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싶었던 전시였다. 하이퍼 리얼리즘(극사실주의)의 론 뮤익 전시. 7월 즈음까지 한다고 해서 이제 가면 사람 별로 없겠지 해서 갔더니 흐미~ 사람 무쟈게 많더라. 입장을 긴 줄 서서 해야할 정도로. 그만큼 인기가 있어서 그렇겠거니 해도 너무 줄이 길어서 왜 그럴까 생각해봤는데, 전시 입장료가 싸서 그런 듯. 성인 5,000원, 청소년 3,000원, 어린이 무료. 역시 국립현대미술관이라서 그런지 저렴한 입장료는 맘에 듦. 게다가 이 전시는 어떤 개념을 이해하고 그런 거 필요 없거든. 그냥 보고 와~ 하면 그만인지라.
론 뮤익의 작품들은 실제 크기와 1:1 사이즈가 없다. 실제보다 훨씬 크거나, 훨씬 작거나. 첫번째 본 작품 Mask II는 본인의 43세 자화상인데 엄청 큰 작품(본인 얼굴의 4배)이었다. 뒤로 돌아가서도 봤는데, 뒤는 텅 비어 있다. 정말 디테일이 엄청나다. 머릿카락 한올한올, 피부 주름, 수염 등 정말 진짜 같은 그러나 진짜라고 생각되지는 않는(크기 때문) 작품들. 디테일을 보는 재미가 있다. 그도 그럴 것이 론 뮤익은 원래 인형 제작을 하다가 15년 동안은 특수효과/분장을 한 이력이 있기 때문.
두번째는 실제보다 작은 Woman with Sticks라는 작품이었다. 나뭇가지 한 묶음을 들고 있는 여인의 담담하지만 힘든 기색이 역력한 표정 뿐만 아니라 그녀의 몸매 또한 정말 리얼했다. 게다가 음부의 털까지. 아무리 작품이라지만 여인의 몸이기에 눈을 어디다 둬야할 지가 참 애매하더라. ㅎ 갑자기 이거 보면서 궁금했던 게 누군가 모델이 있어서 그걸 묘사했나 싶더라. 너무 그 표정이 리얼해서 이게 단순히 본인의 상상만으로 만들었다고 하기 힘들 정도라.
세번째 본 작품은 in Bed. 엄청난 크기의 작품이다. 하루를 마감하면서 침대에 누워서 자기 전에 어떤 고민이 있어 창밖을 바라보는 듯한 눈빛으로 고뇌하는 여인. 크기가 거대해서 이 작품 어떻게 옮겼지 하는 생각이 들더라. 내 생각에는 상반신 부분을 제외하고는 이불 속은 다른 장치를 사용한 게 아닐까 싶다는. 너무 커서 전체가 한 덩어리면 옮기기 쉽지 않을 듯 해서 말이다. 이 작품은 어린 시절 어머니의 모습을 떠올려서 만든 작품이라고 한다.
네번째 본 작품은 Chicken/Man이다. 어떤 상황인지는 모르곘지만 할아버지가 닭을 노려보고 닭 또한 그런 할아버지를 보고 있는 작품이다. 이건 실제보다 축소된 작품인데, 작아서 그런지 할아버지의 검버섯까지 표현한 세밀함이 참 볼 만했다. 그냥 옷을 입은 할아버지였다면 묘사하는 게 좀 덜 힘들었을텐데, 발가벗은 할아버지다 보니 몸 전체에 난 검버섯 일일이 묘사하려면 정말 고생 많이 했을 듯 싶었던 작품.
다섯번째 작품은 Young Couple. 전체적으로 보면, 그냥 젊은 연인 같지만, 뒷편으로 보면 남자가 여자의 손목을 잡고 있고, 아래서 올려다보니 여자는 눈치 보고 있고 남자는 내려다보면서 입술을 내민 모습을 보니 키스 타이밍? 그것도 첫키스? 표정이 너무 세밀하다 보니 그렇게 그렇게 느껴지더라. 그리고 남자 다리에 난 털도 정말 리얼했고. 반바지가 아니라 긴바지였다면 이런 디테일을 할 필요가 없을 건데, 굳이 반바지를 입혀서 다리 털까지 만드는 수고를 한 게 참.
여섯번째 작품은 Ghost. 이걸 왜 Ghost로 했을까 싶어서 찾아봤는데, 그래도 잘 모르겠다. 근데 찾아보면서 알게 된 건, 이게 전시될 때마다 조금씩 다르더라는 거. 예를 들자면 머리 스타일이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전시되었을 때는 긴 말총 머리같이 늘어뜨린 거지만, 다른 데 전시된 사진보면 짧은 말총 머리도 있고, 얼굴도 좀 달라. 실제 사람보다 크게 제작된 작품인데, 발톱이며, 새끼 발가락이 꺾인(여자들은 구두 신다 보니) 모습까지 디테일은 역시나.
일곱번째 작품은 Woman with Shopping. 이건 실제보다 작게 제작된 작품이다. 쇼핑이라 해서 사치품이 아니라 생필품을 쇼핑한 거고, 갓난 아이를 안고서 쇼핑하고 있다 보니 표정 또한 그리 밝지가 않다. 살려고 사는 게 아니라 살아지는 듯한 그런 느낌. 하고 싶어서 하는 게 아니라 해야만 하기 때문에 한다는 느낌? 론 뮤익의 작품을 보면 단순히 디테일만 보는 게 아니라 표정을 통해서 느끼는 부분들이 많다.
여덟번째 작품은 Mass. 실제 사람만큼 큰 두개골 여러 개를 쌓아올려 뒀는데, 전시하는 공간에 따라 쌓아올린 형태가 조금씩 차이가 있더라. 이 작품은 론 뮤익이 파리의 지하 무덤을 방문하고 나서 제작한 거라고 하는데, 커리어상 중요한 작품이라고. 그런데 나는 크게 감흥이 없더라. 두개골의 디테일함이 떨어진다기 보다는 미묘한 안면 근육의 움직임을 포착하여 묘사한 표정에서 느낄 수 있는 감정이 없다 보니 그런 듯. 두개골의 개수는 100개. 하나당 1.5m. 총 무게는 5톤.
아홉번째 작품은 Man in a Boat로 다른 전시실에 전시되어 있었다. 이전 전시실은 밝았던 반면 이 전시실을 어두웠는데, 작품에 조명을 비춰서 작품을 감상하는 데에는 지장이 없었다. 배에 앉아서 뭔가를 주시하고 있는 남자. 뭘 보고 있는지에 대한 관심보다는 동성이기에 자세히 살펴봤는데, 남자의 성기도 아주 세밀하게 잘 묘사했더라. 포경수술 했네. ㅎ 표정도 표정이지만 작품들 모두 피부톤이나 몸의 형태가 너무 사실적이라 보는 재미가 있다.
마지막 열번째 작품은 Dark Place. 실제보다 상당히 큰 얼굴인데, 이 작품은 다른 작품과 달리 어두운 공간에 전시되어 있고 조명이 있긴 해도 가까이 가야 볼 수 있는 작품이다. 이 작품 감상하기 위해서 줄을 많이 서야 했다는. 사실 줄이 길어서 좀 세세하게 보고 싶었지만 사진 하나 제대로 찍어서 감상할 수 밖에 없었다. 탈모가 시작된 헤어, 눈가 주름, 살 빠진 볼, 깎지 않은 수염 등 디테일이 볼 만. 사진을 저렇게 찍어서 그렇지, 실제로 보면 어두운 공간에 전시되어 있어 저렇게 또렷하게 보이진 않는다.
뭉크전 이후로 본 첫 전시인데, 보고 싶었던 전시라 종료되기 전에는 가서 봐야지 하다가 보게 되었는데, 만족스럽다. 게다가 착한 입장료까지. 작품의 디테일로 인해 작품 하나당 제작하는 데에 꽤나 오랜 시간이 걸리고, 그러다 보니 작품 수도 많지는 않은 편이지만, 여느 전시에 비해 대중성을 갖고 있는 전시가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