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밌을 거라 기대했고, 기대만큼 재밌었다. 가끔씩 일본 영화를 골라서 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일본 영화에는 일본 영화만의 맛이 있다. 뻔한 스토리지만 재밌다는 거. 뻔한 메시지지만 효과적으로 전달된다는 거. 한 번 보길 권한다.
직업에 임하는 자세
나는 일본의 장인 정신을 매우 높게 산다. 장인 정신의 기본은 직업에 임하는 자세다. 우리나라와 같이 공부 잘 하고 이과생이면 의대를 가라는 그런 교육 시스템에서는 얻기가 힘든 정신이다. 왜 의대를 가라고 하는가? 의술로 사람의 생명을 구하라고? 아니다. 돈 많이 벌어라고 가라는 거 아닌가? 이런 교육 시스템에서 직업 정신을 강조해봤자 그게 제대로 전달이나 되겠냔 말이다. 물론 다 그런 건 아니고 사람에 따라 틀리긴 하겠지만 드물어서 하는 소리지. 말로는 어떤 직업도 다 의미 있다는 식으로 얘기하지만 말 뿐이다. 돈에만 가치를 두는 편중이 심하단 얘기다. 돈 이외의 다른 가치들만 중요시하란 얘기가 아니라 돈도 여러 가치들 중에 하나로 생각할 필요가 있다는 얘기지.
지금은 나랑은 인연을 끊었지만 한 때는 나를 참 잘 따랐던 사람이 있다. 그 사람에게 나는 언젠가 이런 질문을 던진 적이 있다. "당신은 뭐하는 사람입니까?" 자신이 내세울 수 있는 게 무엇이고 나는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인지 하나만 얘기해보라는 의미였다. 왜? 제대로 할 줄 아는 건 하나 없고 오직 돈과 인맥에만 미친 듯이 보였으니까. 스스로도 그걸 인지하고 있는지 있다면 솔직하게 그렇다고 얘기할 수 있는지 나는 그걸 물어봤던 거다. 직업에 대해서 그닥 깊이 있게 생각해본 적도 없고 그냥 돈만 쫓아서 사는 건 아닌지. 그 속에서도 나름은 가치를 지킨다곤 하지만 그건 울림 없는 말에 지나지 않는다. 그냥 어떤 직업도 다 의미 있다는 식으로 하는 말과도 같은...
내 업이 무엇인지를 아는 것 자체가 중요한 건 아니다. 다만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있는지, 얼마나 깊이 있게 해봤는지는 결국 인생에 대해서도 깊이 있는 생각을 해본 사람일 수 있기에 그런 거다.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사는 사람이 많다고 내가 느끼는 건 생각 자체를 귀찮게 여기거나 나름은 생각한다고 하지만 살아있기에 뇌가 활동하는 것이지 진정한 의미에서 생각을 하는 게 아니니까 그런 거다. <우드잡>에서 임업이라는 다소 생소한 업종을 다루고 있는데, 생소해서 재밌었던 부분도 있었지만(예를 들면 벌목하는 방법) 영화 속 캐릭터들이 직업에 임하는 자세를 보면서 나는 일본의 장인 정신이 떠올랐다.
사는 게 다 그런 거지?!
벌목한 나무를 1그루가 80만엔이나 하는 걸 보고 주인공이 이런다.
주인공: 그 참나무 1그루 쓰러뜨리니 80만 엔이에요. 오늘 판 가격을 모두 더하면…(웃음) 여기 산을 다 베어내면 억만장자잖아요!
감독관: 뭐 그런 셈이지
주인공: 근데 왜 이런 차 타세요? 벤츠 타자고요. 벤츠!
임업노동자: 너 진짜 바보냐? 니가 살아갈 동안 밖에 생각 안 하지? 선조가 심으신 나무를 전부 다 팔면 내 다음 세대, 그 다음 세대는 어쩌라고? 100년도 못 가서 대가 끊겨.
감독관: 그래서 묘목을 계속 심으면서 소중히 키워야 돼. 이상한 일 같겠지만 말야. 농부라면 품과 시간을 들여 지은 채소가 얼마나 맛나는지 먹어보면 알겠지만 임업은 그렇게 안 되지. 일을 잘 했나 못 했나 결과가 나오는 건 우리들이 죽은 후야. 뭐 사는 게 다 그런 거지.
사는 게 다 그런 거라고는 하지만 우리는 너무나도 당연한 걸 도외시하고 사는 건 아닌가 싶다. 나만 잘 먹고 잘 살면 되었다는 생각이 많으니까 말이다. 나만, 내 가족만, 내 주위만이 아니라 내가 죽고 난 다음 세대까지 바라보면서 현재를 살아간다는 얘기를 지극히 당연한 거라고 얘기하는 걸 들으면서 참 많은 생각을 하게 되더라. 최근에 봤던 일본 애니메이션 <모노노케 히메>도 떠오르고... 며칠 전 지인과 얘기하다가 지인이 나보고 그러더라. "인생 뭐 있어? 이렇게 살다 죽는 거지." 그래서 내가 그랬다. "그래도 나는 그렇게 생각 안 한다. 뭔가 의미를 부여하고 싶고 그래야 또 그만큼 열정을 갖고 임할 거 아니냐고. 그래야 내 삶이 후회가 없을 거고." 그 의미가 대부분의 경우 돈이 되어 버린 세상이기에 오히려 이런 대사 한 마디가 참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거 같다.
주연배우들
남주인공은 소메타니 쇼타. 난 모르는 배우다. 내가 일본 영화를 그리 많이 보는 편은 아닌지라 월드 스타가 아닌 이상 잘 모르지. 근데 소메타니 쇼타를 보니까 떠오르는 한국 배우 있다. <미생>에서 한석율 역을 맡은 변요한. 좀 비슷한 캐릭터이고 좀 닮은 거 같기도 하고. 여주인공은 나가사와 마사미. 곱다. 참하고.
예고편
나의 3,447번째 영화. 개인 평점은 8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