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문화/영화

신세계: 탄탄한 스토리와 배우들의 명연기가 잘 배합된 웰 메이드 한국 느와르


나의 3,203번째 영화. 이런 내용일 줄 몰랐다. 보고 나서 '와~ 정말 스토리 잘 만들었다.'는 생각에 시나리오를 누가 썼는지, 원작이 있는지부터 살펴봤었다. 영화라는 게 영상 매체물이긴 하지만 무엇보다도 중요한 건 스토리라 보기 때문에 난 스토리 중심으로 본다. 예를 들면 뭐 이런 거다. 요즈음 공포 영화들 보면 갑작스럽게 튀어나오는 화면과 음향 효과로 그런 분위기를 만드는데 나는 그런 건 기교에 지나지 않는다고 본다. 아무리 그런다 한들 그건 깜짝놀람이지 공포가 아니거덩. 그래서 내가 공포 영화를 별로 안 좋아하는 게야. 공포스럽지가 않아서.

<신세계> 포스터만 보면 그렇고 그런 조폭 이야기라 생각했다. 주변에서 <무간도>와 비슷하다는 얘기도 들었다. 재밌단다. 여자들은 어떨지 몰라도 남자들이 보면 재밌을 거라고. 그래? 그럼 <친구>, <범죄와의 전쟁> 뭐 그런 류인가? 싶었다. 결코 아니다. 게다가 <무간도>와 비슷하다고 할 수도 없다. 전혀 다르다. 우째 같노? 엉? <무간도>의 모티브만 가져왔을 뿐이라 본다. 원작도 없이 영화를 만들기 위해 쓴 시나리오라는 점이 퍽 인상 깊었고, 캐릭터에 맞는 배우들의 캐스팅과 배우들의 명연기가 정말 볼 만했던 영화였다. 간만에 정말 재밌게 본 영화라 평점 9점 준다.


목적은 수단을 정당화한다?

과연 선한 편에 있다고 해서(<신세계>에서는 경찰이 된다) 그들이 행하는 게 다 선이라고 할 수 있을까? <신세계>를 보고 누구나 느끼는 심정이 아닐까 싶다. 비록 깡패를 소탕하기 위함(엄밀한 의미에서 소탕하는 게 아니라 소탕하기가 힘들기 때문에 경찰의 관리 하에 두려고 한다)이라는 뚜렷한 목적하에 작전을 펼치긴 하지만 너무 비정하다. 간간이 오래 전에 자신이 조직에 심어놓은 이자성을 위하는 듯 보여도 비정하게 느껴질 수 밖에 없는 건 진심이라기 보다는 목적 달성을 위한 수단으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뭐랄까? 다양한 인간들이 살다보니 필요해서 만든 규범인 법이 마치 인간 위에 군림한다는 그런 꼴이라고 할까? 그렇게까지 하면서 목적을 달성해야 하는가? 그렇다고 해서 그가 자신의 입신양명을 위해서 그런 건 결코 아니다. 그렇다면 그는 선하다고 할 수 있는가? 그런 질문을 던지게끔 만드는 캐릭터가 바로 강과장이다. 강과장을 보면 떠오르는 인물이 있다. '군주론'을 쓴 마키아밸리.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이 정당화될 수 있다던. 즉 목적이 정당하다면 비도덕적인 수단이라 하더라도 용납이 된다는 거다. 만약 그렇다면 <신세계>의 강과장은 선하다 할 수 있을까?

난 영화를 보면서 가장 미워했던 게 강과장이었다. 조직(경찰)의 목적 달성을 위해 목숨을 걸고 현장에 투입된 부하들을 마치 장기판의 졸로 취급한다. 강과장에게 그네들은 그냥 졸일 뿐이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그들의 목숨은 그다지 그에게는 중요하지 않게 보인다. 그렇다고 해서 자신의 사리사욕은 채우기 위해서 그런 건 아니긴 하지만 대의 명분이랍시고 그들에게는 전부인 목숨을 담보하길 강요하는 게 너무 지나치다 본다. 영화를 보면서 혼자서 이런 말 많이 했다. "나같으면 강과장부터 먼저 죽여버린다." 나중에 강과장 칼 맞을 때는 이렇게 말했다. "칼 돌려라. 더 아프게"


미워할 수 없는 캐릭터, 정청

이번에는 강과장 캐릭터와는 정말 대조되는 인물이다. 골드문이라는 조직의 넘버 3. 정청이란 인물은 겉보기에는 생양아치인데 의리파다.(보기에는 멀쩡한데 생양아치에 가까운 강과장과 대조된다.) 정청이란 캐릭터 또한 강과장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사욕보다는 조직 전체에 관심을 둔다. 강과장이나 정청이나 둘 다 소의보다는 대의에 뜻을 둔 인물이다. 그러나 둘이 대조적일 수 밖에 없는 건 정청은 부하들과의 의리가 돈독한 인물이라서다.

매사 장난스레 대하고, 걸핏하면 뺨을 때리기 일쑤인 정청이지만 결코 그게 나빠 보이지 않는다. 입에 욕을 달고 살지만 그게 매력적으로 느껴진다. 캐릭터의 설정이 그런 면도 있고, 황정민이 정청이란 역을 워낙~ 잘 소화해내서 그런 것도 있지만(정말 황정민의 연기는 쵝오~였다.) 강과장이란 캐릭터와 너무나 대조적이었기 때문에 더욱 그렇게 빛날 수 밖에 없었다고 본다.

그렇기에 그가 악의 세력에 속해 있지만 나쁘지 않다 그런 얘기를 하는 게 아니다. 나쁜 건 나쁜 거고 그 사람의 매력은 그 사람의 매력인 거다. 사기꾼인데 나한테만큼은 잘 해준다고 해서 그 사람을 두둔할 수는 없지 않은가? 그러나 <신세계>를 통해서 분명 이 점은 생각해봐야 한다. 선과 악이라는 이분법적인 잣대로 나누기가 애매모호하다는 거다. 선의 세력에 있다고 과연 그들을 선하다 할 수 있고, 악의 세력에 있다고 그들을 무조건 악하다고 할 수 있는가 라는 점이다. 그게 <신세계>의 묘미인 거다.


선과 악의 경계선에 있는 인물, 이자성

소제목은 그렇게 적었지만 사실 누굴 선이라 하고 누굴 악이라 하는 것 자체가 애매모호하긴 하지만 경찰과 조폭이라고 하는 기준으로 보았을 때 그 경계선에 있기에 그렇게 표현한 거다. 경찰이지만 자신의 신분을 숨기고 조직에서 서열 3위인 정청의 오른팔 역할을 하는 이자성을 보면 마치 관객들의 심정을 대변하는 듯한 그런 느낌을 준다. 인간은 누구나 인간이기에 응당 그럴꺼라 생각하는 게 있다. 그걸 우리는 상식이라 부르곤 한다.

경찰과 조폭 중에 뭘 할래? 하면 누가 조폭이 되겠다고 할까? 물론 <신세계>에서는 조폭보다 더한 경찰 조직으로 비춰지는 게 사실이긴 하지만, 그 때문에 이자성이 이자성이 갈림길에서 한 쪽을 선택했던 건 아니다. 그가 어떠한 선택을 하는 데 결정적이었던 건 누가 나를 이해하고 믿어주느냐는 거다. 사람 간의 관계에서는 마음을 얻는 게 가장 중요하다. 이성 관계든, 동성 관계든 말이다. 그게 가장 결정적이었다 본다. 그래서 마지막 장면이 6년 전 여수의 플래시백하는 장면으로 끝을 맺는 거고.


홍콩 느와르와는 다른 결말이라 더욱 좋았던

홍콩 느와르의 결말 하면 떠오르는 게 주인공은 죽는다는 거다. 비극적이다. 물론 그게 그 당시에는 참신했다. 세상에 어느 영화에서 주인공(영웅)이 죽던가? 죽을 듯 하면서도 끝까지 살아남는 게 주인공 아냐? 람보와 같이 말이다. 그런 영화들이 난무하던 때에 주인공이 아주 비극적으로 죽는 건 매우 신선했고, 그렇기에 여운도 많이 남았던 게 아닌가 싶다. 그래서 그런지 홍콩 느와르는 전성기 시절에 수많은 영웅들을 죽음으로 내몰았던 거 같고. <무간도>에서의 설정을 차용한 건 맞다. 그래서 <신세계>를 보다 보면 <무간도>를 떠올릴 수 밖에 없고. 그래서 <신세계>도 <무간도>와 같은 그런 결말이 나오지 않을까 싶었는데 내가 볼 때는 다소 바람직한 결말이 아니었나 싶다. 물론 많은 주인공들이 죽긴 하지만 <신세계>에서 주인공 한 명을 꼽으라고 하면 이자성 아니겠는가?


캐릭터 완전 살아 있는데~

내가 국내 배우 중에서 유일하게 인정하는 연기파 배우라고 할 수 있는 최민식이지만 <신세계>에서는 황정민의 연기에 묻혀버렸다. 그 정도로 황정민의 연기가 압권이었던 영화가 <신세계>가 아닌가 싶다. 정말 정말 연기 잘 한다. 나중에 소장해서 여러 번 보지 않을까 싶다. <친구>, <범죄와의 전쟁>은 뭐 어지간한 대사 다 외울 정도로 많이 봤던 나인지라. ^^; 그렇다고 해서 최민식의 연기가 별로였다는 뜻은 아니었다. 황정민이 정청 역을 너무나도 멋지게 소화하다 보니 상대적으로 두드러지지 않은 것일 뿐. <범죄와의 전쟁>에서는 정말 연기 잘했던 최민식 아닌가? 개인적으로는 평소에 그리 배우라고 인정하지 않는 이정재였지만 <신세계>의 이자성 역에는 참 잘 어울렸다. 그만큼 캐스팅이 돋보였다. 나중에 알게 된 거지만 원래 강과장 역에 최민식만 캐스팅이 되었고 그 다음에 최민식이 이정재랑 같이 작품 하나 하자 해서 불러들이게 된 거라고. 갑자기 영화의 장면 하나가 생각 난다. "나 나하고 일하나 같이 하자." 딱 그거다. ^^;


골드문의 넘버 4. 이중구 역은 처음 보는 배우다. 박성웅이라는 배우인데 눈이 쪽 찢어진 게 정말 비열한 역에 잘 어울렸던 듯. 욕을 참 상스럽게 잘 하더라고. <신세계>에서도 키가 좀 큰 듯 싶었더니만 실제로 187cm란다. 헐~ 크다. 나보다도 나이가 많은데 그 정도 키였다면 어렸을 적에는 꽤나 인기 있었을 듯 싶다. 학력도 한국외대 법합과 출신. 음. 독특한 이력이네.


그리고 눈에 띄는 단역 중에 한 사람. 우정국. 연변거지로 나오는데 <부당거래>에서 정말 불쌍하게 보였던 바로 그 배우다. 너무 불쌍한 역을 잘 해서 <부당거래> 본 이후로 쉽게 알아볼 수 있겠더라고. 역시나 단역이긴 하지만 당신을 알아보는 사람도 있다는 거. 열심히 해서 좋은 영화에 많이 출연하길 바란다. ^^;
 

각본에 감독까지, 박훈정

<신세계> 보고 난 후에 바로 찾아봤던 게 시나리오 누가 썼느냐였다. 감독이 바로 시나리오를 쓴 사람이었는데 박훈정이란다. 필모그래피를 보니 <부당거래>, <악마를 보았다>, <혈투>의 각본을 담당했다. <혈투>는 감독까지. 비록 <혈투>라는 영화는 흥행에 실패했지만. 이 사람 스토리 잘 만드는 거 같다. 흡인력이 있네. <혈투>라는 영화는 보지 않았지만 신기하게도 그가 시나리오를 쓴 작품 모두 내게는 9점 평점인 영화들이다. 헐~ 아무래도 <혈투>도 봐야할 듯 하다. 그런 사람이 쓴 시나리오라면 분명 볼 만할 듯 싶다.

앞으로 박훈정이라는 사람이 쓴 시나리오라면 무조건 본다. 감독이기 이전에 시나리오 작가이기에 그가 감독을 맡지 않는다 하더라도 각본에 이름이 올라 있으면 볼 생각이다. 믿을 만한 스토리텔러인 듯. <신세계> 흥행했으니 아마 속편 나올 거라 생각한다. 박훈정 감독이 원래 <신세계> 시나리오를 길게 적었는데 처음부터 질질 끌면 재미가 없을 듯 싶어서 뒷부분만 갖고 영화를 만든 거라고 하니 아마 속편이 나온다면 <신세계> 프리퀄이 될 확률이 높을 듯. 난 <신세계> 보고 박훈정 감독 알게 되고 그의 필모그래피 보고 완전 팬이 되어 버렸다. 왜냐? 난 스토리를 가장 중점적으로 보니까. 꼭 어떤 상징이나 기법을 가미하지 않아도 스토리 자체에 힘이 있으면 나머지를 다 커버할 수 있거든.


예고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