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예전에는 지하철을 타면 구걸을 하는 사람들이 있을 때는 항상 그 사람을 유심히 살폈었다.
거짓 구걸은 아닌지, 구걸을 하지 않고도 충분히 뭔가를 할 수 있는 사람은 아닌지
그런 생각을 갖고 유심히 관찰하고 때에 따라서 천원을 꺼내서 주곤 했었다.
그런데 요즈음은 조금 달라졌다. 그 사람이 어떠하든지 간에 그 사연을 정확히 모르는 이상
내가 겉모습만 보고 판단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해서이다.
또한 그 사람이 구걸을 할 수 있다는 것 그 자체로도 용기있다 생각해서이다.
그래서 요즈음에 지하철에서 이런 경우가 생기면
유심히 관찰하기는 해도 항상 지갑에서 돈을 꺼내서 준다.
#2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라페스타에 있다보면 참 많은 사람들이 뭔가를 건네곤 한다.
크게 두 가지로 나뉘는데 하나는 안마, 마사지, 나이트 클럽과 같은 유흥 업소에 일하는
사람들이 주는 껌, 음료수, 사탕, 담배 등이 있고 다른 하나는
물건 팔아달라는 사람이 내미는 껌이나 꽃, 떡과 같은 것들이 그것이다.
일전에 일산 라페스타에서 고기집에서 고기를 먹고 있었다.
여름인지라 실내가 아닌 실외에 마련된 공간에서 먹으면서 얘기를 나누고 있는데
어떤 아주머니께서 와서 떡을 팔아달라고 했다. 사줬다.
어떤 할머니께서 와서 껌 좀 팔아달라고 하길래 또 사줬다.
이번에는 어떤 아주머니께서 와서 꽃을 사달라고 했다. 죄송하다고 했다.
이것 저것 너무 많이 사줘서 좀 그렇다고...
그 아주머니 曰, "내 꺼까지만 사주지."
나는 이런 경우에 대부분 사주는 편이다. 아마 나랑 같이 있을 때 이런 경우를 겪어본 사람은 안다.
그건 내가 돈이 많거나 착해서가 아니다. 그렇게 까지 해서 먹고 살려고 하는 의지.
그 의지를 나는 높게 사는 것이다. 어떤 사연이 있어서 그렇게 되었는지는 모른다.
다만 그래도 먹고 살려고 노력하는 그 모습에 나는 크지 않은 돈이지만 주고 싶었을 뿐이다.
#3
대학 시절에 학교 앞에 있는 이면 도로에 설탕 과자를 파는 아주머니가 계셨다.
항상 자취방 가는 길에 볼 수 있었는데 매우 야위었고 얼굴이 무척 까무짭짭했다.
보통은 저녁 즈음이 되면 집으로 돌아갔는데 그 날은 어찌된 일인지
수많은 술취한 대학생들이 지나다니는 그 길가에 묵묵히 고개를 숙이고 앉아 계셨다.
아마도 금요일이라서(다음날이 주말이니) 오늘 만든 설탕 과자 남은 거를
다 팔고 가시려고 하는가 보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지나쳤다.
근데 자꾸 생각이 났다. 그래서 다시 가보니 여전히 그 자리에 계신 거다.
찾아가서 물었다. "이거 얼마에요?" "OOO원" "우리 자취방에 애들이 몇 명이더라?"
하나 둘... 개수대로 불렀다. 그리고 남아 있는 설탕 과자 다 사버렸다.
마치 자취방 애들 나눠 먹으려고 사는 것처럼 해서 산 것이다.
가격은 정확히 기억 못하겠지만 그리 비싸지는 않았던 것 같다.
나는 개인적으로 설탕 과자 좋아한다. 그러나 1개 이상 먹지는 못한다.
그러나 그 날 산 설탕 과자가 몇 개인지는 기억나진 않지만 내가 먹지 않은 것은 기억한다.
왜냐면 돌아오는 길에 포장을 뜯어서 하나씩 버렸기 때문이다.
아주머니가 혹시라도 돌아가는 길에 볼 수도 있을까봐 하수구에 말이다.
#4
사무실이 있는 곳은 청담동삼성동이다. 청담동삼성동에도 이런 사람이 있다는 게 신기했다.
강남구라고 하면 국내에서 부유한 곳 아니던가?
꼭 그렇다고 해서 모든 이들이 부유한 건 아니겠지만
이런 경우는 처음 봤었고 그 장소가 청담동삼성동이었다는 것 때문에 퍽이나 놀랬었다.
저녁 식사를 끝마치고 담배를 피우고 있는데 어느 아저씨가 여행용 가방을 들고 나타났다.
어깨에 둘러맨 가방에서 가위를 꺼낸다. 그리고 음식물쓰레기 통을 열어 가위로 뒤적거린다.
그리고 음식물 쓰레기통에서 가위로 뭔가를 꺼내어 먹기 시작하는 거다.
더렵다는 생각, 메쓰껍다는 생각은 사실 별로 들지 않았지만 그 모습이 가히 충격적이었다.
다 먹고 나서는 가방에서 휴지를 꺼내 가위에 묻은 음식물을 닦아내고 가위를 가방에 넣는다.
이것이 그 아저씨에게는 저녁 식사였던 셈이다. 이 때까지만 해도 이런 사람도 있구나 생각했다.
도와줄 생각? 전혀 들지 않았다. 말려야지? 전혀 들지 않았다. 이성적인 판단을 하기에는
그 장면들이 사실 내게는 다소 충격적이었기 때문에 그냥 보고만 있었을 뿐이다.
그런데 정말 놀랐던 것은 바로 음식물 쓰레기통 속이었다.
위와 같은 일이 있고난 다음날 후배 녀석이 찍어다 준 음식물 쓰레기통 속을 보면서
눈살이 찌푸려지고 속이 메쓰꺼웠다. 정말 그 아저씨가 뒤적거려서 먹던 것이 이것이었던가!
이 사진을 찍은 날 이후에 이 아저씨를 한 번 더 볼 수 있었다.
그 때는 점심 시간 즈음이었는데, 이 때는 아저씨가 음식물 쓰레기통을 뒤지지는 않았었다.
아마도 이 근처 어딘가에서 노숙을 하는 것은 아닌가 생각한다.
그렇다면 분명 언젠가는 볼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그럼 다음번에 이런 일이 내 앞에서 벌어진다면, 나는 어떻게 할까?
아저씨한테 돈을 주고 맛있는 거 사먹으라고 할까? 아니면 밥집에서 밥이라도 사줄까?
물론 이런다고 해서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일전에 사회단체에서 일하는 친구와 이런 문제를 놓고 얘기를 한 적이 있었는데,
내 친구와 나의 해법이 달랐다. 친구는 사소한 거라도 도와주는 게 그들에게는 도움이 된다는
것이었고 나는 그런다고 해서 근본적으로 해결되는 것은 아니니 그들이 지속 가능한
수익원을 창출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는 데에 지원해야 한다는 것이 내 얘기였다.
그 때 나눴던 얘기들이 생각난다.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는 시간이 걸린다.
그리고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한다고 해서 모든 이들을 다 지원해줄 수는 없을 것이다.
부분 부분적으로 눈에 띄는 사람들을 해줄 수는 있을 지 몰라도...
세상을 살면서 나중에야 내 친구가 하는 얘기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나는 그 때 친구와 얘기할 때만 해도 머리만으로 해법을 얘기했던 것이다.
조금씩이라도 사소한 것이라도 도와주면서 그들에게 희망을 심어주는 것이 중요하다.
내가 밥 한끼 사준다고 얼마 되지도 않는 돈을 준다고 해서
그 사람의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허나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이전에
그런 사소한 도움이라도 필요한 부분이 분명히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적어도 다음 번에 이런 일이 생기면 지난 번과 같이
그냥 가만히 보면서 이상한 사람이라고 생각치는 않을 것이다...
포스팅 후에 이제야 많은 분들이 봤다는 것을 알고서 급히 사진에 모자이크 추가합니다.
모자이크 처리에 대해서는 제가 미처 생각이 짧아서 포스팅 시에 하지 못했음을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앞으로는 그런 일이 없도록 주의하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