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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21살. 과대 실력의 첫 시발점 "개강파티"

아마 홈페이지(지금은 블로그지만)에 자주 찾아오는 내 동기들은 알 것이다. 나의 과대 생활에 대해서 말이다. 화려했다면 화려했고, 남달랐다면 남달랐을 나의 과대 생활.

내가 과대를 하려고 했었던 것은 모르겠다. 응당 해야만 했다고 기억된다. Orientation 에서 방장 하면서 어느 정도 인정 받고, 당시에 자동화공학과 선배들의 격려 속에서 과대를 해야 한다는 생각이 그냥 들었었던 것 같다.

과대 선거. 아마도 내가 기억하기로 김강연이라는 동기랑 같이 막판 뒤집기까지 가는 접전을 벌였던 것 같다. 강연이도 재수를 해서 들어왔고 거기다가 경남 출신이다. 나 또한 재수를 해서 들어왔고 출신은 부산이었고.

말투가 거의 비슷한 둘이서 개강한 지 얼마 안 되어서 서로 잘 모르는 사이에 선출하는 과대. 그러나 둘 다 비슷한 처지였었기에 출신 학교가 같아서 뽑는다던지 하는 경우는 없었던 듯 싶다. 올라와서 처음 보는 얼굴들 뿐이니...

강연이는 내 기억에 나를 뽑지 않으면 가스통으로 때린다는 말을 했던 기억이 있고, 나는 미팅과 조인트 MT 등을 공약으로 걸었던 것 같다. 어쨌든 엎치락 뒷치락 해서 과대가 되었는데, 문제는 공략을 지키느냐 마느냐였었던 것이다.

나는 대학 시절 하숙을 했다. 1층은 남학생 방이고 2층에는 여학생 방이 있는데, 밥을 먹으러 갈 때는 항상 2층에서 먹었다. 2층에 있는 누나 한 명이 항공경영과 2학년이라는 것만 알았고, 내 하숙집 주위에 나랑 고등학교 동기이면서 항공운항과에 다니는 경옥이라는 친구가 있었다. 그게 내가 아는 전부의 인맥이었다.

물론 과 내에서는 그래도 오리엔테이션이다 해서 조금씩 아는 애들이 있었지만, 어떻게 내가 개강 파티를 해야할 지 고민을 했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래서 지켜봤다. 다른 과대들이 어떻게 개강 파티를 하는지...

대부분의 경우는 호프집이나 소주방과 같은 곳을 빌려서 개강 파티를 하는데, 조인트로 하는 경우는 50% 정도에 미치지 않는다. 그 정도로 조인트가 그리 만만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일단 결심한 것이 조인트는 무조건 성공시킨다는 것이 기본 전제로 했었다.

그리고 장소 문제. 나는 사실 고등학교 때 부터 당시 유행했던 락카페나 나이트 클럽을 드나들었기에 사실 호프집이나 소주방과 같은 식상한 분위기가 싫었다. 그래서 뭔가 다른 색다른 곳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우선은 조인트. 어떻게 조인트를 할까? 아는 학과에 과대를 알면 과대랑 얘기해서 잘 구슬리면 되는데 나는 인맥이 없었던 것이다. 일단 주변에 항공운항과 친구에게 항공 운항과 1학년 수업 스케쥴표를 대충 듣고, 2층 하숙집 누나에게 항공경영과 1학년 수업 스케쥴표를 들었다.

보통은 인하공전에서 항공운항과나 항공경영과라고 하면 비서과와 같이 여타의 전문대에서 두루 있는 학과가 아니기 때문에 인천 토박이 보다는 서울에서 왔다 갔다 하는 애들이 많다. 그래서 수업이 끝나면 서울로 가는 스쿨 버스를 타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수업 끝나고 집에 가기 전에 쇼부를 쳐야만 되는 상황이었다.

반 애들이 그런다. "과대 우리 개강 파티 안 해?" 그래 한다. 좀 기다려라... 보여주마... 결국 기항자 공학부의 최고 인원들을 선발했다. 키도 크고 얼굴도 잘 생긴 놈들. 그리고 내 반의 친한 친구들. 이렇게 10여명 모였던 것 같다.

우선은 여자들에게 인기가 있을 만한 친구들을 선발하는 과정에서 스타일이 획일화 되지 않게 선발하는 것이 중요했다. 내가 아는 여자들은 스타일에 따라 선호하는 스타일이 다르다. 허나 남자들은 섹시하다 하면 왔다다. 그게 차이점이다. 그래서 여자들이 선호할 만한 다양한 스타일을 일단 선발한 후에... 쳐들어갔다.

우선 순위는 항공운항과 -> 항공경영과. 대부분의 다른 과대들이 조인트를 하면 토박이 출신이라 아는 학교 친구들이랑 같이 조인트를 하는 경우가 있긴 하지만 항공운항과랑 조인트를 하는 경우는 아직 보지를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항공운항과 하면 콧대 높기로 유명했던 학과로 연고대 이하는 안 본다는 그런 얼토당토 않는 4가지 학과였던 것이다.

그래도 좋다. 나는 너희들이 그런 생각을 가지던 안 가지던 나는 내 목표만 성취하면 된다. 내 실력을 입증하기 위해서는 꼴 사나워도 조인트를 해야만 했던 것이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했다.

항공운항과 수업이 A반부터 D반까지 모두 다 종강이 되어 버린 것이다. 그 날 스케쥴을 내가 잘못 알았던 것인지 아니면 개강하고 얼마 안 되어서 첫 수업이라 수업을 안 한 것인지는 솔직히 기억이 안 난다. 어쨌든 그 날 내가 인하공전에 대군을 이끌고 쳐들어간 날(뭐 인하공전이라고 해도 인하대 바로 옆이니) 항공운항과의 수업은 없었다. 물론 나도 수업을 받는 터라 수업 끝나고 갔기에 아마 시간표를 잘못 보고 갔을 수도 있었다.

칼은 뽑았고 무라도 짤라야지 하는 심정에 항공경영과를 찾아 다녔다. 인하공전 그 건물 아마 아는 사람은 알 것이다. 그 건물에는 남자가 있을 수가 없다. 왜냐면 항공운항과와 항공경영과만 있기 때문이다.

그 건물에 들어갔다 하면 일단 아 조인트를 하기 위한 것이구나 하고 생각하기 마련이고, 주변의 여자애들의 따가운 눈총도 받아야 했다. 또한 그 건물에 가기 위해서는 인하공전 학생식당을 지나야 하는데 학생식당에 있는 많은 학우들의 눈총도 받아야했다.

상관없다. 그래. 봐라. 사실 내심으로는 '아 C발 이거 되겠냐? 아 쪽팔리네'라는 생각 많이 했다. 그러나 행동은 생각과 달리 과감하게 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은 나는 과대라는 직책의 중압감 때문이었다.

결국 이리 저리 뒤지던 중 항공경영과(얘네들은 공항에서 지상 근무하는 애들이다.) C반이 아직 수업 중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마음 단단히 먹고 있었다. 그리고 수업이 끝나는 듯 책을 가방에 넣는 소리와 함께 "수고하셨습니다"라는 소리가 들린다.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정말 나도 그 때는 긴장했다. 그리고 교수님이 나오신다. '에라이 그래... 가자...'

그냥 들어갔다. 그리고 친구들보고 앞 뒷문 다 막아라고 했다. 그리고 얘기를 했다. 나는 누구고 여러분들이랑 조인트를 하기 위해서 왔다. 그리고 나는 많은 이벤트를 기획해뒀고, 인하대학교 최고 학부인 기항자 학부에서 왔다는 등등 이런 저런 얘기들을 주욱 늘어놨다.

참 웃긴 것이 내가 기억하기로 그 당시에 좀 콧대 높은 과라고 하면 연고대 이하랑은 미팅이나 조인트를 안 한다는 얘기를 들어서 인지 우리 학과 애들의 평균 점수가 연고대의 어지간한 문과 이과대 어지간한 공대보다는 높다는 것을 많이 강조했었던 것 같다.

어쨌든 그 쪽에서는 이러저러한 얘기를 물어왔고 나는 이벤트로 여러 가지를 선언했던 기억이 있는데, 그것들은 다음과 같다. 다 지켜야할 공약으로 얘기한 것들이다.

1) 3월 14일날 개강 파티를 할 예정이라 남자 친구가 없는 여자들이라 할 지라도 쵸코렛 하나씩 돌아가도록 한다는 것
2) 남자들의 회비는 여자들의 회비의 두 배라는 점
3) 기존의 미팅이나 조인트에서 문제점이었던 자리를 정하면 그 자리에서 계속 있어야 하는 결정되어 버리는 상황을 막기 위해서 10분에 한 번씩 남자들이 자리를 로테이션 하도록 하겠다. 여자들은 가만히 앉아만 있어라 남자들이 움직인다는 거였다.

어쨌든 보통의 전문대가 그러하듯이 거기에도 왕언니라 불리는 나이 많은 누나가 있었는데, 과대랑 이런 저런 얘기를 하더니, 저 정도로 노력하는데 뭘 못하겠냐고 하기로 결정한 것이었다. 사실 공약만 얘기하고 성사된 게 아니었다. 당시 인하대학교에는 '아쎄스'라는 유명한 응원단이 있었는데, 걔네들 춤까지 앞에서 추면서 별 쑈를 다했다. 요즈음 유행하는 "SHOW를 하라!" 딱 그 꼴이었다.

날짜도 잡혔고, 이제 장소를 섭외해야 하는데, 뭔가 달라야한다는 생각에 일단 인천 인하대 근처에서 번화가라고 하는 주안이라는 동네의 락카페를 뒤지기 시작했다. 엄밀히 말하면 나이트 클럽이다. 그리고 결국 나이트 클럽 하나를 섭외했다. 시간은 저녁 6시 정도에서 9시 정도 전까지 끝낸다는 것으로 하고 빌렸다.

사실 나이트클럽을 고등학교 시절부터 다녔었기에 9시 이전에는 사람이 별로 없고 장사 개시밖에 안 되기 때문에 그렇게 하는게 그네들도 이익이라는 것을 알고 그렇게 설득을 시킨 것이다. 그 때 그 나이트 클럽 사장이 나한테 "너 같은 새끼 처음 본다"라고 했던 것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자... 이제부터는 판은 짜여졌고 구성을 어떻게 하느냐가 문제였다. 자리 배치는 어떻게 할 것이며, 남자들은 어떻게 로테이션을 시킬 것인지 그리고 어떤 순서로 개강파티를 진행할 것인지, 인하대학교에서 주안까지 이동은 어떻게 할 것인지 등등을 나름대로 기획하기 시작했다.

모든 것이 끝나고 공표하고 난 후에 드디어 3월 14일 개강 파티날이 되어 인하대학교 출신이면 다 아는 인하공전과 인하대학교가 맞닿는 곳! 학생 회관 앞에서 집결했다. 보통 인하대학교에서 행사하면 많이 쓰이는 광장 같은 곳인데, 거기에 집결한 후에 과대들의 인솔 하에 출발했는데 여자부터 출발하고 남자들은 뒤에 출발했다. 그것은 자리 배치 때문이었다.

어쨌든 여자들이 먼저 들어가 있고, 남은 자리에 남자들이 앉는데 자기가 맘에 들어하는 여자 앞에 앉는다고 해도 10분 뒤에 로테이션이 되기 때문에 다른 테이블로 옮겨야 하는 그런 방식으로 진행을 했다. 그리고 쵸코렛은 자기가 맘에 들어하는 여자보다는 쵸코렛을 나눠주는 시간에 자기 앞 사람에게 나눠주기로 했다.

물론 나는 친구들에게 이렇게 얘기했다. 만약 꼬시고 싶다면 쵸코렛 두 개 준비해라. 하나는 좋은 거 하나는 일반적인 거. 그래서 나중에 맘에 드는 여자애한테 좋은 거를 별도로 주면 안 되겠냐라고.

어쨌든 개강 파티는 시작되었고, 많은 다른 반 애들이 참여하고 싶어했지만 최초의 정예부대를 제외하고는 참석 못 하도록 했고, 선배들도 참석을 원했지만 참석을 허가하지 않는 우리들만의 시간을 가졌다. 그 쪽 과대랑(이 과대가 아마 지금 웃찾사에 나오는 것으로 안다. ^^ 보고 놀랬던 기억이...) 내가 사회를 보고 진행하면서 남자 여자 한 명씩 한 조가 되어 하는 게임등도 하면서 재밌게 보냈었던 시간이었다.

그리고 인정받았다. 나의 첫 과대로서의 업적인 개강 파티. 소문에 소문을 타고 내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했던 것이다. 기항자가 6반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그 중에 내가 D반 과대인 것으로 기억한다. 전체 400명 중에 6명의 과대가 있는데 입소문이 나기 시작했고 다른 반이라도 기항자공학부라면 D반 과대다 하면 무쟈게 잘 노는 과대로 얘기 많이 들었다는 얘기를 듣곤 했다.

지금은 추억이지만 그 때 개강 파티를 준비하면서 재밌었던 생각이 많이 든다. 주최를 하면서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다른 애들은 재밌게 놀 지언정 나는 행사 준비나 주최자로서 뒷치닥거리로 인해 내실이 없는 경우가 많았다. 그 개강파티도 그랬었고, 개강 파티가 끝나고 삼삼오오 남자 여자애들이 무리를 지어 2차를 가는 와중에 나는 낄 자리가 없었다.

물론 오라는 데는 많았지만 말이다. 결국 그 쪽 부과대가 있는 곳으로 갔는데, 이름도 기억한다. 명희라는 여자앤데, 나이는 재수를 해서 똑같았고, 성격이 무지 화끈하고 털털한 내가 좋아하는 성격의 소유자였다. 좀 괜찮게 생겼기는 해도 등빨 아니 떡대가 있어서 힘 좀 꽤나 쓰게 생긴 여자앤데 그 애들이 나랑 얘기하고 싶다고 잠깐 들린 것이 전부였다.

그 이후로 항공경영과에서는 나를 '부산 사나이'로 불렀고, 그 다음에도 친구로서 친하게 지냈던 기억이 있다. 개강 파티. 나에게는 대단히 의미가 있었던 것이 객지에 나와서 아는 사람 하나 없는 곳에서 내가 조인트를 하고 개강 파티를 해야하는 입장이다 보니 내게는 이것이 과대로서의 실력을 입증하는 첫 시발점이라고 생각이 되어 많은 무리수 속에서도 잘 해냈었던 기억이 있다.

그 이후로 반 애들(80명)에게는 인정받는 과대가 되었고, 무슨 일이 생겨서 과 전체가 동원이 되어야 하는 곳에서는 우리 반과 같은 경우는 참석률이 가장 높았던 반으로 인정받는 반이 되었다.

아직도 기억한다. 내가 늦잠을 자서 지각을 하니 수학을 가르치던 교수님이 "저 저 과대가 저 모양이니" 하면서 애들보고 "과대 바꿔라" 라고 했을 때 애들이 그랬었다. "그래도 조인트의 귀재인데요."

개강파티 이후에 달라진 것은 우리 학부에 몇 안 되는 여학우 8명이 기존에는 공주 대우를 받다가 그 이후로는 별로 대우를 못 받았던 기억이 있다. 그래도 나는 여학우들 챙긴다고 내가 Orientation 에서 알게 되었던 여학우나 우리 반 여학우들에게는 따로 쵸코렛(사탕인가??? ^^)를 줬던 기억이 있다.

가장 미안했던 것은 바로 우리 학과의 특수성 때문에 몇 안 되는 여학우들이 대학 생활의 첫 관문인 개강파티를 외로이 보내야했다는 것이 아쉬울 뿐이다. 물론 개강파티에 참석은 했지만 단지 선배들이랑 한 켠에 있었을 뿐 적극적인 참여가 아닌 관조적인 참여였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