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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영화

동경 이야기: 부모님을 떠올리게 만드는 영화 (1953)

 

이 영화는 내가 고전 추천작이라고 언급된 목록 세 군데에 언급이 되어 있는 영화다.

 

Times지 선정 세계 100대 영화 (38/100)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영화 1001편 (268/1001)

사이트 앤 사운드 2012년 선정 세계 100대 영화 (35/100)

 

보통 최신작의 경우는 어떤 내용인지 살펴보진 않아도 예고편을 보는 경우들이 많다보니 대충 내용이 어떻다는 걸 알고 보지만 고전의 경우는 그렇지 않다. 아무런 배경 지식 없이(그나마 유명한 감독이라면 감독 이름이라도 알고 보지) 보는데 그러다 보니 보다가 <동경 이야기>를 보기 이전에 나는 <동경가족>이라는 <동경 이야기>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작품을 봤던 거다. 약간 설정은 다르다. <동경 이야기>에서는 막내 아들이 죽었고(아들 중에 막내다. 실제 막내는 여자다.), <동경가족>에서는 막내가 아들이고 아직 결혼하지는 않았지만 결혼할 상대가 있는 식. 그 외에는 스토리 전개는 거의 똑같다고 봐도 무방하다. 단지 시대가 다를 뿐. 그러나 개인적으로 <동경가족>보다는 <동경 이야기>를 추천하는 바다. 왜?

 

 

비슷한 듯 다른 <동경가족>과 <동경 이야기>

 

<동경가족>에서는 막내 아들이 살아 있다. 가장 기대하지 않은 자식이지만 나이 들어선 가장 부모에게 가장 자식 노릇을 하는 자식으로 설정된 캐릭터. 게다가 막내 아들의 여친(아오이 유우 분) 또한 노부부에게 잘 하고. 물론 다른 자식들이 부모에게 잘못한다는 게 아니다. 다만 바쁘다 보니 마음을 그만큼 쓰지 못하는 거지. 이런 걸 통해서 현재를 사는 우리네를 투영시킴으로써 부모에 대해, 가족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끔 만드는 거였다. 그런데 <동경 이야기>는 조금 다르다. 그건 설정의 차이에서 기인한 부분이 크고 이 때문에 <동경 이야기>는 같은 듯 다른 메시지를 좀 더 묵직하게 전달하기 때문이다.

 

<동경 이야기>에선 막내가 아니라 셋째 아들(아들 중에서 막내고, 실제 막내는 여자애다)이 죽은 걸로 나온다. 왜 죽었는지에 대해서는 나오지 않는다. 단지 며느리가 있는데 그 며느리의 남편이 막내 아들이고 그 아들이 죽었다고 설정이 되어 있을 뿐이다. 근데 그 며느리가 노부부에게 참 잘 한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고 남편이 죽었으면 남남이나 마찬가지인데 말이다. 다들 바쁜 현대인들이지만 정도의 차이는 있다. 그 정도의 차이는 덜 바빠서 신경을 더 쓴다기 보다는 마음을 더 쓰는 차이다. 그래서 DVD 포스터에서도 노인과 며느리를 등장시킨 거고. 마지막에 노인이 며느리에게 이렇게 얘기한다.

 

이상하구나

자식들은 여러 명인데

그 중에서도 네가 우리를 가장 많이 위해줬어

친자식도 아닌데 말이지

 

<동경가족>에서도 기대하지도 않은 막내 아들에게서 가장 대접(?)을 받긴 하지만, 그래도 그건 자식이잖아. <동경 이야기>에서는 친자식도 아닌 며느리가 그러니 다를 수 밖에. 그래서 오고 가는 대사들도 그냥 흘려보낼 수가 없었다. 

 

 

부모의 마음은 자식이 헤아릴 수가 없다

 

나도 아들을 키우는 부모가 되다 보니 깨달은 바가 있다. 내가 부모를 바라보고 대하는 거랑 내가 자식을 바라보고 대하는 거랑은 확실히 틀리다는 거다. 그래서 부모의 마음은 자식이 헤아릴 수가 없다. 부모의 입장이 된 지금이라도 자식으로서 내가 부모를 생각하는 것과 부모님이 나를 생각하는 거랑은 비교할 수가 없다는 얘기다. 그래서 부모의 자식에 대한 사랑은 절대적이고 일방적인 거다. 내가 내 아들을 바라보는 것처럼. 나중에 자식이 잘 되서 뭔가를 해줄 거라는 기대를 해서 잘 해주는 게 아니라 부모기 때문에 그렇다는 거다.

 

나중에 아들이 커서 내 입장이 되면 부모 마음을 헤아려주겠지 하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건 착각이고 헛된 기대다. 내가 지금 부모된 입장에 있지만 내가 부모님을 생각하는 것과 자식을 생각하는 게 이렇게 차이가 나는데 말이지. 내가 이런데 어찌 내가 내 자식한테는 내 마음을 헤아려달라고 기대할 수 있을리요! 그런 기대 안 한다 나는! 이런 부분은 <동경 이야기>에서도 잘 나온다. 마지막에는 아내를 먼저 떠나보내고 노인 혼자 남지만 자식들 보러 동경에 갔다 온 후에 노부부가 나누는 대사에서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노인: 원래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손주들이 더 예쁜 법이지. 당신은 어때?

부인: 당신은요?

노인: 난 자식들이 더 좋은 거 같은데

부인: 그러시군요

노인: 하지만 자식들이 크면서 변한 걸 보면 놀란다니까 (중략) 결혼한 딸은 남같이 느껴져져 (중략) 원래 애들이 부모 기대만큼 자라는 경우가 별로 없지. 뭐, 애들이 예전보다 나아졌단 걸로 만족하자구.

부인: 그래도 다들 잘 살고 있으니까 우리 애들은 잘 자란 거에요

노인: 나도 그렇게 생각해. 우리는 운이 좋았어

 

이게 부모의 마음이다. 부모의 입장이 되어봐서 부모의 심정을 헤아릴 수 있다고는 해도 정작 부모가 아닌 자식이기에 나는 부모의 마음을 헤아릴 수가 없는 법이다.

 

 

나이 들어서 잠깐 잘 한 게 효도일까?

 

혹자는 이렇게 생각해볼 수도 있겠다. 며느리야 나이 들어서 본 거고, 함께 살면서 매일 보는 것도 아닌데 인생을 놓고 봤을 때 뭐 잘 하면 얼마나 잘 했다고 그러냐고. 동경 찾아왔을 때 잠깐 잘 하고, 시어머니 돌아가시고 난 다음에 조금 신경 썼다고 그게 뭐 대단한 거냐고. 그렇게 따지면 효도도 타이밍이네. 크게 느껴질 타이밍에 잘 하면 효도한 사람이 되고 적절한 타이밍에 평소 하던대로 하면 효도가 아니고 말이지. 뭐 그렇게 볼 수도 있다. 그러나 <동경 이야기>에서 설정된 며느리라는 캐릭터가 그렇진 않다. 정말 마음적으로 잘 해준다. 며느리가 일찍 부모를 여의어서 그런지 왜 그런 건지 이유는 영화 속에서 안 나온다. 다만 어떤 이유에서건 이 며느리는 정말 착하게 설정되어 있다. 이건 며느리와 막내(막내 아들 즉 셋째 아들의 여동생)의 대화에서 잘 나타난다.

 

막내: 제 생각에는 언니, 오빠들이 좀 더 있어줄 거라 믿었는데

며느리: 하지만 다들 바쁘니까

막내: 모두 이기적이에요. 어머니에게 항상 바라기만 하더니 이젠 이렇게 떠나려고만 하잖아요

며느리: 각자 자기 일이 있으니까

막내: 언니도 언니 일이 있잖아요. 근데 언니, 오빠들은 먼저 가버리고

며느리: 하지만 아가씨...

막내: 어머니가 돌아가시자마자 유물이나 챙기려고 하잖아요. 이렇게 되면 전 어머니께 죄송하다는 마음 밖에 안 들어요. 조금이라도 생각이 있었다면 그렇게 하지는 않았을 거에요.

며느리: 하지만 아가씨... 나도 에전에는 그렇게 생각한 적이 있었어요. 하지만 자식들은 언젠가는 부모 품에서 벗어나게 되잖아요. 아가씨도 나이가 들면 부모 품을 벗어나 자신의 인생이 있다는 걸 알게 될 거에요. 그러니까 그렇게 서운하게만 생각하지 말아요. 이제 그 분들도 자신의 가족과 일을 돌봐야

막내: 그렇지만 저는 그렇게 살지 않을 거 같아요. 만약 그렇다면 여기 모인 '가족'의 의미는 대체 뭐죠?

며느리: 그럴지도... 하지만 아이들도 커가면서 다 그렇게 변해가죠. 점차 그렇게 변해가는 거죠.

막내: 그럼 언니도?

며느리: 나도 그렇게 변해가고 있는지 모르죠

막내: 인생을 산다는 건 그런 건가요?

며느리: 그래요, 그런 거 같아요

 

 

당연한 거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은 특별하다

 

자식이 부모의 마음을 헤아릴 수 없는 건 지극히 당연하다. 그래서 그건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적어도 <동경가족>이나 <동경 이야기>에 나왔던 자식들은 우리네들의 모습 아닌가! 그걸 나쁘다고 하면 나 또한 나쁜 놈이 되어 버리는 꼴이니. 내가 그렇다고 자기 합리화를 하는 게 아니다. 대부분 그렇게 하니까. 그래서 일반론적인 관점에서 지극히 당연하다고 보는 거고. 그래서 이런 문제는 나는 이렇게 바라본다. 잘못됐다, 잘못되지 않았다는 관점이 아니라 당연하다, 특별하다는 관점으로. 잘못됐다 잘못되자 않았다는 걸 +, -로 본다면 당연하다, 특별하다는 0, +라고 보는 거다. -가 없는 게지. 즉 보통의 경우에 그러는 건 당연하지만 그렇지 않고 <동경 이야기>의 며느리와 같이 하는 경우는 특별하다는 거다. 본받을 만하지만 쉽지는 않다는 거다. 

 

그래서 <동경가족>과 <동경 이야기>가 감흥이 틀린 거다. <동경가족>은 당연한 것들을 보여주고 있고(막내 아들이 비록 좀 더 잘 하긴 했지만 그런 정도는 충분히 우리네들 속에서도 발견할 수 있으니) <동경 이야기>는 당연한 것들 중에 특별난 것이 있으니 그것이 유독 눈에 띄는 법이고. 그래서 래야 되지 않겠니? 라는 메시지를 좀 더 묵직하게 전달하는 거다. 그래서 나는 <동경 이야기>를 더 추천하는 바다. 1953년작이지만 흑백일지언정 전혀 옛날 영화라는 느낌이 안 들고(물론 배경이나 그런 건 옛날이지만) 지금 봐도 아니 먼 훗날 바도 충분히 괜찮을 영화라 보고 내용 특히 대사들이 더 낫기 때문이다. 한 번 보길 권한다.

 

 

예고편

 

 

나의 3,434번째 영화. 개인 평점은 9점. 참고로 <동경가족>은 8점이다. 아래 풀영상은 자막이 없으니 일어로 볼 수 있는 이들만 보길.

 

 

풀영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