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위키노믹스 포럼을 진행하면서(포럼을 내가 만들긴 했고 1회는 내가 진행자였지만 앞으로는 되도록 많은 다른 사람들이 참여해서 진행했으면 좋겠다.) 쓴 글이 있다. 그 글은 다음의 글이다. 매우 매우 긴 글이니 읽으려면 작정하고 읽어야 한다. ^^
지식iN은 집단지성이 아닌 협업의 산물이다? (집단지성의 이해)
글에서 보이듯이 비즈니스 세계에서 비즈니스를 철학보다 위에 두는 것은 가치판단의 문제가 아니다. 철학이 비즈니스보다 떨어진다고 생각치도 않는다. 그래서 글 속에 보면 철학이 더 중요하다고 표현된 부분도 있다.
"철학은 가진 자의 여유다." 가지지 못한 자에게는 철학은 존재하지 않는다. 하루 벌어 하루를 먹고 사는 이들에게는 내 인생의 철학이란 없다. 어떻게 하면 이 궁지를 벗어날 수 있느냐 하는 생존의 문제에만 직면할 뿐이다.
비즈니스를 철학 위에 두는 핵심은 바로 이런 연유 때문이다. 좋은 철학으로 비즈니스를 영위하고 그것이 성공을 거두었다면 가장 이상적이겠지만 아무리 좋은 철학을 갖고도 비즈니스를 제대로 영위하지 못해서 돈을 못 벌어 힘들어지면 결국 철학이란 존재하지 않고 어떻게 해서든 살아남아야겠다는 경우 밖에는 생기지 않는 것이다.
그것은 꼭 기업의 측면만이 아니라 개인의 측면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비즈니스를 철학 위에 두는 것이며 이것은 우선순위일 뿐이지 절대적 가치 측면에서 철학이 비즈니스의 아래이다라는 것은 아닌 것이다. 이것은 이상적인 의미에서는 철학이 비즈니스보다 우선이겠지만 현실적인 의미에서는 비즈니스가 철학보다 우선이라는 것을 뜻한다. 세상은 유토피아도 아니고 파라다이스도 아니다. 인간이 존재하는 한 나는 유토피아는 오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어느 누가 유토피아를 외치고 내가 생각하기에 맞는 행위를 한다면 그 사람을 따라는 주겠지만 나는 거기에 적극 나서고 싶은 생각은 없다. 나서기를 좋아하는 내가 그런다는 것은 이미 나는 그것이 안 될 것이라 생각하는 선입견을 갖고 있기 때문이고 그런 입장은 실제 현실에서 많은 사례들로 통해서 체득된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무엇인가를 해석하기 위해서는 철학적이어야만 한다. 그것은 요즈음과 같이 급변하는 시대에 기술만 쫓다 보면 한계가 있는 것과 마찬가지인 것이다. 쏟아지는 기술 속에서 그것만을 쫓기에도 벅차고 그렇게 되면 지치게 되고 항상 조급하게 살 수 밖에 없게 되지만 철학적인 관점에서 기술을 바라보면 기술의 흐름과 그 의미를 자연스레 이해하게 되기 때문이다.
아마 체어맨 선전에서 그런 문구가 나오는 것으로 안다. "기술을 생각하면 10년이지만 철학을 생각하면 100년입니다." 저는 그 말에 동감한다. 허나 그 철학이 철학 그 자체로서만으로는 부족하기 때문에 비즈니스 속에서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아무리 철학을 중요시한다고 해도 돈 없이 살 수 없는 지금의 환경(이건 자본주의의 폐단이 아닙니다.)에서는 철학만 외쳐서는 곤란한 것이다.
비즈니스 철학이라는 것은 그런 맥락에서 이해를 해야한다. 그것의 기본전제는 우리가 영위하고 있는 이 현실세계는 유토피아가 아니라는 점이다. 내가 기본적으로 사람은 욕구의 존재라고 해석을 하는 것도 다 그런 연유에서이다. 스님이나 목사님들이 더 많은 사람들에게 불경을 또는 말씀을 전하겠다는 것도 결국 하나의 욕구인 것을...
이것이 내가 비즈니스를 철학보다 우선적으로 생각하는 이유이다. 세상은 결코 파라다이스나 유토피아는 아니란 말이다.
지식iN은 집단지성이 아닌 협업의 산물이다? (집단지성의 이해)
글에서 보이듯이 비즈니스 세계에서 비즈니스를 철학보다 위에 두는 것은 가치판단의 문제가 아니다. 철학이 비즈니스보다 떨어진다고 생각치도 않는다. 그래서 글 속에 보면 철학이 더 중요하다고 표현된 부분도 있다.
"철학은 가진 자의 여유다." 가지지 못한 자에게는 철학은 존재하지 않는다. 하루 벌어 하루를 먹고 사는 이들에게는 내 인생의 철학이란 없다. 어떻게 하면 이 궁지를 벗어날 수 있느냐 하는 생존의 문제에만 직면할 뿐이다.
비즈니스를 철학 위에 두는 핵심은 바로 이런 연유 때문이다. 좋은 철학으로 비즈니스를 영위하고 그것이 성공을 거두었다면 가장 이상적이겠지만 아무리 좋은 철학을 갖고도 비즈니스를 제대로 영위하지 못해서 돈을 못 벌어 힘들어지면 결국 철학이란 존재하지 않고 어떻게 해서든 살아남아야겠다는 경우 밖에는 생기지 않는 것이다.
그것은 꼭 기업의 측면만이 아니라 개인의 측면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비즈니스를 철학 위에 두는 것이며 이것은 우선순위일 뿐이지 절대적 가치 측면에서 철학이 비즈니스의 아래이다라는 것은 아닌 것이다. 이것은 이상적인 의미에서는 철학이 비즈니스보다 우선이겠지만 현실적인 의미에서는 비즈니스가 철학보다 우선이라는 것을 뜻한다. 세상은 유토피아도 아니고 파라다이스도 아니다. 인간이 존재하는 한 나는 유토피아는 오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어느 누가 유토피아를 외치고 내가 생각하기에 맞는 행위를 한다면 그 사람을 따라는 주겠지만 나는 거기에 적극 나서고 싶은 생각은 없다. 나서기를 좋아하는 내가 그런다는 것은 이미 나는 그것이 안 될 것이라 생각하는 선입견을 갖고 있기 때문이고 그런 입장은 실제 현실에서 많은 사례들로 통해서 체득된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무엇인가를 해석하기 위해서는 철학적이어야만 한다. 그것은 요즈음과 같이 급변하는 시대에 기술만 쫓다 보면 한계가 있는 것과 마찬가지인 것이다. 쏟아지는 기술 속에서 그것만을 쫓기에도 벅차고 그렇게 되면 지치게 되고 항상 조급하게 살 수 밖에 없게 되지만 철학적인 관점에서 기술을 바라보면 기술의 흐름과 그 의미를 자연스레 이해하게 되기 때문이다.
아마 체어맨 선전에서 그런 문구가 나오는 것으로 안다. "기술을 생각하면 10년이지만 철학을 생각하면 100년입니다." 저는 그 말에 동감한다. 허나 그 철학이 철학 그 자체로서만으로는 부족하기 때문에 비즈니스 속에서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아무리 철학을 중요시한다고 해도 돈 없이 살 수 없는 지금의 환경(이건 자본주의의 폐단이 아닙니다.)에서는 철학만 외쳐서는 곤란한 것이다.
비즈니스 철학이라는 것은 그런 맥락에서 이해를 해야한다. 그것의 기본전제는 우리가 영위하고 있는 이 현실세계는 유토피아가 아니라는 점이다. 내가 기본적으로 사람은 욕구의 존재라고 해석을 하는 것도 다 그런 연유에서이다. 스님이나 목사님들이 더 많은 사람들에게 불경을 또는 말씀을 전하겠다는 것도 결국 하나의 욕구인 것을...
이것이 내가 비즈니스를 철학보다 우선적으로 생각하는 이유이다. 세상은 결코 파라다이스나 유토피아는 아니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