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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영화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작품들


일본의 거장하면 떠오르는 감독 중에 하나인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이지만 사실 생전에는 자국 내에서 제작비를 대주는 데가 없었다. 이런 문제 때문인지 <도라 도라 도라> 제작 과정에서의 문제인지 1971년 비록 미수에 그쳤지만 자살을 시도하기도 했었다. 왜 일본에서는 제작비를 안 대줬냐? 완벽에 가까운 연출을 위해서 워낙 제작비가 많이 들어갔으니까. 예를 들자면 <란>이란 영화에는 1985년도에 제작된 영화인데 당시 돈으로는 20억 정도 들여서 만든 세트장 불타는 장면을 위해 다 날려버렸다고. 뭐 요즈음 시대로 치자면 제임스 카메론 감독 정도급?

당시는 제작비를 쓴 만큼 수익을 거두기가 힘들었다는 게 문제라면 문제였다. 제임스 카메론의 경우는 영화 한 편을 위해서 제작비 엄청나게 쓰지만(뭐 거의 천문학적인 액수를 쓰고 전세계 제작비 기록을 갱신한다. 지가 세우고 지가 깨고) 그래도 수익은 나거든. 근데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이 영화를 제작했던 당시는 지금과 같지는 않았겠지. 게다가 헐리우드에서 제작되어 전세계로 유통되는 영화가 아니다 보니 아무래도 한계가 있었을 것이고. 그래서 흥행하고는 조금 거리가 멀긴 하지만 그의 작품들로 인해서 헐리우드의 거장들도 영향을 받을 정도였으니 실력 하나는 인정해줘야 한다는...

게다가 수십년이 지난 지금 봐도 괜찮다고 생각할 정도의 영화들이고 또 예술 영화로 인정을 받아도 충분히 대중적인 요소들을 많이 갖고 있어서 김기덕 감독의 영화들과는 조금 다른 면이 있다. 그래서 최근에 <요짐보> 보고 난 다음에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작품들을 정리해봤다. 다 정리한 건 아니고 그래도 내가 아는 작품들 정도만... ^^;


1950년작 <라쇼몽>


아쿠타가와 류노스케가 쓴 단편 소설 두 개를 영화화한 작품이다. 이 작품의 주인공 중 한 명이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과는 콤비인 미후네 토시로다. <라쇼몽>은 한문으로 羅生門(나생문)이라고 적는데 나라와 교토란 두 도시를 연결하는 문이다. 왜 제목을 이렇게 만들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시작 화면 배경이 라쇼몽이긴 하다. 개인 평점 10점 만점에 10점의 영화.

동일한 사건을 두고 여러 명이 자신의 기억을 회상하면서 사건에 대해서 진술하면서 사건의 전말이 점점 애매해지는 게 마치 요즈음 영화의 <메멘토>를 보는 듯한 그런 느낌? <메멘토>야 요즈음 영화지만 1950년에 이런 영화를 만들었다는 게 놀랍고 그것도 등장하는 배우 고작 5명으로 스토리를 전개해 나간다는 것도 놀랍다.

얼마나 이런 스토리가 당시에는 꽤나 신선하고 임팩트가 있었으면 라쇼몽 효과(Rashomon Effect)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라쇼몽 효과라는 건 동일한 사건을 관찰하더라도 기억이라는 건 지극히 주관적이기 때문에 기억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보는 사람마다 다르게 기억된다는 거다. 쉽게 얘기하면 관찰한 사실을 기억한다고 하더라도 그건 해석된 사실이라는 거다.

여튼 여기서 라쇼몽이라는 게 바로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라쇼몽> 영화를 뜻하고 영화의 스토리 전개가 그렇기 때문에 라쇼몽 효과라고 하는 거다. 이렇게 얘기하면 보고 싶지? 봐바~ 너무 큰 기대는 말고~ 괜히 기대하면 기대치에 못 미쳤을 때 실망하는 법. 기대하지 않고 좋은 영화 한 편 본다고 편안하게 생각하고 보길. 나는 강추하는 영화임.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은 <라쇼몽>이란 영화로 세계에 자신의 이름을 알리게 되는 계기를 마련하게 된다. <라쇼몽>의 수상 내역을 보면, 1951년 베니스 영화제 황금사자상, 1951년 전미비평가협회 최우수 감독상과 외국어 영화상, 1952년 24회 아카데미 시상식 외국어 영화상 정도다. 일본 자국내에서의 영화제 수상도 있긴 하지만 그건 별로 유명한 게 아니라 생략~ 대종상영화제가 국제적으로 알아주나? 매한가지다. ^^;





1954년작 <7인의 사무라이>


<7인의 사무라이>는 존 포드 감독의 서부극 <황야의 결투>(1946년작)를 일본식으로 바꾼 영화다. <7인의 사무라이>에서도 주연은 미후네 토시로. 근데 웃긴 게 <7인의 사무라이>를 미국식으로 바꾼 게 율 브린너, 스티브 맥퀸, 찰스 브론슨 주연의 <황야의 7인>이다. 이런 걸 보면 그만큼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은 자기 것화하는 능력이 뛰어났다고 본다.

좋은 스토리를 보고 이를 일본식으로 바꾸고 거기에 자신의 개성을 녹여서 만들어냈다는 얘기. 이건 모방이 아니라 창조라고 본다. 실제로 영화 스토리를 보면 <황야의 결투>와 <7인의 사무라이>는 좀 다른 면이 있지만 <7인의 사무라이>와 <황야의 7인>은 뭐 스토리가 거의 흡사하다. 단지 사무라이냐 아니면 총잡이냐의 차이 정도? <황야의 7인>은 모방에 가깝지만 <7인의 사무라이>는 모방이라고 할 수는 없을 듯.

<7인의 사무라이>는 1954년 베니스 영화제에서 은사자상수상했는데 다른 이름 있는 영화제(영국 아카데미 시상식,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는 노미네이트만 됐다. 개인 평점 8점의 추천작.





1957년작 <거미의 성>


<거미의 성>은 영화제 수상 내역은 없지만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유명 작품 중에 하나로 꼽히는 이유가 있다. 바로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중 하나인 '맥베스'를 각색한 작품이고 전세계의 수많은 '맥베스' 각색 작품 중에서 최고라고 손꼽히는 작품들 중에 하나기 때문이다. <거미의 성>에서 맥베스 역은 당연히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과 콤비인 미후네 토시로가 맡았다. 사실 그래서 나도 본 건데 재미는 그럭저럭. 개인 평점 6점의 영화다.





1958년작 <숨은 요새의 세 악인>


<숨은 요새의 세 악인>은 조지 루카스 감독의 <스타워즈>의 모태라고 하는데 이건 못 구해봤다. 구하기가 그리 쉽지는 않은 영화. 그래서 왜 <스타워즈>의 모태가 되었는지는 모르겠다. 우리나라 영화 <놈놈놈>도 <숨은 요새의 세 악인>에 영향을 받은 작품이란다. <숨은 요새의 세 악인>에서도 주연은 미후네 토시로고, 1959년 베를린 국제 영화제 은곰상수상한 작품이다. 근데 이 <숨은 요새의 세 악인> 리메이크 작품도 있다. 같은 제목으로. 그건 안 볼 생각이다.




1961년작 <요짐보>


가장 최근에 봤던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작품 <요짐보>. <황야의 무법자>, <라스트 맨 스탠딩>의 원안이 되었던 영화다. 비록 영화제에서 수상한 내역은 없지만 독특한 캐릭터 설정이 돋보였던 작품이다. 뭐랄까? 근육질의 액션 스타들이 많은 요즈음에 <본 아이덴티티>에서 제이슨 본 역이었던 맷 데이먼이 새로운 액션 스타로 등장하던 그런 것과 비스무리? 그랬기에 이제 서부극은 한물 갔다던 때에 <황야의 무법자>로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일약 스타덤에 오르게 된 거고. <요짐보>에서도 주연은 당연히 미후네 토시로가 맡았다.





1980년작 <카게무샤>


1974년에 <데루수 우자라>라는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영화가 있는데(1976년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 최우수 외국어 영화상 수상작) 이건 패스한다. 왜냐면 러시아에서 제작비를 대어 러시아 배우들이 출연해서 나오는 영화인지라 그리 정이 안 가네. 1980년작 <카게무샤>를 얘기하자면 할 얘기가 참 많은 영화다. ^^; 내 닉네임 풍림화산. 손자병법에 나오는 얘기지만 <카게무샤>의 주인공 다케다 신겐이 전장에 나갈 때 깃발에 새긴 문구이기도 하다.

당시 최강이라 불리던 노련한 다케다 신겐이었지만 너무 어린 상대였던 오다 노부나가를 얕잡아 봤던 게 실수였지. 그래서 자신이 살아 있다는 걸 적에게 위장하기 위해서 내세운 것이 바로 카게무샤다. 그림자란 뜻. 최근 상영하는 두 사극 <광해, 왕이 된 남자>나 <나는 왕이로소이다>에서 왕을 대신하는 노비가 바로 카게무샤다. 나름 <카게무샤>를 본 건 단순히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 작품이라서가 아니라 역사적 사실을 알고 있는 터라 관심 있어서였다.

그런데 재미는 별로다. 그래서 개인 평점 6점. 영국 아카데미 시상식 의상상, 감독상,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세자르 영화제 외국어 영화상수상했다. <카게무샤>는 조지 루카스와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이 기획, 제작에 참여헀다. 세계적인 명장들도 자국내에서는 제작 투자가 원활하지 않은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을 지원했던 듯. <카게무샤> 제작하기 전년도에 <지옥의 묵시록>이란 걸죽한 작품을 선보인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인데 말이다.




1985년작 <란>


<란>은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중에 <리어왕>를 각색한 영화다. <란>은 프랑스에서 제작 지원했다. 전미 비평가 협회상 최고 영화상, 영국 아카데미 시상식 외국어 영화상을 수상한 작품으로 개인 평점 8점의 추천작이다.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다른 작품들과의 차이라고 한다면 <란>은 스케일이 크다. ^^; 원래는 4시간이 넘는 분량이었는데 이를 겨우 2시간 40분 정도로 맞췄다고. 더이상 칼질할 수 없다고 해서 그 정도 수준에서 마무리~ 이 때만 해도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이 75세의 노인이었으니 노인의 고집을 꺾기가 쉽지 않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