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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영화

오펜하이머: 아메리칸 프로메테우스

나의 4,112번째 영화. 개인 평점은 7점.

이거 영화관에서 봤었는데, 보다가 잤다. 왜 그렇게 졸린지. 피곤하기도 했지만, 글쎄 좀 지루했던 감이 있었어. 크리스토퍼 감독을 좋아하지만 그렇다고 그의 모든 작품을 좋아하는 건 아니다. 게다가 최근 들어서는 내 취향과는 사뭇 다른 영화도 나오고. 예를 들자면, '덩케르크'가 그렇다. 그래서 '오펜하이머'도 그런 류겠거니 하고 다시 볼 생각 안 하다가 연말에 쉬면서 봤는데, 또 이 때는 괜찮게 봤거든? 영화를 지금까지 그렇게 많이 보면서 느끼는 바지만, 같은 영화라고 해도 언제 어떤 상황에서 보느냐에 따라 재미가 달라지는 거 같다. 

 

첫번째 아이러니
1st Irony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에서 우라늄을 수출하지 않자, 핵분열을 이용한 폭탄을 만든다고 생각하여 미국의 주도 하에 영국과 캐나다가 참여하여 핵무기 개발을 하는 게 맨해튼 프로젝트로, 1942년에 시작되었다. 사실 독일은 1939년부터 우란프로옉트(우라늄+프로젝트 합성어)로 이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었으니, 3년이나 뒤늦게 시작한 거라 이를 따라잡기 위해 당대 최고의 물리학자들을 불러서 드림팀을 구성하여 막대한 예산(당시 20억 달러, 현재 가치 40조 정도)을 투입해서 극비리에 진행했던 것. 영화 속에 등장하는 많은 물리학자들이 훗날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들이다.(참고로 주인공인 오펜하이머는 노벨상을 수상하지 못했다.)

3년이나 먼저 시작한 독일은 왜 핵무기를 개발하지 못했을까? 영화 속에서는 감속재(핵분열 시 생성되는 고속의 중성자 속도를 감속시키기 위해 쓰는 재료)로 오직 중수만 사용하려고 했다고 나오는데, 중수(액체) 외에도 흑연(고체)도 가능했지만 독일에서는 초기에 잘못된 실험으로 인해 흑연은 배제했던 거다. 그 외에도 여러 이유가 있는데, 이는 시대적 상황을 알아야 하니 검색해서 살펴보면 될 듯. 여튼 트리니티 실험 성공으로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이 투하되면서 제2차 세계대전은 끝난다.

핵분열 시에 생기는 에너지를 좋은 데다가 활용할 생각을 했다면, 이렇게 빠른 결과를 가져왔을까? 무기로 만들어서 전쟁에서 승리해야지 하는 생각 때문에 이런 빠른 결과를 가져온 것은 아닌가? 이런 걸 생각하면 참 아이러니하다. 때론 나쁜 생각이 빠른 결과를 가져오기도 하니. 그러나 꼭 빠른 게 좋은 건 아니라고 본다. 느려도 다같이 잘 사는 게 더 의미있지만 세상은 그렇게 돌아가지 않더라.

 

두번째 아이러니
 2nd Irony

영화 속에서도 잘 나오지만, 처음에 핵분열의 연쇄 반응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 세상을 파괴할 거라는 우려. 에드워드 텔러(훗날 핵융합 반응을 이용한 한 세계 최초의 수소폭탄을 개발한다.)가 제시했던 건데, 웃기게도 핵분열 반응을 이용한 원자폭탄이 그러하면, 본인이 연구하던 수소폭탄은 더 쎈데? 근데 이 장면을 볼 때 들었던 생각. 작년부터 많은 주목을 받고 있는 AI가 인간을 위협한다는 것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급속도로 발전하는 AI의 위력(?)을 모르는 바는 아니나, 그걸 다루는 건 인간이기에 나는 그렇게 되지는 않을 거 같다. 너무나 영화에서 그런 걸로 디스토피아적인 미래를 그리고 있다 보니 그런 거 같다는.

최초의 수소폭탄 실험은 1952년 11월 1일 미국에서 시행되었으며, 수소폭탄의 위력을 잘 알고 있던 오펜하이머는 이를 반대하다가 공산주의자로 낙인 찍히며, 당시 맡고 있던 원자력위원회의 자문위원장에서 짤린다. 당시 실험에 사용된 폭탄(사실은 폭탄이라기 보다는 시설에 더 가깝다.)은 히로시마에 투하한 원자폭탄의 500배 성능이었다. 이듬해인 1953년 8월 12일 소련에서도 수소폭탄 실험에 성공한다. 역대 수소폭탄 중에서 가장 위력이 쎄서 유명한 건 1961년 10월 30일 실험한 차르 붐바이다. 이거 터지면 그냥 대도시 하나 사라진다고 보면 될 정도인데, 그럼 그 이후 그보다 더 쎈 수소폭탄은 없을까? 만들 순 있겠지, 실험을 안 할 뿐이겠지.

이렇게 강력한 무기를 만들고 나니, 이젠 세계대전급 전쟁은 일어나지 않는다. 핵무기를 사용하게 되면 상대만 죽는 게 아니라 나도 죽는 꼴이 되니까. 물론 핵 보유국이 그렇게 많지는 않지만, 소소한 전쟁이 일어난다고 해도 핵무기를 사용하진 않으니. 핵무기를 사용하기 위해서 만들기 보다는 견제하기 위해서 방어하기 위해서 갖고 있다고 봐야할 듯. 서로 다 없애자고 조약을 체결한다고 해도 그걸 어떻게 믿어? 몰래 만들어서 보유할 수도 있고 말이지. 상대를 죽이기 위해서 만든 핵무기인데, 이로 인해 전쟁을 하기가 힘들어진다. 이 또한 아이러니하다.

 

정치·외교
Politics & Diplomacy

 

내가 반백년 조금 못 되게 살아보니 사람들이 모여서 사는 이 세상엔 실력만으로는 안 되더라. 간혹 그런 사례를 보기도 하지만 극소수이고, 실력으로 뭔가를 이룬다 해도 결국 이해 관계로 인한 정치를 할 수 밖에 없고, 그게 일개 기업이 아닌 국가면 외교가 되고. 내가 작년에 얻은 것 중에 하나가 인맥이다. 나는 독고다이로 살아서 인맥은 실력 없는 이들이 갖는 무기 정도로만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더라. 그 무기를 어떻게 활용하느냐는 건 나의 몫이고, 같은 일이라도 쉽게 해나갈 수 있는 부분도 있고, 또 어떤 일이든 혼자서는 해낼 수 없으니까. 그래서 마인드도 바꾼 거고. 

근데 영화에서 보듯, 옳은 일을 추구해도 결국엔 이익이 되는 일을 추구하는 이들에게 지더라는 거.(사실 오펜하이머란 인물에 대해서는 약간 다른 견해도 있긴 하지만 여러 내용들을 크로스체크하다 보면 수소폭탄에 대해서는 반대했음에는 이의를 달기 힘들 듯 하다는 생각에.) 그런 거 보면 씁쓸하다. 뭐 나라고 항상 옳은 길, 바른 길을 택하면서 살았던 인간이라고 할 수 있냐라는 질문에는 그렇다고 할 순 없겠지만, 그래도 흑백논리처럼 이다, 아니다가 아니라 어느 정도냐로 한다면 나는 그래도 옳은 길, 바른 길을 택하려고 노력했고, 그런 일화들도 많다. 그러나 그게 큰 의미가 없는 듯 하더라. 뭐랄까? 마치 나 예전에 이랬던 사람이야? 뭐 그런 류의 얘기로 밖에 안 되는 듯 하고.

그렇다고 해서 이익이 되는 일만 추구하려고 하는 게 더 낫다고 하는 건 아니다. 적어도 그것만 추구하는 사람이 되고 싶지는 않지만, 그런 부분도 고려는 해야 한다는 걸 깨우쳤던 게 작년 한해가 아니었나 싶다. 그건 돈을 많이 벌어서 남들에게 인정받으려고 그러는 게 아니라 즉 남의 눈을 의식해서가 아니라 개인의 행복, 가족의 행복을 위해서 어느 정도의 세상의 눈도 수용할 줄 알아야 한다는 의미다. 


영화는 실화에 충실해서 만든 거 같다. 그래서 영화에 대한 얘기를 해봤자 큰 의미는 없을 거 같아 내가 실화 기반의 영화일 경우에 항상 실제는 어떠했는지 찾는 과정 속에서 드는 생각을 그냥 끄적거린 건데, 길어졌네. 영화가 그렇게 재밌다고는 할 수 없어 보이는데 평점이 높은 건,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 작품이야! 니가 감히 크리스토퍼 감독 작품을 폄하해? 하는 그런 심리가 반영된 게 아닌가 싶다는 생각도 든다. 재미없는 건 재미없다, 재미있으니 재미있다 얘기할 수도 있어야지. 아. 그렇지. 모난 돌이 정 맞는다고. 방금 전에 세상의 눈도 수용할 줄 알아야 한다고 해놓고선. 어쩌겠는가. 그게 난데. 그래도 그런 거 반영한 게 7점이라고... 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