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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독서

흑산: 읽다가 포기한 소설


개인적으로 소설을 좋아하지는 않는다. 나름 소설을 접해보려고 노력했지만 영 나랑은 안 맞다. 소설 볼 바에는 차라리 영화를 보는 편이 낫다고 생각했다. 혹자는 글과 영상은 다르다고 할 터이다. 물론 다르다. 뇌에서 받아들이는 자극이 다르기 때문에 말이다. 그러나 내가 소설보다 영화를 택한 거는 소설의 감흥만큼은 덜한 게 사실이지만 그래도 좀 더 쉽게 감흥을 얻을 수 있는 영화를 택한 거다. 즉 선택의 문제였다는 거다.

그리고 소설을 많이 읽는 사람들과 얘기를 해보면 난 그들이 책의 권수는 많을 지 몰라도 해박한 지식을 가졌다거나 똑똑하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감성적이다는 정도? 물론 소설을 읽다 보면 어찌 이렇게 아름답게 글로 묘사를 했을까 하는 그런 부분도 분명 있다. 그러나 나는 소설을 쓸 작가도 아니고 글을 그렇게 쓰고 싶은 사람도 아니다. 내 글은 무미건조하지만 울림이 있고 분명 얻을 수 있는 무언가가 있는 그런 글을 쓰고 싶은 사람이다.

그런 내가 유일하게 읽는 소설 분야가 하나 있다. 역사소설이다. 말랑말랑하게 적힌 역사소설을 읽으면서 그 소설의 배경이 되는 시대를 찾아보는 재미 또한 쏠쏠하다. 김훈의 장편소설 <흑산>도 역사소설이다. 물론 소설이기에 실제 사실과는 다른 면이 분명히 있고 허구의 인물이 등장하겠지만 그건 찾아보면 되니까 문제시 되지 않는다. 다만 역사소설을 자칫 잘못하면 잘못된 역사관(저자의 의도를 은연 중에 주입시켜)을 갖게 하는 경우도 있어서 그런 부분만 조심하면 된다.


김훈의 <남한산성>

김훈의 <남한산성>은 정말 감명깊게 읽었다. 치욕스런 과거를 잘 그려내기도 했지만 나는 리더와 참모들 간의 역학 관계 속에서 리더의 고민 그리고 참모들의 고민을 보고서 누구를 뭐라할 수 없는 상황을 잘 묘사했고 그 속에서 나는 참 많은 생각을 했기에 재밌게 읽으면서도 감명도 있었던 거다. 그런 기대감으로 사실 <흑산>이란 소설을 읽으려고 했던 것이다. 어찌보면 김훈에 대한 맹신이 많이 작용했던 듯. 그러나 이번 소설은 개인적으로 맞지 않다.


<흑산> 나에게는 맞지 않아

김훈의 글을 좋아하는 사람 많겠지만 적어도 개인적인 호불호를 두고 뭐라할 꺼리는 아니라고 본다. <흑산>에서도 김훈의 글맛은 느낄 수 있다. 근데 좀 과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김훈의 글맛을 보려고 읽는 게 아니라 스토리를 보면서 뭔가 생각을 해보려고 읽었던 것이고 그게 김훈의 필치로 그려내면 더욱더 맛깔스럽게 그려질 거라 생각했다. 근데 이번은 아니다. 내용의 진행도 더디고 좀 쓸데 없는 묘사도 참 많다.

어찌보면 한 시점에 대한 묘사를 어찌 이렇게 맛깔스럽게 글로 표현할 수 있을까 싶지만 정도가 좀 심하다는 생각이 들어 잘 읽히지 않았다. 이런 식의 글을 쓰려고 한다거나 소설을 쓰려는 사람에게는 도움이 될 지 모르겠다만 적어도 나는 그닥. 그래서 읽기가 힘들었다. 재미도 없고 말이다. 그래서 읽다가 포기했다. 반 조금 넘게 읽었는데 말이다. 내가 이걸 왜 읽고 있어야 하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나는 책을 읽다가 포기하는 스타일은 아니다. 그러나 예전과 같이 책을 많이 읽지 않다 보니 읽는 시간동안에는 내가 읽고 싶은 책을 읽어야 하는 생각이 강해서 아니다 싶으면 읽다가 포기하는 게 더 낫다고 생각을 바꾼 거다. 그래서 <흑산>은 읽다가 포기했다. 반 이상 읽었으니 좀 더 읽으면 완독인데 말이다. 완독이 중요한 건 아니잖은가? 내가 왜 이 책을 읽어야 하는지를 모르겠는데...

여튼 어떤 이에게는 도움이 되고 감흥이 되는 책이 될 수도 있겠지만 개인적으로 내게는 안 맞았던 책이다. 그래서 별로 추천하고 싶지 않다. 김훈이란 작가에 대한 맹신 때문에 선택했던 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든다. 내가 좋아하지 않는 분야(예를 들면 소설)의 책은 일단 많은 이들의 검증을 받고 난 후에 읽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야 적어도 이렇게 읽다가 포기라도 하지 않겠지. 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