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Enterprise 2.0의 속성부터 알아야할 것이다. 다음의 글을 확인하기 바란다.
<기업도 이제는 2.0인가? Enterprise 2.0!>
또한 나는 일전에 이런 글을 올렸던 적이 있다.
<Enterprise 2.0은 관료주의의 타파지만 봉건주의 타파는 아니다.>
2.0의 홍수 속에서 내가 바라보는 관점에서의 Enterprise 2.0에 대한 견해였다.
이 견해의 연장선상에서 다음의 얘기를 할까 한다.
위의 글에서는 키워드만 밝혔지만 이번에는 사례를 들어서 얘기하는 것이니
이 사례에서 어떻게 하면 되는가에 대한 견해를 약간은 밝히려고 한다.
사례는 다들 좋아하는 구글이다.
Enterprise 1.0의 첫번째 속성인 Hierarchy 라는 것이다.
아마도 전형적인 기업가 출신인 에릭 슈미트의 영향이 컸을 것이다.
갑자기 회사가 커지면 대부분 거기에 걸맞는 경영 기법을 도입하게 된다.
이유는 매우 간단하다. 많은 대기업의 시행착오를 거친 기법이기 때문이다.
그러다 새로운 방법을 시도한다. 역시 똑똑한 그들이다.
관료주의는 타파했지만 여전히 봉건주의는 타파하지 못하지 않았는가?
물론 세르게이 브린과 래리 페이지 매우 똑똑한 천재형 인간이다.
그리고 그들의 의견이 다른 이들의 의견보다 훨씬 나을 수 있다는 가능성도 많다.
또한 너무나 똑똑해서 자신들의 주관적인 견해가 개입이 될까 싶어서
프로젝트를 검토할 때 선임 매니저들과 정기적으로 모임을 가졌다.
그러나, 봉건주의적인 요소가 있다는 것은 다음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아마도 정기적인 모임을 하는 것은 할 일이 많다보니
해당 프로젝트를 일일이 검토한다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그런 형식을 취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당연하지 않겠는가?
사실 이 글만 가지고 검토의 과정이 어떻게 진행이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의 얘기들을 통해서 이런 가정을 할 수가 있다.
해당 프로젝트에 대해서 디테일한 내용을 검토하기 위해서
그것을 선임 매니저들에게 보고 받으면서 판단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그것은 위의 볼드체 부분이 잘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토론이 아닌 보고라는 것이며, 이를 통한 판단의 주체는
두 사람에게 있다는 것이 내가 보는 봉건주의적 요소의 핵심이다.
어떤 일이든지 간에 우열을 가리기 싫어도 가릴 수 밖에 없는 것이
비즈니스 세계의 논리다.
당연히 회사라는 곳에서는 매니저라는 직책이 있고, 사장이라는 직책이 있다.
이러한 직책은 우열을 나눈 것처럼 생각되나
윗사람이 아랫사람보다 무조건 낫다는 것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그런 우열의 나눔이 사실 경쟁을 유발하고
그로 인해 자본주의 경제가 발전된 원동력이 된 것은 사실이다.
그런 것을 두고 봉건주의적이다라는 것은 아니다.
검토의 과정에서 래리와 세르게이도 한 표의 의결권을 행사하면
그것은 봉건주의적인 요소가 배제되었다고 얘기할 수 있다.
그럼 사장이 되어서 남들과 다른 것이 무엇인가?
주식 많잖아. 그리고 사장이니 연봉 많잖아.
그리고 다들 자기도 뭔가 되보려고 열심히 하잖아.
굳이 그 사람들보다 내가 더 낫다고 척할 필요 없지 않은가?
그렇다고 그냥 밑에 사람에게 일을 맡기고
그들의 판단에 회사가 좌우되게 할 것인가? 그건 아니다.
사장도 해야할 고유의 업무 영역이 있을 것이다.
그 중에 중요한 것은 의사결정의 참여이지 판단이 아니라고 본다.
결국 각 주요 의사결정의 참여권이 있는 것이 경영자라는 얘기다.
많은 중요한 의사결정 과정에서 자신의 판단도 한 표의 의결권
행세를 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
기업이 작은 규모일 때는 사실 카리스마 리더십의 인물이 필요하다.
그러나 기업이 커지고 나면 현장에서의 실질적인 부분을 완연히
이해하기도 힘들 뿐더러 지금까지 통했다고 앞으로 자신의 판단이 통하리라는
보장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의 다양성을 수용해야 한다.
다양성을 수용한다고 꼭 더 나은 미래를 보장하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한 사람의 판단으로 더 나은 미래를 보장하지도 않지 않는가?
넓은 시야를 갖고 여러 의사결정에 참여할 수는 있으되,
한 표로서 참여해야 하는 것이다.
프로젝트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사람이
자금 집행 의사결정에 참여하지는 못한다.
왜냐면 기술자는 회계를 모르기 때문이다. 그들은 스페셜리스트다.
그러나 경영자는 스페셜리스트가 아니다.
경영자는 중요한 의사결정 회의에 두루 참여할 수 있는 제너럴리스트다.
각 의사결정에서 다른 시각들을 조율하고 모든 이들이 화합하면서
업무가 성공적으로 이루어지도록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역할이 되어야 한다.
적어도 창업 공신, 대표이사로서 기득권을 가져야 한다면 이러한 참여권과
업무를 조율할 수 있는 역할이지 판단의 주체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것이 Enterprise 2.0에서는 보여주지 못한 것이다.
어찌보면 Enterprise 2.0이라는 것도 경영자에게는 득이 되는 부속물처럼 느껴진다.
이러한 현상을 실리콘밸리에서는 '기업가 신드롬'이라고 부른단다.
나는 그것을 갑작스런 성공이 불러오는 착각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어쩌다 잘 되었을 지언정 그것이 영원하리라는 자신의 생각이 무조건 옳다는 것은
착각 아니겠는가?
<기업도 이제는 2.0인가? Enterprise 2.0!>
또한 나는 일전에 이런 글을 올렸던 적이 있다.
<Enterprise 2.0은 관료주의의 타파지만 봉건주의 타파는 아니다.>
2.0의 홍수 속에서 내가 바라보는 관점에서의 Enterprise 2.0에 대한 견해였다.
이 견해의 연장선상에서 다음의 얘기를 할까 한다.
위의 글에서는 키워드만 밝혔지만 이번에는 사례를 들어서 얘기하는 것이니
이 사례에서 어떻게 하면 되는가에 대한 견해를 약간은 밝히려고 한다.
사례는 다들 좋아하는 구글이다.
구글은 얼마 지나지 않아 엔지니어만 100명 이상을 거느리게 되었지만, 그들이 근무시간을 어떻게 보내는지 관리할 집중적인 방법이 없었다.여기서의 핵심 키워드는 '위계'다.
래리 페이지, 세르게이 브린, 에릭 슈미트 세 사람은 어떤 방법이 이같은 성장을 통제하는 데 가장 좋을지 알지 못했기 때문에 우선 '위계'에 기초한 전통적인 경영구조를 확립했다.
즉, 엔지니어들로 이루어진 팀이 12명 이상의 엔지니어링 매니저들 밑에 속하게 하고, 세르게이 브린과 래리 페이지가 이들 매니저의 직송상사가 된 것이다. 그러나 이 방식은 관리직이 너무 많아 관려적으로 느껴졌을 뿐만 아니라 혁신의 속도도 둔화시켰다.
Enterprise 1.0의 첫번째 속성인 Hierarchy 라는 것이다.
아마도 전형적인 기업가 출신인 에릭 슈미트의 영향이 컸을 것이다.
갑자기 회사가 커지면 대부분 거기에 걸맞는 경영 기법을 도입하게 된다.
이유는 매우 간단하다. 많은 대기업의 시행착오를 거친 기법이기 때문이다.
그러다 새로운 방법을 시도한다. 역시 똑똑한 그들이다.
2001년 9월 세르게이 브린과 래리 페이지는 엔지니어링 매니저들을 모두 소집해, 그들의 일자리를 없애겠다고 통보했다. 그리고 그들 대부분에게는 회사 내 다른 부문에서 일자리가 주어졌다. 창립자들은 이제 자신들이 직접 관리할 것이며 예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일을 진행하겠노라고 공언했다.
세르게이 브린과 래리 페이지는 10여 가지의 엔지니어링 자원을 이용하는 하향식 방식의 프로젝트 대신, 규모가 작은 엔지니어 팀들이 수백 개의 프로젝트를 한 번에 다루는 좀더 역동적인 구조를 만들었다.
세르게이 브린과 래리 페이지, 그리고 다른 선임 매니저들이 정기적으로 모든 프로젝트를 검토했고, 최고의 프로젝트에는 추가자금과 인력이 지원되었다.
곧 프로젝트 상위 100개 목록이 발표되었고, 엔지니어들은 구글의 검색결과처럼 상위 랭킹을 차지하기 위해 경쟁했다. 구글은 구글 랩스를 출범시켰고, 이를 통해 상위 100개 중 최고로 뽑힌 흥미로운 신규 프로젝트가 대중들에게 미리 선보일 수 있었다.
관료주의는 타파했지만 여전히 봉건주의는 타파하지 못하지 않았는가?
물론 세르게이 브린과 래리 페이지 매우 똑똑한 천재형 인간이다.
그리고 그들의 의견이 다른 이들의 의견보다 훨씬 나을 수 있다는 가능성도 많다.
또한 너무나 똑똑해서 자신들의 주관적인 견해가 개입이 될까 싶어서
프로젝트를 검토할 때 선임 매니저들과 정기적으로 모임을 가졌다.
그러나, 봉건주의적인 요소가 있다는 것은 다음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다양한 출처에서 많은 아이디어들을 얻을 수 있는 이같은 관리 방식은 회사 내에서 대체로 호응도가 높았으나, 결과적으로 꽤 많은 직원들을 괴롭혔다.
구글을 떠난 한 선임 엔지니어는 "구글은 매우 정치적인 곳이 되어갔다"고 말했다. 나에게 구글에 대해 솔직한 이야기를 해주었던 대다수의 사람들처럼 그도 익명을 요구하며, "래리와 세그게이의 허락 없이는 누구도 어떤 일을 할 권한이 없었다."고 덧붙였다.
아마도 정기적인 모임을 하는 것은 할 일이 많다보니
해당 프로젝트를 일일이 검토한다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그런 형식을 취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당연하지 않겠는가?
사실 이 글만 가지고 검토의 과정이 어떻게 진행이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의 얘기들을 통해서 이런 가정을 할 수가 있다.
해당 프로젝트에 대해서 디테일한 내용을 검토하기 위해서
그것을 선임 매니저들에게 보고 받으면서 판단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그것은 위의 볼드체 부분이 잘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토론이 아닌 보고라는 것이며, 이를 통한 판단의 주체는
두 사람에게 있다는 것이 내가 보는 봉건주의적 요소의 핵심이다.
어떤 일이든지 간에 우열을 가리기 싫어도 가릴 수 밖에 없는 것이
비즈니스 세계의 논리다.
당연히 회사라는 곳에서는 매니저라는 직책이 있고, 사장이라는 직책이 있다.
이러한 직책은 우열을 나눈 것처럼 생각되나
윗사람이 아랫사람보다 무조건 낫다는 것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그런 우열의 나눔이 사실 경쟁을 유발하고
그로 인해 자본주의 경제가 발전된 원동력이 된 것은 사실이다.
그런 것을 두고 봉건주의적이다라는 것은 아니다.
검토의 과정에서 래리와 세르게이도 한 표의 의결권을 행사하면
그것은 봉건주의적인 요소가 배제되었다고 얘기할 수 있다.
그럼 사장이 되어서 남들과 다른 것이 무엇인가?
주식 많잖아. 그리고 사장이니 연봉 많잖아.
그리고 다들 자기도 뭔가 되보려고 열심히 하잖아.
굳이 그 사람들보다 내가 더 낫다고 척할 필요 없지 않은가?
그렇다고 그냥 밑에 사람에게 일을 맡기고
그들의 판단에 회사가 좌우되게 할 것인가? 그건 아니다.
사장도 해야할 고유의 업무 영역이 있을 것이다.
그 중에 중요한 것은 의사결정의 참여이지 판단이 아니라고 본다.
결국 각 주요 의사결정의 참여권이 있는 것이 경영자라는 얘기다.
많은 중요한 의사결정 과정에서 자신의 판단도 한 표의 의결권
행세를 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
기업이 작은 규모일 때는 사실 카리스마 리더십의 인물이 필요하다.
그러나 기업이 커지고 나면 현장에서의 실질적인 부분을 완연히
이해하기도 힘들 뿐더러 지금까지 통했다고 앞으로 자신의 판단이 통하리라는
보장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의 다양성을 수용해야 한다.
다양성을 수용한다고 꼭 더 나은 미래를 보장하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한 사람의 판단으로 더 나은 미래를 보장하지도 않지 않는가?
넓은 시야를 갖고 여러 의사결정에 참여할 수는 있으되,
한 표로서 참여해야 하는 것이다.
프로젝트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사람이
자금 집행 의사결정에 참여하지는 못한다.
왜냐면 기술자는 회계를 모르기 때문이다. 그들은 스페셜리스트다.
그러나 경영자는 스페셜리스트가 아니다.
경영자는 중요한 의사결정 회의에 두루 참여할 수 있는 제너럴리스트다.
각 의사결정에서 다른 시각들을 조율하고 모든 이들이 화합하면서
업무가 성공적으로 이루어지도록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역할이 되어야 한다.
적어도 창업 공신, 대표이사로서 기득권을 가져야 한다면 이러한 참여권과
업무를 조율할 수 있는 역할이지 판단의 주체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것이 Enterprise 2.0에서는 보여주지 못한 것이다.
어찌보면 Enterprise 2.0이라는 것도 경영자에게는 득이 되는 부속물처럼 느껴진다.
이러한 현상을 실리콘밸리에서는 '기업가 신드롬'이라고 부른단다.
나는 그것을 갑작스런 성공이 불러오는 착각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어쩌다 잘 되었을 지언정 그것이 영원하리라는 자신의 생각이 무조건 옳다는 것은
착각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