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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영화

레볼루셔너리 로드: 공허함으로 가득찬 현실 속의 우리네들


나의 2,836번째 영화. <타이타닉>의 두 주인공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케이트 윈슬렛이 다시 호흡을 맞춘 만큼 두 배우의 연기만큼은 일품이었다. 그런데 나는 솔직히 이런 내용 그다지 좋아하지는 않는다. 나름 생각해볼 만한 부분들이 있기는 했지만 그다지 확 와닿는다는 느낌이 없었다. 그건 나는 적어도 그렇게 살지 않는다고 생각해서 그럴까?


일상 vs 새로운 삶

영화 제목은 두 주인공인 프랭크와 에이프릴이 사는 동네의 명칭이기도 하지만 이 영화에서 얘기하는 상징적인 의미도 동시에 갖고 있다. 프랭크와 에이프릴이 생각하는 레볼루셔너리 로드(혁신의 길)은 파리지만 결국 파리는 가지 못하고 레볼루셔너리 로드에 살고 있으니 매우 아이러니한 표현이 아닐 수 없다.


영화 속에서 비중은 없지만 영화 내용의 이해에서는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그 동네에 사는 정신질환자인 존이다.(수학자인데 정서 장애 치료 시에 받은 전기 충격요법으로 수학 지식을 상실) 그런데 정신질환자라기 보다는 매우 이성적으로 현실을 꿰뚫는 사람인데 영화 속에서는 그렇게 설정해뒀다. 아마 우리가 바라보는 게 더 비정상적이라는 걸 보여주고자 했던 게 아닐까 싶다.

"소꿉놀이를 하려면 직업이 필요하죠." (소꿉놀이=집안살림)
"아주 좋은 집을 가지려면, 아주 예쁜 집을 가지려면 원치도 않는 일을 해야겠죠."
"수많은 사람들이 공허함 속에 살죠. 하지만 절망을 보려면 진짜 용기가 필요해요."


누구나 뭔가를 바라고 그것을 충족시키기 위해서 열심히 살지만 그것을 위해 쳇바퀴 돌듯이 계속 달려야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내 인생의 주인은 나라고 하지만 인간이 만들어낸 시스템 속에서 더 나은 미래를 위해서가 아니라 어찌보면 현재를 유지하기 위해서 살아가는 듯 느껴진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해야 한다고 하지만 정녕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서 선택하지 못하는 자신을 발견하면서 그래도 먹고는 살아야지 하는 자기 합리화를 하는 게 아닐까?

그래도 먹고 살아야지가 아니라 지금의 현실을 유지하기 위해서 과감한 도전을 못 하는 건 아닐까? 현실을 도피하고 현실을 인정하지 말라는 게 아니라 자기 스스로에 대해 진지한 질문을 던져볼 필요가 있다. 어떤 선택을 한다고 하지만 모두 다 현실을 유지한다는 기본 전제 하에 선택을 한다. 예를 들면 이직을 해도 연봉은 기존 이상이 되어야 한다던지 하는 식으로 말이다. 그건 도전이 아니라 단지 바뀜에 지나지 않는다.


엇박자


영화 속의 또 다른 축은 두 주인공에게 있다. 젊은 날에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평생을 같이 하자고 하지만 우리네는 서로 다른 가치관 속에 서로를 알지 못한 채 우리는 결혼이라는 약속을 하고 평생을 같이 보낸다. 사람이 좋은 거랑 가치관이 다른 건 엄연히 다르다. 아무리 사람이 좋아도 가치관이 다르면 싸우기 마련이고 합일점을 찾기가 쉽지가 않다. 다행스럽게도 합일점을 찾아나갈 수 있다면 몰라도 그렇지 못해서 계속해서 쌓이게 되면 결국 문제가 생기기 마련이다.

연극을 한다고는 하지만 연기를 못해 관객들에게 야유를 받고 스스로도 속이 상한 에이프릴. 위로해주는 남편이 있다 해도 스스로가 용납하지 못하는 에이프릴을 보면서 그녀에게는 어찌보면 새로운 삶(파리로 가는 것)이 현실 도피적 성격도 다분히 있지 않았나 싶다. 어차피 거기도 사람 사는 세상이고 매한가지지만 거기만 가면 달라질 것이라 생각하는 듯하다. 결국 그런 데에 얽매임으로 인해 비극적인 결말을 맞는데 그녀는 파리를 현실 도피처로 생각한 게 아니라 죽음을 삶의 도피처로 생각한 건 아닐까? 그래서 나는 연민의 정은 느껴지지 않았다. 이해가지도 않고.

프랭크가 지극히 현실에 안주하려고 하는 듯이 보이지만 나름 현실 속에서 새로운 삶을 찾아가려는 노력한다. 단지 그게 스스로에 의해서가 아니라 세상이 준(회사가 준) 선택권에서 맴도는 한계는 있었지만 말이다. 그래서 에이프릴과 충돌을 일으킬 수밖에 없었다. 어찌보면 둘은 너무 달라서 서로 만나지 않아야 좋았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지만 결혼을 했기에 현재를 유지하기 위해서 노력하다 보니 결국 비극적인 결말을 맞는 건 아닌가 한다.

누구나 새로운 삶을 지향하지만 그러지 못하고 현실의 쳇바퀴 속에서 계속 맴도는 우리들. 그러나 어쩌겠는가? 그게 삶인 것을. 새로운 삶을 지향한다고 윌러 부부처럼 파리에 간다한들 거기도 여느 곳과 다를 바없는 사람들이 사는 세상인 것을. 우리는 그렇게 살아간다. 그렇기 때문에 주어진 현실을 벗어나려고 노력하기 보다는 거기에 만족을 하고 대처하는 게 현명한 것인지도 모른다. 마지막 장면에 마누라의 잔소리가 듣기 싫어 조용히 보청기를 꺼버리는 할아버지처럼 말이다.


원작 소설

레볼루셔너리 로드
리처드 예이츠 지음, 유정화 옮김/노블마인

원작 소설은 1961년 리처드 예이츠가 적은 <Revolutionary Road>다. 1950년대 미국 분위기를 통렬하게 비판한 소설이라고 하는데 나는 지금도 매한가지라고 생각한다. 결국 자본주의의 문제는 어제 오늘만의 일은 아닌 듯. 언젠가는 바뀔 날이 오지 않을까 싶지만 아마 내 죽기 전에는 불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것을 뒤집어 생각해보면 그게 결코 당연하지 않은 게 많은 세상이다. 내가 그걸 바꿀 수 없다면 그것을 탓할 필요는 없다. 말만 하는 사람이 되기는 싫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