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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격투기

힉슨 그레이시: 효도르 이전에 좋아했던 파이터

혹시나 하고 찾아봤더니 예전만큼의 자료는 없지만 그래도 힉슨 그레이시 관련 동영상이 UCC 동영상란에 있었다. 그 중에서 내가 오래 전에도 구하지 못했던 동영상이 있는데 그건 바로 힉슨 그레이시가 브라질의 발레 투도에서 무패행진의 줄루를 이기는 동영상이다. 동영상과 함께 내가 알고 있는 바를 정리해서 소개한다.

내가 알기로는 줄루와 힉슨 그레이시는 두 번의 경기를 가진 것으로 안다. 10대 말에 아마 힉슨 그레이시가 줄루를 이겨서 브라질 발레 투도Vale Tudo에서 매우 유명해졌고 이 때문에 줄루가 몇 년 뒤엔가 재도전하여 다시 경기를 가졌지만 또 졌다는 것으로 알고 있다. 아래의 동영상은 첫번째 경기인지 두번째 경기인지는 알 수 없지만 말이다.




줄루: Zulu



MMA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아마도 어디서 들어본 듯한 이름일 것이다. 현존 최강의 파이터인 러시아의 마지막 황제 효도르와 경기를 펼쳤던 줄루 징요가 바로 그의 아들이다. 위의 동영상에 보면 선수 소개 동영상에서 잘 나와 있다. 당시에 2005 GP(그랑프리) 경기에서 크로캅을 이긴 효도르에게 Pride FC에 데뷔하고 1전 밖에 갖지 못한 선수와 매치를 하게 할 수 있을까?

그건 그만큼 줄루Zulu라는 인물이 MMA 역사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현재의 MMA가 있기 이전에 오래 전부터 브라질에서는 발레 투도Vale Tudo라는 무규칙 시합이 있었다. 현재 수많은 파이터들 중에서 브라질 출신이 많은 건 그만큼 무규칙 시합의 전통이 브라질에 깊은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주짓수jiu-jitsu도 바로 브라질에서 탄생한 브라질 유술이다.

그 당시에 무패 기록을 갖고 있던(기억하기로는 100승 이상은 넘은 듯) 인물이 바로 줄루다. 그 줄루를 이긴 최초의 인물이 바로 힉슨 그레이시라는 인물이고. 그런데 경기 동영상을 보니 줄루는 카포에라capoeira라는 브라질 전통 무술을 베이스로 하는 듯하다. 스탭을 보니 그렇다. 저런 스탭을 밟다가 갑자기 발기술이 들어온다. 그에 반해 힉슨 그레이시는 주짓수를 베이스로 하고 있다.


힉슨 그레이시: Rickson Gracie


01/ 500전 무패

500전 무패의 전적을 자랑한다고 하는데 사실 데이터가 쌓이지 않아 이는 비공식 기록이다. sherdog.com에 보면 공식 기록은 11전 전승으로만 기록되어 있다. MMA에 관심을 가졌던 오래 전에 관심을 갖고 조사해본 바에 의하면 발레 투도가 아닌 대회에서는 진 경험도 있다. 마치 최근에 효도르가 삼보 토너먼트에서 결승에 진출하지 못한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그건 힉슨 그레이시가 룰을 몰라 반칙패 당한 경험일 뿐이다.

02/ 그의 훈련



위의 동영상 초반에 보면 1997년 10월에 다카다 노부히코Nobuhiko Takada라는 프로레슬러와의 경기에 임하기 위한 훈련 모습을 담은 것이다. 다카다 노부히코와 힉슨 그레이시와의 대결이 바로 Pride FC의 첫번째 대회다. 훈련 모습을 보면 효도르와 같이 자연을 벗삼아서 훈련하고 요가, 수영, 조깅, 주짓수를 통해 훈련함을 알 수 있다.

15년 동안 요가를 통해서 기의 흐름을 조절하고, 경사진 언덕에서 15분 천천히 걷기, 40분 빨리 걷기 5분 전력 질주의 조깅을 하며, 주짓수 훈련을 할 때는 제자들을 상대로 한 손 묶고 하기, 두 손 묶고 하기, 눈까지 가리고 하기 등을 통해서 훈련한다. 게다가 1997년 하와이 윈드서핑 대회 2위를 할 정도로 몸의 균형 감각이 탁월하며 자기만의 식이요법을 갖고 있다.(채식주의자다.)

03/ 약자만 골라 싸웠다?

잘 모르는 사람들은 힉슨 그레이시는 약한 상대만 골라서 싸웠다고 하지만 그가 어렸을 때는 유일한 MMA 경기가 브라질의 발레 투도Vale Tudo밖에 없었다. UFC 또한 그레이시 가문에서 호이스 그레이시Royce Gracie를 내세워 무제한급으로 경기를 펼치는 데에서 기인된 것이다. UFC 1회 챔피언이 바로 호이스 그레이시다.

그리고 현재의 Pride FC는 호이스 그레이시의 형이자 그레이시 가문에서 최강이라 불리는 힉슨 그레이시 때문에 시작된 경기다. 다만 힉슨 그레이시는 그만큼 몸값이 높았기 때문에 한 번 싸울 때의 대전료가 무척이나 비쌌고 그는 무규칙이라 하더라도 현재 보편화된 3R에 라운드당 5분 경기가 아니라 무제한 라운드에 한 라운드가 훨씬 길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그는 현재 UFC 체급으로 따지면 미들급에 속한다. 힉슨 그레이시가 84kg이고 미들급이 84kg까지니까 말이다. 최근에 반드레이 실바가 라이트 헤비급에서 미들급으로 체급을 낮춘 그 체급 말이다. 그런 체급의 사람이 무제한 체급에서 싸우기 위해서는 무제한 라운드에 한 라운드 경기가 길어야만 승산이 있다. 그만큼 스태미너만큼은 자신있다는 소리다.

경기가 진행될수록 상대의 떨어지는 체력을 보고 기회를 노릴 수 있기 때문에 힉슨 그레이시는 그런 경기에만 참여했던 것인데 그게 아니라 미들급에서만 경기를 한다면 현재의 룰로도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단지 지금은 나이가 많이 들어 참여할 의사가 있는지도 모르고 Legend로 불리는 자신이 경기를 나서기는 그리 쉽지 않을 듯.

그러나 그렇게만 얘기할 수 없는 게 그와 싸워본 적이 있는 사람이나 그의 싸움(경기가 아니라 싸움이다. 공식 경기가 아니라 실제 싸움)을 본 사람들은 적어도 주짓수로는 그를 이길 수 없다고 한다. 주짓수 세계 챔피언이나 유도 챔피언, 브라질 레슬링인 루따리베라 챔피언 등 모두 힉슨 그레이시에게 무릎을 꿇었다.

04/ 일화

일화 중에 재미난 게 많은데 브라질 레슬링인 루따리베라의 강자이면서 당시에 UFC에도 출전했던 유고라는 선수와 힉슨 그레이시의 링 밖의 싸움이 있었다. 당시에 내 기억으로는 움직이는 GIF 파일로 컷으로 나뉜 이미지들을 봤었는데 실제로 해변가에서 서로 눈싸움을 하다가 힉슨 그레이시의 따귀 한 대로 시작된 싸움인데 역시나 힉슨 그레이시가 마운트 해서 계속 때리는 형국이었다.

이후에 유고는 복수를 위해 힉슨 그레이시 도장을 찾아가는데(마치 영화 <정무문>, <바람의 파이터>, <엽문>에서 선보인 도장깨기와 비슷하다.) 마찬가지 결과였다고 한다. 일본 프로 레슬러 단체가 힉슨 그레이시 도장을 찾아간 적도 있는데 모두 당할 수가 없었다고 한다. 그를 아는 이들은 결코 힉슨 그레이시가 약한 사람이 아니라는 걸 잘 알고 있다.

03/ 인상 깊었던 경기



그의 마지막 공식 경기인 2000년 콜로세움에서의 푸나키Masakatsu Funaki 와의 경기다. 카운터를 맞고 쓰러졌지만 탁월한 밸런스 때문에 정신을 빨리 차리고 나서 나중에 푸나키를 리어 네이키드 초크Rear Naked Choke로 끝내는데 분명히 푸나키는 탭아웃을 하지 않았다. 힉슨 그레이시가 그냥 초크를 풀었다. 어떻게 되었을까? 푸나키는 실신했다. 동공이 풀려 있다. 위의 힉슨 그레이시 하이라이트 동영상의 첫번째 경기를 주목.

그는 상대가 탭을 하지 않아도 이 정도면 됐다는 걸 알 정도로 감각이 예민하다는 소리다. 그 경기 이후에 푸나키의 인터뷰를 보면 푸나키가 이런 얘기를 한다. "나를 죽이려고 하는 줄 알았다." 적어도 타격 위주의 경기를 좋아해서 크로캅을 최고라고 평하는 매니아들은 힉슨 그레이시의 탁월한 밸런스나 놀라울 정도의 센스를 인지하기 어렵다.

게다가 당시 켄 샴락Ken Shamrock(난 이런 파이터 정말 싫어한다. 너무 맘에 안 드는 파이터 중에 한 명)은 힉슨 그레이시가 질 것이라고 했지만(푸나키는 켄 샴락에게 졌기 때문에 이런 얘기를 하는 듯. 정말 싫다.) 결과는 힉슨 그레이시가 이겼다. 당시 힉슨 그레이시의 몸무게는 현재의 UFC 미들급에 해당하고, 푸나키는 UFC 헤비급에 해당한다. 푸나키는 유도 메달리스트 출신.

*  *  *

내가 MMA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된 인물이다. 용인대 태권도부 후배들한테서 세상에 막싸움을 경기로 하는 게 있다면서 알려준 UFC를 통해서 P2P로 검색해서 다운받아서 보면서 힉슨 그레이시에 대해서 관심을 가졌었다. 외국 사이트를 뒤지면서 그에 대한 기사나 이야기를 접하면 접할수록 그의 매력에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

그가 흰색 팬티를 입는 이유는 링에 오르는 순간 자신은 여기서 죽는다는 생각을 하기 때문이란다. 그런 결의를 위해서 항상 흰색 팬티를 입는단다. 2000년 푸나키와의 콜로세움 경기 이후에 그의 아들이 오토바이 사고로 죽고 나서 링에 오르지 않는 그지만 그래도 나에게는 효도르 이전에 인류 최강의 파이터로서 기억되는 인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