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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동양 철학을 공부한 적이 있다. 뭐 동양 철학이라고 거창하게 얘기할 필요는 없다. 사주 공부했단 얘기다. 왜 했냐? 그네들의 논리를 깨주려고 공부했다가 내가 거기서 얻은 두어 가지가 있어서 그 이후는 바라보는 관점이 좀 달라지긴 했다. 그러나 함부로 그게 맞다 그런 소리 안 한다. 왜? 내가 항상 얘기하듯 해석을 잘 해야 된다. 일차적으로 풀어주는 사람이 해석을 잘 해줘야 하고(그들이 세상 만사를 다 이해하고 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그들의 두뇌로 해석해서 나오는 걸 곧이 곧대로 들어선 안 된다.) 그 해석을 본인이 또 잘 해석해야 한다. 그런 문제가 있기에 내가 별 말을 안 하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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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한 가지 얘기는 해줄 수 있다. 큰 흐름은 바꿀 수 없다는 거다. 내가 공부해본 바는 그렇다. 이런 얘기를 들으면 인생이 운명론이냐?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다. 아니. 결코. 내가 주변 지인들에게 설명을 해줄 때는 이렇게 표현한다. 운명론과 개척론의 합이다. 그래서 큰 흐름은 운명론에 속하는 영역이고 개척론은 그 속에서도 내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얘기는 달라진다는 걸 뜻한다. 즉 둘의 합이지 하나만 갖고는 해석이 안 된다. 이 부분이 내가 사주를 봐주는 사람과 결이 다른 부분이다. 시각 차이란 얘기. 여튼 큰 흐름은 바꿀 수가 없다. 그에 대해서는 내가 별 말을 하진 않겠다. 본인은 그렇게 생각 안 한다 하면 그렇게 생각 안 해도 된다. 설득하고 싶은 생각이 없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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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이 잘 풀릴 때는 희한하게 내가 가만히 있어도 일이 술술 풀린다. 그걸 운이 좋다고 하지. 그 운과 같다고 보면 된다. 그게 결정론처럼 예정되어 있다? 그게 큰 흐름이라는 거다.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일이 안 풀리고 꼬일 때가 있다. 운이 안 좋다고 하지. 그것도 매한가지다. 그래서 내가 사주를 보는 이유가 그 큰 흐름을 파악하기 위해서다. 그 큰 흐름이 맞든 틀리든 그 흐름을 읽어 운이 안 좋은 때는 조심하고, 운이 좋을 때는 좀 더 푸시를 하는 거다. 그래도 나는 내 나름 공부를 해서 그런지 사주 잘 보는 그러니까 해석을 잘 하는 이들을 알고 있고, 그래서 사주 좋아하는 사람이 있으면 지인들에게 추천하기도 한다.
#3
어느 누구나 공통적으로 하는 얘기가 있다. 그게 큰 흐름이다. 사주를 제대로 읽으면 그 큰 흐름에 대한 해석은 똑같다. 어느 누구에게 봐도 다 같은 얘기를 한다는 얘기다. 나는 아직 때가 안 되었다. 알고 있다. 예전에 내가 반짝 성공을 했던 시절? 그 때가 내 운의 흐름이 좋았을 때였을까? 아니다. 그건 내가 가진 능력으로 끌어올렸던 것이지 운이 좋아서 그랬던 게 아니다. 그 때는 오히려 내 운이 좋지 않았을 때였다. 나는 대기만성형이라 젊을 때 고생하는 팔자다. 뭐 이걸 두고 니가 젊을 때 얼마나 고생했냐? 그보다 더 고생한 사람 많다 그럴 수도 있다. 그런 관점에서 해석을 하면 제대로 이해 못하는 거니 내가 할 말이 없다. 그러려니 하고 입 닫고 있어야지. 얘기해줘봤자 소용 없으니.
내 대운은 아직 오지도 않았다. 그게 말년에 몰려 있는 형국이라. 그리고 내가 태어난 캐릭 자체가 그래서 고생을 할 수 밖에 없는. 내 대학 시절에 공대에서는 좀 보기 드문 유형(문과 유형)의 선배가 나더러 그런 얘기를 한 적이 아직도 기억난다. "너는 사서 고생을 하는 타입이구나." 그 선배 아마 지금 외국계 기업 임원으로 알고 있는데, 그런 얘기를 그 나이에 한다는 거 자체가 좀 남다른 면이 있는 선배라 생각해서 아직도 기억하는 거다. 어떤 사례를 두고 하는 얘기가 아니라 죽 지켜보다가 하는 얘기였기에. 여튼 그런 타입이다 내가. 그러나 운의 흐름이 바뀌는 때가 그리 멀지 않았다. 2년 정도 남은 듯.
#4
그렇다고 해서 2년 뒤에는 대운이 오니까 그 때 되면 달라지겠네 하고 편안하게 생각하는 거 아니다. 그 때를 위해서 준비를 해야지 하고 매진하는 거지. 또한 그 2년 뒤에 어떤 일이 벌어진다 하더라도 내 기대치만큼 충족하지 못하면 실망하기 때문에 그런 기대를 하지도 않는다. 단지 지금보다는 낫겠지 하는 생각이지. 40대 이후로 나 스스로 무너진 게 벌써 3번이다. 누구에게 얘기하지도 못하고 혼자서 정말 심적으로 힘들 때, 내가 왜 이렇게 됐지? 하면서 나를 옭아맸던 시절. 정말 힘들었다. 정말. 나는 그런 생각에 사로잡히게 되면 겉잡을 수가 없다. 그렇다고 티나지는 않지. 남들 앞에서는 안 그러니까. 혼자서만 그러니까.
#5
나를 안 좋게 보는 이들은 내가 어떤 모습을 하든 내가 어떤 말을 하든 좋지 않게 볼 거라 난 그런 거 신경 안 쓴다. 다만 그런 이들 치고 내가 제대로 된 녀석은 본 적 없다. 그건 내가 증명해줄 수 있지. 그래서 건드리면 난 반응한다. 건드리지 않으면 나는 관심을 안 둬도. 나는 주체적으로 살았고, 자신감 빼면 시체였고, 뭐든지 남달리 했던 구석이 있는 녀석이었다. 수많은 내 과거 이력들이 증명해주듯. 그러나 지금은 초라하다. 내 스스로가 초라하다는 생각을 해본 게 40대 넘어서 벌써 3번이다. 그 때 그랬다면 하는 생각도 해보게 되었고. 그만큼 나약해졌단 소리다.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몰라도. 그러나 그런 것도 잠시다. 나란 놈 다시 예전같이 그리 또 되더라고. 그게 나란 놈의 본질이다.
내 은사님 중에 한 분. 지금은 교장 선생님이 되셨는데, 그 분도 수제자 3명 꼽으라고 하면 가장 먼저 꼽히는(내 담임이셨을 때가 상당히 젊으셨을 때라 내가 일순위인 거다. 셋 중에 내가 젤 잘 나서가 아니라.) 게 난데, 그만큼 뭔가 남달랐던 부분이 있었고, 고등학교 동창들도 모이면 항상 나란 놈에 대해서 물어본단다. 뭔가 한방 크게 할 녀석인데 요즈음 어찌 지내냐고. 그래. 나도 나 자신이 그런 줄 알았는데 나이 45살 먹고 현실을 보면 그렇지가 않은 나를 보면서 나 자신에 대해 실망하고 혼자서 정말 많이 울기도 했다. 왜 나는 이 모양일까. 무엇이 잘못되었길래 내가 이러고 있을까 하는 생각에.
그런 순간들이 켜켜이 쌓이면서 또 앞으로의 나를 만들어가는 거겠지만, 30대까지는 겪어보지 못했던 것들인지라 많이 힘들긴 하더라. 지금은 또 괜찮아져서 이렇게 편하게 끄적거리고는 있지만 말이다. 너무 혼자 지내고, 너무 혼자서만 일하고, 너무 혼자서 생각하고 그러다 보니 그런 건지도 모르지. 뭐 내가 생각할 때는 그런 부분 다분히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한다. 사람이 혼자여야할 때도 있지만 너무 혼자 지내는 건 잡생각이 많이 들게 하는 듯. 사람은 사람 속에 있을 때 사람다워지는 법이다. 물론 시간 허비되는 부분도 많긴 하지만. 뭐든 일장일단이 있는 법. 나름 30대는 그걸 고독이라 생각하고 즐겼는데 40대가 되니 그렇지가 않더라.
#6
지금 이 순간만 생각하면 괴롭고 힘들고 그런 때가 있다. 그러나 항상 그러리란 법은 없다. 또한 어떻게든 살아지는 게 또 인생이다. 내 인생 굴곡이 심한 편이라 극단과 극단을 오고 가지만 그렇게 다이내믹한 게 또 인생 사는 재미라 생각해야지. 많이 나약해진 나지만 그래도 믿는다. 분명 때는 올 것이라고. 그게 비단 사주를 보고 그걸 맹신하는 게 아니라. 꾸준히 노력하고 있기 때문이다. 분명 그런 때는 온다. 단지 나는 참고 있을 뿐. 내 카톡 속 프로필 메시지가 도광양회다. 참고 인내하고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