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순간에 연락이 두절되어 이제는 어떻게 살고 계시는지 알 수가 없는 분이 있다. 아마도 내가 연락처를 제대로 보관하지 않았던 탓이라 생각한다. 이렇게 인연의 끈을 쉽게 놓아버리게 된 내가 가끔씩 그 분이 생각나면 후회스럽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그런 사람들이 인생을 살면서 몇 명이 있는데, 언젠가 꼭 만나봤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 혹시라도 내가 유명해진다면 꼭 찾고 싶은 사람들이라... 어쨌든 그 멘토는 다름 아닌 내 영어 과외 선생님이셨다. 나는 은사님이라고 표현한다.
재수하기 전이니 1994년이었을 것이다. 그 당시에 부산 대연동의 대연고인가 하는 데서 전교 1등(문과)하는 친구와 같이 둘이서 과외를 받았었는데, 사실 워낙 날라리 생활을 하다가 대학 가자 해서 공부하니 공부가 됐겠냐만은 내가 내 성격상 장점이 되기도 하는 경쟁 심리 덕분에 지고 싶지 않다는 생각에 열심히 했었다.
사실 그런 나를 보면서 같이 과외를 받을 적에는 내가 뒤져있었지만 따라잡는 속도가 상당했었다는 독려를 해준 은사님 덕분에 더 열심히 한 듯 하다. 아마 이게 '피그말리온 효과' 아니겠는가? 당시에 Time 지를 해석하면서 공부를 했었는데 그것은 본고사 준비 때문이었다.
의학, 정치, 경제등 각 분야를 골고루 프린트를 해주면서 용어 정리나 아주 복잡한 구문의 해석등에 대해서 많이 배울 수 있었던 덕분인지 재수 시절 모의고사를 치면(본고사지만) 서울대 상위 3% 안에 들 정도의 영어 독해 실력을 갖게 되었다.
어느 날 같이 과외를 받는 친구와 선생님 댁을 방문했는데, 깜짝 놀랬다. 어찌 사람이 이렇게 살 수 있을까 싶을 정도였으니... 작은 방 하나에 작은 마루(마루라고 하기도 그렇지만)가 전부인 집에 한 사람이 다닐만한 통로를 제외하고는 책이 쌓여 있는 것이었다.
책의 양에도 놀랐지만 어떻게 이렇게 살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TV 특종 놀라운 세상'에나 나올 법한 광경이 내 눈 앞에 펼쳐져 있으니. 우리가 방문을 했는데도 앉을 자리가 없었다. 선생님이 워낙 키가 작으신 분이라 자신이 자는 공간(그것도 사실 한 사람이 다니는 통로 수준이지만)을 제외하고는 앉을 곳이 없었던 것이다.
그 쌓여있는 책들 위에는 신문과 잡지들이 너저분했었다. 부산대학교 영문학과 출신인데 가족들은 다 미국에 있다는 얘기도 그 때 들었던 듯. 그러면서 친해진 선생님이 내가 재수할 때는 북멘토가 되어 주셨던 것이다.
아마도 나랑 재수를 한 반에서 같이 한 사람들은 알 만한 것이 당시에 머리 삭발하고 팔은 깁스를 하고 날카로운 인상의 어떤 놈이 쉬는 시간만 되면 책만 읽는 모습을 보았을 것이다. 물론 나중에야 서로 다 친해지긴 했지만 쉬는 시간에 담배를 피우는 2교시나 점심 시간이 아니면 항상 책을 읽었다. 아마도 초반에는 겉모습과 하는 짓이 영 달라서 이상하게 보았을 듯.
재수 시절에 반 담임이 반장을 불러서 물어봤단다.(재수하면 반에 반장도 있다.) "승건이라는 놈 어떻노?" "공부만 하고 책만 읽는데예" "그래? 수상해. 글마는 눈이 이상해" 나중에 전해들은 얘기였다. 그만큼 눈에 독기가 서려 있었던 시절이었다. 삼수생들한테 반말하고 하던 시절.
그런 재수 시절에 이 선생님이 학원에 찾아온 적이 있다. 근데 워낙 동안이신 선생님이시라(정말 같이 다니면 내가 형인 줄 안다.) 친구가 찾아온 줄 알고 처음에는 돌려보냈었다고 했단다. 근데 나중에 민증을 보여주니 얘기가 달랐다는... 24시간 편의점에서 뭐 물건 사고 계산하는데 점원이 반말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한다.
그 정도로 친했던 선생님이었고 나에게 당시에 북멘토를 해주셨다. 사실 가만히 생각해보면 그 때 선생님이 추천해주셨던 책 중에는 당시의 내가 소화하기에는 무리가 있는 책들도 있었던 것이 사실이지만 그러한 것들이 다 내공으로 쌓여서 지금의 내가 된 것이 아닌가 한다.
대학을 가고(물론 재수해서 실패했지만) 사업을 하고 다시 보게 된 선생님. 드디어 집을 샀다는 얘기에(아마 부산에서는 꽤나 유명한 영어 과외 선생님이라 돈은 꽤 버시는 걸로 안다.) 찾아가 봤는데 정말 예전에 그 집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였다. 모아 모아서 한 방에 그냥 아파트 사고 원하는 것들을 다 꾸며놓으신 듯.
그렇게 꾸미고 싶어하셨던 서재도 꾸몄고(근데 서재의 책장에 책이 한 줄로는 다 채워져서 두 줄로 채워진 곳도 있었다.) 다른 한 방은 Home Theater 를 꾸며두셨다. 사실 영화하면 나의 개인적인 최고의 취미라 어디 가서 영화 얘기로는 그리 밀리지 않는 편인데, 선생님도 영화를 무척 좋아하시는 편이라서 서로 영화 얘기도 많이 했었는데, 당시에 Home Theater 를 꾸민 사람이 드물었던 때(2000년 정도)라 보고 신기해 했다.
프로젝터, 내부 방음 장치, 스피커 하나만 1~2천만원 짜리들, 편안하게 누워 볼 수 있는 의자에 내부 인테리어도 이쁘게 꾸며두었던... 보고 부러워했던 기억이. 남자들끼리라 그 때 선생님이 했던 말이 생각난다. "승건아. 이걸로 포르노 보면 죽인데이~" 역시 남자들 둘만 모이면 항상 이런 얘기가 나올 수 밖에 없다. ^^ 거기다가 DVD 모으는 게 취미여서 계속 수집을 하신다는... 도대체 매니아라고 불릴만한 분야가 몇 개인가???
그리고 거실에는 음악을 들을 공간으로 꾸며두었는데, 스피커도 클래식용이랑 일반용이랑 별도로 있고 그 스피커들만 해도 외국에 사는 가족들 통해서 공수해온 것들로 천만원대니... 사실 음악에는 그리 관심이 없었던 나였기에 그런가 부다 했는데, Home Theater 는 정말 부러웠던 기억이...
그 때 이후로 아마 연락이 끊겼고, 나중에 어머니를 통해서 알아봐도 알 수가 없었다. 워낙 유명한 과외 선생님이시라 쉽게 알아볼 수 있을 듯 했기도 했지만 사촌동생 영어 과외 선생님이시기도 해서 혹시 사촌동생 쪽에는 연락처가 있을 줄 알았는데... 결국 이렇게 연락은 끊겼다. 내가 핸드폰 번호를 유일하게 한 번 바꾸었는데 그 때 번호를 잃어버렸는지 핸드폰을 바꾸면서 저장된 것을 잃어버렸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같이 다니면 친구같은 선생님이셨고 내게는 북코칭을 해주셨던 멘토셨고 가르침에 있어서 독려를 아끼지 않았던 은사님인 우진우 선생님. 혹시라도 이 글을 읽고 부산에 영어 과외 선생님으로 이름이 나 있는 우진우 선생님의 연락처나 소재지를 안다면 꼭 내게 메일이나 연락을 해주길 바란다. 아니면 이 글에 대한 댓글이라도... 꼭 그에 걸맞는 사례를 하도록 할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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