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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영화

모노노케 히메: 애들 애니인데 애들이 이해할라나 싶은 애니 (1997)


일본 애니는 그닥 좋아하지 않아서 안 봤던 건데, 요즈음 개봉하는 영화들 중에 볼 영화가 없다 보니 오래된 영화들 챙겨보다가 볼까? 싶어서 봤던 애니다. 아래 리스트에 있길래 말이다.




미야자키 하야오 작품은 내 취향이 아니지만


미야자키 하야오하면 떠오르는 게 <미래소년 코난>인데, 어릴 적에 TV를 통해서 봤던 추억 때문이다. 나머지는 개인적으로 별로여서 딱 머리 속에 떠오르지 않거든. <이웃집 토토로>,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하울의 움직이는 성>, <벼랑 위의 포뇨> 정도 봤는데 내 평점은 별로 안 좋다. 내가 왜 일본 애니를 선호하지 않는지 알겠지? 나랑 안 맞아. 내 취향이 아니란 얘기. 근데 <모노노케 히메> 이건 조금 얘기가 틀리네. 이거 애들 애니 맞아? 캐릭터 설정이나 그런 게 좀 눈에 띄어서 말이다. 애들이 보기에는 그런 걸 알아내기가 힘들 건데 말이지.



인간이면서 인간을 싫어하는 모순된 존재, 원령공주



여주인공이라고 해야 하겠지? 원령공주니까. 인간으로 태어나 늑대의 손에 자란 늑대 소녀인데, 인간을 혐오한다. <모노노케 히메>는 크게 '인간 vs 자연'이란 프레임으로 볼 수 있는데, 인간이면서 자연에 속한 캐릭터다. 그래서 인간을 섬멸하려고 한다. 인간이면서 말이다. 유일하게 인간이면서 적으로 생각하지 않는 인물이 아시타카다. 이 캐릭터를 잘 드러내주는 대사가 이거다. 마지막에 아시타카와 나누는 대화 중의 일부.


넌 좋아하지만 인간은 용서 못해



인간에게는 선하지만, 자연에게는 악한 존재, 에보시



에보시는 인간을 대표하는 캐릭터다. 자연을 파괴하면서 인간의 삶을 풍요롭게 만드려는. 그러나 악한 존재로 그려지지 않는다. 나무를 베면 숲을 훼손하는 거지만(나무를 벤다고 해서 무조건 숲을 훼손하는 건 아니지만 따지진 말고) 우리가 가구를 만들기 위해서 나무를 벨 수 밖에 없듯이 인간에게는 지극히 당연한 행위를 하는 인물이고, 욕심 많은 인간들 사이에서 서로 공유하고 평등한 삶을 살 수 있는 터전을 만드는 인물이다. 단지 <모노노케 히메>에서 대비되는 두 가지. 인간과 자연. 이렇게 두 축으로 나누었을 때, 인간을 대변하는 인물이라는 게지. 그러나 에보시란 캐릭터도 마지막에는 인간과 자연이 조화롭게 살 수 있다는 희망적인 캐릭터로 바뀐다. 어떤 일련의 사건을 겪고 나서 말이다. 그게 잘 드러나는 마지막 대사.


면목이 없군. 들개들 덕에 난 목숨을 건졌다.

보답을 해야겠군. 아시타카를 마중 나가가.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자. 더 좋은 마을을 세우자.



인간이면서 인간과 자연의 중심에 있는 존재, 아시타카



<모노노케 히메>의 주인공 아시타카. 인간이면서 인간과 자연이 더불어 살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진 인물로 때로는 원령공주 편을 때로는 에보시 편을 들기도 한다. 딱 중립. 중립이라고 해서 무조건 중간이란 게 아니다. 한쪽으로 치우쳐 있으면 반대쪽으로 치우쳐야 밸런스가 맞지. 중간자적인 입장에 있는 캐릭터. 그가 원령공주와 한 마지막 대화 속에 이런 부분이 잘 드러난다.


그래도 좋아. 산(원령공주)은 숲에서 난 타타라 마을에서 함께 살아가자.

야쿠르와 함께 만나러 갈께.



삶과 죽음을 함께 쥐고 있는 시시신



시시신이자 다다라신. 위 사진은 시시신에서 다다라신으로 변하는 모습. 밤이 되면 다다라신으로 변한다. 자연을 관장하는 신으로 비춰지지만 자연 속에 인간이 있다고 하면 인간과 자연을 모두 관장하는 신이라고 봐도 무방할 듯. 그래서 시시신은 몸은 사슴이지만 얼굴은 사람 형상을 하고 있는 게 아닐까 싶다. 삶과 죽음에 관여하기도 하는데, 결국엔 자신이 죽음으로 인해 인간과 자연이 조화롭게 살 수 있게 되는 계기를 만들어준다. 그러니까 인간만으로는(원령공주, 에보시, 아시타카) 자연과 조화롭게 살 수 없기에 만들어진 캐릭터.



근데 문제는...


물론 위에서 언급된 캐릭터만 있는 건 아니지만 주요 캐릭터 설정이 이렇다는 거다. 근데 문제는 이거 애들 애니 아니었나? 애들이 이걸 보고 나름 감독의 의도한 메시지를 잘 이해할까 싶다는 거. 애들은 그냥 재미있냐? 없냐? 여부로 기억하지 않을까 싶다는 거다. 그게 의문이란 얘기지. 애들한테는 유치한 게 잘 먹히거든. 권선징악이 뚜렷하고 영웅은 항상 이겨야 하는 식으로 말이지. 아이들에게는 아이들의 눈으로 봐야할 필요가 있는데 <모노노케 히메>는 뭐랄까? 아이들에게 뭔가 메시지를 전달하려고 어른들이 너무 많이 생각했다는 느낌? 내가 종종 언급하는 바이기도 하지만, 어떤 작품이 작품성이 있다 없다, 영화 역사상(여기서는 애니 역사상) 어떤 의미를 갖는다는 것보다 더 중요한 건 이 작품을 본 관객들이 감독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전달했느냐는 거거든.


애들이 보는 애니인데 어른들이 봐야 이해가 된다면 과연 그게 잘 만들어진 애니라고 할 수 있을까? 이 애니가 어른들을 위한 애니라고 하면 몰라도 어른들을 위한 애니라고 하기엔 너무 초딩틱한 내용인데? 어른들이 역시 미야자키 하야오. 역시 <모노노케 히메> 한다고 해도 정작 이 애니 누구를 위해서 만들었나 하는 생각이 머리 속에서 떨쳐지지 않는다. 


+

<모노노케 히메>를 본 후에 자꾸 생각나는 캐릭터가 있다. 틱 장애가 걸린 듯이 고개를 까딱까딱하면서 소리를 내는 그 캐릭터. 귀엽기도 하고 말이지. ㅋㅋ



예고편



나의 3,441번째 영화. 개인 평점은 8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