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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떤 물건을 살 때, 쓰다가 나중에 중고로 팔아야지 하는 생각으로 구매한 적 없다. 특히나 디지털 기기와 같은 경우에는 막 다루는 건 아니라 하더라도 애지중지 사용하지 않는다. 어차피 디지털 기기는 사고 나면 반값이요, 기능이 중요한 거라 생각해서다. 그러나 최근에 생각이 바뀌었다. 이런 생각이 바뀌는 계기는 항상 이사할 때가 되면 그런 듯 싶어.
#1
책
지금은 그렇지 않지만 20대, 30대 중반까지는 참 책을 좋아했다. 영화와 같이 책도 권수를 카운트하긴 하지만 생각보다 많이 읽지는 않았다. 나는 책을 읽을 때 정독을 하기 때문에 생각보다 책 읽는 속도가 빠르지 않고, 책을 읽다가 생각을 많이 하기 때문에 천천히 읽는다. 대학교 시절에도 하숙방에서 책을 빌려가는 친구들도 있었고(빌려주는 건 잘 빌려준다. 제때 갖고 오지 않는 걸 싫어하지.), 재수할 때는 쉬는 시간에 책만 읽곤 했다. 그래서 재수를 같이 했던 친구는 내 생일 선물로 내가 읽고 있던 시리즈물의 다음 권을 사서 주기까지 했다. 내가 몇 권을 읽고 있는지 정확히 알았던 게지. 나는 시리즈물이라고 해도 한꺼번에 사지 않는다. 하나씩 산다. 내 스타일이 그런 스타일이 아닌데 희한하게 그랬다. 삼국지도, 태백산맥도, 아리랑도, 도쿠가와 이에야스도 한 권씩 한 권씩 샀다.
그러다 20대 말에 생각이 바뀌었다. 이사해보면 알겠지만 책 짐이 상당히 무겁다. 같은 부피의 박스에 책이 빼곡히 들어 있으면 상당히 무거워. 그 때 생각했지. 내가 왜 이걸 갖고 있지. 책장에 꽂아두려고? 뭐 때문에? 책장에 꽂아두면 내가 다시 보나? 아니. 나는 한 번 본 책 다시 안 보는 스타일인데. 물론 같은 책이라도 20대 때 보는 거랑 40대 때 보는 거랑은 틀리다. 그러나 그거 때문에 20년을 보관하고 있어야 하나? 게다가 20년 동안 쌓인 책들을 다 다시 볼까? 그래서 버리기 시작한 거다. 도서관에 기증하거나, 주변 지인에게 주거나, 시리즈물과 같은 경우는 팔아버렸지. 그 이후 나는 책 사도 내가 갖고 있지 않는다. 그래서 오히려 읽을 때 더 집중하는 거 같다. 이 순간이 지나면 다시는 이 책을 보지 않으니 하나라도 더 얻으려고 했던 듯.
물론 그렇다고 해서 내게 책장이 없는 것도 아니다. 있다. 두 개나. 그러나 책장을 책 꽂는 용도로 활용하지 않을 뿐이지. 책을 읽는 이유는 단 한 가지다. 내게 생각할 단초를 제공해주고, 때로는 깨달음이나 지식을 제공해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만화나 웹툰을 보지 않는다. 재미나 스토리로 보는 거는 영화 하나로 족하다 생각하니까. 그래서 영화를 많이 보는 거고. 책을 소장하는 게 지식을 얻는 건 아니잖아. 독서라는 과정을 통해서 얻는 거지. 그래서 책을 소장하는 것도 어찌보면 소유욕이라 생각했던 거다. 그 이후로 난 책을 소유하지 않는다. 오히려 e북과 같은 경우가 좋아. 소유하기 좋잖아. 고작 몇 MB 정도 밖에 안 되니. 내가 이렇게 생각한다고 해서 책을 소장하는 이들이 소유욕이 강하다 뭐 그런 생각을 하지는 않는다. 나는 단지 내 방식대로 선택을 했을 뿐.
#2
디지털 기기
디지털 기기와 같은 경우에는 최근에 생각이 바뀌었다. 물론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이사할 때가 되어 짐 정리하다가 생각하게 된 것. 크고 좋은 내 집에 살면 그런 생각 안 들거다? 그럴 수도 있다. 이사할 때가 되면 항상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으니까. 그러나 나는 큰 집보다는 작은 집이 좋다. 불필요하게 넓으면 사람이 뭔가를 채우려고 하게 되고 결국 그건 소유욕, 물질욕으로 변질되게 되어 있다. 나는 그런 물질이나 그런 거보다는 나란 인간 자체에 집중하는 걸 좋아한다. 소위 말해, 인간 명품. 그러나 나는 명품이 아니다. 아무리 갈고 닦으려고 해도 명품이 안 되네 그려. 여튼 나는 내 삶의 방식이 가볍게 사는 걸 좋아한다. 이동성 좋고. 마치 노마드처럼. 그래서 집보다는 차에 관심을 더 많이 갖는 거고. 남자라서 차에 관심이 많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뭐 나는 집에는 그닥 관심이 없다. 물론 이 또한 40대가 지나니 생각이 달라지긴 하더라만.
짐 정리하다 보니 예전에 사용했던 기기들이 주루룩 나온다. 이거 쓰지도 않는 건데 왜 내가 이렇게 고이 모셔뒀을까 싶더라. 어찌보면 별 생각없이 보관했던 게 습관이 되어서 그런 거라 본다. 그래서 이번에 작정하고 처분한다. 하나씩. 얼마에 팔리든 그래도 나한테는 득이 되지 실이 될 건 없잖아. 앞으로는 디지털 기기도 안 쓰는 경우라면 잘 생각해서 바로 처분하든지 해야지 그냥 놔둔다고 쓰나? 특히나 카메라나 렌즈는 기종 변경하면서 잘 쓰지 않게 되던데 말이다.
#3
중고 거래
우선 중고 거래 시세를 알아야 한다. 그래서 이용했던 게 SLR 클럽. 거기서 대충 시세를 파악하고 적당한 가격에 올린다. 물론 내용은 성심성의껏. 물론 사진 한 장 달랑 올려놓고 간단하게 적은 판매글들도 많다. 사실 핵심은 상태가 어떻는지, 박스까지 다 있는지, 가격은 얼마인지니까 이해는 하지만 내 스타일이 아닌지라 나름 사진 찍어서 블로그에 적듯 적었다. 그리고 가격 또한 내 나름 적정 가격을 올렸고. 파는 사람이야 좀 더 비싸게 팔고, 사는 사람이야 좀 더 싸게 구매하길 바라겠지만 상대적인 거라 적정 가격에 올려놓고 네고 안 할 생각이었다. 다만 하루 만에 안 팔리면, 하루마다 1만원씩 가격을 다운시켜서 마지노선까지 보고 있었지. 근데 하루 만에 다 팔리더라. 게다가 내가 서울 갈 일이 있어서 나가는 길에 내려서 거래하니 거래 때문에 내가 움직이고 그러지 않아서 좋았고. 괜츈.
다만 좀 아쉽다고 느끼는 부분은 진작 팔 걸 왜 이제서야 팔았나 싶은 거다. 디지털 기기는 시간이 지날수록 감가 상각이 심하게 되는 편인지라. 그만큼 새로운 제품이 쏟아지고 있고 말이지. 여튼 그렇게 거래하면서 죽 훑어보니 중고 거래 괜찮은 거 같다. 사실 디지털 기기 뭐 언박싱 영상 촬영할 것도 아니고 제품만 제대로면 무슨 상관이야. 일단 개봉하면 값 떨어지는 게 디지털 기기인데. 사놓고 몇 번 사용해보지도 않다가 처분하는 경우도 많더라고. 그래서 앞으로는 나도 판매자가 아닌 구매자로 종종 이용할 생각이다. 물론 사기꾼들 많다고 하는데, 언론에서 그러니까 많은 것처럼 보이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만, 그래도 따질 거 따져보면 되지 않을까 싶다. 돈만 미리 안 주면 되니까.
아직도 팔아야할 물건이 꽤 된다. 하나씩 찍어서 올려야지.