옴니버스 식으로 구성되어 있어서 23가지 이야기를 발췌독해도 무방한 책이다. 장하준 교수야 지식인으로서 인정하는 이라 그의 얘기에는 수긍을 하고 비판적인 시선을 보내지는 않는다. 그래도 어려운 얘기를 이렇게 쉽게 잘 풀어쓰는 것도 능력이니 한 번 즈음 읽어보라고 권하고는 싶다. 다만 리뷰에서는 책 내용에 대해서 언급하기 보다는 책 읽고 내가 하고 싶은 얘기들로 채워나가고 싶다.
원리와 방법
사실 이건 내가 책 리뷰를 적을 때 종종 언급하기도 했고, 내가 적은 책의 기본 골격이기도 한데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에서 보면 어떤 문제로 인해 새로운 정책을 펄치면 그게 효과를 발휘하다가도 시간이 흐를수록 단점이 부각되기 마련인 것과 매한가지다. 어떠한 정책을 방법이라고 한다면 어떠한 정책이라도 수정 보완되어가는 과정만 있을 뿐이다라는 게 원리다.
이를 이해하는 건 매우 중요하다. 왜냐면 그게 근본이니까. 그런 근본을 다져놓아야 다른 것들은 현상에 지나지 않으니 쉽게 해석을 하고 잠깐 봐도 이해가 가는 법이다. 즉 지식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수용력이 달라진다.
나는 철학을 통해서 그런 계기가 마련되었던 경우인데 이러한 원리들도 좀 더 근본적인 원리가 있다. 그게 바로 철학이다. 위에서 어떠한 정책이라도 수정 보완되어가는 과정만 있을 뿐이다라는 게 원리였다고 한다면 왜 그런지를 곰곰히 생각해봐야 한다. 그건 바로 다양한 사람이 얽히고 섥혀서 만들어가는 세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간에 대한 이해가 필요한 법이고.
책에 나온 일부를 살펴보자. 다음은 트리클다운(Trickle Down)에 대한 쉬운 설명이다.
부자들에게 더 큰 파이 조각을 주면 처음에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돌아가는 파이 조각이 작아질지 몰라도 결국에는 이들에게 돌아가는 파이 조각의 절대적인 크기가 더 커질 것이다. 파이 전체의 크기가 더 커지기 때문이다.
이 얼마나 인간의 욕망에 대한 이해 없이 단순하게 생각한 결과인가? 말은 그럴싸한데 왜 안 될까? 인간의 욕망에는 한계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부익부 빈인빅 현상이 더 심화되는 것이고. 그래서 근본적으로 인간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할 수 밖에 없는 거다. 그게 근본이다.
중요한 건 밸런스
어떤 이유가 되었든 어떤 이들은 정책을 활용하여 쉽게 돈을 벌려고 하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어떤 이들은 바른 정책을 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즉 세상에는 다양한 사람이 살기 때문에 당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어떠한 정책이 나온다고 한들 그것이 시간이 지나면 이를 이용하는 무리들이 생기기 마련이라 절대적인 정책이라는 건 없다.
그래도 우리가 그러한 정책을 만들어야 하는 건 너무 치우쳐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치우치게 되면 반대급부가 더 크게 나오기 마련이고 그게 오래되면 극복하는 데에 많은 시간이 걸린다. 그래서 문제를 해결하는 관점은 니 말대로 하면 다 문제 없겠냐?는 식이 아니라 지금은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런 정책을 펴는 게 나을 수 있겠다는 관점에서 바라봐야 한다.
중요한 건 밸런스다. 어떤 정책이라도 일장일단이 있다. 그런데 정책을 옹호하는 이들은 장점만 부각시키고, 비판하는 이들은 단점만 부각시킨다. 어떤 정책이 옳냐 그르냐는 식의 논쟁보다는 지금 시점에서는 어떤 정책을 펴야 하는지가 중요한데 말이다. 그럴려면 정책 그 자체만을 보는 게 아니라 여러 흐름을 읽고 그 속에서 밸런스 있는 게 무엇인지를 볼 줄도 알아야 한다.
대통령 선거를 보자. 이 후보는 어떠 어떠한 장단점이 있다. 단점이 분명 있지만 세상에 단점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중요한 건 지금 시대가 요구하는 대통령이 무엇인가이다. 그 후보의 장점이 그에 부합하면 그 사람의 단점이 어떠하다 하더라도 그 후보가 당선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거다. 단순히 내가 좋아한다 그런 관점에서 바라보고 평가하는 게 아니라는 거다.
비록 그 단점으로 인해서 미흡한 부분이 분명 나오겠지만 그걸 감수하고서라도 장점으로 인해 더 큰 것을 얻을 수 있다는 관점에서 바라봐야 할 필요가 있다. 밸런스 있는 시각으로 양단면을 두루 살피고 어떤 결론을 도출할 때는 전체적인 흐름에서 밸런스를 찾도록 해야 하는 거다. 문제는 밸런스 있는 시각을 가진 이들조차 드물다는 게 문제지.
적어도 장하준 교수는 그런 류의 사람이 아니다. 장하준 교수의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를 비판하는 경제학자(?)도 있던데 그건 장하준 교수의 글을 제대로 이해하지 않고 딴지 거는 거에 지나지 않는다고 본다. 니가 얘기하는 그걸 장하준 교수는 모를 꺼라 생각하니? 한 권의 책으로 자신의 생각을 모두 담아낼 수 있다면 니가 그렇게 해보려무나.
대중은 우매하다
장하준 교수의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는 경제 문제만을 다루고 있지만 결코 내가 앞에서 언급한 건 경제 문제에만 적용되는 건 아니다. 그래서 나는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를 경제 문제에서도 엿볼 수 있는 면들이 많았던 책으로 평하고 싶다. 다소 신선했던 내용이라고 한다면 아프리카 관련된 문제(11 아프리카의 저개발은 숙명이 아니다) 부분.
몰랐던 면이 있었기 때문에 신선했던 부분이었을 뿐. 강자가 약자를 이용하는 건 개별 단위의 인간 개체에서만이 아니라 집단에서 국가 단위에서도 이루어지니 참 씁쓸하지만 나는 웃긴 게 개별 단위의 인간들이라 하더라도 저마다 생각이 다를 껀데 어찌 그런 이들만이 권력층을 형성해서 자기네들이 의도하는 대로 돌아가게끔 만드냐는 거다.
그런 걸 보면 나는 이런 생각이 든다. 역시나 대중은 우매하다. 그러니 권력층이 다루기가 쉽지. 걔네들은 대중을 이용하는 법을 잘 안다고. 근데 어떻게 그런 이들은 기본적으로 갖춰야할 마인드를 갖추지 못한 것일까? 신기하지. 그래도 요즈음은 조금 나아진 게 인터넷 덕분에 정보 공개가 활발해졌다는 거다. 고무적인 일이다.
그렇다고 해서 대중이 똑똑해진 건 아니다. 단지 정보를 많이 알고 있을 뿐이다. 많은 이들이 착각하는 게 그거다. 뭘 하나 더 안다고 해서 똑똑해지는 건 아니다. 요즈음 나오는 연예인 이름이나 그들의 히트곡을 아는 거나 경제 관련 상식 하나 더 아는 거나 매한가지다. 단지 좀 더 가치 있는 정보라는 차이는 있겠지만 정보를 많이 아는 게 똑똑함과는 거리가 멀다.
책에 나온 한 문단을 옮긴다. 이런 비스무리한 내용이 책에 언급되어 있다.
사이먼에 따르면 우리는 합리적이 되고자 노력하지만 합리적으로 되기 위한 우리의 능력에는 심각한 제약이 있다. 이 세상은 너무나 복잡하여 우리의 제한된 지적 능력으로는 완전히 이해할 수 없다고 사이먼은 주장한다. 우리가 올바른 결정을 내리고자 할 때 흔히 맞닥뜨리게 되는 중요한 문제는 정보의 부족이 아니라 정보를 처리하는 우리 능력의 한계이다.
우리가 처한 현재의 경제 상황을 볼 때 정보가 넘치는 인터넷 시대가 도래했는데도 정작 인간의 의사 결정 능력은 그리 향상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고, 따라서 사이먼의 이론이 옳다고 결론 내릴 수 있다.
우리가 처한 현재의 경제 상황을 볼 때 정보가 넘치는 인터넷 시대가 도래했는데도 정작 인간의 의사 결정 능력은 그리 향상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고, 따라서 사이먼의 이론이 옳다고 결론 내릴 수 있다.
위에서 나는 원리와 방법에 대해서 언급했다. 그리고 근본이 원리라고 했다. 그러한 원리들 속에서도 근본적인 원리가 있다고도 했다. 그걸 이해하고 활용할 수 있다면 정보를 받아들이고 해석하는 게 달라지고 제한된 정보로도 좀 더 나은 결론을 도출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내가 집필한 책을 방법론이 아니라 원리론으로 구성했던 거다.
적어두고 출간 안 한 지가 1년 훨씬 넘었다. 빨리 내야 되는데... 트렌드서가 아니기 때문에 언제 내도 무방하다만.(변하지 않는 원리를 얘기했기 때문에 이런 거다.) 올해는 내려고 했는데 쩝. 모 출판사 사장님이 피드백을 늦게 주시는 바람에. 아니지 피드백이 안 왔지? 내가 그 출판사에 내려고 했던 게 아니라 콘텐츠 보는 눈이 남달라서 피드백을 받아보고자 했던 건데. 췟~ 읽어보지도 않은 모양이다.
여튼 나는 지난 대통령 선거 때 얼마나 대중이 우매한지 뼈저리게 느꼈다. 호불호가 있을 수는 있지만 이 사람은 아니다는 생각만큼은 확실했다. 내가 선택한 사람이 아닌 다른 사람이 되었다면 뭐 그런가 부다 하고 넘길 수 있지만 이 사람은 근본이 잘못된 사람이었다고. 그런데 당선된 걸 우째? 대통령을 비판하는 것도 좋지만 그에게 한 표를 던졌다면 자기부터 반성하도록 해라.
<대중의 지혜>, <집단지성>을 몰라서 이러는 거 아니다. 나 또한 그걸 믿고 싶다! 그러나 현실이 그렇지 못하다. 그걸 믿고 떠드는 이들에게서 철학적인 깊이를 볼 수가 없고, 그러다 보니 현실과 동떨어진 이상적인 세계관만 구현하는 꼴이다. 그렇기 때문에 세상은 이 모양으로 돌아가는 거다. 그래도 인터넷, 블로그 때문에 좀 더 나아지는 방향으로 수렴해 간다는 게 고무적일 뿐.
ex libris
01/ 기업 명칭
PLC(public limited company): 주식 회사
LLC(limited liability company): 유한 책임 회사
Ltd(limited company): 유한 회사
02/ 도널드 럼즈펠드(Donald Rumsfeld) 2002년 아프가니스탄 전쟁 브리핑
알려진 기지수들이 있다. 우리가 알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알려진 미지수들이 있다. 즉 우리가 모르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알려지지 않은 미지수들도 있다. 우리가 모르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가 모르고 있는 것을 말한다.
이 말이 미국의 '쉬운 영어 운동본부(Plain English Campaign)'에서 2003년의 횡설수설상을 수여했다고 한다. 장하준 교수도 이에 대해서 비판적 시선을 보냈지만 나도 매한가지다. '쉬운 영어 운동본부' 얘네들은 정말 수준 낮다. 저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듯.
03/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직업
의사가 말했다. "하느님이 인간을 가지고 맨 처음 하신 일이 무언지 아십니까? 바로 수술이지요. 아담의 갈비뼈를 가지고 이브를 만드셨으니까요. 의사야말로 가장 오래된 직업입니다."
"아뇨, 그렇지 않습니다. 건축가가 말했다. "하느님이 제일 먼저 하신 일은 혼돈의 상태에서 세상을 만드신 거지요. 건축가야말로 가장 오래된 직업입니다."
그때까지 가만히 듣고만 있던 정치가가 씩 웃으며 물었다. "그 혼돈의 상태는 누가 만들었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 장하준 지음, 김희정.안세민 옮김/부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