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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디지털

Photojournalism(포토저널리즘)과 Visual Communication(비주얼 커뮤니케이션)

"TV 책을 말하다" 방청을 하면서 책내용하고는 별도로 가장 관심이 쏠리던 것이 바로 포토저널리즘과 비주얼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진중권 교수님의 얘기였다. 그로 인해 방청에 대한 소감과는 별도로 글을 적는다. 포토저널리즘이라는 것은 말이나 글이 아닌 사진으로 표현하여 보도하는 것이고 비주얼 커뮤니케이션사진뿐만 아니라 영상, 그림등과 같은 시각적인 매체를 통한 전달을 통칭하는 것이다.

1. 비주얼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왜곡

내가 관심을 가질 수 밖에 없었던 것은 내가 전혀 몰랐던 새로운 부분을 자극했기 때문이다. 한 장의 사진이 어떻게 왜곡이 되는지의 몇가지 사례에 대해서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공감하기도 하면서 그런 사실이 있다는 것 자체에 상당히 불쾌했었다. 사진작가라는 사람들에 대해서 이제는 왜곡된 시선을 보내지 않을 수 없을 듯.

사진을 있는 그대로 찍는데 무슨 왜곡인가 할 수도 있겠지만, 소수의 사람들이 하는 행동을 마치 군중이 하는 듯 찍는 각도에 따라서 보이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건 조작이 아니라 이런 사건이 있다는 것을 부각시키기 위해서 사진작가의 의도가 개입되는 것이다. 결국 왜곡이라 함은 사진작가의 의도 자체가 왜곡될 수도 있겠지만 그것을 모르는 대중들이 그 사진을 보고 들게 되는 생각들이 왜곡될 수 있는 가능성이 매우 크다는 것이다.

사람의 이성에 가장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것이 시각인데 사진은 그런 시각을 통한 판단을 좌우하게 함으로써 왜곡된 결과를 나을 수 있다. 말로 전달하고 글로 전달하는 것은 믿지 않아도 사진 한장 보면 믿을 수 밖에 없는 것이 이런 이유 때문이다. 그런 사진 자체가 왜곡된 뭔가가 들어갔다면(작가의 의도가 정말 순수하고 맞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잘못된 것이다.

이는 역사를 보는 나의 관점과도 일맥상통한다. 사실은 있는 그대로 전달하되(비주얼 커뮤니케이션) 해석은 자유롭게 할 수 있는 것(포토저널리즘)이다. 사진 한장에 이미 그런 의도가 개입되어 있기에 비주얼 커뮤니케이션을 위한 사진 한 장이 이미 포토저널리즘적 성격을 갖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겠다. 그러나 미안한 얘기지만 지금 시대에 제한된 정보(사진 한 장)를 주고서 이것이 옳지 않느냐(자신의 의도가 개입된 정보인 사진 한 장)고 하는 구시대적 발상을 저널리즘이라고 할 수 있는가? 평화의 댐 건설 모금 운동 시절이라고 생각하는가?

자신의 생각을 한 장의 사진으로서 표현하는 것이 무엇이 잘못되었냐고 할 수 있겠지만 그것을 보는 사람들의 시각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그런 사진 한 장 때문에 왜곡된 사실로 받아들일 수 있다는 점은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전쟁의 참혹함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라면 대의적 당위성을 가진 것이라면 몰라도 어떠한 사상적, 정치적 의도가 개입된 경우에는 문제가 충분히 있을 수 있지 않겠는가?

물론 지면에 보여줄 수 있는 사진이 한 장 밖에 안 된다는 것은 변명이다. 임팩트를 주기 위해서 택하는 사진 한 장이라도 개방, 참여, 공유를 표방하는 웹 아니던가? 웹에 올려서 있는 그대로의 모습들을 보여줄 수 있는 여지는 충분히 존재하지 않는가? 사진작가가 각 사진에 대해서 많은 대가를 요구하는가?

역시나 또 국부론을 생각치 않을 수가 없다. 사진작가들이 왜 그런 의도적인 사진을 찍는가? 이러한 사실을 알려야겠다는 허울좋은 소명의식을 갖고 있어서인가? 오히려 나는 그런 의도적인 사진이 돈을 벌기 위한 수단이 되니까 그러는 거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다. 차라리 돈벌기 위해서 찍는다고 해라. 그게 떳떳하다.

그것은 마치 최근 Web2.0의 수많은 서비스 업체들이 인맥이나 인간관계를 중요시하면서 사람들을 모으지만 정작 내가 보기에는 인맥이나 인간관계는 허울좋은 명분이고 그것을 빌미로 사람을 모아서 다른 회사에 M&A 시키려고 하는 게 그들의 주목적임을 그들 스스로 부정할 수 없지 않겠느냐는 생각과도 일맥상통한다.

2. 사진작가의 윤리성

방청 때 언급되었던 부분이다. 죽어가고 있는 사람을 옆에서 보고 구해야할 판국에 사진 한 장 남기기 위해서 찍고 앉아있느냐는 윤리적 문제가 거론되었다. 맞는 말이다. 유명한 사진 한 장(어린 아이 머리에 총을 겨누고 있는 사진인데 다른 곳에서 예전에 본 듯한 사진이다.)이 어떻게 그런 상황이 만들어졌는가를 듣고는 가히 충격적이었다.

원래 어린 소년을 죽일 의도는 없었는데 사진작가가 있기 때문에 보여주기 위해(비주얼 커뮤니케이션을 위해) 그런 상황을 일부러 만들어서 죽였다는 것이다. 단지 사진작가가 사진기를 들고 찍으러 다니기 때문에 그런 상황을 만들었다는. 물론 왜곡된 시선이 개입된 것 없다. 그리고 그 상황이 왜곡된 것도 아니다.

그러나 그런 비주얼 커뮤니케이션을 잘 알고 있기에 의도적으로 그런 상황을 만들어 한 생명이 죽었다. 단지 사진작가가 사진기를 들고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것을 좋아라하고 찍는 사진작가에게 한 장의 사진으로 흔적을 남기기 위한 소명의식이 있다고 보는가? 그 작가가 좋아라했는지 안 했는지(아마도 인간이었으니 좋아라하지는 않았겠지만) 모르지만 그 상황에서 그가 할 수 있는 일이 사진 한 장 남기는 일이었을까?

차라리 자기가 아끼는 비싼 사진기를 던지고 말리지는 못했을까? 그가 용기가 없는 사진작가라서 그런 행동을 하기는 힘들었을까? 사진기가 비싸서 던지지 못했을까? 나는 비난 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그 사진으로 인해 많은 이들이 그런 사실을 알게된 것은 매우 높이 살만하나 그것이 어린 아이 한 명의 목숨과 가치를 저울질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꼭 그 사진을 찍어야만 그런 전쟁의 비참함을 알릴 수 있었는가?

나는 이 세상을 살면서 그 무엇보다도 생명이 소중하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흔히 친한 친구나 연인들 사이에서 이런 말을 종종하곤 한다. "목숨과도 바꿀" 그러나 나는 내 제일 친한 친구를 이렇게 표현한다. "목숨과 바꾼다면 한 번 생각해볼" 그런 상황에서 진정 목숨과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나는 아니라고 본다. 생명이라는 것은 그렇게 미화된 말로 왈가왈부할 수 있을 만한 꺼리는 아니기 때문이다. 유일하게 그런 표현을 쓸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자식(아들, 딸)이다. 그래서 부모의 사랑은 절대적이고 존귀한 것이다.

그런 생명을 두고 상황적 판단을 운운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하는가? 인간의 생명 앞에서는 그 어떤 다른 가치도 견줄 수가 없다. 이런 의미에서 소명의식이라는 것도 매우 이기적인 생각이다. 이러한 점은 왜곡된 시선을 통해서 상업적인 돈벌이 수단으로 삼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이다. 세상이 바뀌고 기술의 발달로 인해 편리해진다고 해도 우리가 지켜야할 아니 지켜야만할 가치는 바뀌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예나 지금이나 우리는 인간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앞으로 세상이 바뀐다 해도 우리는 인간일 것이다. 공중도덕을 지키고 법을 준수하는 것은 가치를 지켜나간다기 보다는 서로 편하자는 사회적 합의를 지키는 것일 뿐이다. 인간이기 때문에 지켜야할 가치는 앞으로도 변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것이 윤리적이다 아니다는 지금 시대의 해석이 중요한 게 아니라 정녕 우리가 인간으로서 가장 최고의 가치라고 여겨야할 것이 무엇인지 진지한 생각을 해야 하지 않을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