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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

어려운 부탁

어제 어려운 부탁을 받았다. 직접적으로 내게 연락을 하실 분이 아닌데
직접 연락을 해서 하는 부탁이었던지라 가급적 도와드리려고는 했었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너무 늦었다는 거다. 전략을 짜고 실행하기에는 너무 늦었다.
게다가 이미 나름대로 전략을 짜서 실행하고 있었고 계속해서 진행되고 있는 중에
나는 나 혼자서 지지고 볶고 하는 판국이니 손과 발이 따로 놀 수 밖에 없는 형국.

난 어떤 것이든 간에 돈이 되든 안 되든 간에 우선 일이 잘 될까를 타진해본다.
이는 잘 될 만한 일을 고른다는 뜻이 아니다. 아무리 조건이 좋지 못하다고 해도
난 내가 끼어서 뭔가 다른 결과를 낼 수 있다고 생각하기에 그런 것은 개의치 않는다.
어려울 수록 그만큼 실력 발휘하기가 쉬운 법이지만 이번에는 좀 달랐다. 너무 늦었다.

밑빠진 독에 물 붓기 식으로 아무리 내가 뭔가 획기적인 방법으로 도와준다 해도
그게 티도 안 날 뿐더러 반짝 효과로 인해 결과에 영향을 미치지는 못한다.
그리고 사실 나는 그렇게 뒷수습하려는 데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
그것이 돈이 되든 안 되든 나는 전략가로 초기에 설계를 해서 실행을 하고
상황에 대응해서 판단하면서 뭔가를 도출하는 것을 좋아하지
수습을 위한 그런 일은 그닥 내가 하고 싶어하지 않는다.

누구나 일에 있어서는 주도권을 쥐려고 한다. 그건 나 이외에도 마찬가지니까.
그러나 그 주도권을 누가 쥐느냐에 따라 결과는 달라진다.
주도권을 쥐느냐 마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주도권을 쥔 사람이 누구냐에 따라
이미 일은 어떻게 진행이 될 지가 결정이 된다. 나는 그렇게 본다.
그래서 다른 지인을 통해서 거절의 의사를 밝혔었다.
직접적으로 얘기하기는 조금은 부담스러운 분이시라.
(내가 부담을 느낄 정도라면 어느 정도?)

어쨌든 그렇게 했는데 오히려 전화위복이 되었다.
참 세상 살다보니 이런 저런 일 많이 생기지만 하루 동안에
엎치락 뒤치락 되는 형국이니 재미있어 했다.
내 거절이 그냥 묻혀 버리는 형국이니 말이다.
그래도 이런 경우가 생기면 다음 번에는 초기 기획 단계에서부터
내가 역할을 하게 될 듯 하니 혹시나 기회가 생기면 그 때 실력 발휘를 하려고 한다.

그냥 잘 안다고 내 실력을 인정해준다고 무조건 하면 된다는 식은 결코 없다.
난 어떤 경우에서든 그것을 해야만 한다면 상황 파악부터 먼저 하고
이게 아니다 싶으면 현실을 인정하고 최선책이 아니라 차선책을 선택한다.
최선책만 바라보는 사람들은 아직 경험이 부족하고 소위 말해
요즈음 자기계발서에서 많이 외치던 희망이니 열정이니 그런 따위에 현혹된 풋내기다.

그런 마인드야 나 또한 항상 가지고 있지만 문제는 현실을 얼마나 있는 그대로 볼 줄 아느냐?
그 속에서 때로는 단계적인 안이냐 아니면
충분히 몇 단계를 뛰어넘는 안이냐를 가늠해볼 줄 알아야 한다.
적어도 올해부터 나는 그다지 실수를 하고 싶지가 않다.
그렇기 때문에 뭐든 나름 냉철하게 보려고 하고 생각을 많이 하는 편이다.
어쨌든 그나마 다행이다. 내가 어지간하면 부탁을 거절하는 사람이 아닌데 말이다.

세상에는 열심히 한다고 해서 될 일이 있고 안 될 일이 있는 법이고
일에는 순서가 있고 단계가 있는 법이다. 아무리 똑똑하다고 중학교 1학년한테
미분을 가르쳐주고 들이민다고 해서 중학교 1학년이 그것을 이해할 수 있을까?
그러니 뭐든 시간이 필요한 셈이다. 아무리 내가 그 시간을 앞당기는 데에 능하다 해도
절대적으로 불가능한 부분들도 존재는 한다. 그것을 알면서 뭔가를 해서
괜히 내 신뢰만 깎이는 짓은 하고 싶지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