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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3,591번째 영화. 개인 평점 9점. 재밌다는 얘기는 많이 들었었다. 더불어 좀 무섭다 혹은 좀 놀래키는 장면이 있다는 얘기도 들었다. 들은 얘기는 많은데 정작 나는 이제서야 봤다. 요즈음에는 내가 영화에 그닥 큰 시간을 할애 안 해.(이러다 언젠가 또 몰아쳐서 본다이~) 스토리에 흡입력이 있어 2시간 36분이라는 긴 러닝타임이 전혀 지루하지가 않다. 말이 쉬워 흡입력 있는 스토리지 이렇게 만드는 게 쉽지가 않다. 그러나 그런 스토리를 만들면, 러닝타임이 길어도 전혀 길게 느껴지지가 않는 법. 시간은 상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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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스토리에 충실한 영화를 좋아한다. <곡성>은 장르 자체가 스릴러다 보니 더더욱 스토리에 충실할 수 밖에 없는 영화. 그렇지 않으면 폭망하기 쉬운 게 스릴러물이다. 스릴러의 묘미는 단연 반전에 있다. 그러나 관객들의 수준이 상향 평준화된 지금 어지간한 반전으로는 관객들에게 감흥을 주지 못한다. 그런 걸 고려해봤을 때, <곡성>은 잘 만든 영화다. 마지막까지 이 사람일까? 저 사람일까?를 예측하기가 쉽지 않다.(마지막에 교차 편집한 부분이 <곡성>에서 극적 긴장감이 최고조에 이르는 부분이다.)
사실 스릴러은 초중반에 범인(?)이라고 생각되는 사람은 범인이 아닌 경우가 많다. 그래야 반전을 줄 수 있기 때문. 그러나 마지막에 짠 하고 한 순간 나타나는 범인을 보고 허무하게 느끼는 경우도 많다. 고로 스릴러는 그런 긴장감을 서서히 고조시키면서 끌고 가다가 마지막에 뒷통수 한 대 때리는 식의 결말을 줘야 되는데, 그렇게 만들기 쉽나. 그래도 그런 스토리 찾아보면 꽤 있다. 소설이나 만화에. 만화는 일본 만화. 한국 웹툰 말고. 한국 웹툰은 글쎄. 내가 많이 본 게 아니라 단정지어 얘기는 못 하겠는데 괜찮다 해서 봤더니만 내가 볼 때는 수준이 쏘쏘. 그래서 안 본다.
#2
<곡성>은 원작이 없다. 즉 <곡성>이 원작이란 얘기. 시나리오 누가 썼나? 나홍진 감독 본인이 썼다. 공동도 아니고 혼자. 공동의 경우에 누가 메인 각본가인지 알 수가 없잖아. 자신이 유명한 감독이라고 각본에 조금 참여했다고 이름 올리는 경우도 있을 수 있고.(이런 류의 사람을 나는 양아치라고 부른다.) <인셉션>이란 영화 알 거다. 이 영화도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이 혼자서 각본 쓴 거다. 나홍진 감독의 전작 중에 알려진 걸 보면 <추격자>, <황해>가 있다. 이 모두 나홍진 감독이 각본을 썼다. 내가 볼 때 이 정도면, 이제 나홍진 감독의 영화는 믿고 봐도 될 거 같다.
남이 쓴 시나리오 자신이 감독하면서 자신은 유명세를 타고, 시나리오 작가는 찬밥 신세가 되기 일쑤인데,(물론 그런 작가들 중에서 감독보다 대우를 받는 경우가 아주 아주 아주 드물게 있긴 하지만) 이렇게 감독 스스로 자신이 만들고자 하는 영화의 각본을 쓰는 건 남다르다. 감독만 하는 감독보다 한 수 위라 나는 생각한다. 물론 감독이 감독만 잘 하면 되지 할 수도 있겠지만, 감독도 잘 하고 각본도 잘 하는 게 더 낫지. 그리고 각본까지 자신이 직접 쓰는 감독은 자신의 타이틀을 함부로 쓰지 않는다. 즉 자신의 이름이 브랜드가 된다는 얘기. 그래서 믿고 봐도 될 듯.
#3
우리나라 여건상, 헐리우드 블록버스터급의 막대한 자금을 투입할 수가 없는 상황이라면, 이렇게 스토리로 승부하는 영화를 만드는 게 바람직하다 본다. 그게 더 투자 대비 수익률이 좋고, 글로벌 시장 진출도 용이하기 때문. 물론 그렇게 만들기가 어려워서 그렇지.
#4
스토리 상의 아킬레스 건
다소 억지스러움(?)이라고 할 수 있는 부분이 있는데, 이 부분은 스포일러일 수도 있으니 영화를 보고 나서 보길. 영화의 주제와 연관성이 있는 부분이기 때문에 내가 얘기 안 할래야 안 할 수가 읍따. 천우희는 곽도원에게 얘기한다. 니가 의심해서 그런 거라고. 근데 내가 곽도원 입장이라면 천우희에게 이렇게 얘기했겠다. 의심받을 행동 하지 말라고. 왜 하필 천우희는 그런 옷을 입고 있었을까? 의심받기 딱 좋게. 그래서 곽도원이 니가 했구나 했을 때, 아니라고 극구 부인하던 천우희. 그렇게 의심을 받을 만한 행동을 한 자신의 잘못은 생각하지 않고 왜 곽도원에게 니가 의심해서 그런 거라고 하냔 얘기.
왜 그 옷을 입고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영화에서 나오지 않는다. 그래서 영화의 주제를 생각해볼 때, 조금은 억지스러움도 다분히 있다는 걸 얘기하고 싶다. 처음부터 의심하는 사람이 있겠냐고. 뭔가가 있으니 의심하는 거지. 자신을 믿어달라고 얘기하려면 그에 맞는 언행일치가 되어야 한다는 것. 오래 겪은 사람이 아니라고 한다면, 뭘 보고 믿을 건데.
#5
그래도 재밌다. 한국 영화 중에 이런 영화 만나기 쉽지 않잖아? 그렇다고 <설국열차>와 같이 메타포가 난무하는 영화도 아니기에 대중들이 즐기기 딱 좋고. 대신 이런 저런 얘기들이 양산되다 이게 맞네 저게 맞네 하는 상황도 벌어질 듯. 원래 어려운 거에 대해서 얘기할 때는 아무 소리 못 하다가 쉬운 얘기할 때는 이런 저런 얘기하기 쉽지. 개인적으로 김제동을 좋아라하긴 하지만, 토론 프로그램 같은 데는 안 나왔으면 하는 게 나와서 할 얘기가 없거든. 김제동이 말 잘 하긴 하지만 그 바른 말은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얘기를 맛깔스럽게 하는 데에 있거든. 바른 생각을 갖고 하는 얘기긴 하지만 지식이라고 볼 순 없지. 그래서 토론에 나오면 가만히 있을 수 밖에 없는 거란 얘기.
그래서 영화 매니아들 중에는 어려운 영화를 보고 이러니 저러니 얘기하는 걸 즐기는 애들이 있는 거 같은데, 나는 이런 애들이 더 싫어. 그게 마치 자신의 지식인 양 떠들어대는데 그런 건 지식이 아니거든. 지식이 아닌데 지식인 척 하니 우스운 게지. 그만큼 무식하다는 반증이란 얘기. 어려운 영화에 대해서 이런 저런 얘기를 하면 마치 자신이 유식한 것처럼 보인다고 생각해서 그러는 거라 결국 살면서 자신은 한 번도 유식하다 인정받은 적이 없다는 얘기다. 그런 애들 때문에 내가 그런 애들을 혐오하게 된 거다. 그러다 보니 내가 다소 과하게 표현하는 거고. 사실 나는 어떻게 해석을 하든 그런가부다 하는 입장인데. 정답이 없는데 정답을 찾으려고 하는 거 자체가 나는 의미없다고 생각하니까. 영화가 수학은 아니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