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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사에서 자주 거론되는 영화로 잉그마르 베르히만이라는 유명한 감독이 만든 영화다.
사실 나는 이 감독 잘 모른다. 그리고 이 감독이 만든 영화라고는 지금까지 오직 한 편.
그것도 최근에 본 "한여름밤의 미소"가 다다.
사실 한여름밤의 미소도 그랬지만 이 영화도 사실 별로다.
재미도 없고, 나타내고자 하는 것이 막연히 무엇이라고는 느낌이 오는데
그리 대단하게 비춰지지 않는다는 거다.
최근에 본 라쇼몽과 같은 경우는 그것이 나타내는 바가 어느 누가 봐도
의식 있는 사람이면 뚜렷하게 나타난다. 거기다가 나타내고자 하는 것이
굉장히 철학적이면서도 강한 메시지를 주고 있다.
영화가 만들어진 시대를 생각하면 참 대단하다고 생각이 된다.
그러나 이 "제7의 봉인"은 뭐 영화 평론가들이나 교수들에게는 대단한 영화가 될 지언정
일개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인 내가 보기에는 별로 추천하고 싶지는 않다.
대중성도 갖지 못한 영화일 뿐더러, 감독의 생각을 영화라는 장르에 나름대로 표현했을 지언정
자신만의 세계에서 찍은 듯한 영화라는 생각이다.
웃긴 것은 그런 것을 분석하고 대단하다고 칭하는 많은 사람들의 머리를 난 이해 못 하겠다.
대단하다고 해야할 것인지 아니면 참 지식 졸부 답다고 해야될 것인지...
그것을 예술이라고 해야할 것인지 쓸데없는 필름 쪼가리라고 해야할 것인지...
영화의 기법을 아는 것도 아니고 그것이 영화사에 끼친 영향이 무엇인지는 몰라도
나는 상식선에서 영화를 이해하고 싶다.
상식선에서 이해하지 못하는 영화는 재미가 있거나, 감동이 있거나 해야 한다.
그렇지 않은 것은 영화로서의 효용 가치가 오직 영화를 연구하는 사람들의 전유물이 될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제7의 봉인은 추천하지 않는다. 다음은 평론가의 평이다. 읽어보고 생각하기 바란다.
잉마르 베리만의 <제7의 봉인>이 만들어진 것은 1957년의 일이었다. 이탈리아의 네오리얼리즘은 쇠퇴기를 이미 지나고 있었고, 프랑스에서는 한무리의 청년 비평가들이 누벨바그의 전조를 준비하고 있었으며, 영국에서는 프리시네마 운동이 일어나고 있었다. 아무도 더이상 신을 말하지 않았고 유럽인은 전쟁의 상처에서 벗어나고자 했으며 대중문화의 중심은 고통의 세대에서 전후세대로 옮아오고 있었다. 그것은 거스를 수 없는 물결처럼 보였다. 그때 베리만은 전혀 뜻밖에도 신의 존재와 부재에 대해서 질문했던 것이다. 그것은 마치 <제7의 봉인>의 시대배경이 중세인 것 만큼이나 중세적인 질문으로 보였다. <제7의 봉인>은 14세기 중엽 십자군 전쟁에서 돌아온 기사 안토니우스 블록의 귀향기이다. 그는 청년시절을 무의미한 전쟁에 흘려보내고 스웨덴으로 돌아온다. 그러나 그의 귀향길은 '삶에 대한 참을 수 없는 공포'에 짓눌려 있다. 영화의 서막을 여는 바닷가 장면에서 체스판을 뒤로 한 채 비스듬히 상체를 일으키고 있는 블록의 표정은 이미 '먼 곳'을 바라보고 있다. 그런 그에게 사신이 찾아온다. 그는 체스게임을 제안한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에서가 아니라 삶의 마지막 의미를 찾기 위한 시간을 유예받기 위해서이다. 마을은 페스트와 함께 마녀사냥의 집단적 광기가 휩쓸고 있다. 도처에 삶의 공포가 만연해있으나 신은 아무런 대답이 없다. 그에게 있어 유예받은 삶의 마지막 목표는 신을 감각하는 것이다. 그는 고해성사에서, 감각으로 신을 인식하는 것이 불가능한 것인지, 그리고 신은 왜 불완전한 약속 뒤로 숨어버렸는지를 격하게 묻는다. 그러나 돌아오는 대답은 '신은 침묵을 지킨다'는 것일 뿐이다. 마을에서 벌인 두번째 체스판에서도 그는 이긴다. 그러나 그가 절망 속에서 찾는 신은 끝내 현전하지 않는다. 집으로 향하기 전 한무리의 마을 사람들과 숲을 지나면서 그는 다시 사신과 마지막 체스게임을 벌이나 그것은 그가 유예된 시간을 반납할 결심을 굳힌 후의 일이었다. 신은 아예 부재하든가 아니면 부재와 다름없는 침묵에 빠져있는 것이다. 잉마르 베리만이 이 절망적인 귀향기에 요한계시록의 이야기를 따서 '제7의 봉인'이라는 제목을 붙인 것은 의미심장한 일이었다. 아다시피 그것은 종말을 상징하는 7개의 봉인 중 마지막 봉인을 가리키는 것이다. 그는 중세를 빌어 현재의 인류가 '제7의 봉인' 앞에 서 있다고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그렇다면 그는 극단의 비관주의를 표출했거나 감히 다룰 수 없는 주제를 건드린 셈일 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영화 속에서 인간은 그 봉인을 그대로 덮어둘 수 있는 어떤 가능성도 가지지 못한 것으로 그러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바로 이 점 때문에 <제7의 봉인>은 교리문답에 관한 것도 신학논쟁에 관한 영화도 아니다. 결국 베리만이 강조점을 찍은 것은 사람들 사이의 단절이다. 그것이야말로 삶의 참을 수 없는 공포를 더욱 공포스럽게 만들고 신을 부정하며 신을 침묵하게 만드는 원인인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블록이 체스말을 쓰러뜨리며 광대 요프 일가를 구하는 영화의 마지막은 매우 역설적이다. 이 장면은 베리만의 예술가로서의 자기존재와 인간에 대해 마지막 믿음의 끈을 잡으려는 몸부림에 가까운 절규를 나타내기 때문이다. 요컨대 <제7의 봉인>은 중세적 주제가 아니라 현대의 삶의 공포에 대한 근본적 질문을 던지고 있는 것이다. <필자: 이정하/영화평론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