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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영화

미하엘 콜하스의 선택: 권력의 횡포에 맞선 한 남자의 정의, 한스 콜하제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


나의 3,345번째 영화. 간만에 괜찮은 영화 본 듯. 오고 가는 대사 속에서 생각해볼 만한 게 있었고, 미련할 정도로 자신의 원칙을 지키지만 멋있었던 캐릭터가 있었고, 그 캐릭터를 아주 훌륭하게 소화해낸 매지 미켈슨이란 연기자가 있었다. 대중들이 좋아할 복수라는 테마이긴 하지만 스토리 전개에 강약이 없어 어찌보면 지루하다 생각할 수도 있는 영화라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잔잔하면서도 묵직하게 전달되는 무엇인가가 있는(그 무엇인가가 모든 이들에게 똑같은 결론을 내게 하는 게 아니라 생각해볼 수 있게 하는) 영화인지라 개인적으로는 인상 깊었던 영화다. 개인 평점 후하게 9점 준다. 강추.


실존 인물, 한스 콜하제(Hans Kohlhase)


영화 속의 미하엘 콜하스는 하인리히 폰 클라이스트의 단편 소설 속 주인공이다. 이 소설을 읽어보지 않아서 영화가 소설의 내용과 얼마나 다른 지는 모르겠지만 그 소설 또한 한스 콜하제라는 실존 인물을 그리고 있기에 나는 한스 콜하제를 찾아봤다. <미하엘 콜하스의 선택>에서 미하엘 콜하스가 복수를 하기로 마음 먹은 전개 과정은 비슷한 듯 한데 이후는 <미하엘 콜하스의 선택>과는 조금 많이 다르다. 1500년에 태어난 미하엘 콜하스. 1534년에 격문을 쓰고 그 주변의 사람들을 모아 독일의 색소니 지방에서 반란을 일으킨다. 근데 <미하엘 콜하스의 선택>에서와 같이 권력의 횡포에 맞서 정의를 구현하기 위해 반기를 들었던 사람들이 약탈을 했다는 건 좀 이해가 안 가는 부분. 그 약탈이 지배계급층의 재산을 약탈한 것인지는 안 나와 있어서 잘 모르겠지만... 결국 한스 콜하제는 1540년 3월에 잡혀서 같은 달 22일에 수레바퀴로 짓이김 당해 죽는 형을 당했다. 처형 또한 영화와는 다른 부분.


미련할 정도로 자신의 원칙을 고집한, 미하엘 콜하스

<미하엘 콜하스의 선택>을 보면 알겠지만 이 세상 어느 누구라도 미하엘 콜하스의 입장이었다면 이건 아니다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법에 호소하지만 권력층의 두터운 인맥 때문에 번번히 무산되고.(이거 보면 딱 우리나라 생각나네) 그래서 공주에게 호소하려고 하는데, 아내가 말린다. 그러자 미하엘 콜하스가 아내에게 이렇게 애기한다.

신께서는 내게 세상 무엇보다 귀한 아내와 자식들을 주셨어.
가족이 있는 걸 후회하게 하지 말아줘. 


한 마디로 말해서 내 뜻을 막지 말아 달라는 얘기다. 이 대사를 들었을 때 나는 참 많은 생각을 했다. 나도 살면서 이런 얘기를 많이 들었지. 의협심이 강하면 가족이 고생한다고. 그래봤자 남는 게 아니 얻는 게 뭐가 있냐고. 그래도 이 남자는 완고하다. 이건 아니니까 가서 따져야겠다는 거다. 그러자 아내가 고소장을 자기한테 달란다. 자기가 공주한테 가겠다는 거다.

이 때문에 아내가 대신 고소장을 접수하러 갔다가 봉변을 당하고 결국 죽는다. 이 때, 미하엘 콜하스 복수를 하기로 결심한다. 강성이다. 그래? 니들이 이런 식이야? 좋아. 죽자. 너 죽이고 나 죽는다는 심정으로 칼을 뽑아든다. 그리고 자신의 일꾼들을 모아서 복수에 나선다. 복수에 나서기 전에 일꾼들에게 이렇게 얘기한다.

나는 신께 기도하네. 우리가 남작을 용서할 때까지 나를 용서치 마시라고.


그의 요구 사항은 하나다. 자신의 말 두 필을 남작이 직접 돌봐서 원상태로 돌려달라는. 그거 하나 때문에 고소장을 접수하려고 했고, 이 때문에 아내가 죽고, 그래서 반란을 일으킨다. 근데 <미하엘 콜하스의 선택>을 보면 그 요구가 수락되자 반란군을 해체한다. 이 남자 정말 어이없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정말 완고하다. 그게 미하엘 콜하스의 캐릭터고. 

한 때 즐겨봤던 <하얀 거탑>의 장준혁이 떠올랐다. 죽음을 앞에 두고서도 끝까지 자신은 잘못한 게 없다고 했던 그 고집. 때로는 고집으로 보일 지 몰라도 그렇게 고집 피우기 힘들기 때문에 달라보인다는 거. 때로는 그런 고집을 피울 때도 있어야 하는데. 세월호 침몰 사고가 그냥 묻히지 않도록 끝까지 떠들어주고 말이지. 뭐 그런. ^^;


쪼잔한 마틴 루터 vs 완고한 미하엘 콜하스

종교 개혁가로 유명한 마틴 루터(<미하엘 콜하스의 선택>에서는 드니 라방이 마틴 루터로 나온다. 난 드니 라방하면 <퐁네프의 연인들> 밖에 생각 안 난다. 너무 그 캐릭터의 인상이 강한 배우)와의 주고 받는 대화. 참 많은 생각이 든다. <미하엘 콜하스의 선택>에서도 보면 마틴 루터는 미하엘 콜하스를 중재하기 위해서 이런 저런 얘기를 하는데, 이 대화 속에 생각해볼 만한 대사가 많다.

마틴 루터: ...당신이 정의를 위해 한 게 뭐가 있지?
내 눈엔 뒤틀린 당신의 마음이 보여.
상관도 없는 전쟁에 이 사람들을 끌어들인 비뚤어진 마음.
당신 허리춤의 칼은 정의의 칼이 아니야.
당신은 신의 병사도 아니고 
이 모든 것이 신의 이름과 상관 없어진 지 오래야.
콜하스. 이 땅에서 당신을 기다리는 건 교수대요. 


마틴 루터의 대사다. 뭐 이런 얘기하는 사람들 많잖아. 근데 나는 이런 사람 별로 안 좋아한다. 인터넷 상에서도 보면 이쪽과 저쪽이 설전을 벌이는데, 마치 선비인 양 얘기하는 듯한 그런 말투. 상당히 거슬린다. 3인칭 시점에서야 그렇게 얘기하기 쉽지. 지가 1인칭이나 2인칭 입장이 되어봐. 그러면 그럴 수 있을까? 권력의 횡포로 인해 가족이 죽었어. 그래. 참아야지. 그지? 게다가 심리적 협박을 하고 있다. 너는 사형이야~ 뭐 그런. 

또한 자신의 복수를 위해서 사람들을 끌어들였다고는 하는데, 그럼 사람들이 미하엘 콜하스가 무서워서 하라는 대로 한 건가? 다른 사람들은 아주 그냥 바보 취급하고 있네. 실제로 그 당시에 미하엘 콜하스의 실존 인물인 한스 콜하제를 나쁘게 평하는 사람이 없었다고 하는 건 그만큼 그 시대의 상황이 지배계급의 횡포가 심했다는 반증 아니겠는가! 그렇다면 지배계급이 그렇게 했으니 그렇게 사람들이 모인 것이지 그렇지 않는데 왜 남이 복수하겠다고 하는 데 참여하겠냐고.

근데 그 사람이 꽤나 이름있고 유명한 사람이다 그러면 또 얘기가 틀리겠지? 마틴 루터잖아. 어렸을 적에 세계사 시간에도 거론되었던 인물. 근데 말이지. 나는 상대가 유명한 사람이고 아니고를 떠나 들어볼 말을 해야 들어보지. 위의 얘기를 들어보면 마틴 루터는 상황 파악을 제대로 못 하는 거 같다. 한 개인의 복수로 시발이 되었을 지언정 이런 상황이 벌어진 데에 대한 핵심을 모르는 거지. 헛똑똑. 내 기준에서는 병신 육갑. 그런 그의 태도는 이후 대사에서도 잘 나타난다.

마틴 루터:
모두가 당신처럼 한다면 세상에는 더 이상 질서도 정의도 없을 거요.
당장 당신의 병사들이 자기 마음대로 정의를 행하겠다고 하면 어쩔텐가?
모두 자기 식의 복수를 하겠다고 하면?
당신은 심판은 인간이 아니라 신의 몫이라고 말하겠지.
신께서 당신을 도우실 거요.
그 분께서 주시는 고난을 이겨내고
불의를 참고 견디는 법을 배운다면 말이지.
크리스천의 무기는 칼과 총이 아니라 십자가와 인내임을 아직도 모르는 거요?
우리에게 승리란 지배나 권력이 아니라 복종과 겸손임을 깨닫지 못했소?
우리가 바라는 것은 평화롭게 공존하는 것이니
농민들을 두려워할 이유가 없다고
내 평생 교회와 귀족들을 설득해 왔는데
당신의 폭동 때문에 내 노력은 헛된 것이 됐소.

미하엘 콜하스:
내 소중한 아내는, 내 아이를 낳아준 그녀는
공주를 만나러 궁에 갔었지요.
제가 응당 받아야할 정의를 위해 읍소하려고요.

마틴 루터: 무기를 버리시오.
미하엘 콜하스: (괴로워하며) 남작이 제 말을 돌려주면
마틴 루터: 당신의 믿음과 당신 아이들의 믿음
미하엘 콜하스: 자기 손으로 보살펴서
마틴 루터: 모든 어린 신도들의 믿음의 이름으로
미하엘 콜하스: 원래 상태로 돌려준다면 무기를 놓겠습니다.
마틴 루터: 그렇지 않다면? 
아내를 잃은 슬픔이 치유할 수 없을 만큼 크다고 당신은 말하지만
죽음을 이겨내는 길이 있음을 정령 모르나? 
개미부터 인간까지 저마다의 방법으로 죽음을 이겨내지. 
당신의 길이 가장 간단해. 죽이지 않는 거지. 죽음은 선택의 문제요.
죽이지 않는 자는 죽지 않아. 지금 당신이 생각해야 할 것은
당신의 힘이 얼마나 강한가, 당신의 적이 얼마나 극악한가 하는 게 아니오.
지금 하려는 일이 정의를 위한 것인지, 양심에 거리낌 없는지 자신에게 물어보길 바라오.


마틴 루터의 얘기를 들어보면 맞는 말 같애. 마치 미하엘 콜하스가 자기 얘기 안 들어준다고 투정 부리는 어린 애같고. 어린 애 달래듯이 얘기하고 말이지. 근데 웃긴 건 그는 공주의 서신을 들고 와서 건넸거든. 게다가 그의 대사를 꼽씹어 보면, 지가 지금까지 노력했던 게 너 때문에 무너지잖아~ 왜 이래? 이런 거야. 즉, 미하엘 콜하스의 입장을 충분히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게 아니라(이해했다면 나도 당신 같은 상황이라면 이해하겠소. 그러나 이건 아닌 거 같소. 이런 식이어야지) 내가 평생 설득해왔던 거에 반하는 행동을 니가 하니까 내가 뭐가 되니? 뭐 이런 유아틱한 발상을 하고 있거든. 이런 유아틱한 발상은 행동으로도 나타난다.

미하엘 콜하스: 제 고해를 받아주시겠습니까?
마틴 루터: 무릎을 꿇으시오. 당신의 적을 용서하고 말을 찾아와 직접 보살필 준비가 되었는가?
미하엘 콜하스: 모르고 제게 악을 행한 자들은 얼마든지 용서하겠습니다.
하지만 남작은... 그의 손으로 제 말을 돌려놔야 할 것입니다.
마틴 루터: (떠난다)
미하엘 콜하스: 신부님? 제게 평안을 주지 않으시는 겁니까?
마틴 루터: 신의 이름으로는 안되겠소. 공주와의 평화는 당신 손에 달렸지.


에라이~ 지가 뭐 신의 대변인이야? 뭐야? 지 말 안 듣는다고 "신의 이름으로는 안되겠소" 에라이~ 쪼잔한 새끼. 결국 마틴 루터의 대사들을 종합해보면, 그는 종교 개혁가일 지는 몰라도 계급사회에서 지배계급을 옹호하는 입장이었다는 거다. 그러니까 저렇게 얘기하지. 그런 잣대로 그의 대사를 보다 보면 모순된 부분도 보인다. 찾아보니 실제로 마틴 루터는 농민전쟁에서 지배세력의 편이었다는. 음. 역시 


마지막 장면에서 보여준 매즈 미켈슨의 연기

소설의 내용은 모른다. 실제는 영화와 좀 다르다. 그러나 실제와 다르게 구성했기에 더 생각해볼 여지가 있는 게 사실이다. 미하엘 콜하스는 공주가 서신을 보내서 미하엘 콜하스의 요구를 들어준다고 하지 않았다면 충분히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었음에도 요구를 들어준다고 하니 자신의 반란군을 해체했다. 그 요구는 말 두 필을 남작이 직접 보살펴서 돌려주고 자신의 고소장을 접수해서 재판을 열어달라는 거거든. 고작 그거 밖에 없다고. 그거 얻어내려고 이 난리법석을 떨었던 거고.

그러나 반란군 해체 이후에 미하엘 콜하스의 하인이 귀족 둘을 살해하고 귀족의 재산을 농민들에게 나눠주는 사건이 벌어지게 된다. 그 때는 이미 미하엘 콜하스의 하인이 아니었는데 말이다. 이로 인해 미하엘 콜하스의 사면은 취소가 되고 그는 사형 선고를 받게 된다. 근데 재밌는 건 사형 집행 하기 전에 미하엘 콜하스의 요구는 다 들어준다는 거. 남작이 말을 보살펴서 원상태로 만들어 돌려주고, 남작에게는 징역 2년형에 처하게 된다. 그리고 나서 미하엘 콜하스의 사형이 집행된다.

실제와는 다르지만 이 때문에 참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거다. 권력의 횡포에 반기를 들고 잘못된 걸 바로 잡으려고 했던 일련의 행동들이(상대가 그렇게 나오니까 칼을 빼든 거지) 결국 자신에게 영향을 받은 다른 사람들로 인해 자신이 피해를 입게 되는 상황이 벌어진 거다. 어찌보면 이런 결과가 나오는 것도 어처구니가 없고, 그게 미하엘 콜하스의 잘못이라고 할 수 있을까 싶지만 국왕 폐하의 존엄을 세우기 위해서 그렇게 한다는 거. 일면 이해되는 부분도 있다.


여튼. 마지막 사형 장면은 정말 잊기가 힘들다. 매즈 미켈슨이 아닌 누구가 그런 연기를 할 수가 있을까 싶을 정도다. 정말 연기 잘 한다. 매즈 미켈슨. 눈빛과 표정만으로 모든 걸 전달해주는 매즈 미켈슨의 연기는 정말 명장면 중의 명장면이 아닌가 한다. 죽음 앞에서도 의연할 것 같은 그도 죽음을 앞에 두고서는 나약해지는 인간이었던 것이다.


<미하엘 콜하스의 선택> OST



<미하엘 콜하스의 선택> 마지막 장면인 사형 집행 장면에서 나왔던 음악이다. 이 음악을 들으면 떠오르는 건 매즈 미켈슨의 눈빛.


예고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