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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지구별 여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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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별 여행자란, 내가 아들에게 붙여준 별명이다. 이유인 즉슨, 아들은 세상을 즐기면서 산다. 세상의 어떠한 제도나 관습 그런 거에 얽매이지 않고 즐긴다. 며칠 전에도 물어봤던 게 "넌 사는 게 즐겁지?" "응~" 그래서 내 아들은 지구에 여행하러 왔다는 의미에서 내가 붙여준 별명이다.

#1
한부모 가정. 내가 이혼할 즈음에는 이혼하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았던 시절이었다. 벌써 13년 전이니. 한부모 가정이라고 해서 애가 올바르지 않게 커나갈 거라 생각하지 않았다. 물론 일반 가정보다야 부족함은 분명 있겠지. 그러나 세상 모든 게 그러하듯 그걸로 인해 문제가 된다면 그건 환경적인 영향이 아니라 그 환경 속에서 어떻게 커가느냐의 문제라고 봤다. 그렇게 따지면 알코홀릭 부모 자녀들은 알코홀릭이 되나? 그게 너무 싫어서 술을 멀리할 수도 있는 거다. 결국 답은 누가 정해주는 게 아니라 생각하기에 상황에 맞게 그냥 물 흐르듯 키우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오히려 아들은 한부모 가정에서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 자라서 그런지 구수하다. 또한 또래와 달리 아빠를 엄청 좋아한다. 어느 정도냐면 하교 때 전화온다. 집으로 갈 때 전화온다. 하루에 두 번은 항상 전화온다. 전화와서 "아버지이~~~~" 이런다. 물론 그런 건 있다. 독특한 구석이 있어서 또래들과 잘 어울리지 못한다. 그런데도 여자 친구는 있다. 이쁘다. 흐미. 나름의 매력은 있는 모양이다. 나는 전혀 모르겠던데. 흐흐흐. 게다가 할머니랑 장을 보러 가면 이거 아빠가 좋아하는 거다. 사자. 어디 가서 나 없는 자리에 외식하면 이거 아빠 좋아하는 건데 하는 그런 착한 아들이다. 그런 거 보면 나는 정말 해준 거 별로 없는데 잘 컸다는 생각이 든다.

#2
그런 아들을 보면서 나도 배우는 게 있다. 맘 편하게 지내는 거? 다른 사람들의 관념이나 그런 거에 종속되지 않는 거? 얘는 웃긴 게 돈도 없는데 친구들이랑 떡볶이 먹고 왔단다. 돈이 어딨냐고 그러면 나야 없지, 친구들이 사줘 그런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돈이 없으니 같이 어울려서 먹으러 가기도 그럴 건데, 얘는 그런 게 없다. 나 돈 없는데 어쩌라고. 야. 니가 사. 담에 내가 살께 그런 식이다. 그냥 자기가 하고 싶은 거에만 집중하는 그런 경향이 강하다. 그런 얘기 들으면 얻어먹지만 말라고 용돈을 주기도 하는데 얘는 돈도 필요 없단다. 요즈음 애들하고는 많이 다르다.

#3
사주를 믿는 건 아니지만, 내 동양철학을 공부해봤기 때문에 사주보면 나름 가려서 듣는다. 게다가 나는 내가 공부를 했을 때의 스승도 있고, 또 주변에 내 사주는 무료로 봐주는 사람도 있고, 또 내 주변에 지인 중에 이에 대해서 좀 깊이 있게 아시는 분이 본인의 스승에게 내 꺼를 봐주기도 한다. 왜냐. 잘 될 사람인데 왜 일이 잘 안 풀리냐 해서 안타까워서. 그래도 내가 그리 잘못 살지는 않았던 거 같다. 최근 한국판 장발장 뉴스를 보면서도 느낀 바이기도 하지만 아직도 세상은 살 만하다. 극소수(라 믿고 싶지만 생각보다 많이 보인다)의 이기적인 사람들이 있어서 글치. 

여튼 아들과 같은 경우는 좀 남다르다. 내 스승은 오래 오래 전에 "아들 잘 키워야 된다. 아들 복은 있네."라는 말을 남겼고, 내 사주 무료로 봐주는 분과 같은 경우는 "아들은 보통 유명해지는 사람이 아니다. 예를 들어 유명도가 김연아가 140라는 수치라면, 아들은 150이 넘는 정도 수준. 적어도 세계적으로 유명해진다."라고 했고, 최근에 내 지인이 안타까워서 본인이 돈을 내고 함께 가서 본 경우에는(이 분도 참 신기하신 분이다. 사주를 계산하지 않고 머리 속으로 계산 다 해서 바로 말해주니 얼마나 공부를 했다는 얘긴지.) 아들은 최소 재벌각이라고. 보통이 아니라고. 

이런 얘기를 하면 어떻게 볼 지 모르겠지만 나는 그 말 자체를 신뢰하는 게 아니라 아들의 타고난 운의 흐름이 어떻게 펼쳐지는가를 본다. 그리고 이에 대해서는 깊이 있게 얘기를 들어야 내가 왜 그런 걸 참조하는 지 이해하게 되지 내가 그런 말에 현혹되고 그런 걸 좋아해서 그런 건 결코 아니다. 그래도 다행인 건 어느 누구든 아들이 잘 된다는 데에는 전혀 의심을 하지 않는다는 거. 그거 믿고 이러는 건 아니지만 그냥 조금은 현재로서는 마음의 위안이 된다는 게지.

#4
문득 블로그에 끄적거리고 싶었다. 22년 전의 나와 지금의 나. 뭐랄까. 마치 데자뷰와 같이 느낌이 비슷하다. 나는 이제 목표가 뚜렷해졌고 거기까지 가야겠다는 생각이 너무나 강렬한 지금. 뭔가를 끄적거리고 싶은데 문득 아들 얘기나 하고 싶더라. 올해도 거의 다 갔구나. 작년에는 쉴새없이 내달렸다면, 올해는 참 많이 지쳤고 다운이 되었던 듯 싶다. 그러나 내년은 다르리라. 작년과 같이 열심히만 하는 게 아니라 시행 착오를 겪은 만큼 내년은 다르리라 다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