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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영화

링컨: 영화로만 보면 지루한 드라마고, 역사적 의미로 보면 볼 만하고


나의 3,192번째 영화. 우선 영화만 놓고 본다면 지루하다. 상당히. 2시간 30분이라는 러닝 타임동안 아침에 일어나서 씻고, 신문을 보며 아침 식사를 하고, 출근해서 일하고, 퇴근해서는 TV 보다가 저녁 식사 후에 책을 읽다 잔다는 식의 소소한 일상 얘기를 하는 듯한 느낌이 든다. 역사에 길이 남을 어떤 인물을 중심으로 스토리가 펼쳐지는 영화들 중에 이런 영화들이 꽤 있는데, <링컨>도 그런 류의 하나다. 그래서 이런 류의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거나, 링컨이 노예 해방을 이룩하기 위해서 어떠한 노력을 했는지에 대해서 알고 싶지 않다고 한다면 권하지 않는다.

나와 같은 경우도 영화를 많이 보는 요즈음인지라 이런 류의 영화를 볼 시기가 아니라 지루한 면이 없지 않았다. 이런 류의 영화는 영화를 한동안 안 보다가 오늘은 영화나 한 편 볼까 해서 봐야 그래도 지루한 느낌없이 영화에 몰입해서 볼 수 있는데 말이다. 그래서 몇 번에 걸쳐서 나눠서 봤다는. 보다가 졸려서 자기도 하고 말이다. ㅋㅋ 그러나 개인 평점은 8점을 준다. 링컨이란 인물을 존경해서? 아니다. 그럼 그만큼 역사적인 인물에 대해서 잘 알 수 있는 면이 있어서? 아니다. 이유는 책보다는 영화로 보는 게 나으니까라는 아주 단순한 이유 때문이다.


원작은 <권력의 조건>


<링컨>의 원작은 '권력의 조건'(원제: Team of Rivals: The Political Genius of Abraham Lincoln)이란 책이다. 이 책 하드 커버에 페이지 수만 832쪽이다. 책을 탐닉하던 때에는 이런 책도 마다하지 않고 읽었는데 요즈음은 책 한 권도 제대로 읽지 않다 보니 엄두가 안 난다. 최근에 '2030 에너지전쟁'이란 대니얼 예긴의 책을 선물 받았는데, 이 책 또한 936페이지에 하드 커버로 베개 대신 사용하기에 알맞은 두께다. ^^; 예전에 한창 탐독하던 때의 나를 떠올려서 그래도 아직까지 출판사에 근무하는 이들은 나에게 이런 책 선물을 한다는. 쩝. 부담스럽게시리.

자. 한 때 책을 좋아했던 나도 832쪽 분량의 책을 보는 게 쉽지 않은 요즈음인지라 이 책을 읽어보는 게 나을지 아니면 <링컨>이란 영화를 보는 게 나을지를 따져보면 <링컨>이란 영화가 아무리 지루하다고 해도 <링컨>이란 영화를 보는 게 낫지 않겠냐고. 그래서 추천하는 거다. ^^; 물론 '권력의 조건'을 내가 읽어본 게 아니기 때문에 <링컨>이란 영화가 얼마나 원작에 충실했는가 하는 건 알지 못한다만 <링컨> 영화 내용을 미루어 보건대 핵심은 영화만 봐도 충분히 전달되지 않나 싶다.

권력의 조건
도리스 컨스 굿윈 지음, 이수연 옮김/21세기북스(북이십일)



수정헌법 제13조의 의미

<링컨>이란 영화는 링컨의 일대기를 그린 영화가 아니다. 수정헌법 제13조를 하원에서 통과시키기 위한 과정을 그리고 있다. 왜 링컨은 수정헌법 제13조를 통과시키려고 했을까? 이게 어떤 의미가 있길래? 그런 부분에 대한 이해 없이 본다 해도 <링컨>을 보면 링컨의 대사 속에 잘 드러나 있다. 링컨은 자신이 대통령으로 재임하고 있는 동안에 그 이후로도 노예 해방이 유지되기를 바랬기 때문에 그렇다. 우리나라만 봐도 대통령에 당선이 되어 어떠한 정책을 편다 하더라도 그게 가시적인 효과가 재임 기간 내에는 안 나오는 정책 허다하다.

가끔씩 전 대통령에 대한 평가를 할 때 보면 이런 얘기를 많이 듣는다. 어느 대통령 취임한 이후로 경제성장률이 몇% 대로 떨어졌고 하는 그런 얘기들. 그런데 그런 얘기들은 잘 가려서 들어야 한다. 수치화의 허점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경우도 꽤 있으니까. 그 수치가 틀렸다는 게 아니다. 수치는 맞지만 그건 어느 특정 시점의 상태(Status)를 나타낸 것이고 그런 상태가 나타나기 위한 과정은 전혀 고려치 않았기 때문에 앞뒤 인과관계를 잘 따져서 봐야 하는 거다. 전 대통령이 시행한 정책의 결과가 그 다음 대통령 임기 때에 나오는 경우도 있으니 말이다.

링컨은 헌법 자체를 수정하려고 했다. 1863년 1월 1일 노예해방선언을 하면 뭐하냐는 게지. 그건 연방 정부의 대통령이 그렇게 한 선언일 뿐인데, 자신이 재임하고 있는 중에는 그래도 이나마 하겠지만 퇴임 이후에 대통령이 그렇게 하는 건 위법이다 뭐 그런 판결이라도 나면 말짱 도루묵이 되는 거 아니냐고. 현재의 우리나라만 봐도 그렇잖아. 재임 기간에는 뭘 좀 잘못해도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도 일단 퇴임하고 나면 청문회하고 그러는 것처럼 말이다. 뭔가 더 강력한 게 필요했다.

남북전쟁에서 이긴다 한들 노예 해방에는 제약이 있다

당시에는 남북전쟁 중이었다. 전쟁에서 북군이 승리한다면 남부의 재산을 몰수하는 과정에서 재산의 일종인 노예를 몰수하여 해방시키면 그만이었다. 전쟁의 피해가 날로 갈수록 커지긴 해도 그렇게 해야 한다면 그것도 하나의 방법일 수는 있겠지만 문제는 그렇게 하면 노예를 재산으로 인정하는 꼴이 된다. 링컨은 노예를 재산으로 인정하지 않는 사람인데 전쟁에서 승리해서 남부의 재산을 몰수한다고 할 시에 노예는 재산이 아니니까 몰수할 대상이 아니라는 게지.

비록 전쟁은 하고 있지만 같은 나라잖아

또한 이런 문제도 있었다. 남과 북이 나뉘어서 전쟁을 하고는 있지만 만약 북이 승리한다고 해서 재산을 몰수하는 건 국가가 다를 때의 얘기지 지금은 같은 나라에서 일어난 내전 아니냐는 거다. 그러니 명분이 없다는 게지. 게다가 연방 정부 아닌가? 이 연방 정부를 구성하는 각 주마다 법률이 있는데 그걸 연방 정부에서 어떻게 해라고 할 권한이 있느냐는 게지. 없다는 거다. 그래서 헌법 자체를 수정하려고 했던 거고 그것이 바로 수정헌법 제13조가 되는 거다.

수정 제13조(노예 제도 폐지)

제1절
노예 제도 또는 강제 노역 제도는 당사자가 정당하게 유죄 판결을 받은 범죄에 대한 처벌이 아니면 미국 또는 그 관할하에 속하는 어느 장소에서도 존재할 수 없다.

제2절
연방 의회는 적당한 입법에 의하여 본 조의 규정을 시행할 권한을 가진다.


물론 훗날 헌법이 다시 수정될 수도 있겠지만 <링컨> 영화를 보면 수정하는 게 그리 만만치가 않다. 당시 하원 통과 기준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영화에서 보여준 투표 결과를 계산해보면 아마도 정족수 이상의 참석에 참석자의 2/3 이상의 찬성이지 않나 싶다. 수정헌법 제13조를 통과시키기 위해 링컨이 필요했던 표는 20표. 즉 반대 20표를 찬성 20표로 돌려야 통과가 된다는 건데, 이런 걸 고려해서 따져봐도 당시에는 반대하는 사람보다 찬성하는 사람이 많았다는 걸 알 수 있다. 즉 수정헌법 제13조가 통과 되기만 한다면 이를 재수정하거나 폐지하는 건 무척이나 어렵다는 얘기다.


하원은 통과했지만 비준은 보지 못하고 죽은 링컨

20표를 얻기 위한 링컨의 정치 행각을 보면 목적을 위해서 어쩔 수가 없구나 하는 면도 없잖아 보인다. 그 목적이 아무리 순수하다 하더라도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과정이 그러하다면 과연 그것이 정당하다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렇다고 해서 비열한 짓을 한다거나 한 건 아니지만 말이다. 그러나 그런 생각은 내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순진한 발상이다. 내가 살아본 세상은 아무리 목적이 순수하다 해서 과정도 순수하게 되면 순수하지 못한 이들한테 역이용 당하고 당하기만 하더라. 그래서 목적이 순수하다면 그 과정에서 순수하지 않은 이들을 상대로 적절히 대응할 줄 알아야 하는 법이다. 대의를 위해 소의를 희생하는 것처럼 좀 더 높은 목적을 위해서 말이다.

그래서 링컨의 그런 정치 행각이 그리 나쁘게 보이지는 않는다. 아마도 '권력의 조건'이란 책에서는 그런 면을 좀 더 자세히 다루고 있지 않나 싶다. 제목에서 풍기는 뉘앙스가 그런 거 같애. 결국 1865년 1월 31일 하원에서도 수정헌법 제13조는 통과된다. 상원에서는 1964년 4월 8일 통과되었는데 말이다. 이는 상원은 연방 정부 전체를 생각하는 이들이고, 하원은 각 주를 대표하는 이들이어서 자신이 대표하는 주의 이해관계만 생각하다 보니 오히려 더 어려운 부분이 있었던 거다. 특히나 노예제 폐지는 남부의 사유재산에 속하는 노예를 없애겠다는 건데 말이다. 그러면 인건비 주면서 노동력을 확보해야 하고 이는 결국 비용 상승을 초래하고 자신의 이득에 위배되는 거니까 말이다.

이 수정헌법 제13조는 1865년 2월 1일 발의가 되고 각 주에서 수락 여부를 결정하게 되는데, 전체 36개 주 중에서 3/4가 되어야 헌법이 수정된다. 1865년 12월 6일 마침내 조지아 주에서 27번째로 수락함으로써 1865년 12월 18일 공표되는데, 링컨은 이걸 보지 못하고 1865년 4월 14일 포드 극장에서 존 윌크스 부스란 배우에게 저격 당해서 사망한다.(위의 사진 속 인물이 존 윌크스 부스다.) 수정헌법 제13조의 하원 통과 과정을 다루고 있는 영화 <링컨>의 마지막은 링컨의 사망으로 끝난다.


링컨이 다시 돌아왔나? 역시 연기파 배우 다니엘 데이-루이스


다니엘 데이-루이스. 정말 좋아하는 배우다. 배우란 이래야 된다는 걸 보여주는 배우라고나 할까? 배우로서 장인 정신을 가진 배우. 그래서 아무런 작품에 출연하지 않으며, 한 번 맡은 배역에는 몰입을 하는 배우다. 예를 들어보자면 그에게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안겨준 작품 <나의 왼발>에서 그는 뇌성마비 연기를 했는데, 이 연기를 위해서 평소에도 휠체어를 타고 다닐 정도였다. 로버트 드 니로도 이랬었는데 나이 들어서는 좀 달라진 듯. 여튼 아직까지도 고집스럽게 자신의 스타일을 지켜나가는 참 멋진 배우인데 분장 너무 잘 했다. 마치 실제 링컨이 연기하는 듯한 그런 느낌이었다.

그리고 분명 걸음걸이도 연구했을 거라 본다. 걸어가는 뒷모습을 보는데 불현듯 그런 생각이 들었다. 분명 다니엘 데이-루이스는 링컨 역을 맡아서 링컨을 연기하면서 실제로 자신이 링컨이 된 양 걸음걸이마저도 연구했을 거라 생각한다. 그의 다른 작품에서는 볼 수 없는 걸음걸이였거덩. 지금까지 그리고 앞으로도 이렇게 링컨 역을 실제 링컨과 같이 소화할 수 있는 배우가 나올 수 있을까 싶다.


예고편



감독은 스티븐 스필버그다. 링컨이 노예해방선언한 150주년 되는 해가 올해라 이를 염두에 두고 만든 듯 싶다. 스티븐 스필버그 영화라고 생각하기 힘들 정도로 내용 전개가 단조롭고 호흡도 길다. 나름 스티븐 스필버그가 일부러 그렇게 만든 게 아닌가 싶다. 흥행 그런 거 보다는 역사적 의미를 되새긴다는 그런 의미에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