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 글은 Oct 31, 2002 에 쓴 글이다. 기존 홈페이지에서 옮겨둔다. |
며칠 전 지하철 안에서였다. 자리에 앉아 언제나 그랬듯이 책을 펴서 공부를 하고 있었다. 옆에 있던 어떤 여학생(책을 보니 대학생이었다.)이 책을 펼쳐 든다. 법대인 모양이었다. 법률책이니... 공부하는 놈이 무슨 신경을 그런 데다가 쓰냐라고 생각할 지 모르겠으나, 그냥 보이는 것이다. 관심있게 본 것은 아니었다.
공부를 하고 있었다. 근데 공부를 하는 여자애는 한 장도 채 보지도 않고 핸드폰을 꺼내 문자 메시지를 남긴다. 다시 책을 들여다 본다. 그리고 채 한 페이지도 넘기기 전에 뭘 뒤적거리더니만 핸드폰으로 연락을 한다. 아마도 남자인가 보다. 결국 그 여자가 내리는 역을 봤다. 이대다. 이화여대. 웃긴 것은 가방에 책을 넣을 공간이 많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책을 들고 다니는 이유가 뭘까? 나 법대요? 나 공부 잘 하는 법대요?
여느 날과 같은 출근길. 그나마 내가 타는 전철역은 시발점에서 한 정거장 차이라 항상 앉아갈 수 있는 곳이었다. 여느 날과 똑같이 책을 펼쳐들었다. 웃긴 것은 이상하게도 대부분의 사람들은(내가 본) 누가 옆에서 열심히 공부하면 따라서 하는 습성이 있다. 내가 책을 펼쳐 드니까 옆에 있는 사람도 학생(고등학생)도 책을 펼쳐든다. 물론 여자다. 근데 책 펼쳐두고 잔다. 웃긴다. 더 웃긴 것은 자다 일어나는데(2정거장 정도의 거리를 자고 난 다음에) 일어나서 하는 짓이 가관이다. 책 한 장 넘긴다. 그리고 잠든다. 왜 책을 펼쳐놨지? 저거 공부하는 거 마져?
이번에는 퇴근길의 지하철이다. 늦게 퇴근하기 때문에 아마 시각은 10시가 훨씬 넘은 시각. 공부하고 있는데 앞에 있는 두 놈이 얘기를 한다. 불교가 어떻니 선종 교종이 어떻니 뭐 어쩌고 저쩌고... 한 마디 하고 싶었다. 섣불리 모르면 함부로 판단하지 말라고... 허나, 나 또한 그랬던 기억이 있고, 지식이라는 것이라든지 그런 것들에 있어서는 많이 알고 적게 알고는 중요한 것이 아니었기에 그냥 있었다. 근데... 문제는 결국 자기네는 연대라는 것을 과시하는 거였다. 이번에 연고전이 뭐 어쩌고 저쩌고 같은 연대인으로서 어쩌고 저쩌고... 책 덮고 얼굴 한 번 쳐다봤다. 한마디 할까 말까 망설였다.
공부는 겉멋이 아니다. 내가 얘기하고 싶은 것은 공부는 겉멋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무거운 책을 뭐하려고 들고 다니냐? 가방은 뭐하려고 또 따로 들고 다니는데? 왜 내가 법대 생이라는 거 자랑하려고? 그리고 지하철에서 책을 보는데 왜? 왜? 한 페이지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쓸데 없는 짓을 하는가? 그게 공부라는 말인가? 졸리거나 피곤해서 눈에 안 들어온다면 내가 이해한다. 나도 그런 적 있으니까... 그럼 책 덮고 자던지 그것도 아니면서 쓸데없는 짓거리나 하다니... 공부가 그렇게 우습게 보이냐는 거다.
또한 내가 연대다 이대다 그런 것이 결국 과시라는 것으로 돌아설 때 난 그들이 왜 도대체 공부를 하고 왜 세상을 살아가는지 그리고 그들의 미래 계획에 대해서 듣고 싶다. 연대 다닌다 자랑할려고 대학갔냐? 그래서 간 게 농대냐? 공부가 과시하라고 하는 게 공부냐?
난 이런 사람들이 싫다. 같이 공부하는 사람 취급 당하는 게 싫다. 공부의 공자도 모르면서 공부한다고 깝죽대는 것들이 싫다. 그들은 공부를 모독하고 있는 거다. 공부를 모독한다는 소리는 공부는 자기와의 싸움이기 때문에 자기를 모독하는 거나 마찬가지다. 아주 역설적이지만 그들은 누워서 침뱉기를 하고 있다는 얘기다. 공부는 자기를 위해서 하는 것이다. 그 누구를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다. 또한 공부는 항상 노력하고 정진해야 하는 것이라 진행형만 있을 뿐 완성형이라는 것은 없다.
우리 나라 사람들 머리가 좋다. 잘못된 교육 체제 내에서 1등만을 알아주는 교육으로 인해 우리가 서로 경쟁을 하고 내 꺼 내 꺼를 차리게 되었는데, 원래 교육이라는 것은 사람마다 가지고 태어난 것이 다르기 때문에 1등은 1등 나름대로 갈 길이 있는 것이고, 50등은 50등 나름대로 갈 길이 있는 것이다. 우리가 사회에 나와서 보면, 공부 1등 하는 놈보다 뭔가 튀고 사람들 끄는 놈들이 사회에서 성공하는 것은 아마 주위를 둘러보면 알 것이다. 대학교는 대학 들어갈 시점 전후 2~3년 정도 외에는 전혀 쓸모가 없다. 중요한 것은 대학에 가서 더 열심히 했는지 즉, 공부를 꾸준히 계속 정진했는지에 따라 승부가 날 뿐이지. 그렇다고 꼭 공부라는 것이 모든 것의 방법이냐는 것은 아니다. 다 나름대로의 길이 있는 것이다. 배움의 길이... 장사에도 배움의 길이 있듯이 말이다.
이전에 내가 말했던 공부와 배움의 차이를 생각해 본다면 장사를 하더라도 영업을 하더라도 단순히 시간이 지나서 터득이 되는 것은 배움이다. 그건 누구나 개나 소나 다 하는 짓거리라는 거다. 물론 장사도 약간의 기질이 있어야 하고 영업도 약간의 기질이 있어야 한다. 이것은 학교에서 공부 1등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나름대로 자신의 적성에 맞아야 한다. 허나, 그런 곳에서도 자신이 생각하고 노력하고 조사하는 노력을 들인다면 같은 영업이나 같은 장사를 하더라도 달라진다. 이것이 바로 공부라는 것이다. 꼭 책을 보고 이것을 암기해야 하는 것이 공부는 아니다. 영업도 영업 나름대로 교재가 있고, 지금까지 내려온 선배들의 노하우가 담긴 책들이 있다. 그러한 것들 찾아보지도 않고 그냥 말로만해서 다 된다? 그러면 그것은 타고나야 한다는 것이다. 하늘이 주는 선물이다. 꼭 공부의 천재와도 같은...
허나, 이 세상에 천재는 적다. 그래서 대부분은 영재다. 나름대로 후천적인 노력을 통해서 깨달음을 얻는... 그런 사람들이 진정 공부를 하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난 노력하는 사람을 좋아하고 그런 이들이 더 잘되기를 바라는 사람으로서 위와 같은 그런 사람들 처럼 공부를 모독하는 인간들이 싫다. 그들에게 있어서 공부가 무엇인가? 단순히 과시다. 과시하려고 하는 게 공부라면, 그거 말고도 할 꺼 많으니까 제발 공부는 하지 말라고 하고 싶다. 공부하는 사람은 공부라는 것에 대해서 나름대로의 마음가짐이 있어야 한다. 공부를 잘 하건 못 하건 그건 개인차이기 때문에 중요한 게 아니다. 마음가짐이 중요하다. 마음가짐. 공부에 임하는 마음가짐.
제발 공부를 모독하는 이들이 없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남이 한다고 따라하는 이들도 없었으면 좋겠다. 난 최소한 누가 한다고 따라하는 것을 존심 상한다고 생각하는데 그들은 그러지 않는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