좋아하는 게 쉬워서다. 그러나 그런 것만 쫓다 보면 근본적인 이해를 할 수가 없어서 오히려 더 시간이 많이 든다. 그걸 잘 모르는 거 같다. 근본적인 걸 알고 뼈대를 갖춰놓고 나면 그 다음에는 가지치기가 굉장히 쉬워지는 법인데. 그래서 처음이 좀 어려울 뿐이지 나중에는 속도가 엄청 붙는다. 그걸 잘 모르는 듯.
리뷰같은 거 읽지 마라. 물론 내가 적는 것도 읽을 필요 없다. 이런 유명 작가의 알려진 책의 리뷰에는 (특히나 그게 좀 된 책이라면) 좋은 평 밖에 없다. 왜냐? 사람이라는 게 그렇다. 대부분의 사람들의 생각에 동조하려고 하지. 이건 심리 실험에도 많이 보이는 부분이고. 나는 그래서 항상 얘기하잖아. 80~90%는 별로 생각하지 않고 사는 사람들이라고. 나름은 생각한다고 하지. 그러나 가만히 따지고 보면 생각하는 게 아니라 남들 생각을 따라가고 있다니까.
대부분의 리뷰가 그럴 거라 본다. 대부분 비슷한 얘기에 이 책을 좋게 얘기하고 있지 않을까 싶은. 물론 안 봐서 모르겠다만. 그래서 책을 읽을 때는 리뷰를 보지 말고 책을 읽고 내 생각에 집중해야 하는 거다. 독서라는 게 책을 읽는 행위라기 보다는 나만의 생각에 집중하는 시간이라고 생각해야 된다. 글은 그런 생각을 하게 만드는 하나의 도구일 뿐이다. 그렇기에 저자의 생각만 따라갈 필요는 없고 저자의 생각을 글로 읽으면서 내 생각을 하는 게 중요한 거다.
리뷰를 많이 읽다 보면 어떤 누군가가 괜찮게 리뷰를 했으면 그거 따라서 자신도 리뷰를 하거나 마치 자신이 그렇게 생각한 듯이 얘기한다. 그건 자기 생각이 아니라 남의 생각을 전달하는 것일 뿐이다. 결코 그런 이들은 생각의 깊이가 깊어지지도 않고 발전되지도 않는다. 물론 책을 안 읽는 사람보다야 낫겠지만 생각보다 사고의 깊이가 깊지 않다는 걸 지적하고 싶은 거다.
#7
모성애, 부성애
이건 나도 처음에 읽으면서 왜 이렇게 이분법적으로 나눠놨지 했다. 그러나 읽다 보니 일리가 있는 면도 있어서 이해할 거 같았지. 원래 이해를 쉽게 하기 위해서는 이분법적인 사고가 필요하다. 둘로 나누어서 양 극단을 비교해주면 쉽게 이해할 수가 있거든. 그러나 모든 경우가 그 양 극단에 있는 게 아니기에 이런 문제가 생긴다. 이런 경우도 있잖아? 그건 지극히 지엽적인 부분이다. 그러니까 Case by Case 즉 경험에서 비롯된 지식의 경우가 범하기 쉬운 오류와 비슷하다는 거다.
그걸 몰라서 그런 얘기를 하기보다는 쉽게 얘기하기 위해서 그럴 수도 있는 거거든. 근데 보통 토론을 하다 보면 그런 경우들 꽤 많이 본다. 에리히 프롬이 이렇게 나눈 이유는 생물학적으로 여자와 남자가 틀린 부분들이 있기에 처음에는 모성애, 자아의 분리, 그 다음에는 부성애 이런 식으로 나름 생각을 했기에 그렇게 표현한 거다. 모성애라고 해서 부성애가 모성애 같은 면이 전혀 없느냐 그런 게 아니란 얘기지. 그런 맥락을 이해하고 봐야할 필요가 있단 거.
독서 모임에서 이를 이데올로기에 결부시키고 페미니즘 얘기를 하면서 나는 아무런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왜냐면 이건 그렇게 볼 문제가 아닌데 하는 생각에서였지. 본인이 책을 하나 적어보면 알 거다. 책 하나로 내 생각 모두를 온전히 담기는 무리가 있다. 그래서 부분 부분 딴지를 걸 수 있는 부분이 생기기 마련인 법. 그러나 그가 얘기하고자 하는 걸 잘 보다 보면 이해하고 넘어갈 수가 있는 거다. 다만 나는 이 책의 전체적인 부분에서 하고 싶은 얘기에 동의를 못 하겠다는 게 아니라 뭔 그리 어렵지도 않은 얘기를 그렇게 어렵게 적으면서 풀어나갔느냐 하는 부분에서 권하고 싶지가 않다는 게지. 원래 서양 철학이 좀 그래. 그래서 나는 동양 철학이 좋아.
그렇게 따지면 사실 이 책에서 지적할 부분이 한 두개가 아니다. 왜 부성애는 조건부 사랑이라고 하느냐에서부터 시작해서 사랑의 근본적인 형태는 형제애라는 거에 대한 것까지 일일이 따져들어야 마땅하지 않을까? 그러나 그런 건 의미가 없는 거다. 논할 가치가 없는 걸 논하는 건 시간 낭비다.
#8
담배
에리히 프롬은 아마도 담배를 피우는 사람이 아니었던 듯 싶다. 책 속에 이런 얘기가 있다. 담배 피우는 건 정신 집중을 못 하는 거라고. 거 참. 담배 피우는 내 입장에서는 그래? 하고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길 뿐. 에리히 프롬이 술을 잘 마신다면 내가 술 마시는 건 정신 집중을 못 하는 거라고 얘기하는 거나 매한가지라 본다. 이런 부분 부분은 사실 따지고 드는 거 자체가 의미가 없지만 뜬금없이 왜 담배 얘기를 꺼내?
#9
나름 이성에 기반해서 사랑을 얘기하고는 있지만 내가 보기에는 그리 논리적이지 못하고, 설득력이 없는 건 아니지만 별로 설득할 거리가 못되는 얘기며, 그 얘기를 어렵게 풀어나가는 면도 있기에 나는 그닥 추천하고 싶지 않다. 적어도 내게는 양서는 아니었다. 꼭 어려운 책이고 남들이 인정하는 책이라 하여 그게 양서는 아니다. 왜 독서를 하느냐는 근본적인 물음을 스스로에게 던져보길 바란다.
내 첫 독서 모임 참여할 때 했던 얘기가 있다. 독서를 할 때, 힘 빼고 하라고. 많은 이들이 어깨 힘 넣고 독서한다고. 어려운 책을 읽어야 마치 자신이 있어 보이는 양, 꼭 어려운 말로 있어 보이는 말로 리뷰를 적어야 마치 자신이 돋보이는 양 그런 거는 독서를 하는 게 아니라 겉멋 든 거에 지나지 않는다. 운동도 마찬가지로 제대로 하려면 힘을 빼야 된다. 처음 하는 거면 그게 안 되니까 자꾸 힘이 들어가지만 나중에는 힘 안 들이고 편하게 하게 되는 것처럼 독서도 마찬가지다.
#10
그래도 오랜 만의 독서 리뷰인데 확실히 독서 리뷰다 보니 게다가 독서 모임에서 다뤘던 책이다 보니 길어지네. 10년 동안 잊고 지냈던 내 취미 생활 다시 시작하면서 리뷰도 일주일에 하나 정도는 올리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