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문의 즐거움 히로나카 헤이스케 지음, 방승양 옮김/김영사 |
전반적인 리뷰
知之者不如好之者요, 好之者不如樂之者니라.
아는 사람은 좋아하는 사람만 못하고, 좋아하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만 못하다
2005년 9월 13일에 읽고 나서 떠오르는 구절이었다. 論語의 옹야편에 나오는 문구로 모르는 이가 없을 구절이다. 사실 배움의 끝은 없기 때문에 앎 자체에 집중을 하면 그것은 집착이 될 수 있는 것이고 물 흐르듯이 배움 그 자체를 즐기라는 의미로 이해하고 있다.
배우는 것을, 탐구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이 책에 있는 내용을 가슴으로 이해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배우는 것, 탐구하는 것이라고 표현한 것은 현행 입시 제도 하의 주입식 교육에서의 암기 위주의 "공부"라는 것과는 다른 표현을 찾고 싶었기 때문이다.
히로나카 헤이스케는 수학자이다. 그는 수학을 통해서 깨달았지만 수학이 아닌 어떤 것이라도 배움을 좋아하는 사람은 궁극적으로 하나에 이를 것이라 생각한다. 나는 이것을 道라 생각한다. 하나로 통하는 길. 단지 그는 수학을 통해서 깨달았을 뿐이다.
배움에 대해서
어느 누구나 비슷한 과정을 거쳐가는 듯 하다. 아는 것에 재미를 느끼게 되면 앎 자체에 집착을 하게 되고 그러한 과정을 겪다 보면 내가 이렇게 알아서 뭐하나 하는 회의감도 들게 되고 시간이 더 흐르면 앎이라는 것, 배운다는 것에 대해 좀 더 다른 시각을 갖게 되는 듯 하다. 평생해야할 것으로서 그것 자체에 집착하기 보다는 그것을 즐기는 자세가 되는...
알면 알수록 그로 인해 앎에 종속이 되고 행동에 제약이 생기는 경우를 가끔씩 느낄 때, 모든 것을 머리 속에서 비우고 내가 몰랐었다면 또는 내가 너무 안다는 사실에 집착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보곤 한다. 이것은 꼭 학문적인 얘기만은 아니다. 세상을 살면서 세상을 알고 그로 인해 자신의 행동이 달라지는...
많이 알아서 나쁠 것은 없다. 그러나 한 사람이 알 수 있는 것에는 한계가 있고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우리는 앎에 더 집착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또 살면서 뭔가를 알게 되고 인간 본연의 자세에서 그것이 아니라고 부정을 하면서도 "세상이 다 그렇지 뭐"라고 푸념 아닌 푸념을 늘어놓지는 않는지...
이 책은 학문의 즐거움을 얘기하고 있지만 궁극적으로 도달하는 것은 철학이다. 그렇기 때문에 학문이 아닌 삶에서도 충분히 해석할 여지가 많이 있다. 딱딱하고 건조한 수학이라는 것에서 노력에 의해 최고의 위치까지 올라간 그의 얘기에 배움이라는 것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는 좋은 기회가 된 듯 하다.
책 속으로
매우 인상깊은 부분을 옮긴다. 위에서도 얘기했듯이 가끔씩 이런 생각이 들곤하면 스스로를 많이 반성하게 만든다. 이러한 의미를 처음 깨달은 것은 이 책이 아니었다. 내 블로그 필명으로 쓰이는 風林火山의 모델이 된 다케다 신겐의 일대기를 적은 "야망패자"를 읽으면서 깨달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하버드 대학 세미나에서 연구 결과를 발표했을 때 매사추세츠 공과대학의 교수로부터 "아름답다!"라고 칭찬받은 적이 있다. 그것 때문에 기분이 좋아진 나는, 그 후 나의 방법을 고집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고집은 편견을 만들고, 그 편견을 다시 고집하는 악순환을 되풀이하는 사이에 결국 일을 새로운 각도에서 보는 태도를 잊어버리고, 무의식 중에 일방적인 편견으로 가득 차 "이 방법으로 못 풀면 현대 수학으로서는 풀 수 없을 것이다."라는 엄청난 독선이 내 마음속에 형성되어 갔던 것이다.책 속에서 동양적인 접근 방식과 서양적인 접근 방식에 대해서 다루는 몇 부분을 인용한다. 참 재밌는 부분이다.
어떤 철학자가 지적하는 바에 의하면 서양 사람은 한 가지 문제가 있으면 그것을 여러 가지 요소로 나누어서 모든 각도에서 철저히 알아본다. 이에 반해 동양 사람은 한 가지 문제가 있으면 그것과 비슷한 문제를 자꾸 모은다. 그리고 큰 지혜 보따리 같은 것에 계속 집어 넣는다. 얼마 후 그 보따리는 우주만큼이나 커지고, 따라서 그 내용에 관한 논쟁도 우주적인 논쟁이 되어 처음의 문제 따위는 어디론가 사라져 버린다고 한다.
일본 사람은 보통 자기 생각을 명확히 주장하기 전에는 대단히 유연성 있는 태도를 보이지만 일단 자기를 겉으로 내보이고 주장한 후에는 놀랄 만큼 유연성을 잃어버린다. 다수결로 어떤 일을 결정한 후에도 여전히 "배신당했다"라든가 "부단하다"라든가 말이 많다. 미국 사람은 내가 아는 한 각자가 주장하는 단계에서는 열심히 자기 입장을 고집하고 완강하게 버티는 면이 있지만, 일단 표결 등으로 결정이 내려지면 의외로 유연성 있는 태도를 보인다.
미국 학생들의 사고방식은 먼저 가설을 세워서 그것으로부터 여러 가지를 연역해 보고, 안 되면 그 가설을 바꾸면 된다는 식이다. 반면에 일본 학생들은 무언가를 먼저 공부해 보고 그것을 바탕으로 논문을 써야겠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것이 시시해지면 방향을 바꾸거나 지금까지의 방법을 개선하는 식의 연구 태도를 가지고 있다.
마치면서
한 번쯤 읽어보기를 바라는 책이다. 물론 어떤 이에게는 별로일 수도 있을 지도 모른다. 모든 이들을 만족시킬 수 있는 책은 없으니 말이다. 학문을 바라보는 자세에 대해서 생각해볼 수 있는 부분이 있다는 것만은 사실이다.
다만 위의 얘기들은 대부분 내가 이 책을 읽고 든 생각을 적은 것이지 책 내용이 아니다. 책은 한 수학자의 자서전이기 때문에 그의 경험담과 수학 얘기들이 있다는 점은 미리 밝혀두고자 한다. 책에서는 오히려 "창조"라는 얘기에 더 포커싱이 맞춰진 것으로 느껴질 수도 있을 듯.
고등학생들이 읽어도 괜찮을 듯 싶다. 특히나 수학의 참맛(?)을 못 느끼는 학생이라면 천재가 아닌 노력파가 수학의 노벨상에 이르기까지의 경험담이 수학의 재미를 찾게 해줄지도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