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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패션

체사레 아톨리니 캐시미어 코트

내 꺼 아니다. 내가 뭔 체사레 아톨리니 코트니. 비싸서 엄두도 못 낸다. 게다가 난 업자 아닌가. 체사레 아톨리니가 아무리 좋다 한들 나는 내가 만들어 입는 게 훨씬 저렴하고 더 좋게 만들 수 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내가 체사레 아톨리니의 메이킹을 탓하는 게 아니다. 내 입장에서는 내가 만들어도 충분히 나는 만족한다는 얘기. 그럼 누구 꺼냐? 내 고객 꺼다. 유어오운핏 최고 등급(6등급이 있다면 6등급이 될)이다. 최고 등급이 되려면 어느 정도 구매해야 하느냐? 5천만원이다. 이 이상 구매하면 5등급이 된다. 근데 6등급이라면? 그렇다. 1억 이상이다. 이미 넘은 지 오래다. 그 고객의 코트다.

고객의 코트를 그냥 빌린 건 아니다. 맘에 안 든다고 해서 뭐가 맘에 안 드는지 물어보니, 우선 원단이 내가 다루는 원단에 비해서 좋다는 걸 전혀 못 느끼겠다는 거다. 뭐 이건 어쩔 수 없지. 아무리 체사레 아톨리니라 하더라도 원단은 더 좋은 걸 내가 쓰면 내가 메이킹한 옷이 더 나을 수 밖에. 너무 비교된다고 해서 내가 봤는데, 그렇게 나쁘다고는 할 수 없더라. 캐시미어 100%인데 사선 패턴이 들어가서 고급져 보이는 맛이 좀 떨어져서 그렇게 느낄 수도 있고, 캐시미어하면 또 지블링으로 고급스러운 느낌이 나는 맛이 있는데(지블링은 후가공이다. 캐시미어라고 그런 게 아니라) 이건 그렇지가 않으니까 그런 거일 수도 있다.

다만 확실한 건 촉감은 좀 떨어지더라. 내가 다루는 캐시미어 원단들은 부들부들한데, 이건 내 경험상 조금은 굵기가 굵은 캐시미어를 사용한 게 아닌가 싶더라. 그러니까 상급 캐시미어는 아니었던 거 같더란 거지. 그러다 보니 비교가 많이 돼서 안 입게 되더라는 고객. 게다가 이런 거 살 바에는 나한테 3벌 정도 하는 게 더 낫다는 얘기까지. 사실 그런 고객들이 유어오운핏 고객이 되는 거고. 최근에도 뭐 띠어리 가서 정장 봤는데, 70-80 하길래 그럴 거 같으면 뭐하러 기성복 사나, 제일모직으로 맞춰서 입지 해서 주문하기도 하고. 

게다가 안 이쁜 이유가 핏이 좀 펑퍼짐해. 체스터필드 코트면 좀 허리가 좀 들어가서 라인감이 있어야 하는데 없더라고. 그래서 내가 받아서 수선해준다고 했다. 핏 좀 잡아준다고. 그렇게 해서 받은 거다.

노치드 라펠에 바르카. 기본이다. 캐시미어 100%와 같이 고급 소재로 만든 코트는 스타일 설정으로 차별화를 주기 보단 원단빨로 고급스러움을 줘야 하는데, 원단 자체가 그런 게 약하다. 패턴이 들어가서 그런 거일 수도 있고 색상 때문에 그럴 수도 있지만 우리가 캐시미어 100% 하면 기대하는 그런 게 또 빠져서 그런 거일 수도 있다. 그래도 내가 입어봤을 때는 나쁘진 않더라고. 내가 좀 옷빨을 잘 받긴 하지만. 뭐랄까 차분한 느낌의 코트.

어깨는 마니카 카마치아로 되어 있던데, 셔링을 많이 넣지는 않았다.

목 뒷부분은 이런 게 달려 있던데, 옷걸이에 걸 때 사용하나? 그렇다고 하면 넘 약한데, 양옆의 실이 금방 풀어질 듯한 느낌. 그래도 이런 거는 내가 만들 때 사용해보지 않아서 좀 있어 보이더라. 

안에는 체사레 아톨리니와 원단 소재인 캐시미어 100% 라벨이 붙어 있고. 이태리 업체니까 사실 원단 수급은 얼마든지 하겠지. 이태리에 원단이 워낙 많으니. 근데 기성품은 그렇게 좋은 원단 안 쓴다. 솔직히 캐시미어 100%라고 해도 급이 얼마나 차이가 나는데. 같은 캐시미어 100%가 아니거든. 그렇게 따지면 유니클로에도 캐시미어 100% 옷들 있잖아. 오래 못 입잖아. 다 이유가 있거든. 그렇다고 체사레 아톨리니 정도에서 그렇게 급 낮은 캐시미어를 쓸 리는 없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엄청 좋은 로로피아나나 피아젠차 같은 정도의 캐시미어를 사용하지도 않아. 내가 볼 때, 제일모직 슐레인 캐시미어가 더 나아 보인다. 

버튼과 버튼홀. 버튼도 원단 색상에 맞춰서 했는지 모르겠지만 좀 있어보이지 않는다. 소뿔 버튼이라고 하더라도 색상이 다양하고, 또 버튼 모양(안으로 들어갔는지 볼록 튀어나왔는지 등)도 여러 개인데, 나는 나름 내가 이쁘다고 생각하는 것만 골라서 사용하고, 그게 또 내 고객들에게 보여주면 확실히 내가 선택한 게 낫다고 하니 그런 관점에서 봤을 때 버튼의 색상과 모양 별로. 다만 이건 별로 중요하지 않다. 왜냐면 눈에 잘 안 띄는 부위라. 버튼 홀은 핸드인지 기계인지 정확하게는 모르겠다. 기계도 셋팅 잘 해서 만들면 꽤나 퀄리티 높게 만들 수 있는 걸 알기에 체사레 아톨리니에서는 어떻게 했는지 공정을 정확히 모르니. 그래도 버튼 홀 나쁘지 않다.

왼쪽 안에 붙은 체사레 아톨리니 라벨. 라벨 주변 스티치 촘촘하니 이쁘게 잘 했네. 내가 제작하는 공방에서는 이런 부분에서는 좀 디테일이 약해. 물론 이렇게 못 하는 건 아닌데, 그만큼 촘촘하게 이쁘게 하려면 시간이 충분해야 하는데, 빨리 빨리 물량 쳐야 하다 보니. 이런 건 맘에 들더라. 게다가 이너 포켓은 끝부분에 있더라. 게다가 거기 아래로 호시가 쳐져 있고. 이런 디테일은 왜 필요한지 궁금하더라. 왜냐면 이렇게 만든 게 그냥 디자인적인 요소라면 의미없다고 할 수 있지만 그게 아니라고 하면 고려해볼 만한 사항이라서 말이다.


비싼 체사레 아톨리니 코트를 살펴봤는데, 사실 나야 업자니까 내가 해입지 이런 비싼 코트를 사서 입지는 않겠지. 아무리 뭐라 해도 내가 만들면 원가니까 가장 가성비가 좋을 수 밖에 없고, 이 정도 코트 살 돈이면 최상급 캐시미어에 내가 원하는 스타일로 핏으로 만들 수 있으니 굳이 체사레 아톨리니 코트를 살 필요도 없고. 그러나 다른 사람은 그렇지 않으니 구매하는 걸 두고 뭐라 할 수 없다만 그래도 좋은 원단으로 잘 만들면 훨씬 더 고급스럽고 만족감 높게 입을 수 있다. 내 고객들은 그런 내 생각을 잘 이해하고 있는 이들이고. 인텔리들이 많은 게 그래서 그런가. 나는 물건을 팔아도 좋아야 즉 내가 자신 있어야 추천하는데. 물론 맞춤이라는 게 100% 만족도를 주진 못하지만 말이다. 그래도 지금은 여러 과정들을 거쳐서 별 문제 없이 잘 만들긴 하지만 여기까지 오는 데에 많은 일들이 있었지.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